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2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29화(329/350)
“하아. 하아…….”
무너진 성벽의 사이에 쓰러져 있던 클레멘스.
돌가루를 털어 내고 간신히 눈을 뜬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주변의 상황이 서서히 비치기 시작했다.
완전히 부서진 성벽. 시체가 되거나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병사들. 중앙 교회의 본관을 향해 뻥 뚫려 버린 거대한 흔적.
그러나,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성벽의 바깥, 알티프끼리 벌이는 거대한 전투다.
쿠우우웅—!
그 진동이 얼마나 거대하고 소름끼치는 지 클레멘스는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창을 지팡이 삼아 버텨 선 클레멘스.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다시금 초토화된 성벽을 살피던 그녀는 한 시체를 보게 되었다.
“…….”
그녀는 눈을 비비고 입 안을 깨물어 보았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녀가 있는 세상은 악몽 따위가 아니다. 차라리 이대로 스스로 목을 긋는 게 나을 지도 모르는 비참한 현실이다.
“…흐억!”
아버지의 죽음에 다시금 넋을 잃기 전. 클레멘스의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
중앙 교회의 본관에서부터 느껴지는 방대한 마나. 최상위 포식자인 바엘의 마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엘은 벌써 교회의 중심부에 이른 듯했다.
“허억, 허억…!”
점차 가빠지는 숨. 클레멘스는 누군가가 심장을 꽉 움켜잡고 있는 듯한 괴로움을 느꼈다.
몸에 새겨진 극한의 공포심이 그녀를 옥죄었다.
무력함과 이겨 낼 수 없는 압박감에 무릎을 꿇는 클레멘스. 그녀는 머리가 사라진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려던 그 순간.
“못 본 사이에 한심하게 변했네. 하마터면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칠 뻔했어.”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밤 기운을 담은 목소리는 퍽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널 다시 마주하면 이것저것 당한 만큼 갚아 주려고 했었는데…. 이래서야 그럴 수도 없겠고….”
여린 달빛을 닮은 머리칼의 여인은 시체와도 같이 창백한 피부를 지녔다. 언뜻 영혼을 갈취하는 마녀 같기도 한 그녀.
클레멘스와 한번 연이 끊어졌던 사령술사가 돌무더기에 서 있다.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소감이 어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지 않아?”
“…프란…체스카.”
사령술사 프란체스카.
아카데미아의 축제를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던 인재가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워낙 뜻밖의 인물 그리고 뜻밖의 상황에 나타난 그녀.
이에 클레멘스가 입을 떼려는 순간, 프란체스카가 먼저 말을 이었다.
“길게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고, 바로 움직여야 하니까 우선 정신부터 똑바로 차리지?”
* * *
“꺼허…억. 끄으윽.”
산산조각이 나 버린 중앙 교회의 본관. 그곳에는 바엘이 있었다.
“츠으윽. 그헉….”
바엘의 손에 목을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리암. 끝까지 검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으나 이미 절반이 댕강 날아간 지 오래다.
허공에서 수영을 하는 리암의 다리. 그의 숨은 끊어지기 직전이다.
『두 개의 영혼인가. 마치 성서를 완독한 자 같구나.』
삼라만상을 담은 듯한 바엘의 눈에는 리암의 영혼과 육체가 전부 보였다.
하나의 육신에 두 개의 영혼이란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성서를 완독했다고 여겨지는 바르간만 하더라도 이해 불가한 현상인데 한 시대에 두 명이나 존재한다.
그 사실이 리암의 목숨 줄을 제법 끌고 있었으나 바엘은 그마저도 곧 관심을 죽였다.
다소 신기하기는 해도 곧 죽어 버릴 인간이야 먼지와 같다.
중요한 건 이곳에 있어야 할 다른 인물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성제는 미리 피신시켜 놓은 모양이군. …너흰 또다시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바엘이 리암의 목을 더욱 졸랐다.
하지만, 바로 죽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젊은 용사가 성제의 위치를 알고 있을지 모르니 기억을 살펴야 했다.
“끄, 흐어어억….”
이미 완전히 전력을 소모해 버린 리암. 바엘의 손을 뿌리쳐 보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
리암의 머리 위에 바엘의 손이 얹어졌다. 리암은 발악을 이어가면서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 건가…! 아직 싸울 수 있는 동료는 없는 건가…!’
같은 팀원이었던 아르하와 에를리히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다.
근접전을 벌였던 가바는 온몸이 찢어진 채 죽어 버렸고, 레온은 서 있긴 했으나 완전히 바스라진 양 손을 들고는 전신의 근육이 마비되었다.
