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5화(5/350)
틈이 보인다.
어린아이의 작은 눈알 하나조차 들어가지 않는 구멍. 그 조그만 공간을 통해서 한 줄기의 빛이 들어온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새까만 어둠. 멋대로 펄떡이는 심장을 잡아 붙들 순 없으니 대신 자신의 몸을 움켜잡는 어린 소녀.
소녀는 주변의 어둠보다 그 틈새의 빛이 두려웠음에도 기어코 작은 틈새에 자신의 눈을 가져다 댄다.
따끔. 몸이 격하게 떨리고 있었기에 구멍에 돋친 작은 가시가 찔린다. 그러나 그런 자잘한 아픔은 그녀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소녀는 그 빛을 통해 밖을 내다봤다. 밖의 상황은 당장에라도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처참했으나, 고개에 힘을 주고는 억지로 버틴다.
소녀의 시야에는 또 다른 여자아이가 담긴다. 그녀와 나이 차이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 여자아이였지만 소녀의 시선에서 여자아이는 이미 다 큰 것처럼 느껴졌다.
계속해서 여자아이를 본다. 대충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검을 들고 있었다. 검에도, 그녀의 낡은 옷에도, 주인을 모를 혈흔이 낭자하다. 그녀는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몸을 움직여 틈새로 보이는 시야의 위치를 변동시킨다. 무언가가 보인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불쾌한 생명체.
네 발로 서 있는 그것의 몸집은 성인 정도가 안 되었지만, 혈액처럼 붉은 피부와 동공이 보이지 않는 호박색의 눈이 이질적이며 위협적이다.
그때, 그 네 발로 기는 괴물은 여자아이에게 달려든다. 맹렬한 속도로 불같이 빠르게. 여자아이도 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간다. 그러곤 이어지는 장면.
콰학! 모아 둔 것이 한 번에 분출되듯 강렬하게 피가 터지며 여자아이의 심장은 그만….
“안 돼⎯!”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거친 숨과 온몸을 적신 땀이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가쁘게 활동하는 폐는 어둠 속에 있었던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다.
확장된 동공으로 주변을 확인한다. 어렴풋한 기억의 그 낡은 집이 아니다. 곧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나무로 된 건물이 아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감도 오지 않는 삐걱거리던 침대가 아니다.
대충 보기에도 고가로 보이는 가구들과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직 영글지 않은 새파란 빛이 보인다.
주륵. 두 눈에 차 있던 감정이 볼을 타고 내린다. 그녀는 가는 손으로 그 액체를 닦아 냈다.
가쁜 숨은 점차 안정기에 진입한다. 빠르게 돌아다니던 혈액도, 급격히 커진 동공도 점차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
그녀는 상황을 인지했다. 자신은 어제 마력을 전부 소모하고 나서 정신을 잃었었다. 그 직전까지의 기억이 모호하나, 흐릿하게 잔재가 남아 있다.
“빨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직 떨림의 잔재가 그녀, 알리시아의 몸에 남아 있었지만, 늦장을 부릴 여유는 없다. 당장 오늘도 바쁜 일정을 해내야 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불을 정리한다. 오른손이 추위에 떠는 것처럼 부들거렸지만 다른 한 손으로 잡아 그 떨림을 붙잡는다.
그러나 떨림의 저항이 거세다. 멈추기 위해 잡은 다른 손으로까지 그 진동이 전염되더니 이윽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
털썩. 결국, 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양손으로는 어깨를 감싸며 어떻게 해서든 멈추려 든다.
“제발… 그만.”
오랜만에 꾼 그 악몽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이 단단한 족쇄는 아직도 알리시아를 괴롭히고 있다.
***
“호호호, 이렇게 다 같이 마차를 타고 있으니까 여행 가는 것처럼 신이 나네요! 그렇지 않나요 알리시아 양?”
“…그러네요. …아, 아뇨! 전혀 아니에요! 어딜 가는 건지 말씀해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도련님의 뜻이니 분명 좀 더 실속 있는 것임에 틀림없어요!”
