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57화(57/350)
콰직!
일천오백쉰다섯.
콰직!
일천오백쉰여섯.
콰직!
일천오백쉰일곱… 음?
저주 마법으로 칼리쿨레아의 신경 작용을 증폭시키며 철퇴를 휘두르고 있던 도중.
세상이 밝아지는 기분.
문뜩 지식이 통과되지 못하게 막고 있던 커다란 문이 개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가 청아해지며 탁 트이는 감각.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한층 확장되는 신비.
리암이었다면 상태창이 뜨면서 이런 문장이 떠올라왔을지 모르겠다.
?띠링!
저주 마법이 「해득(解得)」 계위에 도달했습니다!
미소가 지어졌다.
가까워졌다고 인식은 하고 있었다. 해서 이번 칼리쿨레아를 상대할 때 사역마를 사용하지 않고 저주 마법만을 활용했다. 끊임없이 마나를 소모해야 하는 녀석을 토벌하는 건 결국 도움이 된 것이다.
『……죽…여.』
비단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칼리쿨레아였던 수수께끼의 생명체가 잔뜩 일그러져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입을 벌리려 든다.
일천 번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정신을 잃고 깨기를 반복하며 악몽 같은 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철퇴를 내리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녀석과의 내기에서 횟수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일천 번까지는 전부 비명을 질러 댔으니 너그러운 나는 정확히 이천 번이 될 때까지 녀석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이었다.
과연, 귀족의 귀감이지 않은가.
그런 내 깊은 속사정을 알지도 못하는 칼리쿨레아는 죽여 달라는 등의 연약한 말을 씹어 댄다.
이런,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군.
“무승부로 하자꾸나. 나도 참 마음이 여려서 문제로다. 세계를 구할 영웅이라면 보다 강인한 심장을 가져야 하거늘. 이리도 사람이 좋아서야.”
칼리쿨레아는 입을 꿈틀거리나 별다른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리 붕어처럼 뻐끔거리지 않아도 네가 궁금한 건 다 알고 있으니 괜찮은데 말이지.
“내 마나 총량이 궁금하다고 했었지. 해득의 계위에 오른 참이겠다. 내 특별히 너에게는 진실을 알려 주마.”
네가 이해할지는 둘째 치고.
정제된 진실을.
나는 녀석의 머리채를 집어 들어 눈을 마주하게 했다. 이제부터 중요한 말을 하는데 상대방이 땅바닥만을 바라보며 넋 놓고 있어야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피범벅이 된 칼리쿨레아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은 지금의 상황에 사뭇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다.
“빙의 특전이다.”
그 왜, 리암 녀석이 소설에 빙의하면서 상태창이라는 사기적인 무기를 얻지 않았는가. 아둔한 녀석이 그 하나 가지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주연들의 앞에 섰었지.
그렇다면, 나도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얻게 되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이다.
상태창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무언가.
그래, 가령 마나 총량만은 초월(超越)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지. 아직 계위로서는 도달하지 못하나 이를 이룰 수 있는 무궁무진한 마나의 재능을 받게 되었다면.
지금의 이 광경도 이해되지 않겠는가.
“알겠느냐.”
내 물음에 칼리쿨레아의 비틀어진 입에서 샌 소리와 함께 단어가 기어 나온다. 너무 미약하여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어떻게든 두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죽…여…….』
진즉에 생기를 잃은 눈동자는 삶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지금의 순간으로 물꼬를 튼 건지 녀석은 계속해서 죽여 달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아무래도 완전히 망가진 듯하다.
“곤란하군. 이래서야 내 물음에 대한 답을 놓기가…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처음부터 노리고 진행한 고문이었지만, 괜히 한번 말해 봤다. 이곳은 무대 위. 적당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세에서의 버릇 같은 거지.
나는 칼리쿨레아에게 중복으로 걸었던 대부분의 저주를 해제했다. 지금부터 해야 하는 다른 저주는 높은 집중도와 숙련도를 요한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오롯이 듣기 위해서는 다른 부가적인 요소들에 대한 신경을 꺼 둘 필요가 있다.
칼리쿨레아의 품 안에 있던 작은 병을 흔들어 보였다. 안에는 뾰족한 침을 달고 있는 작은 벌레가 반응을 보인다. 흔들어서 화가 났는지 작은 몸뚱이를 병에 부딪혀 댄다.
나는 칼리쿨레아에게 물었다.
그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
“형상파에서 에리카를 노리는 이유가 뭐냐.”
보르그, 그 스토커 녀석에게 칼리쿨레아가 여신교의 벌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때부터 가설은 확정되었다.
