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65)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65화(65/350)
“겨우 끝났다… 이제 돌아갈 수 있어….”
“고생 많으셨어요, 에밀리 씨. 과제 하느라 힘드셨죠?”
“아니… 과제는 둘째 치고….”
“네?”
“아, 아니야… 아무것도.”
나와 에리카를 흘겨보던 에밀리. 다시 알리시아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인다. 힘들다는 걸 과시하듯,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왜 저러는 데 저거.
“슈겐하르츠.”
불시 점검이 끝나고, 아무런 말도 없이 학생회실로 돌아갈 줄 알았던 에리카는 나를 불렀다. 그녀답지 않게 다소 기세가 빠진 눈이다. 나를 볼 때는 항상 날카롭게 눈매를 세우는데.
“이번 일로, 포트레트가에서 너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자 해.”
그녀는 칼리쿨레아를 잡았던 그날의 일을 말하고 있다.
사실, 이미 그녀의 집안에서 상당한 액수의 위로금을 받았는데, 에리카가 직접 꺼낸 걸 보면 성의가 부족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에리카를 구한 감사함을 표하려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충분할 정도로 받았다. 포트레트의 가세를 기울일 마음은 없어.”
“…의외네.”
에리카가 눈을 반쯤 감은 채로 팔짱을 꼈다.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이걸 기회로 좋다고 그녀의 집안의 재산을 뜯어내리라 본 듯하다.
“설마 비공정에서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거냐?”
포트레트가를 협박해서 보상금을 뜯어낼 거라는 그걸? 심지어 너는 이렇게 살아 있는데?
“…그렇지는 않지만, 비슷한 정도로는 할 줄 알았어.”
“그거참, 약혼자에 대한 신뢰가 두텁구나.”
완전히 반대의 의미이지만.
큼. 에리카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여름방학이 되고 포트레트가로 한번 와야 할 거 같아. 부모님께서 너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어 하셔. …그거 때문에 매일 어머니의 편지 세례를 받느라 피곤할 지경이야.”
“외출 금지라 더욱 그렇겠지.”
아카데미아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제 시즌 이외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전적으로 금지한다.
따라서, 포트레트가의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찾아와 사과하고 싶다 하더라도 그녀와 내가 1학기 동안 외출 금지가 된 이상, 대면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에리카도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가문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여름방학… 그래, 오랜만에 가도록 하마. 당연히 멘토링이 끝난 이후로 날을 잡을 생각이겠지?”
“우리가 교회의 일정을 수정할 순 없으니까.”
헤일리온의 팀과 함께 사건을 마치고 돌아오면 포트레트가에 들를 시간이 마련된다. 거의 방학이 끝나 갈 무렵이겠지만, 이렇게 되면 가문의 입장을 고려해서라도 들러야 한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대화를 끝낸 에리카는 작은 몸을 휙 돌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다른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녀의 구둣발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걸을 때마다 긴 머리칼이 살랑거린다.
“…….”
음.
포트레트 본가에 방문이라.
아카데미아에 입학하고 나서 바르간이 에리카의 저택에 발을 들인 적은 한 차례도 없었는데 말이지.
착착 바뀌고 있구나.
“…….”
“뭘 그렇게 보고 있느냐. 에밀리.”
“아니, 뭐… 생각보다 사랑꾼이구나 싶어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에밀리를 내려다보고 있자, 그녀가 반응을 보인다. ‘아오!’라는 감탄사로 물꼬를 튼다.
“다른 사람한테도 좀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 보지 그래.”
“이유가 없다.”
“…그럴 가치가 없다는 말이야?”
“정확히 알고 있군.”
“아, 이게 진짜…!!”
에밀리는 오늘도 발끈한다.
***
짙은 밤.
올빼미가 구슬프게 울어 대고.
스산한 밤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을 때.
금발의 여인은 눈에 띄는 자기 머리카락을 감춘 채, 걸음을 이어 가고 있다.
오셀 빅토리아 프란체스카.
현재 2학년이자, 과거 학생회 임원이었고.
2학년 아카데미아 순위에서 부동의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인. 현 2학년의 순위는 3위부터 급격하게 차이가 벌어져 실질적으로는 1위만의 그녀의 유일한 대적자였다.
