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3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35화(335/350)
고등학교 1학년.
이수림은 끈질기게 내게 들러붙었다.
물론 나는 여러 의미로 이름과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었고, 내게 단물을 빨아먹으려는 녀석들은 항시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수림, 이 녀석은 결이 달랐다.
“암튼 그래서 내가 소설을 쓸 건데, 알다시피 네 캐릭터 성이 워낙 독특하잖아? 그래서 참고를 하고 싶은데….”
“…….”
“시후야, 너한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야. 어차피 난 정식 작가도 뭣도 아니고 독자들도 캐릭터의 모티브가 너라고는 전혀 연관 짓지 못할 거라니까?”
“…….”
“자꾸 그렇게 무시만 하지 말고.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주라. 응?”
“…….”
하교를 하던 도중, 나는 걸음을 멈추고 더럽게 조잘거리는 이수림을 바라봤다.
녀석은 희미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 한심한 낮짝을 보고 있자니 화가 토사물처럼 역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 알짱거리고 꺼져.”
“겨우 입을 여나 싶더니 바로 욕부터 박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곤란한 거 아니었어? 아무리 그게 본심이라지만 유명인이 밖에서 이래도 돼?”
이래도 된다.
나 역시 주변인들과의 거리를 생각해서 말을 뱉은 거였으니까.
“넌 나한테만 유독 차갑게 굴더라? 다른 애들한테 하는 것처럼 좀 친절하게 대해 봐. 맨날 인상 찌푸리고 독설만 뱉지 말고.”
“…….”
“뭐… 내가 네 유일한 친구니까 편해서 그런 건 알겠는데 자꾸 그러면 아무리 나라도……. 아… 또 무시하네. 같이 좀 가자.”
요 1년간 이수림은 지독하게 내게 들러붙으며 말을 붙이려 들었다.
학기 초반에는 나 역시 대충 상대해 주며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게 내게 독과 같다는 걸 깨달았다.
이 녀석에게 여지를 주면 줄수록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내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가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녀석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
다소의 이미지 손상이 있더라도 잘라 내야 할 때는 확실하고 냉철하게 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 정도 했으면 나가떨어졌어도 됐을 텐데.’
아무리 냉대해도 오히려 이수림은 내 원래 성격을 볼 수 있다며 좋아라 했다.
지금까지 겪어 본 적이 없는 인물상이라 곤란하기 짝이 없다.
‘강제 전학이라도 보내야 하나.’
정치질이야 내겐 물 마시는 것보다 쉬운 일이니 할 수야 있다만 내 명예에 흠집이 간다는 점과 녀석의 집안이 걸렸다.
‘행동하는 건 철부지가 따로 없는데 법조인 집안이니….’
이수림의 부모는 물론이고 친가 외가가 전부 변호사 아니면 검사다.
괜히 건드렸다가 귀찮은 일에 엮여 더 큰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녀석을 방치하기로 했다.
웬만하면 무시로 일관하거나 대충 답변하며 차갑게 대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스스로 질려서 떨어져나갈 것이라 봤다.
“…시후야, 듣고 있는 거지?”
“…….”
“시후야?”
“…….”
그렇게 걷고 있는데 문뜩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주변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같은 녀석이라지만… 아니, 그런 녀석이었기에 드는 의문이었다.
난 녀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너 왜 이 학교 들어왔냐?”
“갑자기? 심지어 우리 지금 2학년인데?”
“생각해 보니 이해가 안 돼서. 네 성적이 볼품없는 거야 잘 알고 있는데… 그건 여기 평균치가 워낙 높다 보니까 그런 거고 다른 일반 학교 갔으면 그래도 중간 이상을 했을 텐데 납득이 안 되잖아.”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다.
특히 대입과 연관이 되는 고등학교 성적은 더욱이.
그러자 이수림은 멋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하하…. 누구나 시작하기 전까진 방대한 계획이 있기 마련이지.”
“…….”
“그렇게 한심하다는 듯 보지 마! 누가 이 정도로 치열할 줄 알았냐?”
“생각보다 더한 놈이었네.”
요컨대 자신이 들어갈 학교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란 말인가.
부모가 입 안에 숟가락을 떠밀어 줘야 간신히 밥을 처먹을 애새끼다 저건.
