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3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33화(333/350)
인생에 지름길이 있다면 누가 그 길을 걷지 않을까.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지름길. 그때까지 양말 한 짝도 주지 않았던 산타는 내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SHB그룹의 회장이라.”
모두가 잠에 드는 늦은 시간. 나는 밤늦게 공부를 하고 있다가 문뜩 중얼거렸다.
SHB그룹이라 하면 한국에서 상당히 알아주는 건설 기업이다. 뉴스에도 종종 이름이 나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여길 온단 말이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내가 있었던 보육원의 최대 후원 기업이 SHB그룹이었다.
해당 그룹의 임원들은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에 여러 봉사나 방문 따위를 했는데 그게 이번에 운이 좋게도 내가 있는 바른 희망 보육원이었다.
어린 나이었음에도 그런 거물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다시없을 기회일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며 계획을 세웠다. 그에게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서.
남들과 다른 나만의 특별함이 빛이 나도록 잘 손질하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 내 특기인 연극을 보일 수 있지 않은가.
아버지에 대해 별다른 감사나 원망 따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처음으로 연기의 재능을 물려주신 아버지께 감사했다.
아, 물론. 집안에서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눈칫밥을 길러 준 어머니에게도 말이다.
***
“자, 먼저 칭기스 칸의 역부터 정하도록 할 거예요. 하고 싶은 친구들은 손 드세요.”
혜민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여자가 아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진행할 연극의 역할 배정을 위해서였다. 연극 내용에 대해서 대충 설명하자 호기심 많은 몇몇 아이들이 서로 주인공을 맡겠다고 손을 들었다.
“저요! 저요!”
“제가 할래요! 잘할 수 있어요!”
혜민은 아이들의 똘망거리는 눈을 보더니 고민에 빠졌다.
“으음…. 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네. 어? 시후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구나?”
내가 손을 들고 있자 그녀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기야 내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으니 그저 얌전히 공부만 하는 아이로 봤었겠지.
나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네, 꼭 칭기즈 칸 역을 맡고 싶어요.”
칭기즈 칸.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인류 최대의 정복 군주.
이번 연극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보통 아이들이 할 법한 연극이라고 하면 백설공주나 토끼와 거북이 같은 동화인데 말이지….’
그 당시에 칭기스 칸의 뮤지컬이 흥행한 적이 있었다.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으음… 어떡하지. 가위 바위 보를 해야하나?”
혜민의 말투나 눈빛을 보면 나를 시켜 주고 싶은 듯했으나 아이들의 앞에서 대놓고 편애를 할 수 없었다.
괜찮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를 해 뒀으니까.
“선생님! 저는 시후가 맡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 저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시후는 똑똑하니까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미리 언질해 둔 아이들이 손을 들며 나를 추천했다.
추천 사유는 형편 없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아이들이 하는 말. 설득력은 뒷전이다.
‘중요한 건 내가 자연스럽게 선택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다른 아이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는 것.’
지금까지 이미지 형성을 괜히 한 게 아니다.
어리지만 천재라는 타이틀과 좋은 평판은 주변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칭기즈 칸 역을 맡겠다고 기세 좋게 손을 들었던 아이들이 주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살며시 손을 내리는 이들도 있다.
“그럼… 칭기즈 칸 역할은 시후가 맡도록 할까? 다른 형 누나들은 동생에게 양보해 줄 수 있나요?”
“…네. 좋아요.”
“흐잉. 내가 하고 싶은데….”
불만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수긍하는 아이들.
혜민은 조리 있게 다른 역할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주목을 돌렸다. 과장된 액션과 음성어를 사용해서 혼을 빼 놓는 게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다.
‘아무튼, 주인공 역은 맡게 되었고…. 다음은 회장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어.’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연기 연습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틈틈이 회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사해야 했다.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인터넷이라는 훌륭한 수단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어른의 높이에 맞춰진 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건 불편하기 그지 없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때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SHB그룹의 회장. 배철만….’
나는 쥐방울만 한 손을 움직이며 포털을 돌아다녔다.
선생님들에게는 타자 연습을 하고 싶다고 말해 컴퓨터 사용을 허가받았다. 실제로 연습은 되었으니까 딱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전설, 배철만의 성공 신화. …SHB건설 회장 배철만 불우 이웃을 위해 통 큰 10억 기부하다.’
배철만에 대해서 검색하니 호평 기사들이 쏟아졌다.
자서전을 비롯한 많은 서적을 집필하였고 기부와 후원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이미지 관리를 엄청나게 잘한 사람이네.’
종종 배철만과 그 기업의 불온한 움직임을 의심하는 기사도 있었는데 그 직후 배철만이 거액의 돈을 기부하거나 연예계에 문제가 터져 쉽사리 관심이 꺼졌다.
또한 배철만을 공격했던 기자의 글이 갱신되지 되지 않으니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타닥. 타다닥—.
솔직히 말해, 배철만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호감을 느꼈다.
우상…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나아갈 길을 미리 간 선구자처럼 보였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 철저하고 독하게. 그러면서 최상의 평판을 유지하도록.
적어도 대한민국의 땅에서 그는 왕과 같은 존재였다.
경찰도, 검사도 그를 함부로 지적할 수 없으며 심판할 수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과 세력은 절대적인 그의 힘. 그가 한반도에 세운 건물들은 자신의 영역임을 알리는 깃발과 같았다.
사각사각—.
작은 노트에다 그에 대한 정보를 적으며 외웠다. 그의 출생과 업적은 물론 가족 관계까지.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모조리 적었다.
그리고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해야 그가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지.
들어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임팩트 있게 내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을지.
연구하며 거룩한 날의 전야제를 기다렸다.