사사삭.
그녀는 익숙하게 어둠을 관통했다. 1학년 때부터 해서 벌써 몇 개월 동안 지나 온 길이다.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고 한들 방해할 요소가 없다.
주변에는 작은 빛도, 조금의 인기척도 없이 고요하다.
?철컥.
어느 철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안에 담긴 마법식이 서로 교류하며 잠금을 해제한다.
본래라면 재학생인 그녀가 들어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관계자이거나, 교수는 되어야지 출입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조력자’를 통해서 열쇠를 얻었고,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들어올 수 있었다.
끼이익?.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녹슨 철의 소리.
프란체스카는 그 문을 닫으며 후드를 벗었다.
그녀의 생기 있는 금발이 길게 흘러내렸다.
그녀의 머리카락 색을 닮은 영롱한 빛깔의 눈동자는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 눈앞의 거대한 역사(歷史)의 산물에 매료되듯 넋을 잃는다.
「고대 드래곤의 뼈」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
이 땅에 살아 숨 쉬며, 만물의 정상으로 우뚝 군림하여 세상을 아울렀을 역사의 증거이자, 그 자체.
오랜 세월 풍파를 겪고도 그의 기골은 여전히 웅대하고 당당하게 위세를 지니고 있다.
몇 번, 몇십 번을 봤지만, 볼 때마다 경외심이 확신과 함께 등골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감쌌다. 이거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있으면 가능하다.
프란체스카는 곧바로 준비해 왔던 마력수와 서적들을 꺼낸다. 경외감에 젖어 한참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녀는 달리 해야 할 일이 있다.
양피지도 여러 장 꺼내어 마력수를 찍은 깃펜을 그어 댄다. 기초적인 작업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마련되어 있다. 슥슥, 멈춤 없이 작업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야.”
바쁘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깊게 그늘진 그녀의 눈은 완성되지 않은 술식과 드래곤의 뼈를 왕복한다.
프란체스카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키의 몇십 배는 되는 골격을 어루만졌다. 손의 이물질에 의한 손상이 내키지 않았기에 얇은 장갑을 낀 채로.
마나를 투여하며 정보를 살핀다.
복잡하고 다양한 기하학적인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중간중간 파괴된 식들도 있었으며, 변형되어 버린 형태들도 존재했다.
뼈를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가 해체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방대한 마나를 품고 있는 드래곤의 뼈였기에 이렇게 기존의 식을 유지하고 있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그녀가 궁리하는 부분은 뼈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과는 다소 개념이 달랐다.
‘…역시 그 남자의 도움이 필요해.’
프란체스카는 탐구를 이어 가며 어떤 이를 떠올렸다.
몇 주 전, 2학년인 그녀는 아카데미아에서 이번 신입생들의 클래스전을 지켜보았다. 크게 흥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 번 정도는 신입생들의 전반적인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를 발견한다.
단신의 능력으로 반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킨 그.
쉰 마리가 넘는 마물에 단체로 저주를 걸어, 본래 본인의 사역마처럼 자유자재로 통솔했던 그 저주 마법.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마나 총량.
한눈에 보는 순간 알았다. 저 남자는 그녀가 하려는 일에 필요한 존재다.
그녀가 하려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곤란해질 확률이 높아지지만, 프란체스카가 느끼기에 바르간이라는 남자는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인의를 묵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럴지 모른다는 감일 뿐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황.
그렇기에 프란체스카는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그가 아르볼 프루탈이라는 연구회의 장을 맡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연구회에 들어가 그와 교류를 하다 보면 적절한 거래를 할 기회가 있을 터이다.
‘이 저주의 각인으로는 안 된다. 다른 형식, 다른 구조의 마법이 필요해.’
다시금 그가 보였던 흑마법, 그중에서도 저주 마법을 떠올린다. 바르간은 사역마를 다루는 데도 능통하다. 그의 도움을 얻게 된다면, 지금 막히고 있는 술식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직은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단계로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거리를 둔 채 지켜보고 있다.
예정대로의 인물인 건 맞는 듯하지만, 아직 확신은 없다. 조금 더 관찰을 이어 나가고 아니다 싶으면 조용히 빠져나가자.
