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31)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31화(331/350)
『푸른 성서….』
바엘은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하기야, 슈겐하르츠가 죽고 나서 수천 년 동안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신약’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충분히 놀랄 만했다.
바르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역시 같은 성서의 힘은 제법 효과가 먹히는 모양이군요.”
오른팔이 터져 나간 바엘. 소설의 주역들이 아무리 맹공격을 퍼부어도 잔상처밖에 생기지 않던 그의 몸에 드디어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너흰 계속해서 내게 놀라움을 주는군. 어디서 그걸 얻었지?』
“길에서 주웠다고 하면 믿으실 겁니까?”
바르간은 착하게 살다 보면 가끔 여신님께서는 이렇듯 선물을 내려 주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나라는 분야에서 인류 정점에 위치했던 굴레마시아. 그 이상 가는 지고한 마나의 힘이 바르간의 근처에서 넘실거렸다.
프릭칸리스크의 냉기와 함께 주변을 지배하는 듯 보인다.
그때, 바르간에게만 음성이 들렸다.
—역시 벨레드가 성서를 가지고 있는 이상 구약의 모든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는군. 바르간, 지금이야말로 바엘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네.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슈겐하르츠. 고유술식으로 비가시적인 흔적만 남게 된 그가 바르간에게 말을 전했다.
마치 심상(心想)을 들리듯 바르간의 내부에서부터 울렸다.
—하지만…. 전에 말했다시피 나는 이미 죽은 몸. 내가 자네를 도와 신약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길지는 못 할 거네. 반드시 그 안에 처리해야만 하지.
과거 두 성서의 직접적인 충돌로 인해 성서는 큰 충격을 받았고, 기존의 주인이었던 바엘과 슈겐하르츠 외에는 사실상 성서의 힘을 끌어낼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오랫 동안 구약을 맡고 있었던 아몬 역시 성서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 채 벨레드에게 빼앗긴 것.
하물며 바르간은 푸른 성서를 지니게 된 지 이제 수년이다.
잔상으로나마 남아 있는 슈겐하르츠의 도움이 없다면 신약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슈겐하르츠가 힘을 빌려주고 있는 건가.』
잠시 바르간을 가만히 바라보던 바엘은 팔을 순식간에 재생시키며 물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 슈겐하르츠.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바르간 외에 인지할 리가 없었으나 어째서인지 바엘은 슈겐하르츠가 이 자리에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 있다는 건, 나를 죽이려는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 대단한 노릇이구나.』
크레아아악!
정비를 어느 정도 마친 십이신수들이 다시금 바엘에게 달려들었다.
이에 바엘은 불길함의 극치를 담은 어구를 내뱉었다.
『죽어라.』
구으으응—!
순식간에 퍼져 나간 죽음의 메아리.
바닥에 자라난 잡초는 물론 땅마저 죽여 버리는 비상식적인 힘에 달려들던 십이신수들은 정지하며 피를 토하고 만다.
‘권능이 똑바로 전해졌음에도 전신 마비와 장기 파열 수준에 그치는가. …정말로 과거의 십이신수들을 상대하는 착각이 드는군.’
콰하앙—!
내찔러진 바엘의 권격. 그 일격에 백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십이신수의 머리가 터져 나간다.
바엘은 뜨거운 전투를 이어 가면서 차갑게 머리를 굴렸다. 그의 눈은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상공에서부터 폭격을 가하는 세이만. 좌측은 카닐리스크. 후방은 바르간.’
곧 그가 생각했던 대로 공중에서 세이만의 깃털이 기관총처럼 내리꽂혔다.
구름을 몬 채 좌측으로 파고드는 카닐리스크. 이와 같은 타이밍으로 바르간이 뒤를 노려 푸른 성서의 힘을 머금은 냉기를 터트린다.
콰자자작—!
순식간에 솟아난 거대한 빙산. 바엘은 그 꼭대기에 서 있다.
바르간은 시선을 모으며 미소 짓는다.
“이제 슬슬 버거워지시는 모양입니다?”
얼어붙은 바엘의 머리카락. 그의 왼팔에는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 갈 수 있는 서리가 끼여 있다.
바르간은 그것을 승기를 잡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의 달성으로 봤다.
“그야 힘드실 법도 하지요. 아몬이 이끌던 제1 군단을 어구로 강제 복종시킨 것만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양의 마나가 소모되었을 텐데, 곧바로 중앙 교회에 배치되어 있던 모든 병력들을 상대했으니까요.”
게다가 쉬지도 않고 바르간과 십이신수들이 들이닥친 상황.
바엘이 아무리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마나 총량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신’이 아니다.
바르간은 슈겐하르츠가 보여 준 과거를 통해 그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순순히 투항하신다면 특별히 고통 없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꽤 매력적인 제안이지 않습니까?”
대화를 유도하면서 프릭칸리스크의 착마를 해제하는 바르간.
그는 가미긴의 권능을 발동시키며 크게 도약했다.
후웅—!
바르간은 순식간에 뛰어올라 바엘을 마주한다. 그가 두르고 있던 냉기의 로브는 사라지고 대신 세이만의 강철 날개가 그 어깻죽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투항하실 의사는 있으신 겁니까?”
『그럴 리가.』
“뭐,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즈츠크아아앙—!
가미긴의 권능을 사용하는 바르간과 바엘이 격돌한다.
허공을 무대 삼아 초고속으로 이동하며 전투를 벌이는 둘. 마치 무수히 떨어지는 미사일들이 하늘에서 연이어 격추되듯 어지럽다.