“아니, 잘 생각해 봐 시후야. 쉬는 시간이 왜 쉬는 시간이야? 쉬라고 만들었으니까 쉬는 시간 아니야? 왜 다 10분밖에 안 하는 귀한 쉬는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서 문제집 풀고 있는 건데?”
“…….”
“점심시간도 그래. 원래 밥 먹고 축구하거나 폰 게임 좀 하고 그래야 정상 아니야? 왜 다 학원 숙제를 하고 있는 거냐고. 사람이면 좀 쉴 줄도 알아야지. 여기에 있는 애들은 전부 기계야, 기계. 근데 사람인 내가 어떻게 좋은 성적을 얻냐?”
“…대답해 줄 시간이 아깝다.”
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이 녀석이 얼마나 한심한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지만…. 그랬다면 저런 초라한 성적이 나와서는 안 됐다.
…근데 뭐, 제 인생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아, 아무튼. 나 너한테 허락받은 거다? 나중에 내가 소설 올리면 꼭 읽어 봐. 너랑 똑 닮은 캐릭터로 하나 넣어 둘 테니까.”
“그러니까 그걸 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아니 됐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섞은 한숨을 쉬게 됐다.
그러곤 감정이 정리되자 차분히 생각에 잠긴 채 물었다.
“너, 웹소설? 이란 걸 쓸 거라고 했지? 제목은 생각해 뒀어?”
“오, 드디어 관심을 가져 주는 거야? 생각해 뒀지. 궁금해?”
“말해 봐. 나중에 들어는 가 줄 테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는 했지만, 이 녀석이 나에게 엉겨 붙으면서 나불거린 설정만 해도 A4 열 페이지는 나올 거다.
들어간 김에 장문으로 악플 하나 정도 달아 주면 소설도 포기할 거고 설정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 일도 없겠지.
이수림은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좋다며 답했다.
“‘아카데미물의 조연으로 빙의했다고?!’라는 제목이야. 뒤에 물음표랑 느낌표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발.”
지나치게 천박한 단어를 담지 않기로 한 내 입이 절로 움직여졌다.
이수림은 원래 다 이렇게 짓는 거라며 항변했지만 녀석이 절망적인 작명 센스를 가졌음은 틀림없었다.
***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녀석은 정말로 소설 투고 사이트에 자신의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절망적인 제목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해야 집중을 받을 수 있다나 뭐라나 떠들어 댔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해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
“…….”
여름 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
소설이 올라가고 무수히 오는 메신저를 무시한 채 개학일 날 학교를 가니 이수림이 평소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일찍이라 교실에 그 녀석 말곤 아무도 없었다.
감상평을 듣기 위함이었는데 기대감을 품은 눈빛이 너무 역해서 또렷하게 생각이 난다.
시간을 끌 것도 없이 나는 자리에 앉는 즉시 말했다.
“재미가 없고, 이해도 안 돼. 글은 써 본 적 없는 초짜 티가 나서 너저분하고 긴장감도 없어. 심지어는 속도감도 없지.”
“…….”
“그리고 설정 들을 때부터 생각한 건데 결국 주인공은 어떻게 소설 속에 들어가게 된 거야? 무슨 인과 관계로? 그 과정에 대한 설명도 없이 돌연 정신 차라니 빙의되어 있다. 라고 하는데 나중에 떡밥 풀 생각은 해 둔 거겠지?”
“그, 그건….”
“게다가 이 세계는 남자가 멸종 직전인 거야? 프롤로그 포함해서 7화까지 진행이 됐는데 90프로 이상이 여자네? 너 전에 여자 주인공이 4명인가 있다고 했잖아. 여기서 더 나온다고?”
“이 자식…. 그 악플 네가 단 거였구나!”
나는 손짓을 하며 이수림의 입을 다물게 했다.
앞서 말했던 건 확실히 문제긴 했으나, 내가 웹소설이라는 장르를 모르니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내게 있어 진짜 걸림돌은 이제부터다.
“주인공 이름이 리암이지. 그래, 근데 너 영어 이름이 뭐였지?”
“…….”
“왜 갑자기 소설을 쓰나 했더니 순전히 망상 놀이 하던 거였어. 내가 네 글을 즐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작가인 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야.”
