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3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34화(334/350)
“그래, 내 양자로 들어오고 싶다고?”
배철만과 단독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선에서 유독 커 보였던 그 남자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당신을 새로운 부모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나는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양자로 들어오고 싶다는 말이냐?”
“먼저 이걸 보시죠.”
나는 미리 프린트해 둔 내 프로필을 내밀었다.
보육 교사들이 아이들에 대해서 적어 둔 일종의 활동 수첩이었다. 나이와 키는 물론이고 각종 특이 사항이나 성과물 등이 적혀 있다.
“…….”
내가 허튼 말로 뱉은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 배철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짓고는 이를 읽었다.
이때 활자를 읽는 그의 눈동자가 사선으로 내려간 것을 보아하니 어지간한 독서광, 혹은 효율을 중요시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배철만은 빠르게 내용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떳떳하게 내밀 만은 하군….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3학년 과정을 끝냈으니 어깨가 으쓱해질 법하겠어.”
“…….”
“쓰는 어휘도 나이대에 맞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고…. 품행도 바르고 교우 관계 역시 좋았던 것 같고.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구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이런 평가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 발악을 하고 있는데 이 정도의 찬사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근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배철만은 내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그의 눈빛은 밖에서 선인을 연기하던 것과는 달리 냉정했다.
“나는 이미 두 아들과 두 명의 막내딸들이 있다. 어린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출산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자식이 많지.”
“이미 충분하여 그곳에 제가 있을 자리는 없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식이 없는 집안이었으면 모를까. 우리 집 밥상 위에는 더 이상 숟가락을 놓을 공간이 없다.”
배철만의 어조는 단호했다.
하지만, 난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희미한 기대감을 보았다.
역시 조사했던 대로. 연극을 좋아하는 배철만에게 난 처신 잘하는 대담한 꼬맹이 이상의 가치를 지녔음이 틀림없다.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배철만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낌새를 보였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본격적인 교섭의 시작이었다.
“배철만. 만 나이 57세. 유복하지 못한 4남 1녀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온갖 잡일을 시작. 신문 배달, 연탄 배달, 구두닦이 등 안 해 본 일이 없음.”
배철만에 대한 정보를 술술 내뱉기 시작하자 그는 침묵한 채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기세를 타 말의 꼬리를 이었다.
“그런데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틈틈이 공부하여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 대한민국 제일의 명문대에 수석으로 합격. 이후 졸업과 동시에 당시 대한민국 최대 건설 기업 용오름 건설에 취업하여 10년간 경험과 인맥을 쌓고 기업 내 엘리트들과 자진 퇴사. 직후 사업 시작 그게 지금 SHB그룹의 토대가 됨.”
“…내 자서전이라도 달달 외운 건가?”
“자서전은 물론이고 각종 인터넷과 신문 등에 나도는 인터뷰와 행보 등을 종합했습니다. 아버지의 업적을 몰라서야 자식의 도리라 할 수 없을 테니까요.”
나는 구태여 어려운 단어들을 하나씩 집어넣어 말했다.
내 머리가 비상하지 않음을 잘 알기에 나이대에 비해 돋보이기 위한 금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도금이라 욕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만큼 필사적이었으며 절대로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배철만 회장님, 저를 양자로 들이시는 건 틀림없이 회장님에게 큰 득이 될 겁니다.”
“근거는?”
“우선 무대에서의 제 활약을 보셨으리라 사료됩니다. 연극에 관심이 있으신 회장님이시라면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또한 말씀하신 대로 학업 성취는 물론이고 교우 관계며 평소 행실 모두 우수하여 철저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가치에 대해서 설명했다.
마치 장사꾼이 장사를 하듯 ‘나’라는 물건을 거물 앞에 선보였다.
그러자 배철만은 슬쩍 입가를 올리며 답했다.
“…확실히 우수하구나. 꼬마야.”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뜻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 집 밥상 위에는 이미 충분히 숟가락이…….”
“회장님, 저는 회장님의 재산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똑바로 그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거짓은 섞지 않았다. 어차피 속에 욕심 가득한 그가 핏줄도 아닌 내게 재산을 물려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까.
“제가 원하는 건 회장님댁 밥상 앞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주시는 겁니다. 숟가락은 필요 없습니다. 은혜를 모르고 밥상 위에 있는 밥과 반찬을 탐낼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7첩 반상인지 12첩 반상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그런 건 너희나 먹어라 이 말이다.
“회장님께서 저를 양자로 들이시고 양육 과정에서 드실 모든 비용은 정확히 기록하여 훗날 배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즉 내 배경과 돈을 잠시 빌리고 싶다. 이 말이구나?”
“아쉽게도 저는 아직 어리고 신용이 없어 은행의 대출을 받지 못하니까요.”
“하하…. 내가 지금 정말로 일곱 살짜리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군.”
대화를 이어 갈수록 배철만의 얼굴에 흥분이 올라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어머니. 당신이 내뱉던 한탄이 이렇게 제게 도움이 됩니다.’
어머니였던 여자가 항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빚과 대출이다.
오죽하면 놀이동산이라는 단어보다 은행이라는 단어를 먼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돈의 중요성. 빈곤층에서의 탈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공부하게 된 것 역시 전부 당신의 덕입니다.’
때문에 나를 버린 걸 탓하지 않는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 난 커다란 부담 그 자체였으니까. 아무리 앞으로의 가치를 증명해도 그녀에겐 당장 내가 먹을 한 끼가 아쉬웠겠지.
“…….”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곤 뜸을 들였다.
배철만의 눈빛이 또다시 바뀌었다.
처음에는 선인 배철만. 나와 대면한 이후에는 인간 배철만.
지금은… 사업가 배철만이다.
“꼬마야, 너는 나와 거래를 하고 싶은 듯하구나.”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하, 하하하!”
