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3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30화(330/350)
다가오는 바르간의 군세.
십이신수와 맞붙고 있는 바엘은 그들을 경계하는 듯 보인다.
“끌끌끌. 그나저나 아해야. 핀 그 고얀 녀석은 어디에 있느냐?”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카닐리스크의 눈썹이 달싹여지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의 사상사들을 살펴보아도 핀이 보이지 않았다.
리암은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근처에 보이는 위그드라실을 가리켰다.
“핀은 중앙 교회가 아니라 위그드라실을 수호하고 있어서 만나려면 절로 가셔야만….”
“뭬야? 여기가 아니었단 말이냐?”
“예, 예예? 모르고 오신 건가요?”
“모르고 왔지 그럼! 이런 썩을! 저, 저저 버르장머리 없는 검은 머리 아해 같으니라고. 십이신수를 집합시킨 것도 모자라 거짓을 고하다니! 천벌을 받을 놈이구만!”
카닐리스크는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바르간을 바라보며 성을 냈다.
아무래도 그는 바르간에게 속아 핀의 현 위치를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리암은 정신을 놓으면 쓰러질 것만 같은 상태에서도 헛웃음을 지었다.
바르간답다면 바르간다웠다.
“쯧. 구름을 받고 내빼려고 했건만 귀찮게 되었구나. 꼼짝 없이 저 무지막지한 것을 상대하게 되었어….”
그렇게 말하며 팔을 걷어 올리는 카닐리스크.
말은 구시렁거리고 있으나 막상 표정을 보면 진심으로 화가 난 것도 아닌 듯하다.
리암은 카닐리스크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말했다.
“카닐리스크 님…. 그 힘은 설마…….”
“본좌도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겠느냐. 이대로 있으면 구름을 되찾기는커녕 넝마가 되어 주변에 널브러질 것을.”
자세히 살피니 카닐리스크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십이신수에게서 지금껏 관측되지 않았던 정도의 충만한 힘이 느껴진다.
몇 배나 증폭된 그들의 힘.
굴레마시아가 모티브 삼았던 십이신수들만의 고유한 능력.
그들은 본래 자신의 생을 줄여 하나뿐인 자손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수단을 이 순간을 위해 강제로 이끌어 냈다.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던 생의 종착지가 정해졌는가. 끌끌끌.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로구나.”
더군다나 카닐리스크의 팔에 문신처럼 그려져 있는 문양.
사역마. 즉, 인간과의 직접 계약을 의미하는 저주가 그들의 힘을 더욱 증진시켰다.
“…에잉. 아무리 그래도 십이신수들이 좋을 대로 이용만 당하는 것 같아 속이 시원치 않구나. 리암아. 저 버르장머리 없는 검은 머리 아해가 혹여나 바엘을 죽이지 못하거든 네 검으로 검은 머리 아해를 베어라. 알겠느냐?”
카닐리스크는 혀를 차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말투는 가벼웠어도 카닐리스크를 비롯한 십이신수들은 죽음을 각오했음이 틀림없었다.
“핀. 그 아해를 보지 못한 게 걸리는구나. 몸이 영혼의 성취를 따라 주지 않아 걸레짝이 되진 않았는지 보려고 했거늘….”
점차 변화하는 카닐리스크의 몸.
수염은 더욱 길어지며 육체는 거대한 수달과도 같이 변한다. 구름이 옷이 되어 그를 감싸고, 호박색 빛깔의 눈은 생기와 살기로 가득 찼다.
투웅—!
그렇게 십이신수들은 바엘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 * *
힘을 증폭시킨 십이신수들과 교황 바엘의 전투.
이제껏 없을 정도로 강해진 십이신수들은 바엘에게 고전을 겪으면서도 제법 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여신과 마왕이 살아 있던 시기의 역사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 전장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긴장케 했다.
쿠우우웅—!
천지가 울부짖으며 계절이 쉴 새도 없이 바뀐다.
시뻘건 태양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듯 타오를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산맥의 정상에 와 있는 착각이 일었다.
폭풍이 일고 암석이 떨어지는 중앙 교회.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호하는 해골 병사들과 프란체스카.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붙잡곤 실베스테르의 심판 무구를 이어받은 채 현장을 지휘하는 클레멘스.
병사들은 대역죄인 바르간이 데리고 온 이들에게 전장을 맡겨야 하는데 불안감을 느꼈지만 이미 바엘에게 된통 당한 그들에게 주도권은 없었다.