원작의 뒷배경에서. 에리카는 보르그를 통해 관찰되고 있었다. 그녀의 마법이나 성향 따위가 보르그의 본위는 아니었으나 분석되고 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도 바르간과의 기념일 약속에서 바람을 맞은 에리카는 홀로 극장에 들어서고 준비하고 있던 칼리쿨레아에게 당해 무방비하게 되어, 여신교의 벌레를 주입받는다.
여신의 벌레, 신충(神蟲), 알티프의 씨앗.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것은 꽁지의 침을 통해 에리카의 몸속으로 이동했다. 그 벌레는 칼리쿨레아의 피를 빨아먹은 녀석이었다.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며 에리카가 저항할 수 없는 틈을 이용해 작업을 끝낸다.
작업은 변모의 과정을 말한다.
지성체 알티프는 번식을 할 수 없지만, 무지성체는 다르다. 그들은 촉수에 달린 침을 이용해서 사람의 몸에서 각종 세포와 DNA 변형을 일으키며 이걸 번식이라고 일컫는다.
번식을 당한 사람의 지성은 파괴되고 또 한 마리의 사제급 알티프가 되어 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종을 이어 나간다.
그런 알티프의 침을 이용해서 개량된 벌레, 그것이 신충.
…….
지독한 일이다.
벌레는 언제든 칼리쿨레아가 지시하면 에리카를 ‘알티프’로 변모시킬 준비를 마쳤다. 그는 이를 협박의 구실로 삼고 에리카를 뒤흔든다.
아니, 뒤흔들었을 것이다.
에리카는 악역영애. 비극적인 죽음이 당연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추측했다.
그녀의 본 성격을 알고 있는 나, 바르간이.
그녀가 본격적으로 악역을 자청하며 아카데미아에서 이상행동을 벌이기 시작한 시기를 짐작하여.
지금의 이야기에 도달했다.
내가 전에 열 번은 에리카에게 점심 식사 제안을 해야 할 거라 추측했던 것이 이런 까닭이었다. 당시엔 뒷배경에 칼리쿨레아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에리카… 그녀…는….』
무의식에 빠진 칼리쿨레아가 말을 잇는다.
형상파가 그녀를 노리는 이유?
그야 짐작은 가며 굳이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단지 성서에 적힌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결국은 성서에 명시된 대로 움직이는 인형이니 어떤 이유를 가졌든지 그녀를 노렸을 것이다. 이유야 부가적인 사항에 불과하다.
왜?
왜냐고?
어째서냐고?
『…여신님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다. 칼리쿨레아.
네 녀석은 틀렸다. 형상파가, 여신의 외관을 표현하려는 그들이, 에리카에게 접근한 본질적인 까닭은 그게 아니다.
형상파가 조각한 여신의 모습만 하더라도 수백 개.
그중 에리카와 닮은 형상은 단 하나.
“내가 말해 주마. 네놈들이 에리카에게 접근했던 연유는….”
?소설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단지 그뿐이다.
콰직??!
나는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으깨 버렸다. 칼리쿨레아가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재생도 되지 않는다.
완전한 죽음을, 극에서의 퇴장을 맞이한다.
“…….”
머리를 으깰 때 그만 피가 튀어 버렸다.
손수건을 꺼내서 적당히 얼굴을 닦는다.
이럴 때 클린 마법 같은 편리한 마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쉽게도 이 세계에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그 어떤 멋스러운 이유를 붙여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이 소설 속의 모든 인물은 정해진 결말과 전개를 따르기 위해 존재하고 만들어졌다.
보르그가 에리카에게 연심을 품고 스토킹한 것도.
칼리쿨레아가 성서에 적힌 대로 에리카를 맞이한 것도.
우연의 연속으로 에리카가 여신교에 입교한 것도.
그리고, 바르간의 죽음조차도.
모든 요소는 소설의 완결이라는 종착점을 위한 선로이다.
?꽈악.
철퇴를 쥔 손의 악력이 강해졌다.
입으로 소리를 내지도.
과장된 몸짓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전한다.
혹시라도 놓치지 않도록 확실하게 생각한다.
자, 보아라.
여신교에 편입돼야 할 에리카는 그 개연성을 잃었다.
그녀가 이날 이후로 갑자기 여신을 추종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으며, 기존의 역사를 따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변혁이 필요하겠지.
틀어진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점을 잃어야만 목표에 다다를 수 있으니, 좋을 대로 휘저어 주겠다.
보아라.
똑똑히 지켜보거라.
내가 바꿀 이후의 전개를!
***
오후 11시 05분.