소리 내어 웃는 배철만.
그는 그제야 대범한 내 태도가 이해가 된다며 말을 덧붙였다.
“어쩐지.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말들만 족족 골라서 한다 싶더라니 네 연극은 무대에서 끝난 게 아니었구나. 나와 만나서 거래를 하는 것까지가 너의 ‘극’이었어. 대단하군.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그에 맞는 대사를 암기했다는 건가….”
그의 말대로였다.
나는 그가 오기 전부터 단단히 준비를 했다.
어투, 어휘, 표정, 상황.
나올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외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결국, 지금 나는 무대에 이어 한편의 극을 펼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노련한 상인. 이윤을 남기는 데 도가 튼 장사꾼이다.’
마인드 컨트롤을 한 나는 판세를 주도하기 위해서 몰아붙였다.
“회장님께서 절 비로소 거래 대상으로 여기시니, 저 역시 저를 들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만… 그전에 무례를 보인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무례?”
“…….”
나는 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흐릿한 창으로부터 기자들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방음은 제법 잘되어 있어 대화가 들릴 염려는 없으나 나가자마자 온갖 질문 세례를 받을 게 분명했다.
“사실 전 회장님을 이용했습니다.”
내가 은근한 눈길을 보내자 배철만은 씨익 입가를 올렸다.
“화제성. 미디어를 타는 데 성공했다는 거냐.”
“무려 SHB그룹의 회장에게 무릎을 꿇은 채 양자로 들여달라 부탁한 아이가 아닙니까? 설령 회장님과의 교섭이 결렬된다고 해도 전 이미 웹페이지에 작은 기사 하나 정도는 확보했습니다.”
“내가 막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리가요. 제가 아는 회장님은 보육원에 있는 아이가 자신보다 눈에 띈다고 해서 돈을 쓸 인물이 아니십니다. 실리에 맞지 않으니까요.”
“고작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종합한 주제에 나에 대해서 안다고 떠들기는.”
말하는 것과는 달리 배철만은 입가에 띤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회장님 양자가 되면 보다 회장님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기세도 좋고… 흐트러짐도 없다라….”
배철만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듯했다.
나라는 물건을 평가하며 낳을 수 있는 부산물을 검토했다.
그 결과.
“…거룩한 날에 신비로운 연이 생겼구나. 너라면 조금 더 대화를 이어 가도 좋다.”
나는 배철만의 관심을 잡아 두는 데 성공했다.
***
배철만은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가 나를 욕심 낸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연기의 재능.
그리고 그와 닮은 거대한 야심이었다.
—시후야. 나는 네가 품고 있는 야망과 독기가 마음에 든다.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피어나려는 그 억척스러움은 큰 사람이 될 자격이 있다는 뜻이지.
그는 나를 양아들로 두지 않았으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종종 나를 만나러 와 주었고 그때마다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미디어에 자신의 이름을 드높였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가 구축된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독립을 도와주겠다. 빚이 아니라 무상으로. 25세까지 주거지는 물론이고 학업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충분할 정도로 지불해 주마.
성인이 되어 내가 돈을 배로 값는 건 감동적인 시나리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대신 넌 돈이 아니라 성과로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할 거다.
즉, 돈을 들인 만큼의 쇼맨십을 보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와의 거래를 받아들였고 학업은 물론이고 연기에 매진했다.
보육원과 각종 고액 학원을 왕래하며 내 내실을 빠르게 키워 갔다.
확실히 비싼 돈을 들이는 만큼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종종 언론 관계자들이 찾아올 때면 난 항시 배철만을 칭송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지 입이 닳도록 말이다.
‘받은 액수를 생각하면 입 좀 터는 건 일도 아니었지.’
그렇게 나는 명문 자사고에 진학하게 되었고.
전망이 좋은 오피스텔에서 살며 매일같이 풍족한 식사를 즐겼다.
한순간의 결단으로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모처럼 생긴 고급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게 4시간도 되지 않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딴 소리를 할 때가 아니지.’
나는 24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고 돈 대신 시간을 절약하며 살았다.
흔히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은 틀렸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길을 걷는 대신 택시를 탔고 그 틈에 영어 단어를 외울 수도 있다.
학원 스케줄에 맞춰 이동하는 대신 고액 과외를 해 선생을 부를 수도 있다.
돈이 생기니 바람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엄청난 출력을 가진 모터가 장착되어 있는 내 배는 돛을 펴지 않아도 바다를 가를 수 있었으니까.
“야야, 쟤가 박시후지?”
“박시후? 아, 알아 알아. 예전에 매일같이 티비에 나왔던 애 맞지?”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나는 주목의 대상이었다.
내 이름과 얼굴을 세간에 제법 알려져 있었고 이렇듯 주변의 웅성거림이 곧잘 들렸다.
이런 잡음이 들린 뒤에는 호기심을 갖고 다가오는 이들이 항상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무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배철만의 후원을 받는 대신 나는 ‘바람직한 천재’를 쭉 연기해야만 했으며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와. 같은 반이네? 신기하다. 나 연예인 처음 봐.”
그것 봐라. 호기심에 다가오는 녀석이 있다고 했지.
내 자리에 찾아온 건 평범하게 생긴 남학생.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조금 알려졌을 뿐이지 연예인 아니야.”
“그래? 잘생겼는데 티비에 자주 나오길래 당연히 연예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면 미안해.”
그게 대체 무슨 논리란 말인가.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것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아무튼 반가워. 같은 반이면 앞으로 자주 보겠다.”
“…….”
난 녀석의 명찰을 바라봤다.
이수림.
이 멍청해 보이는 녀석의 이름.
그리고, 훗날 내가 바르간으로 빙의된 소설의 작가이기도 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