팔락?.
그녀는 다시 눈앞에 있는 식에 집중한다.
누군가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 내려간 책을 참고하며. 자신의 술식을 개선해 나간다.
***
“…이거 곤란하군. 지고지순해야 할 성녀가. 자꾸 이렇듯, 야심한 밤에. 그것도 외간 남자를 부른다는 사실을 누가 알기라도 한다면, 난감하게 될 일이로다.”
“…오셨군요.”
감은 눈꺼풀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디피엘리아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휠체어의 방향을 튼다.
“그래, 네 바람대로 와 주었다. 나를 이리 부른 걸 보면, 에리카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얻었다고 본 모양이구나?”
“…….”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지상을 밝히지 않아, 식물들이 다른 방해 없이 곤히 잠을 청하고 있는 식물관.
그 한편에서 바르간과 디피엘리아는 만났다.
“저번에는 다른 분이 이곳에 왔었죠.”
“아, 그래. 내가 외출 중이었으니 말이다.”
‘녀석이 건네준 물건은 잘 받았나?’ 바르간은 너스레 대화의 화두를 던졌다.
그의 짐작대로 디피엘리아가 자신을 부른 이유는 이와 관련되어 있었다.
“네, 잘 받았어요. 아름다운 오르골이더군요. 안에 담긴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자칫 잘못하면 현혹될 뻔했을 정도로요.”
“내 선물이 마음에 든 거 같아 안심이로구나.”
바르간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그가 여유를 부리면 부릴수록 디피엘리아의 인상은 굳어져 갔다.
“비유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진중해진다.
순박한 외관과 어울리지 않는 날이 선 목소리다.
“저에게 그런 거짓 환상을 보인 이유가 무엇이죠?”
디피엘리아가 묻는다.
오르골에 담긴 당신의 환상을 전부 살펴보았다. 당신은 지금 시꺼먼 모략으로 자신을 꾀어내려 하고 있다. 그 의중은 무엇인가.
바르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나는 거짓을 담지 않았다. 본인의 눈이 멀었다고 하여 황금을 돌덩이로, 돌덩이를 황금이라 주장하는 꼴이 우습구나. 온전한 눈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으며 경멸하기에 마땅한 일이다.”
“위그드라실 님의 신탁을 돌덩이로 치부하는 건가요?”
“실제로 그러하니까.”
“…!”
교회를 부정하는 바르간의 언행에 디피엘리아는 일말의 분노를 띠었다.
“교회를 수호하고, 인류를 수호해야 할 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 신앙심이 없는 것이로군요! 설마 당신은… 겨우 사심을 채우고자 아카데미아에 온 것인가요?”
“가소롭지도 않은 발언이구나, 성녀.”
바르간은 디피엘리아의 기세를 꺾었다.
천천히 그녀의 주위를 돌며 말을 잇는다. 그가 걸을 때마다 흙이나 작은 풀잎 따위가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모성애, 가족애, 애국심, 인류애. 결국 이런 찬란하고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단어들도 그 기원을 따지자면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다.”
그는 디피엘리아가 입을 열 틈을 주지 않았다.
“사심을 채우고자 아카데미아에 온 것이냐고? 당연한 말을! 네가 얼마나 높고 청아한 신념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관념의 조상격인 감정을 ‘겨우’ 사심이라 비하하다니.”
탁.
걸음을 멈춘 바르간.
그의 손이 디피엘리아의 어깨 위에 얹어졌고.
동시에 그를 바라보던 작은 새는 사라졌다.
디피엘리아의 시야가 암전된다.
“그렇지만, 뭐 좋다…. 우리의 눈은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고 다른 감각을 느끼는 듯하니. 이런 언쟁은 무의미한 일이지.”
아마 서로를 평생 이해하지 못할 터이니.
“…….”
“밤이 길다고 한들, 영원하지 않다. 이만 본론으로 들어가자. 성녀, 나에게 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
자, 빨리 오르골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라. 디피엘리아.
“…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성녀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방황하기 쉬운 그곳에서 작은 성냥 한 개비에 불을 지핀다.
“저는 당신이 보여 준, 또 하나의 가능성을 믿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