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4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348화(348/350)
348화 외전 (3)
“음… 그러니까 당신… 아니, 바트 님께서 마을의 촌장님이시라는 거죠?”
“두 분께서는 박시후 님의 소중하신 동료분들! 할배나 할아버지, 혹은 촌장으로 충분합니다. 편한 대로 불러 주십시오.”
“네, 네….”
시후의 언질대로 평화로운 마을에 두 손님이 들렀다.
촌장 바트는 지긋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님을 환영했는데, 정작 둘은 어색하기 그지없다는 반응이다.
잿빛 머리칼의 여인이 유일하게 제 기능을 하는 한쪽 눈을 끔뻑이며 입을 열었다.
“근데… 혹시 과거에 용사로 활약하셨다거나 뭐 그러셨나요…?”
“아하하. 손님들께서는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제가 용사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대체 그 몸은….”
잿빛 머리칼의 여인, 에밀리는 바트의 근육질 몸을 조심스레 가리켰다.
분명 얼굴과 손에는 자글자글 주름이 가득한데, 가슴이나 등과 같이 커다란 근육이 자리 잡혀 있는 부위는 탱탱하다 못해 딴딴해 보인다.
분명 바지를 걸치고 있음에도 과시를 하는 대퇴근이 무섭기까지 하다.
“큼… 아무튼, 그거야 그거고. ‘박시후’라뇨? 저흰 분명 바르간과 알리시아가 있다고…… 리암?”
“그… 대충 들어 보니까 개명했다고 하더라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겠다는 그런 거 아니었을까?”
“개명? 이름을 바꿨다고?”
에밀리는 바르간이 과거에 가문 명을 버린 걸 떠올렸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하지만, 어딘가 시원치가 않긴 하다.
“…박시후라니 이상한 이름이네. 그런 이름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야, 너 뭐야?”
돌연 에밀리의 말을 끊어 버리는 차가운 음성.
고개를 돌리니 어리지만 분명 날카로움을 담고 있는 소녀가 양팔을 꼬아쥐고 있다.
칠흑같은 검은 머리칼과 표독스러운 흑요석의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에밀리는 소녀의 당당함에 당황하여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나? 지금 나보고 물어본 거니?”
“그래, 너. 너 뭐냐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소녀. 일곱 살 정도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어른을 대하면서도 스스럼없다.
“넌 뭐 얼마나 대단한 이름을 가졌길래 우리 아빠 이름을 가지고 이상하네 마네 평가를 하는 건데? 너 뭐 좀 돼?”
“아, 아니…. 난 평가한 게 아니라 그냥… 잠깐, 근데 뭐? ‘우리 아빠’? 지금 우리 아빠라고 한 거니?”
“귀가 먹은 거야 아니면 국어 능력이 딸리는 거야? 그래, 우리 아빠라고 했어. 이해 못 한 거 같으니까 친절하게 다시 한번 말해 줄게. 우리 아빠 이름이 박시후야.”
“엄마야….”
소녀의 확언에 에밀리의 한쪽 눈이 더 없이 커졌다.
태어났을 적부터 이미 외모가 완성되어 있는 것 같은 저 소녀의 아버지가 자신이 아는 ‘그 녀석’이라는 사실이 놀랍지만, 자세히 보면 빼닮긴 했다.
인형 같은 외모며 성격이며 말이다.
“마, 마르티나 아가씨…!”
촌장 바트는 소녀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왜 굳이 마을 입구까지 귀한 걸음을 옮기셨냐며 안절부절못했다.
마르타나는 익숙하다는 듯 손짓을 하며 바트를 물렸고 곧 에밀리의 앞까지 걸어왔다.
제법 키 차이가 나지만 기세로 봐선 오히려 잡아먹을 것만 같다.
“아빠의 지인이라고 해서 얼굴 좀 미리 봐 볼까 해서 와 봤는데, 영 시원치가 않네.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 아빠랑 엄마를 도와 세상을 구한 거야?”
에밀리와 리암을 흘겨보는 마르티나.
