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4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42화(342/350)
“저 녀석이 감히…! 영웅의 이름을 네놈 따위가 함부로 부르지 마라!”
직할대의 용사들 중 유난히 젊은 남자 용사가 외쳤다.
그는 이제 막 용사의 이름표를 단 신입으로 알리시아를 동경하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다.
“알리시아! 저딴 놈이랑 말을 나눌 필요도 없습니다! 곧바로 죽여 버리도록 하죠!”
“맞습니다! 저자는 아카데미아를 멸망시키고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을 죽인 학살자입니다! 대화를 나누면 귀만 더러워 질 게 분명합니다!”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들이 바르간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
그들은 알리시아가 아르볼 프루탈을 이끌면서 들어온 인재들로 각자 넘치는 열정과 재능을 갖췄다.
바르간은 새삼 아르볼 프루탈이 자신의 손을 떠나갔음을 실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틀린 말은 아니군. 그래, 알리시아. 나를 죽이고 싶은가?”
“…….”
“어째 한마디를 뱉지 않는구나. 4년 만에 본다고 하여 주인의 얼굴을 잊어버린 거냐?”
“감히 알리시아에게 저런…! 죽여 버리겠…! 핀?”
바르간의 발언에 발끈하며 나서려는 신입 용사. 핀은 팔을 뻗은 채 그를 막았다.
“아직 알리시아는 아무런 임무를 내리지 않았어. 우리가 움직이는 건 그녀의 명이 떨어지고 나서야.”
“하, 하지만… 저 범죄자 새끼가….”
“상대는 제로 위험군과 제1 위험군을 죽여 버린 강자. 아무리 약화했다고 해도 멋대로 나서는 건 곤란해.”
“…알겠어.”
형식적으로 용사들은 평등했으나, 실제적으론 엄연한 질서가 존재했다.
준용사이자 최상위권의 용사 랭킹에 위치해 있는 핀과 영웅 알리시아는 신입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바르간은 신입 용사의 패기 따위는 무시한 채 시간을 가늠했다.
예정보다 직할대의 출현이 조금 늦었다. 지금이라면 이미 디피엘리아가 전언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내게 지대한 관심을 가져 주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나, 그래도 괜찮겠나?”
바르간은 턱짓으로 멀리서도 보이는 위그드라실을 가리켰다. 굳건하게 뻗어 있는 거대한 신목의 줄기에는 교회의 핵심 인물이 피신해 있는 중이다.
“성제의 검인 실베스테르와 헤일리온은 죽었다. 현재 성제를 지킬 직할대의 핵심 인원은 알리시아와 핀. 한데 그 둘이 온 것도 모자라 아르볼 프루탈이었던 이들까지 싹 몰고 왔으니 저쪽의 경비가 영 허전할 텐데?”
바르간의 말에 패기 넘치는 신입 용사가 대꾸했다.
“그딴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이미 네가 벌인 이해 불능의 행위로 제로 위험군의 소멸과 여신교 세력의 와해를 확인했다. 성제님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은 이미……!”
“어리석긴. 내가 말하는 건 외부가 아니라 ‘내부’다.”
“내부라고?”
알 수 없는 바르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신입 용사. 곧이어 마치 타이밍을 재기라도 한 듯 마케니아의 통신용 사역마들이 울기 시작했다.
—긴급 통신! 긴급 통신!
—성녀 디피엘리아를 비롯해 다렉 연합국에 남아 있던 신 세력의 일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시 한번 전한다! 성녀 디피엘리아를 비롯해 신 세력의 일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현재 성제님께서는 피신처에 포위되신 상황! 직할대는 지금 직시 복귀하여 신 세력을 진압하라! 다시 한번 전한다. 직할대는……!
통신을 듣는 신입 용사들은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구 세력과 신 세력에 알력 다툼이 있다고 한들 성녀가 쿠데타라니…!
차라리 바르간이 무언가 꾀를 써 통신용 사역마를 조종하고 있다는 게 더 현실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실인 거 같아.”
