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6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69화(69/350)
20일간의 짧은 폐관 수련이 시작되었다.
담당 교수인 루이사에게도 미리 통보해 두었으니 방해꾼이 찾아올 염려도 없다.
아카데미아에서 이렇듯 독방에서 단련을 이어 가느라 수업을 듣지 않는 케이스도 있었는데, 나처럼 통보하고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아카데미아의 규정을 지나치게 넘지 않으면 눈감아 주는 그녀였기에, 이번 나의 결정은 제지당하지 않았다.
다만,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관계자를 통해서 상태를 확인받으라고 했는데, 이는 협의를 통해 알리시아로 대체했다.
폐관 수련 동안은 알리시아의 검사도 진행하지 않고, 외부와의 접촉을 대부분 차단한다.
하루에 한 번, 알리시아가 식사를 들고 오며 나의 상태를 살피는 게 전부다. 알리시아가 들어오더라도 말을 걸지 않도록 언질을 줘 두었으니 살며시 놓고 가는 게 전부.
당분간은 누군가와 대화하며 낭비할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수련하기에 최적의 환경.
앞으로 많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다.
“그럼… 다시 구슬 탑을 만들어야겠군.”
마나 총량을 늘리는 단련은 여러 선택지가 있으나, 구슬 탑이 현 상태에서 마나 총량을 가장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법이었기에 다시 마나를 모으고, 구체로 형태화하며 크기를 줄인다.
최근 달성한 수준은 지름 1m의 마나를 5cm로 줄여 7층까지 쌓는 게 가능했으니 우선 층을 더 높여야 한다.
최소한 10층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효율적이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더욱 특별한 방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
앞을 바라본다.
내 눈앞에 바르간을 빼다 박은 듯한 어린 남자아이가 하나 있다.
그건 10세의 바르간.
정확히 말해, 바르간이 10살의 나이에 가지고 있던 마력이다.
헤일리온의 과제를 받기 전, 당시 가지고 있던 마나를 모두 담아내도록 만든 분신. 그게 이 리틀 바르간이다.
바르간의 사역마 중 오로지 마나를 저장하기 위한, 마나 공급용 사역마.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 투명한 이 아이는 계약자밖에 인지하지 못한다. 가끔 정령이나 특이 개체는 인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론 그렇다.
원작에서는 안 그래도 마나가 많은 바르간이 이 사역마를 통해 추가 공급을 받으니 방대한 술식의 활용이 더욱 용이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아이를 마나 공급용 배터리가 아니라, 단련의 진척을 비교하며, 치열하게 경쟁할 상대로 정했다.
다른 사역마처럼 상호작용이 원활하지도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공급해 준 마나만을 저장하는 아이이지만, 그런 만큼 ‘마나’와 관련된 면에서는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지이잉?.
10세의 바르간의 손에 푸른빛이 모이며 세기를 더한다. 농도가 높아지면서 마력 입자 간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구체는 금방 작은 구슬이 되어 손에서 잡혔다.
이 사역마, ‘공급이’를 통해서 다른 마법을 발현시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순수한 마나를 다루게 할 순 있다.
지금 공급이가 활성화하고 있는 마나는 10세의 바르간의 경지.
최대치는 2주 전의 내 마력이며 그 세기의 조절이 가능하다. 게다가 공급이는 유물로 봉인되어 있지 않은 상황.
즉, 힘이 제한된 나는 지금까지 바르간이 성장해 온 마나의 기록을 상대하며 단련할 수 있다.
만드는 탑의 높이나 구슬의 지름으로 발전을 확인을 할 수 있으나, 더욱더 직관적이며 효과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이 없으니 더 좋구나.”
10세의 바르간이 묵묵히 마력탑을 쌓아 가기 시작하자 나도 행동으로 옮겼다. 공급이는 마나 이외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숙식이 필요 없어 이보다 나은 경쟁 상대가 없다.
‘이 불쾌한 감각도 익숙해졌군.’
