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3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32화(332/350)
내 아버지는 이름을 들으면 대한민국에서 모두가 알 법한 유명한 연극배우였다…라고 어머니였던 여자가 말했던 걸 들었던 적은 있는데 솔직히 그럴 리 없다고 본다.
내가 너무 어렸을 적에 두 사람이 헤어져 기억에 남아 있지 않기도 하고, 애초에 그 정도로 유명했더라면 내가 보육원에 오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자극적인 화제에 언제나 쌍심지를 켜는 미디어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뭐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여자에게 버려졌다.
‘바른 희망 보육원’이라는 곳이 내 새로운 보금자리였는데, 나와 같이 어렸을 적부터 부모에게 버려진 애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사설 기관이었다.
“오늘부터 새롭게 들어온 친구예요. 모두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요.”
짝짝짝짝—.
처음 보는 얼굴들.
처음 보는 공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별 감정 없는 박수를 보냈다.
머리를 뒤로 묶은 보육 교사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내가 말하도록 유도했다.
“박시후라고 했지? 친구들 보고 인사 한번 해 볼까?”
“…….”
친구들.
이름도 모르는 아무개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입 싹 닫고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곳에 떨궈진 이상. 이 비좁은 공간이 나의 새로운 세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형성될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였던 여자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꽤 이것저것 노력을 했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곳에서마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겠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함박미소를 지으며 입을 벌렸다.
“박시후라고 해! 잘 부탁해!”
하지만,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꼬투리를 잡는 녀석들은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
“새로 들어왔으니까 네가 가장 졸병이야. 이제부터 대장인 내 말을 전부 들어야 해.”
초등학교 5학년치고는 제법 덩치가 컸던 남자아이.
빵빵하게 올라온 볼살이 인상 깊었던 녀석이 자신을 대장이라고 자청하며 나무 막대기를 휘둘러 위협했다.
놀랍게도 이 조그만 집단 속에서도 서열이라는 게 존재했으며, 가장 어리고 늦게 들어온 나는 자연스레 밑바닥에 위치해 있었다.
“이해했으면 말을 해.”
어디서 배운 건지 녀석은 내 볼에 나뭇가지를 쿡쿡 찔러댔다.
내 주변에는 대장이라는 녀석보다 덩치가 작고 나이가 어린 애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는데 지금의 서열 체계에서 나름의 지위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나는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알겠어. 내가 졸병인 거지? 뭘 하면 될까?”
“…….”
나를 감싸고 있는 녀석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비쳤다.
내가 짜증을 보이거나 무서워하기는커녕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새로웠던 모양이었다.
대장이라는 녀석은 나뭇가지로 놀이터 근처를 가리켰다.
“비밀 기지를 만들고 있으니까 저 돌들을 옮겨.”
어른 얼굴만 한 크기의 돌무더기. 이미 몇몇 아이들이 낑낑거리며 옮기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지지대로 쓸 만한 긴 나뭇가지를 모으기도 했다.
상황 자체만 보면 아이들끼리 하하 호호 하며 협심하는 광경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럴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고 대장 녀석도 찝찝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딴지를 걸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근데 대장의 이름은 뭐야?”
걸음을 옮기기 전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대장 녀석은 ‘알아서 뭐 하게?’라며 성깔을 드러냈지만 나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난 졸병이니까. 대장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그러자 녀석은 마땅한 대꾸를 생각해 내지 못했는지 제 이름을 밝혔다.
“이진수야.”
“그렇구나. 말해 줘서 고마워.”
“알았으면 빨리 가서 돌이나 옮겨.”
“응. 열심히 할게.”
그렇게 싱긋 웃음을 지은 난 곧바로 돌을 옮겼다.
돌의 무게가 상당해서 몸이 휘청거렸지만 정말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 줬다.
분위기를 살피고 남들 비위를 맞추는 건 이미 어머니와 살 때 충분할 정도로 연습을 했었다.
‘…이진수. 이진수라.’
돌을 옮기면서 녀석과 이곳에 대해서 생각했다.
새로운 생태계. 새로운 구조.
그리고 새롭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그 작은 두뇌로 찾아나서며 결론 지었다.
‘응. 우선 저 녀석을 어떻게 해야겠네.’
***
“아쉽지만, 진수가 다른 보육원으로 가게 되었어요. 갑자기 정해진 일이라 친구들과 인사도 나누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진수가 전해 달래요.”
내가 이곳에 온 지 5개월이 되던 날.
보육 교사들 몰래 이곳의 대장 노릇을 하던 이진수는 사라졌다.
이를 들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지만, 나와 이진수를 따르던 초등학생 몇몇은 그 진짜 이유를 알았다.
다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보육 교사들도 사건이 커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일은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진수라는 아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다른 보육원에 가게 되었다.
그 문장으로 충분했다.
“시, 시후야. 우리랑 같이 놀래?”
초등학교 3학년의 무리가 찾아와 말을 걸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진수를 대장으로 모시던 부하들 중 제법 지위가 높았던 이들인 동시에.
나를 감싸며 위협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아냐. 괜찮아. 나는 책이 더 좋아서.”
“그, 그래…? 알겠어. 그럼 우리끼리 놀게. 공부 열심히 해.”