구구구궁—.
곧이어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바엘의 앞에 바르간과 그가 이끄는 군세가 도착했다.
바엘의 사방을 포위한 바르간의 병력.
잔뜩 기세가 오른 그의 세력들로 빈틈이 없다.
이윽고 바엘이 맞붙고 있던 세이만을 날려 버리자 이들 간의 거리가 벌어졌고, 잠시 동안의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나는 너를 알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바엘의 눈동자가 바르간을 향했다.
그러자 바르간은 미소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저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하시는 것치고는 상당히 정보의 갱신이 늦은 모양입니다? 가문을 떠난 지 벌써 4년. 단순히 바르간이면 족한 텐데요.”
여신교의 최강을 앞에 두고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바르간.
그의 몸에서는 짙은 마나의 향이 나는 향수 냄새가 났다.
기다란 손가락에는 방대한 에너지를 품은 반지가 달려 있으며, 그의 곁에는 비가시화된 ‘폭식’이 힘차게 마나를 빨아먹었다.
『상당히 이질적인 인물이더군. 리암도. 너도.』
묵직한 바엘의 목소리는 지면을 타고 울렸다.
그 음성에는 생물의 경각심을 절로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르간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입을 뗐다.
“아무래도 리암의 뇌를 살피신 듯하군요. 뭐, 잘되었습니다. 덕분에 세상에서 무서울 것 하나 없는 바엘 님께서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존재인지 제 입으로 알려 드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심기를 툭툭 건드리는 바르간의 말에도 바엘은 인상을 구기거나 하지 않았다.
헤일리온과는 또 결이 다른 무감정.
선천적으로 감정을 갖지 못했던 헤일리온과는 달리, 바엘은 살롬의 죽음 이후로 심장이 파여진 듯 보였다.
바엘은 십이신수와 도합 50만이 넘는 마물과 사역마들을 눈에 새겼다.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상당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이 세계에서 마왕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
과거 마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최초의 마법사와 제자들.
그리고 그 첫 번째 제자인 바엘.
때문에 철저히 위세를 격하시켰던 마물과 그들을 다루는 바르간은 바엘에게 과거를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대를 거듭했어도 슈겐하르츠의 의지는 살아 있다는 뜻처럼 보이는구나.』
바르간과 같이 사역마와 저주 마법을 주로 다뤘던 슈겐하르츠.
당시 슈겐하르츠를 가장 주의해야 할 적으로 생각했던 만큼, 바르간은 최우선적으로 처단해야 할 적이었다.
바르간은 어깨를 으쓱하며 다소 늦은 템포로 답했다.
“말씀드리지만, 저는 마왕이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마왕은 그저 목표를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지요.”
『과정이라.』
“마왕이 되어 무엇을 하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돈과 권력을 쓸어 모으겠습니까? 공포의 대상이 되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사람들의 표정을 즐기겠습니까?”
바르간은 그런 것 따위 의미 없다며 말을 이었다.
“개중에는 그런 행위를 좋아라 하는 작자들 또한 있을지 모릅니다만…. 저는 본디부터 타고난 선인인지라 악행을 즐기지 못합니다. 아쉽게도 말이지요.”
장난인지 진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바르간의 표정.
그는 능청스러움에 바엘은 지난 바르간의 행적 중 하나를 짚었다.
『네가 집행관이라는 이름을 달기 위해 죽인 사람의 수만 하더라도 대도시 네 개는 우습게 넘어간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그들을 해하는 저 역시 고통에 몇 달 밤을 샐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리암의 기억을 살핀 바엘 님이라면 이젠 아실 겁니다. 전 무의미할 뻔 했던 그들의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위대한 장의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대로였다면 모조리 소멸했을 인류.
오히려 바르간은 최소한의 피해로 이 정도의 준비를 마친 자신은 칭송 받기에 마땅하다고 했다.
마치 악역과 선역이 반대가 되어 버린 듯한 발언.
바엘은 찬찬히 눈꺼풀을 감았다 뜨며 답을 내렸다.
『…그렇군. 그게 네가 인류를 수호하는 방법인가.』
“하하하.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 군요. 전대 교황 바엘 님. 전 어디까지나 여신교의 신자. 그 중에서 현 교황이신 벨레드 님을 모시는 대주교일 뿐입니다. 그런 제가 인류를 수호하다니 가당치도 않는 말이지요. 제가 바엘 님을 죽이려는 건 전부 벨레드 님을 위한 것입니다.”
