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0)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50화(50/350)
“무슨 일이지?”
적막만이 감돌던 학생회실의 문이 열렸다.
아카데미아의 학생회장이자 슈겐하르츠 장남인 라인카르벤은 냉소적인 눈동자로 찾아온 이를 바라봤다.
“연구회 신입 회원 선정 건으로 왔습니다.”
바르간은 문을 닫으며 방으로 들었다.
문이 닫히며 밖의 소음은 차단되었고, 공기의 흐름은 온전히 두 사람만의 것이 되었다.
운을 뗀 이는 바르간이다.
“1차 서류 심사를 끝내서 말이죠. 2차 면접을 볼 장소를 대실해야 합니다.”
라인카르벤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고요를 이어 갔다. 그의 이지적인 눈동자가 바르간을 가볍게 훑는다.
바르간은 그가 원하는 바는 이미 준비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보였다.
“대여실과 시간을 적어 두었습니다. 공실임을 확인하고 작성한 것이니 착오는 없습니다.”
고급 원목으로 된 중역 책상 위에 올려진 봉투, 바르간은 기분을 헤치지는 않는 선에서 살며시 미소를 보였다. 분명히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고 있으나, 무언가 보는 이를 찜찜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비슷하지만 다른, 날카로운 두 눈동자가 정확히 마주한다.
“연구회 명칭 때의 일도 그렇고. 형님 덕분에 무사히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문의 형제로서, 더 나아가 아카데미아의 일원으로서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
라인카르벤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고민을 해서인지 눈이 피곤해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눈꺼풀이 닫힌 것 말고는 바르간이 들어오기 전의 자세와 같다.
여전히 반응이라고는 보여 주지 않는다.
역시 장남인 라인카르벤은 지독하리만큼 딱딱한 사람이다.
그렇게 느낀 바르간은 웃음을 지우며 뒤를 돌았다. 둘의 대화는 이대로 끝이다. 필요한 건 전달했으니 더 이상 이 답답한 공간에 있을 필요 없다.
바르간은 긴 다리를 뻗으며 걸음을 옮기려 들었다.
“바르간.”
곧은 음성.
이름을 불렀을 뿐이지만 귀족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낮고 확실하게 울리며 나서려던 바르간을 잡았다.
바르간은 가볍게 뒤로 돌며 입가에 작은 웃음을 걸었다.
우리 둘 사이에 무슨 할 말이 더 있기에 나를 붙잡느냐는 의미를 함축한 행동이었다.
라인카르벤은 감았던 눈을 뜨며 다시 바르간의 검은 눈동자를 직시한다. 기 싸움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둘 중 어느 하나도 눈을 피하지 않는다. 마치 서로를 가늠하듯 파악하려 든다.
“어린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눈싸움이나 하자고 붙잡은 건 아닐 텐데요. 어떤 용무로 부르신 거죠.”
“아르볼 프루탈.”
바르간이 설립한 연구회로, 학생회의 위광을 빌려 시선을 끈 그 단체. 라인카르벤은 최근 바르간이 보이는 이상 행동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길드라도 만들고 싶은 것이냐.”
아카데미아를 졸업한다고 해서 모두가 용사가 되지는 않는다. 귀족들 같은 경우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는 예도 있고, 평민들은 던전을 공략하며 마물을 퇴치하거나 잡는 헌터의 일을 맡기도 했다.
바르간이 모은 연구회의 인원들은 재능이나 수준, 계급이 천차만별. 엘리트 집단을 형성해서 아카데미아 내부에서의 권력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귀족계의 사교가 목적인 것도 아니다.
한 달 전, 바르간이 말한 ‘놀라운 발언’과 조합하여 생각했을 때. 연구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헌터 육성을 통한 길드 사업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 라인카르벤의 의도를 읽은 바르간은 내리깐 눈을 빙빙 돌리며 고민하는 체를 했다. 흠. 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 행위도 잊지 않았다.
이를 짧게 마치곤 대답한다.
“아카데미아의 인재들을 벌써부터 바깥 것들과 섞는다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이들은 아카데미아의 입학 조건을 충족한 새싹들인데 말입니다.”
라인카르벤이 마땅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자 바르간은 예상했는지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야, 형님께서 보시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불순물이 다소 섞여 있겠으나,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패총처럼 보이던 그 껍데기 안에 실은 진주를 품고 있을지⎯ 그렇게 말하는 바르간의 표정은 가정이 아니라 확신을 한 듯했다.
라인카르벤은 여전히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무뚝뚝한 얼굴로 있었다.
“자신 있어 보이는구나.”
“매사에 당당하게 행동하는 게 제 신조입니다. 또한, 형님이라는 아군을 얻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
“제가 했던 말 중에 거짓은 한 스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이만 실례토록 하지요.”