힘을 몇 배나 증폭시킨 십이신수 정도는 되어야지 감히 참전할 수 있는 싸움.
워낙 높은 곳에서 맞붙었기에 그들의 전투는 전장의 모든 이들의 눈에 담아졌다.
그 믿기 힘든 광경을 올려다보던 부상병들은 자신이 입은 상처도 잊은 채 경이로움을 느꼈다.
바엘. 알티프의 정점이며 신화 속에서 존재했던 제로 위험군.
그가 저런 인외의 능력을 보이는 건 어쩌면 이상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저 남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인간이 결코 보일 수 없는 혈투를 벌이고 있는 바르간.
저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성취와 위력이다.
마법이나 무예에 조금이라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벙해져 버렸다.
콰가가가강—!
그들의 전투는 마치 먼 옛날 마왕과 최초의 마법사가 눈앞에서 기록도 거의 남지 않은 신화를 재현하고 있는 듯했다.
—바르간! 몰아붙이는 건 좋지만 너무 한 번에 힘을 쏟아 내지 않게 조심하게. 잘못하다가는 바엘을 죽이기 전 자네의 몸이 먼저 망가지고 말 거네!
슈겐하르츠의 우려가 지속적으로 심상에 울렸지만 바르간은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폭식’이 먹기 버거울 정도로 더욱 마나를 끄집어냈고 근육을 쥐어 짜냈다.
—듣고 있는 건가? 아무리 자네의 마나 총량이 초월에 있다고 해도 몸은 인간이란 말이네!
슈겐하르츠는 인류와 바르간을 걱정해서 말했다.
—심판무구가 된 ‘폭식’과 ‘영광의 링’. 그리고 ‘생명의 향수’를 사용하는 것만 하더라도 부담이 막대한데 가미긴의 권능과 성서까지 사용하게 되면 생을 앞당겨 쓰는 것과 같다고 말하지 않았나!
“…….”
—바르간!
바르간의 주변에 가득 차게 되는 1천 개의 마력포. 성서의 힘으로 만들어 낸 부패의 불을 담아 끔찍하기 그지없다.
즈콰과가가강—!
바엘을 향해 쏘아지는 무수한 광선.
바엘은 이를 피하거나 쳐 내며 입을 열었다.
『성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추기경의 경지에 도달했던 건가. 이포스를 대신해서 집행관에 이름을 올릴 만하군.』
바엘은 바르간을 높이 평가했다.
인간의 몸으로 대주교와 필적하게 되는 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대주교를 우습게 제압할 수 있는 추기경이야 오죽하겠는가.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모든 능력이 ‘본래의 네 것’이 아니라는 점이구나.』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광선의 폭우가 끝나자, 날아 올라와 바엘을 삼키는 뼈의 드래곤. 블라리스크.
그러나 블라리스크의 뼈는 바엘을 갈아 내지 못하고 터져 나간 채 아스러지고 만다.
『성서와 온갖 유물들을 아무리 치렁치렁 매달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네가 벌거벗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새 바르간의 앞에 위치한 바엘.
그는 더 없이 견고한 마나로 바르간의 움직임을 잠시 봉하며 그 머리에 손을 올린다.
바엘의 눈에 비치는 바르간은 벌써 핏줄이 잔뜩 올라온 채 몸이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그 육신까지 빌린 것에 지나지 않지. 바르간. 넌 천재를 연기하는 범인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은 듯한 바엘의 눈동자.
그는 바르간이 가지고 있는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와 푸른 성서에 대한 것은 물론, 그 자체에 대해서 더 알고자 했다.
바엘은 권능을 움직여 바르간의 기억을 살필 준비를 마쳤다.
『보여라.』
***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난생처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끌려 가던 길. 언제 마지막으로 포장 공사를 한 것인지 곳곳이 움푹 파여 있어 물웅덩이가 생겼다.
찰박—.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도 급하신지 내 손을 강하게 움켜쥔 채 걸음을 빨리 하셨다.
성큼성큼 나아가는 어머니의 구둣발 소리. 그 옆을 간신히 맞춰 가는 나의 두 발.
신발은 물론이고 양말까지 폭삭 젖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크기가 맞지 않아 발을 억지로 쑤셔 넣은 이름 모를 메이커 운동화는 비의 침입을 쉽사리 허용했다.
“…….”
바쁘게 길을 걷는 동안 어머니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나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따를 뿐이었다.
드르륵—.
이제 슬슬 날이 밝아 오려고 하는지 일찍부터 문을 여는 가게의 셔터가 올라간다.
골목에선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등어색 고양이가 엉덩이를 치켜 올리며 경계를 하고, 새벽 내내 켜져 있던 술집 간판과 전봇대의 등이 길을 밝혀 준다.
습기를 머금은 도시의 퀴퀴한 냄새.
끝날 줄 모르고 바닥을 때려 대는 비의 소리.
그렇게 15분가량을 끌려가듯이 걷다 보니 구석에 박혀 있던 건물 앞에 다다르게 되었다.
“잘 지내.”
그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여자의 마지막 인사였다.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내 손을 내팽개치던 그녀. 꼴이 추레해야 더 확실히 받아 줄 거라며 우산마저 가지고 가 버렸다.
나는 엉엉 울거나 그녀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지 않았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없을 뿐더러 비참한 그녀의 인생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한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려 눈앞에 적힌 글씨를 읽어 보았다.
“바른 희망 보육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여섯 번째 내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던 그날.
나는 단 하나뿐이던 가족, 어머니이었던 여자에게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