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8화(328/350)
전장에서 제법 떨어진 대지. 중앙 교회에서 다렉 연합국으로 뻗어 있는 넓은 땅.
그곳에서 대주교 블뤼란스는 거대한 전투를 앞두고 몸을 풀었다.
최근 대주교에 오른 시클라멘은 겁에 질려 손톱을 물어뜯었다. ‘죽기 싫은데, 죽진 않겠지? 많이 아프려나?’와 같은 말을 반복하는 시클라멘.
블뤼란스는 그 모습을 보며 한심해하다가 이젠 포기했다며 혀를 찼다.
『쯧쯧. 평생 그렇게 한심하게 살다가 죽어라.』
『블뤼란스!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 악!』
『이 녀석이! 돌았나? 어딜 감히 하늘 같은 선배한테 반말을 해?』
『나, 나도 이제 너랑 같은 대주교야! 반말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리고 머리 때리지 마!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입 다물어 어린놈의 새끼야!』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투덕거리는 두 대주교.
그들도 과거엔 인간이었던 만큼 완전히 그 모습을 씻어 내지는 못했다.
『…….』
그 옆에서 사색에 잠겨 있는 대주교 푸르푸르.
실종된 베리스와 이미 전장에 나서 있는 바르간을 제외하곤 강경파의 대주교들이 함께 있었다.
『이제 곧 나서게 될 텐데 생각이 그렇게 많아서 제대로 붙을 수야 있겠나?』
시클라멘의 목을 조르던 블뤼란스는 말을 걸었다.
본능과 직감. 그리고 육체의 센스에 따라 전투를 벌이는 블뤼란스다운 물음이었다.
푸르푸르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장에서까지 이래서야 대주교에 이름을 올릴 수 없지.』
『뭔 생각을 그리 하고 있던 건데?』
『…생각한 거야 수없이 많네만 간략히 말하자면 자책을 하고 있었네.』
『자책?』
『브, 블뤼란스 님…! 두 분께서 이야기하시는 것도 좋지만, 우, 우선 저, 저를 좀 놔 주시고… 케헥!』
숨통이 트이자 콜록거리던 시클라멘은 날선 눈으로 블뤼란스를 노려봤다.
블뤼란스는 시클라멘의 머리를 한 번 더 쥐어박고는 푸르푸르와의 대화를 이었다.
『그래서 자책이라니?』
『…집행관. 최근에 바르간이 그동안 길러 왔던 ‘마물의 군세’를 직접 보지 않았나?』
『그랬지…. 루비드 마을이었나? 벨레드 님의 권능으로 통째로 옮겨졌던 인간들과 마물의 떼. 참 바르간 그 녀석도 어지간한 수완가야. 아카데미아를 다니면서 그 정도의 수를 모으다니.』
푸르푸르는 아직도 그 군세를 처음 본 게 잊히지 않아 당시의 광경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니, 그들을 마물의 군세라고 부르는 건 틀렸을지 모르겠군. 그 우수한 마물들의 군세는 거의 대부분이 ‘사역마’으니.』
『뭐가 다른 건가?』
『아주 다르네. 마물은 인간과 계약을 맺어 사역마가 됨으로써 그 힘을 증폭시킬 수 있으니까.』
『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집행관이 그 마을을 사육장으로 이용했다는 것만큼은 잘 알겠다. 그래서, 그게 왜 자책과 이어지는 거지?』
『…나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집행관이 진행시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네. 어쩌면 마왕의 후손이라는 명칭은 나보다 그에게 어울리는 것일지 모르겠어.』
과거 세상에 커다란 위협이었던 마왕.
그러나 여신에게 패배한 후 마왕의 아들이자 푸르푸르의 아버지였던 자는 여신에게 충성을 맹세했었다고 한다.
푸르푸르는 그 종속을 이어받아 자연스레 여신교의 신자가 되었다.
그는 마물들을 사랑하며 두 마리의 십이신수까지 거느리고 있었으나 마물의 번영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소극적이고, 수동적.
푸르푸르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을 그렇게 평가 내렸다.
『그래서 자책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것참 같잖은 일이군.』
『…자네 말이 맞네. 나 역시 작금에 와서야 이런 후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네. …그래. 지금은 오롯이 전장에만 신경 써야 할 때지.』
씁쓸한 미소를 짓는 푸르푸르.
그들의 대화가 끝나 가자 때마침 벨레드의 마나가 사방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블뤼란스는 그 엄청난 기운을 전신으로 느끼며 입가에 긴 호를 그었다.
『드디어 출전이로군. 근질근질해서 죽는 줄 알았어.』
강경파 약 90만.
중립 약 40만.
도합 130만에 이르는 대군이 울부짖었다.
그들의 총책임자, 제2 군단장 벨레드.
그녀가 앞으로 나오며 이제껏 없었던 대규모 이동을 준비하자, 블뤼란스는 고조되는 감정을 입 밖으로 드러냈다.
『아주 재미있는 전장이 될 거야. 카하하학!』
***
콰강! 쿠구구궁!
바엘의 등장으로 난리가 난 중앙 교회.
한편, 제1 군단장 아몬은 100만의 대군을 이끌고 깨져 가는 방어막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균열이 커져 가고 있어요. 집중적으로 물리적인 충격을 준다면 완전히 깨트릴 수 있을 거 같네요.’
바엘이 내부에서 주요 용사들과 싸우는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입성이 가능할 듯하다.
중앙 교회가 무너지면 다음은 위드그라실과 다렉 연합국, 이어서는 트로아 제국과 오셀 왕국.