끼익⎯.
그 말을 끝으로 바르간은 학생회실에서 나섰다.
그리고.
잠시나마 깨졌던 고요가 다시 돌아왔다.
창밖에서 들어온 햇살로 인해 공중에서 춤추는 먼지의 소리마저 들릴 것 같다.
“…….”
홀로 남은 라인카르벤은 중역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깔끔하고 어딘가 기품마저 느껴지는 글씨체.
바르간의 성격을 닮았다면 막 나갈 것 같지만 특이하게도 이런 예는 철저하게 지키는 게 그였다.
팔락.
이 종이를 바르간에게 받은 지 벌써 1개월 정도가 되었으나 볼 적마다 깊이 확인해야 했다. 특수한 마법이 걸린 것은 아닌지. 궤변이 섞인 것은 아닌지.
너무 쏘아봐서 눈이 시릴 정도로 여러 차례 확인했는데도. 재확인을 이어 갔다. 하지만.
‘없다.’
어떠한 꼼수도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준비해 두었다면 눈치를 챘어야 정상이다. 마력을 사용하면서까지 확인했는데 별다른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 글은 곧 흐트러짐 없는 바르간의 뜻이었다.
“…….”
바르간이 직접 작성했고.
마지막에는 가문의 문양까지 찍은 서약서.
라인카르벤은 그 문서를 읽는다.
「나,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은 슈겐하르츠 가주(家主) 승계 권한을 포기한다.」
적힌 내용은 단출하다면 단출했으나, 결코 쉬이 넘길 수 없는 문장.
길게 나열된 그 어떤 문단보다 강한 파괴력이 있었다.
***
학생회실을 나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가 있었다.
표독스러운 눈에 작은 체구를 가진 여인이다.
“요즘 자주 보는 듯하구나. 에리카.”
“…….”
에리카의 사나운 눈빛이 쏘이기만 한다.
평소였으면 아는 척하지 말라든지, 괜히 말 걸지 말라든지 하면서 입으로도 틱틱댔을 텐데. 눈으로만 말한다.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 학생회실에 들어가고 싶었던 건가. 내가 있어서 안 들어갔던 거고.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그녀를 지나치려고 하자 에리카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아직까지도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입이 조금 벌려져 확실하게 나를 잡곤 무언가를 전하려 하는 기색이다.
“뭣 때문에 그리 끙끙 앓는 것이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에리카와 마주했다.
에리카의 작은 입이 오물쪼물하며 꺼내기 싫은 무언가를 간신히 뱉어 내려고 한다.
작은 동물 중에서도 나름 포식자를 차지할 것 같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저번에 봤던 감정과 비슷한 색이 띠었다.
클래스전이 끝나고 보았던 것으로 수치심과 비슷한 경우였다.
음… 얘가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걸 보면 어지간한 일이라는 건데… 아.
알아챘다.
잘 생각해 보니 곧 있으면 에리카와의 약혼 기념일이다. 아직 일주일이 남았기에 미뤄 두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편지가 도착한 모양이다.
“미안한 말이다만, 용무가 없다면 잡지 말거라. 지금은 내가 좀 바빠서 말이다.”
“자, 잠깐만… 슈겐하르츠!”
하지만 모른 척했다.
왜냐고?
거창한 까닭은 없다. 그저 에리카가 어떤 행동 방식으로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인물은 강하게 키운다. 알리시아 때도 그랬지만 내 철칙은 바뀌지 않는다.
얼떨결에 나를 손으로 붙잡은 에리카는 더러운 것을 만진 사람처럼 황급히 손을 떼곤,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냈다.
잠시 풀어졌던 표정도 도로 차갑게 되었다.
예쁘게 세공된 푸른 보석 같은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기회를 줄게.”
관용을 베풀어 가엾은 이들을 구원하듯, 에리카는 시건방진 모습을 보였다.
팔짱을 낀 채 말이다.
“무슨 기회 말이냐.”
“네가 제안했던 점심이나 저녁 식사 약속 말이야.”
식사 제안이라 함은 에리카에게 달라붙은 스토커를 유인하기 위해서 던진 미끼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게 어쨌단 거냐.”
“그러니까. 다시 기회를 준다고.”
“에리카. 확실히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게, 그… 아, 잠깐 기다리라니까!”
나는 이번에도 말하지 않는다면 떠날 것이라 경고하며 마지막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냉정함을 유지하지 못한 에리카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한다.
입은 계속 벌어졌다 오므리기를 반복한다. 언뜻 보면 어미 새가 가져온 먹이를 받아먹기 위한 새끼 새의 부리 같기도 하다.
그러다 혼자서 뭔가를 깨달았는지 중얼거리더니 다시 내 앞으로 좁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래, 잘 생각해 보니 이렇게 머뭇거릴 일도 아니네. 나는 어머니께서 전하신 바를 다시 너에게 전할 뿐이니까.”