3학년 무리가 물러났다. 그들의 말투에는 어색함이 잔뜩 들러붙어 있다.
사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때 나와 그들의 사이는 말이 되지 않았다.
아직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한 여섯 살짜리 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상황이라니. 당최 어이가 없겠지.
하지만, 요 5개월 동안 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어린 나이에 힘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활용해 상황을 이끌어냈다.
‘눈치’와 ‘연기’.
선천적으로 그리고 후천적으로 갖추게 된 두 무기를 요령 좋게 사용하며 보육원 내에 입지를 구축했다.
‘…이진수는 해결이 됐고. 이미지도 확실히 긍정적으로 굳혔어. 내게 시비를 거는 이들도 없으니 이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야.’
나는 살기 위한 계획을 이어 나갔다.
비록 어리고 좁은 시야였지만, 최대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고려했다.
‘눈치와 연기는 쓸모가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아직 난 너무 어리석고 모르는 게 많아.’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
당시 내실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나는 그렇게 결론 내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보육원에 온 나.
이런 상황이 땅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 있는 것과 같다면 나는 그 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파닥파닥 꼬리를 치며 발악을 해야 했다.
갯벌에 널린 흔한 망둥어여서야 결코 그곳을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공부. 우선 공부를 해야 해.’
어른들은 말 잘 듣는 아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다.
당장 저기서 놀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들만 하더라도 성적표 때문에 인정을 받는 정도가 갈리지 않는가.
내실을 다지면서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만들 수 있다니 하지 않으면 손해였다.
사락—.
때문에 나는 초등학생들의 교과서를 빌려 독학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반드시 위로 올라가리라 다짐을 하며 독기를 품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안타깝게도 나는 머리가 그다지 좋진 못했다는 점이다.
잔머리 쪽으로는 기가 막히게 굴러갔지만, 공부 쪽에서는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녀석이 빠득빠득 이를 갈면서 한글을 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곱셈이나 나눗셈을 하겠냐만, 당시의 나는 이를 결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어려서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과 요령.
이 두 개의 비밀 병기는 분명 나를 구원해 줄 터이다.
그런 일종의 믿음을 가진 채, 성적이 썩 괜찮은 고학년들이나 보육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이어 나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 중 또 하나는 어리다는 것.
여섯 살 아이가 먼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니 도와주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우와. 우리 시후가 벌써 형 누나들이 공부하는 어려운 걸 배우고 싶어 하네? 너무 똑똑하고 대견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보육 교사들은 내가 스스로 선행 학습을 하려 한다는 것만으로 나를 천재 취급하는 것이다.
‘천재. 꽤 괜찮은 껍데기야.’
영재 혹은 천재라는 단어는 주목을 끌기 쉬우며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칭호와 같다. 심지어 몇몇 이들은 그 단어에 환상을 품기도 한다.
때문에 나는 그 껍데기를 내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남들이 보게 되는 건 결과밖에 없다.
과정 따위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으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어머니였던 여자가 내게 그 사실을 뼈저리게 가르쳐 주었고 나는 그 가르침을 그대로 적용했다.
교사나 고학년들 앞에서는 단번에 배움을 이해한 척하고 뒤에서는 잠을 줄여 가면서 필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이해되지 않으면 통째로 암기했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답, 결과.
어차피 남들이 나를 평가하는 건 내가 일부러 드러낸 가치뿐이다.
“이번에도 다 맞았네? 정말 대단한걸? 시후는 커서 위대한 인물이 되려고 하나 보다.”
“위대한 인물요?”
“응. 책이나 티비에 나오는 대단한 사람들. 우리 시후는 천재니까 나중에 유명해져서…….”
그렇게 난, 어느 순간 ‘천재’라 불리며 특별시되었다.
“혜민 쌤, 여기 있었구나? 한참을 찾아다녔네. 일손 부족하니까 어서 와서… 어머, 안녕 시후야? 아~ 혜민 선생님이랑 공부하고 있었구나?”
“안녕하세요.”
“아이구. 우리 시후는 인사도 잘하네. 공부하는 와중에 미안한데 혜민 선생님이 잠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깐 혼자서 공부해도 괜찮겠니?”
“네, 안 그래도 이제 막 끝난 참이었어요.”
“그래그래. 우리 시후 의젓하기도 하지. 혜민 쌤, 창고에 있는 나머지 연극 소품들 가지고 강당으로 와. 난 다른 일 해야 하니까 이만 가 봐야 하거든. 알겠지? 우리 시후는 나중에 보자.”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는 보육 교사는 혜민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교사에게 지시 내린 채 떠나갔다.
떠나기 직전까지 내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 주는 건 내가 천재라고 불리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시후야, 선생님이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야 하네. 내일 다시 이어서 할까?”
“알겠어요. 근데 바쁜 일이 있으신 거예요?”
“아, 아직 말을 안 해 줬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전날에 연극을 하기로 했거든. 때마침 손님들도 오시니까 시후도 멋진 모습 보여 줘야겠지?”
내가 일곱 살이 되었던 해의 크리스마스이브.
보육원에서 열렸던 연극과 때마침 방문한 손님들.
당시의 일과 선택으로 인해 다시금 내 인생은 송두리째 변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