사역마의 상태를 확인한 마케니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사역마는 그 어떤 마나나 저주의 간섭을 받지 않았으며 통신을 건 상대 역시 구 세력의 일원임이 확인됐다.
즉, 어떤 이유 그리고 어떤 명분에서인지 무력을 지양해야 할 성녀가 검을 빼내 든 것이다.
“그, 그럴 수가….”
패기 넘치는 신입 용사가 역력히 당혹한 기색을 드러냈다.
바르간을 향해 당당히 내뱉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어찌할 줄을 몰라 핀과 알리시아의 눈치를 살폈다.
이에 핀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작게 입가를 올렸다.
그 미세하고 은밀스러운 미소는 바르간 정도만 알 수 있을 정도로 거의 티가 나질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알리시아를 제외한 전원은 즉시 연합국으로 복귀하도록 한다.”
“자, 잠시만 핀…. 알리시아를 제외하고라니… 왜 그런 지시를?”
“모든 판단은 현장 책임을 맡은 나와 알리시아가 결정짓게 되어 있고 우린 지금 길게 떠들고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가 않아. 그래도 설명이 필요하다면 이동하면서 해 주도록 하지.”
“……큭.”
핀의 단호한 결정에 신입 용사는 입을 다물고 지시에 따랐다.
그렇게 물러나기 직전, 핀은 가볍게 바르간에게 눈인사를 했다.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은혜를 내려 준 바르간.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바르간.
그런 그에게 복잡한 심경을 억누르고 간결한 마지막 인사를 보이는 것. 그게 준용사인 핀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사사삭—.
마케니아는 바르간을 감싸고 있는 사역마들을 몰아내고 직할대의 용사들은 핀을 뒤따랐다.
그러자 숲에 남게 된 이는 바르간과 알리시아 단둘이 되었다.
“…….”
그들의 사이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유지하면서도 알리시아는 경계를 낮추지 않았는데, 바르간이 함부로 도망갈 수 없도록 일부러 예기를 드러냈다.
“…할 말이 없다면 이대로 나를 보내 주도록 해라. 보다시피 내 몸 상태가 현재 말이 아니라서 말이다. 시급한 처치가 필요한 상황이지.”
“…….”
“뭐, 네가 바라는 게 이대로 나를 말려 죽이는 거라면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바르간은 조롱 섞인 어조를 뱉었다.
알리시아는 이미 바르간의 상태가 위급함을 알고 있다.
항시 바르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마나총량은 바르간의 숨통을 조여 갔고, 지나치게 흘린 출혈량과 회복되기 힘든 피해로 바르간의 몸은 서서히 죽어 갔다.
스스스….
부는 바람에 그림자로 물든 나무들이 부대끼며 소리를 냈다.
숲의 틈새를 지나 내리는 달빛. 그 영롱한 줄기가 알리시아의 눈과 피부에 반사되어 환하다.
“…….”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알리시아의 입술. 속으로 몇 번이나 입을 열기 위해 대사를 되뇌어 보지만 쉽지 않다.
말이란 게 이토록 꺼내기 어려운 것이었던가.
그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마차 안에서도 이처럼 힘들진 않았는데….
알리시아는 마나와 함께 감정을 갈무리하려 애썼다. 천천히 옅은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떨림이 가시는 듯했고 겨우 말문을 뗄 수 있었다.
“…바르간 도련님.”
알리시아의 깊은 감정을 담은 한 문장이 나왔다.
고작 단 한 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간은 알리시아의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 받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르간은 애써 그 감정을 모른 척하며 입가를 올렸다.
“사상 최악의 범죄자를 보고 영웅이 도련님이라 부르다니. 확실히 위그드라실이 망조에 들긴 한 모양이구나.”
“…….”
바르간과 눈을 마주하는 알리시아.