“그럼 말해 보거라.”
“태도하곤… 아무튼,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거리에 있는 에리카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붉은 기운을 남긴 채, 애써 당당하려 한다.
“다음 주, 이날. 저녁 시간 비워 놔. 나랑 갈 데가 있으니까.”
***
에리카가 어머니의 편지 내용을 무시하지 않았던 까닭은 부모님의 지시에 따르려는 그녀의 성격과 감시 때문이다.
당일 공연장에는 나와 에리카가 왔는지를 확인할 관계자가 배치되어 있을 터이다. 티켓까지 건네준 것을 보면 확실하다. 전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에리카와의 승강이를 벌인 뒤, 방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체내의 마나를 다스렸다.
에리카에게 한, 바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몇 달 동안을 인내해야 할 커다란 시련을 위해서.
‘우선, 마나 총량을 더욱 넓혀야 한다.’
바르간에 빙의되고부터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수행하는 체내 마나의 확장.
다른 건 빼먹을지라도 이건 빼먹어선 절대 안 된다. 기본적으로 마력 소비가 큰 바르간의 기술들은 본인의 절대적인 마나치가 중요한 사항이다.
저주도, 사역마도 단체로 사용하면 순식간에 마나를 다 빨아먹고 만다. 바르간에게 있어 마나 총량이란 필수 조건이다.
그 이후의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면 안정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을 늘려야 한다.
나는 바닥에 가부좌로 앉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굳이 가부좌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 이 자세로 마나를 활성화시키는 게 가장 편했다.
체내의 마나 총량을 확인한다.
예상한 대로의 진척 상황. 이대로라면 목표 시기에 늦지는 않겠으나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이어서, 눈을 감고 모든 신경을 마나로 돌린다.
마력은 피처럼 전신에 흐른다. 비록 가시적인 실체가 존재하지는 않으나 확실하게 그것은 존재하며 활동하고 있다.
따로 심장이 존재하지 않으니 억지로 펌프질을 하여 마력의 움직임을 가속한다. 손끝 세포까지 놓치는 곳 없이 골고루 퍼지도록.
이와 함께 체내에 담긴 핵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생명의 근원처럼 활력 있고 드넓게.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의…….
…그렇게 세 시간이 약간 넘도록 마나 총량 확장에 시간을 쏟은 뒤, 나는 눈을 떴다.
전신이 땀으로 끈적거린다.
몸에서는 열기까지 올라왔는데 창문을 미리 열어 두지 않았다면 이 방 안이 찜질방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고 몸 상태를 정돈했다. 마력을 다스린 훈련인지라 마법을 쓸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니, 준비해 둔 찬물과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차가웠던 수건은 열기에 금방 미지근해졌다.
‘졸업 요건으로 만들어야 하는 고유술식. 준비해야 하는 조건들이 만만치 않다.’
아카데미아 마법사 계열 졸업 요건 중에서는 각자 고유술식을 완성하는 사항이 있다. 시기상으로는 앞으로 4년이나 남은 일이니 아직은 깊게 고민하지 않는 이가 태반이나 나는 그렇지 못하다.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아카데미아에서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악역.
내가 소설에서 퇴장하게 되기까지 앞으로 3년.
기존의 바르간은 고유술식의 완성을 끝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으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절반 정도만 완성된 고유술식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악역 바르간의 최후.
그의 인생 마지막 장.
바르간은 미완성된 대규모 고유술식을 발동하고 상당수의 재학생은 물론, 교수들, 심지어는 용사들까지 혼란 속에서 제거했다.
그때 당시의 미쳐 버린 바르간은.
내가 아꼈던 바르간에서 크게 벗어나 버린 그는.
사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광란의 장에서 유린과 유희를 즐기며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일반적으로 그의 광기에 시선을 돌리기에 십상이나, 주목해야 할 점은 고유술식이다.
절반가량 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은 고유술식.
바르간은 그 불완전한 마법으로 모두를 압도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만약 그 술식이 완성되었더라면?
바르간이 게으름을 탈피하고 술식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갖춘 뒤, 인내의 시간을 거쳐 다듬는 데 성공했더라면?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할지 모르나 지금의 나에겐 사정이 다르다.’
어쩌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아니, 끝이 나기에 바르간의 고유술식은 완성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리암 일행의 뒷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위한 관문으로서. 적절한 난이도 조절을 위해 말이다.
‘내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성싶으냐.’
바르간의 죽음.
최후의 순간까지 완성되지 못했던 고유술식.
“반드시 완성해 보일 것이다.”
장담하지.
고유술식이 완성되고부터, 이 이야기의 끝맺음을 정하는 이는 오롯이.
내가 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