아르텔리온 역시 커다란 내상을 입은 채 바닥에서 피를 토하고 있다.
그 곁에 쓰러져 있는 에리카는 숨을 헐떡이곤 있으나 심장의 고동이 불안하기 그지없다.
‘…이대로 끝이 날 순 없어.’
정령 마법을 사용하던 페랑기스는 정령과 함께 세상에서 소멸되었다.
그밖에도 피 냄새를 진동하는 수많은 병사들, 그리고 용사들의 시체.
이 모든 이들에게 기적을 내리던 에밀리는 몸의 절반이 썩어버려 움직일 수 없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리암은 살고자 더욱 발버둥 쳤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황에도 마나를 움직이려 들며 저항하려 했다.
그러나, 약한 부채 바람에 태풍이 사라질리 만무하다.
『보여라.』
“끄으으윽…!”
더욱 일그러지는 리암의 얼굴.
짧은 순간에 리암이 모든 기억이 날것 그대로 바엘에게 보였다.
『…오늘은 여러 차례 놀라게 되는군.』
바엘은 리암의 기억을 통해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또 하나의 세계를 보았다.
마법이 아닌 과학과 기술로 가득한 세상.
그들의 세계에서 고작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이 세계의 형태.
그리고 리암이 읽었던 최초의 원작과 그 안에 존재했던 시간선.
바엘의 머릿속에 들어온 수많은 정보들이 종합되며 불쾌한 사실을 전했으나, 이 역시 곧 차갑게 식어 있는 바엘의 감정을 들끓게 만들진 못했다.
과거, 빙의가 된 원작의 바르간이 자신들은 신의 오락거리에 불과했다며 격노했던 때와 대조하면 상당히 다른 반응이다.
아무래도 바엘의 감정은 오래 전에 타 버려 재만 남은 듯하다.
『비록 의미를 갖진 못했으나 충분히 놀랄 만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바엘은 보답으로 리암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내리려 했다.
“……컥.”
연이은 커다란 충격에 의식을 잃어 가려는 리암. 바닥에 놓아진 채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자세를 마쳤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로 끈질기군.』
이를 가만둘 수 없다는 듯 바엘을 덮치는 붉은 단풍잎의 폭풍.
간신히 숨을 이어 가고 있던 아르텔리온이 힘을 쥐어짜 내며 이를 조종했다.
사사사삭—!
먹이를 갉아 먹는 벌레 떼와도 같이 격정적이면서도 오직 바엘만을 노리는 정확성.
검제 아르텔리온은 지금 이곳에 제 목숨을 걸었다.
“리암…! 의식을 잃지 마라!”
최초의 주인공이 외쳤다. 겨우 몸을 일으켜 들어 올린 그의 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오러가 빛을 발했다.
“우린 죽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저 괴물을… 인류를 가축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저 괴물들의 심장을 도려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 사실을 잊은 건가!”
“…….”
“리암!”
“……알고… 있어.”
리암의 심장박동이 거세다.
그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나도… 잘 알고 있다고.”
사력을 다해 흐릿해져 가는 시야를 강제로 되돌려 놓는 리암.
원작의 주인공인 리암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리암은 과거의 자신을 탈피했다. 소설에 빙의한 지 얼마 되지 않을 적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그는 많은 좌절과 공포에 맞서 싸웠고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리암.
두 주인공은 바엘이라는 하나의 적을 앞에 두고 발끝을 맞춰 섰다.
이미 둘 다 전신인 만신창이. 검날은 날이 다 나갔으며 심지어 절반이 툭 잘라져 있는 상황.
그럼에도 두 사람을 겁먹지 않으며 상황을 분석한다.
“리암…. 녀석을 내 오러로 붙잡아 잠시 시간을 끌고 있다만… 머지않아 단번에 풀리게 될 거다.”
“…그러…겠지. 이렇게 죽자고 덤볐는데… 아직까지도 치명상 한 번을 입히지 못했으니까.”
아직도 숨이 부족한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안에 가득 쌓인 피를 뱉어 내는 리암.
그의 심장은 레이스의 막바지에 오른 운동선수와도 같이 한계를 넘어 쥐어짜 내려 한다.
아르텔리온 역시 육감적으로 이번 발악이 마지막임을 알아 몸에 과부하가 올 정도로 마력을 끄집어내며 말했다.
“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기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기술. 두 기술을 동시에 한곳에 쑤셔 박으려 한다.”