마력을 제한하는 유물에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 유쾌하지 않은 감각과 제한에도 자연스럽게 구슬을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당연히, 더욱 높은 완성도를 인지하고 경험해 봤기에 만족스럽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경지를 알기에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게임으로 따지면, 아무것도 없던 현실에서 경험치 바와 레벨이 보이는 느낌. 성취감을 받아들인다.
또다시 구슬을 만든다.
그리고 쌓아 올린다.
마력 회로가 달궈지며 체력과 정신력이 닳아 갈수록 성취는 높아져 간다.
20일이다.
고작 20일.
현실적으로 계산했을 때, 단련이 끝났을 때 나를 상대하고 있을 공급이의 나이는 대략 13.
유물로 제한하는 마력이 워낙 커, 사실은 13살의 바르간과 제대로 비교하지 못하고 그 전에 끝날 확률도 낮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비관적인 말이 아니라 긍정적인 뜻이다.
어린 시절 바르간의 3년. 남은 20일 안에 이 시간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 비록 마나에만 관련된 성취라고 해도 기적과 같은 일.
그러기에 하루도, 1시간도, 1분조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용서할 수 없다.
잠을 잔다는 건 사치다.
모든 시간을 투자하자.
…….
그렇게
차곡차곡.
공든 탑이 쌓여 간다.
***
멀어져 있는 정신의 저편에서 어떤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계속 선명해지며 결국에는 다른 여인을 깨운다.
“알리시아… 알리시아!”
“…네, 네?!”
화들짝 놀라 눈을 깜빡이는 알리시아. 그녀를 깨운 건 동료인 에밀리였다. 알리시아의 눈앞에서 손 흔들기를 반복하던 에밀리는 그녀가 대답하자 동작을 멈췄다.
“이제야 겨우 대답했네. 되게 오랫동안 멍 때리고 있었던 거 알아?”
“아… 제가 그랬나요?”
“응응,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장난 아니었어. 맞지 에밀리?”
둘의 대화에 프리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여우 귀가 쫑긋거리며 반응한다.
에밀리는 그녀의 말을 긍정하며 알리시아를 바라봤다. 걱정하는 사람의 눈이다.
“괜찮아? 상태가 안 좋으면 오늘은 들어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어?”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에밀리 씨. 하지만 괜찮아요.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잠깐 식곤증이 왔나 봐요.”
알리시아는 옅은 웃음을 보이며 자신을 걱정하는 에밀리의 염려를 덜어주려 했다.
그런 알리시아를 보던 프리다는 턱 끝을 잡고 잠시 생각했다. 성실하고 착실한 알리시아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하다가 정신을 놓았다. 사유가 있을 터. 지금 이곳에서 달라진 게 뭐가 있지?
?바르간 님의 부재.
‘아하. 그렇구나.’
프리다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왜, 왜 그러세요. 프리다 씨?”
“아니야, 아무것도. 아직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서, 강력한 경쟁자인 알리시아의 등을 밀어주는 일은 할 수 없지.”
바르간 님의 여자가 되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이득이지만, 세 번째 여자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 여자보다는 본처가 나은 것도 사실.
프리다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기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차례의 대화가 끝나 갈 무렵 연구실의 문이 열린다.
“아, 에리카 님.”
알리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고.
‘와… 얘가 여기서 들어오네.’
프리다는 속으로 감탄했다.
학생회의 불시점검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학생회의 사람이 찾아와 활동을 지켜보거나 보고서를 살핀다.
오늘 아르볼 프루탈의 담당은 에리카였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확인한 에리카는 주변을 살피며 누군가를 찾는다.
“슈겐하르츠는?”
“도련님께서는 오늘부터 20일간 폐관 수련에 들어가셔서 당분간 밖으로 나오지 않으실 예정이에요. …못 들으신 건가요?”
“폐관 수련?”
알리시아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에리카는 폐관 수련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는 모양이다.
잠시 고개를 돌려 얼굴의 근육을 가볍게 푼 프리다는 세상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네요. 약혼녀이신 에리카 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니. 저희는 미리 들어 알고 있었거든요.”
에리카의 날카로운 눈이 프리다와 마주한다.
“…너, 이름은?”