태도만 보면 어딘가에 있을 법한 싸가지 없는 고위 귀족 같다.
그렇게 대치 상황이 이어지려는 찰나.
“리암 씨! 에밀리 씨!”
두 사람을 향해 반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남을 배려 하는 따뜻한 음성은 여전히 듣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꺄아! 이게 얼마만이야 알리시아! 넌 진짜 하나도 안 늙는구나? 근데, 그 옆은… 설마 둘째?”
아름다운 하얀 머리칼의 여인 알리시아.
그리고 그녀를 쏙 빼닮은 어린 소년. 소년은 손을 잡은 채 슬쩍 알리시아의 뒤에 숨어 있다.
낯선 사람에게도 대뜸 반말을 내뱉는 마르티나와는 대조적이게 부끄러움이 많아 보인다.
알리시아는 부드럽게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년을 소개해 주었다.
“리타예요. 올해로 다섯 살이 되었어요.”
***
리타를 데려온 알리시아는 리암과 에밀리를 직접 안내해 주었다.
촌장 바트는 자신이 맡겠다고 몇 번이나 그녀를 만류했지만, 알리시아는 괜찮다며 돌아가셔 쉬어도 된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장녀 마르티나는 날선 시선으로 에밀리와 리암을 노려보았다.
단순히 시후의 이름을 욕보였다는 이유만은 아니고 뭔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게, 알리시아와 시후. 그리고 두 아이가 살고 있는 오두막에 도착한 이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테이블 의자 위에는 오만한 귀족… 아니, 시후가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여전히 사람을 하대하는 말투. 그러나, 예전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리암과 에밀리는 그런 시후를 보며 안심감과도 같은 무언가를 느꼈다.
“자리에 앉거라. 테이블에 차려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만 잠깐의 시간 정도라면 내줄 수 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차를 내올게요.”
리암과 에밀리가 자리에 앉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알리시아가 싱긋 웃으며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 안에서 향긋한 찻잎의 냄새가 올라오자 에밀리는 입을 뗐다.
“세간의 눈길을 피하고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나 했더니 ‘박시후’ 씨, 아주 괴상한 마을을 만들고 계셨네요?”
에밀리는 마을의 초입에서부터 오두막까지 오면서 봤던 풍경을 언급했다.
시후는 느긋하게 차 한 모금을 마시며 대꾸했다.
“단순히 괴상한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섭섭하지. 사람들과 사역마, 그리고 마물들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낙원이다.”
“낙원…. 그래,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더라.”
에밀리는 의외로 쉽사리 시후의 말을 인정했다.
성녀의 기적을 사용한 대가로 한쪽 눈과 한쪽 팔밖에 사용할 수 없는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의 눈에도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활기가 보였다.
“그것만이 아니잖아.”
리암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표현하는 게 조금 서툰 조카를 보듯 박시후를 바라봤다.
“마물이 된 사람들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있는 거지?”
“뭐, 뭐어? 마물을 사람으로 되돌려? 그, 그게 가능하다고?”
리암의 발언에 크게 놀란 에밀리.
평화유지군 회장 디피엘리아로 인해 마물이 본래 인간이었음이 공론화되고 마물의 토벌이 금지되었지만, 아직까지 알티프의 사례와 같이 치료제가 나왔다는 말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시후는 입가를 슬쩍 올리며 대꾸했다.
“출처는 디피엘리아인가? 입이 싼 성녀로군.”
“평화유지군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역이 있다 보니 제법 듣는 정보가 많아져서 말이야.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오만한 누군가가 고독히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아직 공표할 정도는 아니다. 표본 수가 부족하고 연구가 부족하니 섣불리 입을 열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지.”
“그렇구나….”
생각에 잠기는 리암.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웃음 지었다.
“완벽주의인 네가 하는 일이니까. 믿고 맡길 수 있지.”
“리암.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난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하물며 내가 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럼?”
“그저 소소한 여가 활동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구나. 일…이라고 부를 정도로 열중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어련하시겠어.”