빙그레 미소 지으며 바엘이 내린 답을 부정하는 바르간.
그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투명한 마나는 바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압력과 밀도를 지니고 있다.
바르간의 세력과 바엘. 거대한 전투가 재개되기 직전, 바르간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바엘 님. 저 역시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바르간은 세상에서 단 몇 명밖에 알지 못하는 물음을 이었다.
“만약 성서에 적혀 있던 살롬의 문구가 사실 그녀가 적은 게 아니었다면…. 바엘 님께선 인간 학살을 멈추실 의항이 있으십니까?”
『…….』
바르간의 물음에 잠시 침묵하는 바엘.
그는 자세를 잡은 뒤 입을 열었다.
『…살롬은 죽었다. 내게 남아 있는 건 그 사실뿐이다.』
“그렇군요. 바엘 님의 의지 역시 확실히 알겠습니다.”
전신의 감각을 끌어 올리는 바르간의 군세.
루비드 마을 사람들과 계약을 맺은 35만의 사역마들은 자신들만의 무기를 내뻗으며 달려갈 준비를 마쳤다.
15만의 마물들은 털과 꼬리를 바짝 올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10만의 온건파 알티프들은 근육을 긴장시킨 채 자색의 마나를 뿜어 댔고, 프란체스카에 의해 부활한 10만의 개조 알티프들은 과거에 차마 이루지 못했던 육식을 갈구했다.
이들을 지원하는 든든한 10 마리의 십이신수.
그리고 그들의 절대 통솔권을 지닌 바르간.
그가 손을 내뻗으며 지시했다.
“바엘을 죽여라.”
크르롸아아악—!
크레레레렉!
구궁구궁구궁!
두려움을 잊고 달려드는 무리.
더욱 판을 키운 바엘의 전투는 그나마 남아 있던 중앙 교회의 모든 건물들과 구조물들을 파괴한다.
콰가가강—!
평탄했던 지면을 거대한 구덩이로 만들어 버리는 바엘의 일격.
미처 공격 범위에 벗어나지 못했던 마물들이 죽어 버린다.
크흐르악—!
그러나, 동료들의 죽음에도 이들의 복종을 막을 순 없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들은 전력을 다해 바엘을 물어뜯기 위해 발악하고, 그 위력은 바엘의 예상을 넘어설 정도로 만만치 않다.
‘수가 많군. 한 번에 줄일 필요가 있겠어.’
판단을 마친 바엘은 땅을 밟으며 압축되어 있던 마나를 터트린다.
바엘을 감싸고 있던 사역마와 알티프들을 순식간에 재가 되어 확산.
유일하게 버틴 알티프 한 명만이 동양풍의 검을 들고 바엘의 심장을 노린다.
‘한…이라. 사령술로 부활시킨 건가.’
과거 최정상급 주교였으나 세이만 던전에서 토벌당했던 한.
온갖 실패를 거듭해서 이루어 낸 프란체스카의 성과이다.
삭! 사사삭—!
이젠 그녀와 바르간의 꼭두각시가 된 한이 칼의 난무를 보였다.
검날에 담고 있는 붉은 오러가 과거의 세기를 잃지 않았다.
바엘을 몰아붙이는 듯 보이는 한.
그러나, 이는 바엘의 탐색에 지나지 않았다.
콰항—!
한의 상반신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권격의 풍압에 관통당했다.
초점을 잃은 채 멈춰 버린 한.
그 옆을 치고 나오는 바르간.
바르간이 입고 있는 로브는 프릭칸리스크의 냉기를 담아 극도로 차갑다.
‘프릭칸리스크를 착마한 건가. 위력이 상당하겠군. 한 번에 부수려면 더욱 많은 마나가 필요하겠어.’
아주 찰나의 시간 만에 결정을 마친 바엘.
후웅—!
자색 성서의 힘을 한껏 끌어 올리며 바르간을 죽이기 위해 손을 뻗는다.
그렇게 바르간에게 거대한 마나의 압력이 덮치려는 그 순간. 바르간의 마나가 극도의 푸른 빛을 띤다.
바엘은 그 의미를 알았다.
‘푸른 성서…!’
자색의 성서에 대항하는 유일한 힘.
그 힘이 바엘을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