“…왜 내 눈치를 보고 말을 바꾸는 것이냐.”
“도련님, 몰라서 물으시는 건가요? 그렇게 사나운 눈매로 노려보시면 그야 당연히 눈치를 보고 말을 바꾸죠. 암요. 그렇죠, 알리시아 양~?”
“그것이….”
자세를 반듯이 하고는 있으나 옆 눈으로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알리시아. 상당히 불쾌한 눈빛이로군.
“앗!”
“어째서 맞았는지는 묻지 말아라. 가끔은 자신의 힘으로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와, 알리시아 양의 피부가 워낙 하얘서 그런지 엄청나게 빨개지네요.”
“파울라 선생, 계속 그런 식으로 주위를 산만하게 한다면 내쫓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도록.”
“…왠지 진짜로 추방당할 거 같으니까 가만히 있을게요.”
드디어 자리에 앉아 입을 다문 파울라. 저 오두방정인 태도만 고친다면 아카데미아로 복귀하는 것도 훨씬 수월하겠건만. 저러니까 능력이 있어도 근신 처리가 되지.
“아! 지금 또 저 아카데미아에서 근신 처리 된 거 놀리려고 하셨죠? 다 느껴진다고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시면!”
“…그런 눈?”
“아,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와, 브람 씨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요즘 도련님 임무를 수행하느라고 바빠서 얼굴을 영 못 봤잖아요?”
파울라가 옆에서 침묵을 지키던 사내에게 말했다.
저 녀석, 지금 고개와 함께 말을 돌렸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감히, 버르장머리 없이.
“…네,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말수가 적으시네요! 어머나, 이 굵은 팔뚝 좀 봐. 갈수록 몸이 더 좋아지시는 것 같아요!”
“내려라.”
“브람 씨? 아니… 이건… 도련님? 혹시 지금 이 달리는 마차에서 내리라고 하신 건가요?”
파울라가 황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뭘 그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가. 나는 분명 말했을 텐데.
“선생은 뛰어난 마법사가 아닌가. 마차에 타지 않는다고 해서 따라오지 못할 리가 없지.”
“하지만… 마차가 훨씬 편하고….”
“내려라, 파울라.”
파울라의 목울대가 넘겨지며 살살 웃기 시작한다. 분명 어물쩍 넘어갈 요량이다.
그녀의 시끄러운 입이 열리기 전에 다시 강조해서 말한다.
“선생, 내가 선생에게 농을 한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죠….”
“머리가 좋은 선생이라면 이미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믿겠네.”
“호호호… 알겠어요, 도련님.”
저런 힘없는 웃음도 오랜만에 듣는다. 평소의 방정맞은 소리보단 훨씬 귀를 덜 자극한다.
그렇게 달리는 마차의 문이 열리고.
크게 몸을 뛰며 밖으로 나간 파울라는.
“으으! 추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한겨울의 날씨를 정통으로 맞으며 마차 옆에 붙어 날아다녔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커다란 지팡이를 타고 말이다.
***
“…큰 도시라 그런지 숙소도 엄청나게 크네요.”
“아… 엉덩이 아파. 이래서 지팡이는 타고 싶지 않았던 건데… 아, 알리시아 양, 그건 비싼 곳이라 그래요. 비싼 곳. 원래 마법이 만능이 아니라 돈이 만능이거든요. 돈만 있으면 뭐든 게 해결되는 편리한 세상이죠. 푸에취! …요즘은 도련님 저택에만 붙어 있었으니 통 올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오게 됐네요. 푸에취!”
“선생님… 여러모로 괜찮으신가요? 우선 이거라도 좀 두르세요.”
“아, 고마워요 알리시아 양. 온몸에 안 아픈 곳이 없네요.”
도시에 도착하고 나선 마법으로 이미 충분히 따뜻하게 있으면서도 기어이 알리시아가 준 담요를 두르는 파울라. 아, 저거. 교수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다 버리는 건데.
그런 눈으로 파울라를 노려보자, 주변에 있던 알리시아의 말똥거리는 눈이 나를 향한다.