“그… 원래 작품에는 작가의 기호나 성격이 묻어나기 마련…….”
“어느 정도는 묻어날 수 있겠지. 근데 이건 아예 너를 빼다 박았잖아. 내가 왜 너랑 소설 속 여자애들이랑 희희낙락 하는 걸 봐야 하냐?”
“…….”
그렇다.
이수림. 이 자식은 자신을 주인공 삼아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원작을 읽었다는 압도적인 정보량의 차이와 상태 창이라는 말도 안 되는 힘을 주인공인 리암에게 부여해 주면서 만족감을 느꼈겠지.
“이어서 문제점이 더 있는데…….”
“이, 이제 그만… 알겠으니까 그만…. 이미 충분할 정도로 팼잖아. 언제까지 나를 말로 두들겨 팰 생각이야?”
나는 솔직한 감상평을 내쏟았고.
리암… 아니, 이수림은 정신이 나가 버린 채 쓰러지기 일보 직전 상태가 되었다.
이수림은 책상에 달라붙은 거처럼 엎드린 채 긴 한숨을 내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근데 어찌 됐건 읽긴 했네? 당연히 안 읽었을 줄 알았는데.”
“나를 모티브 삼은 캐릭터가 뭔지 확인은 해 봐야지.”
“아, 바르간? 어때? 특히 신경 써서 만든 캐릭터인데. 나름 서사도 있어.”
“매력은 있는데, 날 닮지는 않았어.”
“웃기시네. 완전 똑같구먼. 그냥 네가 귀족적인 말투 사용하면 바르간인데 무슨. 아,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는 모습 말고 나한테 보이는 태도로.”
“…….”
이때 이수림에게 별다른 첨언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다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수림이 유일하게 잘하는 게 사람의 성격을 잘 캐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르간이라는 캐릭터는 악역인긴 하지만 꽤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위풍당당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이용하는 게 속이 다 시원했으니까.
‘…나도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이랬을지도 모르겠어.’
물론 현실의 내가 이럴 순 없지만 말이다.
나는 소설의 흐름을 생각하곤 중얼거렸다.
“차라리 바르간이 주인공인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뭐어? 그건 절대 안 돼. 주인공은 무조건 리암이야.”
“바르간의 언행이 시원시원한데 악역이니까 주인공 입장에서 고구마가 되어 버리잖아.”
“너 고구마라는 말도 아는구나…? 아, 아무튼 안 돼, 안 돼. 자, 자, 이 얘기는 여기서 끝.”
더 이야기가 진행되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이수림은 대화를 끝내려 했다.
그 녀석이 먼저 말문을 닫으려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전개에 불만이 있으면 댓글이 아니라 차라리 직접 말로 해. 댓글은 다른 독자들도 볼 거 아니야.”
“독자도 몇 없는데 체면은.”
“쫌! 야, 너 오늘 말이 좀 많다?”
말이 많다라….
확실히. 내가 언제 또 이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이수림을 최대한 멀리 하려고 했던 거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에 별 쓸모도 없는 소설을 읽게 되지 않나 이렇듯 잡설을 하지 않나.
도움 되는 일이 없으니까.
“시후야, 미안한데 그냥 넌 완결 나면 봐라. 그 전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내 정신 건강에 안 좋겠어.”
“어차피 더 읽은 일도 없어.”
“에헤이. 그건 또 아니지.”
독자도 몇 없는 소설.
이수림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집필 활동을 이어 갔다.
수익도 거두지 못하니 내가 볼 때는 의미가 없어 보였지만, 녀석은 교과서를 펼치고 있을 때보다 소설 이야기를 할 때 유독 생기 있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고.
나와 녀석의 반은 갈라졌다. 당시 대입이 코앞이었던 난 1분1초를 아끼면서 살았기에 이수림의 소설을 읽기는커녕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이수림 뿐만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대화와 시간은 모조리 제거하고 공부와 연기에만 전념했다.
얼핏 보기로는 이수림도 2학기에는 공부에 제법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 끈질기게 내 반에 찾아오던 발걸음을 멈춘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던 난 원했던 대학에서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다.
뛸 듯이 기뻐 환호하기 그지없던 날.
겨울의 추위도 한순간 물러난 것만 같던 그날.
난 이수림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