그렇게 대륙을 먹어 버릴 심산이다.
‘이대로 진행이 된다면 벨레드나 제파르가 나설 필요도 없겠어요.’
바엘의 무력이 상상 이상으로 압도적이라 용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비록 온건파의 사제들이 아몬이 아닌 바엘을 더욱 따른다고 하더라도, 바엘 역시 정해진 마나 총량이라는 게 있는 이상 항시 현 상태를 유지하지는 않을 터.
벨레드에게 뺏긴 권력을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다만, 신경 쓰이는 건….』
아몬은 북쪽 능선을 지키고 있는 바르간을 노려봤다.
바르간은 전장이 끝날 무렵, 중앙 교회로부터 도주할 패잔병들의 처리를 맡아 비교적 적은 군세를 맡았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아뇨. 이건 괜한 생각이에요. 바엘이 부활하고 제 기억까지 훑었는걸요. 그가 아무리 권력 유지를 위해 수를 쓴다고 하더라도 결국 뿌리째 들려 나가고 말 거예요.’
아몬은 잡념을 떨쳐 내려 들었다.
1년 전, 바르간이 고유술식으로 최대 4만의 검은 알티프를 소환하는 걸 봤다.
그가 제 패를 숨기기 위해 전력을 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8만… 정말 높게 쳐줘야 12만이 한계일 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벨레드가 아무리 최근 미쳐 날뛴다고 하더라도 설마 교황직을 유지하기 위해 강경파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않을 거예요.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테니까요.’
벨레드가 그 정도로 정신이 나가진 않았다.
벨레드는 계산과 정황 파악이 빠른 여인이다. 바엘이 재림한 이상, 해당 행위가 자살과 같다는 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걸 원위치로. 온건파가 중심을 잡는 그때로…!’
아몬은 중앙 교회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바람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누구도 그녀의 행보를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쩌어어억—.
돌연, 중앙 교회의 앞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괴물의 입.
분명 벨레드의 권능임이 틀림없다.
‘왜…? 어째서 벌써 나온 거지? 그것도 중앙 교회 내부가 아니라 성벽의 앞으로….’
이래서야 아몬의 군세와 충돌하고야 만다.
최선두에 있던 아몬은 급하게 군대에 정지를 명했고, 대주교 포라스가 마나를 담은 채 외쳤다.
『전군, 정지하라—!!』
멈춰서는 제1 군단.
그들 역시 이상한 기운을 감지라도 했는지 벨레드의 권능을 보곤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이윽고 괴물의 입에서부터 나타나는 대군세.
벨레드와 온건파의 대주교들, 그리고 130만의 사제들이 바라보고 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죠? 벨레드.』
아몬은 보석과도 같이 아름다운 자색의 눈동자를 날카롭게 했다.
흉흉한 마나가 슬금슬금 그녀의 살결을 타고 밖으로 나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벨레드 역시 일부러 의사를 드러내듯 살의가 가득 담긴 자색의 마나를 피워 올렸다.
『무슨 짓…? 그래. 되레 물어보마. 무슨 짓으로 보이느냐. 아몬.』
『…완전히 미쳤군요. 당신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내가 미쳤다?』
『네, 미쳤어요. 지금 이렇게 서 있는 데도 모르겠어요? 바엘 님이 재림하셨다고요, 성서의 주인이 이곳에 있다고요! 교황에 올랐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예요? 아니면 바르간이라는 인간에게 진정 홀리기라도 한 건가요?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아몬은 자신의 말투가 거칠어졌음을 느끼곤, 잠시 차분하게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벨레드, 각 파의 수장으로서 함께했던 세월을 생각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할게요. 지금 당장 군을 무르거나 중앙 교회로 향하도록 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예요.』
『후회…. 후회…. 후회라면 이미 충분히 하고 있다.』
벨레드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지난 수천 년간을 떠올렸다. 여신교의 중심, 그 절대자의 위치에서 한 번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온건파와 아몬.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약세 세력이라는 굴레.
그간 말만 강경파지 온건파의 발돋움을 위한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 세력의 불균형은 시기와 분노를 쌓았고, 집착을 만들어 냈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은 너희에게 차별받아 오며 고통받았다. 난 어미로서 아이들의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지 못한 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
『…가족 놀이도 거기까지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저는 분명 경고했어요, 벨레드.』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아몬. 난 이제야 겨우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아이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넌 나보고 다시 그 처참한 생활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냐?』
『벨레드. 당신….』
『더 빨리 지금의 자리에 올랐어야 했다. 그게 내 유일한 후회로구나.』
구구구구궁—!
아몬과 벨레드의 마나가 대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두 추기경이 내뿜는 거대한 기운은 하늘에 가득 찬 먹구름마저 변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녀들을 따르는 대주교와 주교들도 불길한 마나를 보였다.
이성이 없는 사제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눈앞에 있는 동족을 씹어 먹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여신교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뒤집어 봐도 없었던 추기경과 추기경의 전면전.
온건파와 강경파 두 거대한 세력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벨레드, 당신의 뜻을 확실하게 알았어요. 이제 보니 교황직에 오르고 나서 곧바로 저를 죽이지 않았던 것도 형상파와 무형파를 제물로 바쳐 바엘 님이 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로군요.』
벨레드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아몬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나누는 대화가 그녀와의 긴 악연의 끝이 될 것이다.
『당신이 바엘 님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벨레드는 입가를 올리며 답했다.
『그건 곧 사자가 되어 이포스의 뒤를 따를 네가 할 걱정이 아니구나. 아몬.』
이윽고 전장은 더 없을 정도로 요란스럽게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