리암은 어깨를 으쓱했다. 에밀리는 대화에 따라가기 힘들어 하는 눈치였지만 아무쪼록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시자마자 유지군 관련된 대화를 나누고 계신 거예요?”
그사이 차를 내온 알리시아.
따뜻한 향기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올라오는 차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리암은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자연스레 알리시아를 대화에 포함시켰다.
“우린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알리시아는 이제 은퇴한 지 8년 정도 됐나?”
“네, 시후를 찾아온 게 8년 전 이맘쯤이니까 맞아요.”
알리시아는 눈길을 돌려 시후를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깊은 첫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이 웃음 짓는 게 아직도 한창 뜨거운 모양이다.
에밀리는 옆 의자를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리며 알리시아가 앉도록 유도했다.
그러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냐느니, 알리시아의 은퇴식이 얼마나 거창하고 인파가 몰렸는지에 대해 떠들던 도중. 시후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 슬슬 나와 알리시아를 찾아온 용무를 밝혀라. 시간을 내준다고는 했으나 하루를 통으로 내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 이게 네가 대화하는 방식이었지.”
어쩐지 그립다는 식으로 말한 리암의 입가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운 듯하지만 입술을 뗐다.
“대주교 베리스……라고 하면 둘 다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내가 잠시 몸을 담고 있던 강경파의 대주교 중 하나였으니까.”
“저도 기억하고 있어요…. 벌레의 대주교 크로셀을 흡수한데 이어 수많은 사람과 용사들을 흡수해 급속도로 성장했었던 대주교였죠.”
시후보다 비교적 최근까지 현장에 있었던 알리시아는 보다 생생하게 그녀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베리스는 위그드라실조차 흡수하려 했었는데, 디피엘리아가 위그드라실을 빠르게 제거한 이유에도 이 까닭이 있었다.
“…….”
현장에서의 경험이 스쳐 지나가자 알리시아의 눈빛이 다소 진지하게 변했다. 그녀가 물었다.
“제가 활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베리스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큰 피해를 입고 몸을 숨겼었죠. 설마… 벌써 상처를 전부 회복하고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한 건가요?”
“아니. 조금 달라. 당시 알리시아, 네가 입혔던 피해로 인해 베리스는 사실상 죽었다고 공표되었어.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 설령 간신히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섣불리 움직이진 않겠지.”
“그럼….”
“근데, 분명 그래야 하는데. 최근 수상쩍은 흔적들이 나오고 있어. 우선, 이 자료들을 봐 줄래?”
리암은 차원 마법이 걸린 보따리에서부터 여러 장의 종이를 꺼내 보였다. 대륙 각지에서 특이 현상으로 보고된 자료들이었다.
시후는 빠르게 자료를 완독하고 말했다.
“베리스의 소행이라고 확정할 순 없지만…. 수상하긴 하군. 설마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던전이라도 하나 찾아서 점령한 건가?”
“역시 대단하네. 우리도 같은 생각이야.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던전을 흡수해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어.”
“그래서, 그 말을 굳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서 꺼냈다는 건. 나나 알리시아. 둘 중 한 명의 힘을 빌리고 싶다는 뜻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이미 현직에서 물러난 너희에게 염치가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고속으로 성장이 가능한 베리스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니까.”
“역시 그랬던 거군.”
시후는 모든 정황을 이해했다.
알리시아는 그런 시후를 옆에서 바라보며 테이블 아래로 시후의 손을 잡아 주었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시후를 보낼 수는 없다는 강한 의지가 전해졌다.
‘시후 대신 자신이 가겠다.’
알리시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적이 길어지자 리암은 첨언했다.
“오래는 어울려 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게. 3개월…. 아니, 1개월 만이라도 조력을 해 주면 좋겠어.”
리암의 발언에 에밀리는 1개월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할 거라고 말했으나, 리암은 이 이상 이들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다며 뜻을 고집했다.
이에 깊이 고민을 마친 시후는 입을 열었다.
사실, 그가 내밀 답은 리암이 본론에 들어가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