“쑤셔 박다니…. 왕자님의 입에서 나올 법한 단어는 아닌 거 같은데?”
리암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몸을 둔하게 만들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계급에 구애받지 않는 게 용사 아니었나?”
“그건 또 맞는 말이지. …이야, 생각해 보니 감회가 새롭네. 설마하니 내 마지막을 주인공과 함께하게 될 줄이야.”
이미 허용선을 훨씬 넘은 두 사람의 몸.
설령 바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기술을 사용한 순간 분명 바엘은 반격을 할 것이니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리암은 항상 재수 없게 굴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여기에 ‘그 녀석’까지 있었다면…. 조금은 더 상황이 좋아졌을 텐데.”
그러나, 저의를 알 수 없는 인물을 염두에 둔다고 해도 의미 없는 일.
리암은 생각을 정리하고 오롯이 바엘에게만 모든 집중을 다했다.
촤학—!
바엘의 마나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가루가 되어 확산되는 아르텔리온의 단풍잎들.
그 안에서 보이는 바엘의 몸은 오히려 치료를 마친 듯 모든 피해를 회복한 상태다.
3… 2….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극도로 쪼개진 초를 셌다.
타이밍에 대해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으나, 서로의 최대치를 넘은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초가 끝나는 즉시, 바엘의 심장을 향해 기술을 휘두른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과 같이 모든 걸 불태운 채 소각되리라.
‘미안, 에밀리.’
리암의 무의식 속에서 전해지는 말. 단백하고 짧은 한마디가 그의 유언이었다.
* * *
“쯧쯧. 아직 살날도 많이 남은 아해들이 명줄을 재촉하려면 쓰나.”
죽음을 각오했던 리암과 아르텔리온.
두 사람의 검이 나서기 직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바엘을 덮쳐 날아갔고 이어서 웬 구름이 상공에서 추락했다.
있을 수 없는 질량과 속도를 갖춘 구름.
그 구름을 다루는 노인.
마치 신선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모습의 노인은 길게 미소를 지었다.
“리암, 이 무식한 녀석아. 내가 밖에서 개죽음 당하라고 혼백관에 들인 줄 아느냐?”
노인의 정체는 십이신수 중 하나인 카닐리스크였다. 리암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출현에 당황했다.
“어, 어째서 이곳에….”
“핀. 그 고얀 놈이 하도 내 구름을 가져오지 않기에 산보 겸 내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서는 적적하니 마침 나가려던 것들과 함께 왔지.”
콰자자자작—!
카닐리스크가 말을 끝내가기 무섭게 바뀌어져 버린 주변 지형.
냅다 바엘에게 돌격한 얼음의 드래곤이 극한의 냉기를 뿜어낸다.
“프릭칸리스크…!”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얼음의 드래곤이라 하면 그녀 말고는 없었기에 리암은 바로 그 존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곧바로 프릭칸리스크와 합세하여 바엘에게 맹공격을 퍼붓고 있는 여섯 마리의 신수들.
아카데미아에 있을 적 동상으로만 보았던 그리폰과, 세이만 협곡의 주인이자 행운의 상징으로 유명한 세이만 역시 그 중에 있다.
리암은 다급히 카닐리스크에게 물었다.
“카닐리스크 님께서 저렇게나 많은 십이신수를 데려오신 겁니까?”
“요놈아. 말했지 않느냐. 나는 마침 나가려던 녀석들과 함께 왔을 뿐이다.”
“그, 그럼 대체 누가 저들을…….”
“그러게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지 내가 다 묻고 싶을 정도로구나.”
카닐리스크는 수염을 쓸며 웃었다.
그는 이렇게나 많은 십이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건 자신도 처음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아직 다 온 것도 아니다. 한참이 남았지. 끌끌끌.”
구구구구궁—!
북쪽에서부터 울린 진동이 천지를 울린다.
피에 굶주린 동물들처럼 달려드는 수많은 사역마와 알티프들. 달그락거리며 뛰어오는 전신 무장의 새하얀 백골들.
그리고, 그 최선두에서 달리는 거대한 뼈의 드래곤.
모두가 시선을 빼앗기에는 충분했으나, 리암과 아르텔리온이 주목하는 대상은 뼈로 이루어진 드래곤을 타고 있는 남자였다.
기상천외한 광경을 보게 된 리암은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읊조렸다.
“바르간….”
집행관 바르간.
사역마 약 35만과 마물 15만, 온건파 알티프 10만과 개조된 알티프 10만, 더불어 세상에 퍼져 있던 10마리의 십이신수와 함께 전장에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