그녀는 최대한 마음을 정제하고 또 정제했다. 알리시아의 가녀린 목소리가 아름다운 곡조와도 같이 흘렀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고, 시간은 애석할 정도로 짧습니다. 묻고 싶은 말도, 듣고 싶고 말도 열거하자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지만… 저는 먼저, 제가 맡은 현재의 역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검을 쥐고 있는 알리시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정갈하게 정리한 듯한 눈썹이 치켜올려 가며 그녀의 각오를 나타냈다.
“대역죄인 바르간. 당신은 수없이 많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하나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극악의 행위였으며 이는 곧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이자 공포가 되었습니다.”
“…….”
“당신이 벌인 만행들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피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불타오른 대도시만 하더라도 일곱이며, 22개의 소도시가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취락을 더하면… 그 수가 짐작이 되실 테지요.”
“…….”
“바르간. 당신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인간이자, 또 최단기간에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여신교의 신자입니다. 때문에 용사인 저는 당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즈응—.
나이아스의 검신이 붉게 변했다.
검술의 초월에 이른 자들만이 다룰 수 있는 붉은 오러다. 하지만, 알리시아는 그 이상의 힘을 날과 전신에 담았다.
츠으으응—!
검이 진동하며 대기가 공진했다.
알리시아의 검과 몸에는 성스러운 빛이 감돌며 숲의 어둠을 몰아냈다.
하얀 갑옷은 헤일리온의 고유술식이던 기백(氣魄).
나이아스에 깃든 숭고할 정도의 힘은 마찬가지로 헤일리온의 고유술식이던 성화를 알리시아가 발전시킨 홍성화(紅聖火).
“대단한 성취군….”
추기경조차 죽여 버릴 수 있는 위협적인 힘에 바르간은 감탄을 보였다.
직접 헤일리온을 상대했던 바르간은 그 이상의 기술을 보유한 알리시아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현시점에서 너를 능가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겠구나.”
바르간은 과다 출혈로 인해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와중에도 임의의 수치를 매겨 저울질을 했다.
현재의 자신이 알리시아와 맞붙는다고 했을 때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아니… 분명 불가능하겠지.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도 모자라 등외품이던 영광의 링은 파손, 게다가 생명의 향수는 6시간이 지나 현재 사용이 불가한 상황이니까.
결국, 알리시아는 현재 인류의 정점. 그녀의 검끝에 바르간의 목숨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오오….
알리시아의 전투 태세에 바르간은 마나를 움직였다.
아주 적은 마나량에도 극심한 통증이 동반되었지만, 비릿한 미소는 잃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난 죽을 생각이 없어서 말이다. 내 목에 칼을 들이밀겠다면 나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잔뜩 살기를 띠는 바르간. 그는 여차하는 순간 고유술식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다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될 위험이 커 고유술식을 사용하고 싶진 않으나, 그 외의 마법은 알리시아가 가볍게 잘라내 버릴 테니까.
츠응, 츠즈즉—!
대기에 휘몰아치던 바르간과 알리시아의 마나가 서로 부딪쳤다.
한 사람이라도 앞서 나오면 곧장 대격돌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상황.
그 일촉즉발의 순간에 알리시아는 이빨을 갈며 외쳤다.
“어째서 끝까지 말하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어째서!”
알리시아가 바르간에게 분노를 표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바르간에게 큰 소리를 낸 적 없던 그녀가 끝까지 진실을 숨기려는 바르간의 모습에 더는 참지 못하고 감정을 터트렸다.
“죽을 생각이 없으시다고요? 전 그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신다면 대항하려 하지 마시고 진의를 밝히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진의라… 무슨 말이지?”
“도련님! 제 신분이 한천하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단 말입니다!”
“…….”
“도련님께서 어째서 ‘인류를 배신하는 척’을 하신 건지, 그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셨는지… 어째서 말해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어떤 헛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알리시아는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바르간이 말이 이어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꾹 억눌러 왔던 하나의 사실을 드러냈다.
“제게 내리셨던 저주의 각인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를 입맛대로 움직이기 위해 ‘매혹의 저주’를 거셨다고요…? 거짓입니다! 그 저주는 재판을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나중에 건 것이지 처음부터 걸려 있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