분명히 똘망진 눈으로 악의가 없다는 걸 보이는 프리다였지만, 디피엘리아나 알리시아와는 다르다. 에리카는 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저는 프리다라고 해요. 바르간 님의 연구회인 아르볼 프루탈 간부 중 한 명이죠.”
“아, 그래…? 네가 프리다였구나.”
프리다의 이름을 들은 에리카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진다. 클래스전에서 디피엘리아의 반을 배반하고 바르간에게 붙었던 그녀.
에리카의 입장에서 프리다는, 클래스전이 패배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고 디피엘리아와의 사이를 서먹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클래스전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따로 프리다의 정체를 물색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소문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니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었다.
다만,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당분간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에리카를 마주하다, 휙?하고 고개를 돌린 프리다는 두 손으로 찻잔을 잡으며 차를 마셨다. 복슬복슬한 꼬리가 살짝 살랑인다.
“…….”
에리카는 평소보다 거칠게 아르볼 프루탈의 보고서를 집어 들더니 적당히 거리가 벌어진 자리에 앉았다.
한편, 저번에 데인 경험이 있는 에밀리는 큰 소음이 나지 않을 정도로, 주섬주섬 교과서를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은 망설임 없이 이어진다.
“이, 이제야 생각났는데. 리암과 약속이 있었다는 걸 깜박했지 뭐야? 하, 하하. 나… 먼저 좀 갈게?”
에밀리는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려 들었고.
“그러셨군요? 늦진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에밀리 씨.”
“으, 응… 내일 보자 알리시아.”
순진한 알리시아의 반응은 그녀가 자연스럽게 갈 수 있도록 졸지에 돕는 꼴이 되었다. 에밀리는 모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에밀리의 빈자리를 채우듯,
한동안의 정적 속에서 세 사람은 모두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서로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니 침묵이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첫 마디가 오가기 시작한 건 1시간 정도가 지나서였다. 아르볼 프루탈의 모든 기록을 살핀 에리카가 알리시아의 발전 속도를 보고 다시금 신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슈겐하르츠가 데려왔다고 했지?”
교과서를 정독하던 알리시아가 토끼 같은 눈으로 에리카를 보게 됐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에리카는 설명을 덧붙인다.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너를 슈겐하르츠가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끌고 온 거라며.”
“그렇게 험하게 하시진… 으음. 시골에 있던 저를 데리고 오신 건 맞아요.”
“처음부터 너의 재능을 알고 데려온 거야? 아니면, 거기까지는 모르나?”
“아, 그게….”
에리카는 그녀의 표정에서 다소 꺼려진다는 기색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슈겐하르츠의 전속 시종이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울 만하다.
“말하기 그러면 안 해도 돼.”
확고한 목적과 이득 없이 그녀를 곤란한 입장으로 몰아넣는 건 맞지 않는다. 정말 알고 싶다면 나중에 직접 물어보면 되는 일이다.
“아뇨, 꺼려지는 게 아니라 저도 잘 몰라서 말씀드릴 수 없어서 곤란했던 거예요. 바르간 도련님께서 어떻게 저를 알고 직접 행차하셨는지는 들은 바가 없거든요.”
“그래?”
“네… 하지만 제가 겪었던 일들이라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고, 특히나 에리카 님이라면 알려 드려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에리카는 가만히 알리시아의 이어지는 말을 듣기로 했다.
알리시아는 간단하게 자신이 아카데미아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돌연 찾아와 그녀를 사들이고, 마차에서 자신도 모르던 재능이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으며, 여러 훈련을 통해 이곳에 올 수 있었다고.
프리다는 책을 읽는 척하면서 유심히 그녀의 대화를 엿들었고, 에리카는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생각이 많아지는지 눈매를 좁혔다.
“흐음….”
이 정도의 재능을 가진 천재다. 마법이나 무술에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이나 교회의 사람이라면, 그녀를 살피는 것으로 재능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는 점은, 알리시아가 별도로 교회를 다닌 게 아니었고, 용사 비슷한 어떤 사람과도 접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정보가 소리 소문도 없이 멀리 떨어져 있던 바르간의 귀에만 들어가는 게 가능한 일일까.