***
SHB그룹의 회장 배철만.
그는 거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대한민국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부를 축적한 그.
하지만, 사람들은 배철만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인성을 갖춘 CEO다.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청렴한 인물이다…라고 대중은 말했다.
“회장님, 매번 이렇게 회장님께서 직접 행차하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기업의 이미지는 경쟁사들과 비교가 불가한 정도입니다. 차라리 다른 임원들을 보내시는 편이…….”
검은 세단을 타고 이동하는 배철만과 비서.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른 희망 보육원이다.
비서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고 배철만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답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예?”
“…….”
배철만은 지긋한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 검게 칠해져 있는 창문을 통해 눈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차의 속도 탓에 사선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의 평가라는 건 말이야. 손바닥보다도 쉽게 뒤집히기 마련이지.”
배철만의 나릿하면서도 엄중한 목소리가 울렸다. 비서가 눈을 깜빡이고 있는 게 창에 비치자 배철만을 말을 이었다.
“중간에 그만둘 거였다면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했다는 뜻이네. 내가 성탄절 전날에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방문한다는 걸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갑자기 그만두면 어떻게 되겠나?”
“…….”
“건강에 이상이 왔다. 돈으로 배를 불리더니 사람이 달라졌다… 등 온갖 추측성 루머가 나오겠지. 내 사소한 변화 때문에 말이야. 자넨 내가 몸 좀 움직이는 게 귀찮다고 주가를 떨어트릴 빌미를 제공하는 멍청이로 보이나?”
“…죄송합니다. 경솔한 발언이었습니다.”
비서는 고개를 숙였고 배철만은 손짓으로 그만두게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온한 표정을 보이던 배철만의 눈썹에 굴곡이 생겼다.
“절대로 내게 고개를 숙이지 말게. 사람들의 눈은 어디에나 있지. 지금 자네의 행동은 내가 위계적이라고 대놓고 욕을 한 거나 마찬가지야.”
“거, 거듭 죄송합니다. 앞으로 명심하겠습니다.”
배철만은 신입 비서에게 몇 가지 철칙을 교육했다.
그는 자동차 안이라는 작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사람의 눈치와 평판을 신경 썼다.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
그가 야심을 가지고도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결정적 이유였다.
그렇게 차는 달려 보육원의 앞에 도착했고.
배철만과 비서가 내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은 플래시를 터트렸다.
“추운데 고생 많으십니다.”
배철만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기자들에조차 덕담을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그는 보육시설장과 손을 잡으며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이동했다.
면담실에서 차를 마시며 현재 보육원의 상황과 금일 행사에 대해서 이야기한 뒤, 지하에 마련된 강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당 내부는 작은 조명들만 켜져 있어 어두웠는데 이미 많은 자리에 동네 노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배철만은 특별히 준비해 둔 앞좌석을 노인들에게 양보하고 뒷자석에 앉았다.
어차피 연극을 ‘즐기는 척’만 하면 되니 어디에 앉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짝짝짝짝—.
그렇게 막이 오르고 시작되는 연극.
무대에 올라 있는 건 초등학교에 들어갔는지도 모를 어린 남자 아이였다.
‘저 아이가 칭키즈 칸 역을 맡은 건가? …너무 어린 거 아니야?’
거리가 멀다곤 하지만 소년이 어리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대사를 전부 암기했을지 의심이 될 정도다.
‘어린아이에게 기회를 주고자 일부러 주역을 맡겼나 보군. 하긴 보육원의 연극이 그 정도겠지.’
연극을 하기 전, 보육원의 시설장은 기대를 해도 좋다는 말을 했었다.
그 때문일까. 배철만은 약간이나마 있던 관심이 팍 죽었다. 잘 보면 소년이 입고 있는 복장과 배경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는지 조잡하기 그지없다.
‘적당히 보면서 이후 일정에 대해서 생각해야겠군. 후원금 카드도 준비했으니까 연극이 끝나면…….’
배철만의 눈을 대충 무대로 향하게 둔 채 생각에 잠겼다.
…아니, 잠기려 들었다.
“타타르…! 그들은 관습을 어겼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소년이 첫 대사를 뱉는 그 순간.
값비싼 시설은 아니었지만, 어두운 강당에서 유일하게 조명을 받고 있는 소년의 몸짓, 표정, 말투와 숨을 쉬는 세기는 현장감이라는 거센 파도가 되어 객석을 덮쳤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들은 초원의 전사라 불릴 수 없다!”
해 봤자 보육원에서 준비한 초짜 연극.
단어의 의미도 모를 어린아이가 내뱉는 대사.
그러나 배철만은 그 무대에 완전히 몰입했다.
마치 정말로, 저 작은 소년의 몸 안에 칭기스 칸의 거대한 야망이 담긴 것만 같았다.
“굉장한 재능이야….”
배철만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박시후를 바라봤다.
저 소년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 어떤 보석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여 남들 몰래 감추고 있는 그의 탐욕을 쿡쿡 건드렸다.
***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남아 있었으니.
연극이 끝이 나고 박수갈채를 받았던 소년은 너무나 당돌하게 배철만의 앞길을 막았다.
“배철만 회장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보육원의 복도. 주변에는 아직 보육원을 벗어나지 못한 기자들과 관객들로 가득하다.
칭기스 칸의 야망을 날카로운 눈동자에 박아 넣은 소년. 박시후는 배철만이 말문을 열기도 전에 넙쭉 고개를 조아리며 절실함을 외쳤다.
“부디 저를 양자로 삼아 주십시오!”
깜짝 놀란 기자 한 명은 직업병에 걸린 것처럼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복도를 밝히자 박시후는 다시금 자극적인 발언으로 못을 박았다.
“제 가치를 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