“그런데… 도련님? 어째서 제게 목검을 주신 겁니까?”
줄 거면 차라리 마법사인 자신에게 어울리는 지팡이나 줄 것이지, 왜 철심을 박아 더럽게 무거운 목검을 주냐고 묻는 건가.
알리시아, 아무래도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구나.
“그야, 검술을 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술을… 세상 물정에 어두워 알지 못하기에 여쭈어보겠습니다. 원래 마법사도 검술을 배우는 것입니까?”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배우지 않지만, 용사라면 경우가 다르지.”
“아… 그래서 검술을….”
“하지만, 너는 마법사가 될 것이 아니기에 의미는 없는 질문이구나.”
“…예?”
철심이 박힌 목검이 무거웠는지 순간적으로 몸이 기운 알리시아. 숙인 몸에 반동을 주어 검을 감싸 올린다.
“마법사가 아니라니… 그럼 전 어째서 지금까지 마법을… 아얏!”
“한심한 것. 번데기가 되지도 않은 애벌레 주제에 나비가 되려 하는구나.”
심지어 알에서 갓 부화한 주제에 말이지.
알라시아가 목검에 의해 봉인된 손으로 평소처럼 이마를 감싸지 못해 괴로워한다. 모습이 상당히 우습다.
“알리시아, 네가 될 것은 어디에나 있는 흔한 마법사가 아니다. 넌 마법과 검술을 혼용해서 싸우는 마검사가 될 것이다.”
“마, 마검사 말입니까?!”
“그것도 아주 높은 등급의 마검사가 말이다.”
일반적으로 마검사라 하면 마법사도 검사도 아닌 어중간한 쓰레기가 되기 십상이지만 그녀는 다르다.
알리시아는 본래 마검사의 체질을 타고났다. 하지만 가짜 주인공. 그 왕자 놈은 뭣도 모른 채 알리시아의 능력에서 마법사만을 개화하게 만든다. 아니, 그 녀석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읽은 소설의 평민 주인공. 즉 진짜 주인공인 ‘리암’은 더욱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다.
마법사로 성장해 가던 알리시아에게서 마검사로서의 재능을 뒤늦게 발견하곤, 도중에 직업을 변경하도록 선동한 것이다. 와우, 정말 박수를 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다.
그 말을 그대로 따른 알리시아도 바보임은 틀림없지만, 원천적인 문제는 리암이다. 마음 같아서는 훗날 대면을 하게 된다면 욕을 한 바가지 박아 주고 싶을 정도다. 아니, 박아 줄 거다. 아주 고풍스럽게.
중요한 스토리의 도중에 직업을 바꾸다니. 알리시아가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그 흐름을 쉽게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바꾼 것일까. 생각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아무튼, 알리시아가 내 손아귀 안에 있는 이상 그런 얼간이 같은 방법으로 성장시킬 수는 없다. 절대로.
“브람을 데려온 연유도 그 때문이지.”
전투 노예이자 충신인 사내, 브람. 원작에서도 항상 바르간의 손발이 되어 주고 묵묵히 높은 성과를 이룩했던 인물이다. 표정 변화도 거의 없고 과묵하지만 그만큼 누구보다도 한결같으며 믿을 수 있는 자이다.
브람이 알리시아에게 고개를 숙인다. 입장도 비슷하건만, 자신보다 훨씬 어린 자에게 저 정도로 고개를 숙이는 정중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 인사를 받은 알리시아도 당황해하며 깊게 허리를 굽힌다. 목검 때문인지 몸이 다소 휘청거린다.
“실력이 좋으신 분이라고 익히 들었습니다.”
“그래, 검이면 검, 활이면 활. 모든 무기에서 높은 성취를 이룬 무인이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알리시아. 근신 중이긴 하지만 능력 있는 아카데미아의 교수인 파울라와, 소설 속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검사, 브람에게 동시에 배움을 받다니. 엘리트 코스도 이런 엘리트 코스가 없다.
“이제 알았으면 어서 준비하거라. 시간은 항상 소모되고 있으니 더욱 소중한 것이다.”
“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알리시아가 분주히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