에리카가 고민에 잠겨 있자 알리시아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 예전에 한 번 여쭈어본 적이 있어요. 저도 에리카 님과 똑같이 궁금증을 품었었고 도련님께 양해를 구해서라도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다 아는 방법이 있다고만 이야기하시고 자세한 과정은 이야기해 주지 않으셨어요.”
슈겐하르츠는 그 과정을 숨기고 있는 건가?
작은 의심의 꽃봉오리가 올라온다.
“그냥 예뻐서 그런 거 아니야?”
불현듯 프리다가 입을 열었다. 보고 있던 서적을 접고서는 알리시아를 발끝부터 훑으면서 올라오더니 마지막에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본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마을에 소문이 나지 않았던 게 이상한 일이지. 분명 들러붙는 남자들도 엄청 많았을 거고. 옆 마을, 옆옆 마을 너머까지 퍼져 나갔을 거라고 봐. 알리시아의 재능이 공표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이쪽이 현실성 있다고 생각하는데.”
프리다는 에리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지 않나요?”
“…….”
여전히 어딘가 불쾌함이 감도는 눈이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도 나름의 타당성은 갖춘 듯이 보였다. 에리카가 생각하지 못한 방면의 사고이다.
“그, 그런…! 아니에요! 저는 그냥 흔한?.”
“?그만둬 알리시아. 그 이상 말하면 기만이니까.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그런 외모를 가지고도 지금까지 아무런 범죄와 연루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의 수준이야 넌.”
거친 할렘가에서 남들을 피하고 속이며 살아온 그녀였기에, 외모가 반반한 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프리다는 실제로 그런 종류의 위기 상황을 여러 차례 맞이한 적이 있었고, 강인한 정신력과 생존력으로 무장한 채 극복해 왔다.
“바르간 님은 여자보다는 수련이나 권력에 관심이 있는 걸로 보이지만 그래도 남자잖아요. 예쁜 여자에게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바르간 님의 외모, 권력, 재산, 능력이라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인에 대한 소문을 종합해서 방 안을 가득 채워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참고로, 자신이라면 그랬을 거라는 언급도 함께.
“꽤 맹랑한 애구나 너.”
“아! 불쾌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
프리다는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숙인다. 입으로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말을 꺼냈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눈꼬리와 함께 입꼬리가 아래로 처지게 만들어 죄를 지은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하.”
에리카는 짧게 헛웃음을 뱉었고. 탁? 하고 보고서를 덮었다.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알리시아, 이야기해 줘서 고마웠어.”
“아, 아아… 아니요. 별말씀을요.”
알리시아도 둘의 알 수 없는 신경전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굳은 몸동작으로 그녀가 건네는 보고서를 받았다.
보고서를 건넨 에리카는 몸을 돌리면서 프리다를 흘기는 눈으로 봤고, 프리다는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처럼 시선을 돌렸다.
드르륵?.
에리카의 모습이 사라지고 알리시아는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프, 프리다 씨! 대체 왜 그러셨던 거예요!”
“그냥 뭐… 첩도 되지 못하고 있는 여자의 질투 같은 거지. 그보다, 나 막상 별말은 안 했어. 거짓말도 하지 않았고.”
“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의 분위기라는 게…!”
알리시아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던 프리다는 그만 풉? 웃어 보였다.
“알리시아. 난 네가 참 좋아.”
대화의 맥락과 맞지 않게, 프리다는 알리시아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외모, 성격, 말투 모든 게 이상적이고 완벽하다고 말이다.
“어느 정도로 좋아하냐면, 남한테 조언을 해 주지 않는 내가 너에게만은 특별히 해 주고 싶을 정도로.”
툭툭. 가볍게 알리시아의 어깨를 건든다.
그녀의 장난기와 진중함이 섞인 목소리가 울린다.
“너무 숨기지 마.”
“예…?”
“그러다 정말로 놓친다.”
프리다 또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구실을 나갔다.
알리시아는 혼자서 넓은 연구실의 정적을 가만히 듣게 되었다.
“…….”
프리다가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천천히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