바르간과 에리카가 있던 극장에 아카데미아의 교수들이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이사를 맞이한 건 바르간이었다.
그는 노란 조명의 빛 아래에서 피범벅이 된 무대에 서 있었다. 그 가운데 잔뜩 부서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주교급 1체가 있었다.
교수들은 눈을 회동그래 뜨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들었다. 훼손이 심하게 됐지만, 사람의 형상을 한 알티프임이 틀림없다. 최소 주교급이라는 사실.
이럴 수가. 아카데미아 1학년이 주교를 죽였다.
선두에 있던 루이사는 빠르게 바르간과 객석에서 잠들어 있는 에리카의 상태를 눈으로 살폈다. 별다른 피해는 보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쿵쿵! 거리며 분노가 섞인 발걸음으로 나섰다. 바르간을 앞에 두고는 잔뜩 찌푸린 눈매를 보인다.
“내가 어떤 말을 할 것 같나, 수석.”
“주교급을 잡았으니 마땅한 찬사를 하리라 봅?.”
『개소리 지껄이지 마????!!』
그녀의 노기가 마력과 함께 극장 안에 쩌렁쩌렁 울려 댔다. 함께 온 다른 교수들도 자못 놀라, 얼어 있다.
바르간은 무심한 눈동자를 일관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루이사는 바르간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이렇게 되리란 걸 분명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늦으면 어떻게 조처되는지를 물었던 거고, 찾기 쉽게 마나의 기척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주교급 이상을 보면 도망치라고 했던 게 우스웠나? 그래서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냐??!”
“상처 하나 없이 잡았으니 된 거 아닙니까.”
“주교는??! 단순히 무력만을 주의해야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
바르간은 그녀가 어떤 의미로 지금 이렇게 성을 내고 있는지 알았다.
주교 이상 존재의 죽음은 곧바로 모든 알티프에게 전해진다. 또한 살해자는 그들에게만 보이는 흔적이 남는다.
그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쌓이면 쌓일수록 진한 향수처럼 알티프의 주목을 모은다.
바르간은 그 첫 번째 향기를 묻혔다.
“이 녀석이 속한 집단의 상위 개체가 너를 노리기 시작할 거다. 대주교, 추기경! 그런 놈들이 네 앞에 나타나더라도 지금과 같이 무사할 거 같으냐?!”
루이사는 바르간의 멱살을 잡으며 흔들었다.
그녀는 바르간을 걱정하고 있었다. 용사 중에서도 신입들이 특히나 죽어 나가는 이유가 이 옅은 잔향이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강해지기 전에 죽인다.
성장하기 전에 자른다.
지성체의 알티프는 교활하고 똑똑한 놈들이다. 견고한 방어를 받지 않으면 그 옅은 향을 따라 짐승처럼 달려든다.
“아카데미아라는 방파제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용사를 육성하는 기관을 알티프가 기습하지 않는 이유는 방어가 극도로 견고하기 때문이다.
루이사는 멱살을 더욱더 강하게 쥐며 반박한다.
“앞으로 네가 가는 그 어떤 곳도 안전하지 못하다. 아카데미아에서 평생을 썩을 것도 아니면서, X도 생각지도 않는 말을 씨불이지 마.”
“용사가 적을 두려워해서 어쩌겠습니까. 오히려 두 손 벌리고 환영할 일입니다.”
“이놈이 그래도…!”
“아, 잠깐잠깐. 루이사.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우선 다친 곳이 없는지 정밀 검사부터 해야 할 거 아니야! 뭐 해요 도려… 아니, 바르간! 이 근육몬은 내가 붙잡아 둘 테니까. 빨리 저기로 가.”
중간에 끼어든 파울라가 루이사의 양팔을 붙잡는다. 루이사의 괴력을 감당하기 힘들어 허둥대지만, 마력까지 끌어 내며 막는다.
루이사에게 벗어난 바르간은 그대로 물러서려 한다.
뒤처리는 이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정말 조심하긴 해야 해.”
파울라가 바르간에게 우려 섞인 말을 보냈다. 조명을 담은 눈동자가 흔들린다.
주교 하나는 아카데미아의 어떤 교수가 있어도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정말….
“제2 위험군… 대주교부터는 우리도 감당할 수 없으니까.”
“…명심하죠.”
바르간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잠들어 있는 에리카를 번쩍 들고는 자리에서 벗어난다.
그가 파울라에게 예의를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울라는 그가 나간 자리를 바라본다. 그녀는 불안함을 느꼈다. 바르간이, 그 찬란한 슈겐하르츠의 삼남인 그가.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