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7화(7/350)
“아직 살짝 부족하군.”
몸에 들끓던 마나의 기운을 가라앉힌다. 밤공기를 머금어 찬 바람이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여전히 가부좌를 튼 자세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내뿜어진 숨은 하얀 연기가 되어 피어난다.
달과 별이 밝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절경의 밤하늘. 하늘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별들이 환히 빛난다. 원래의 세계에서도 원래는 저렇게 많은 별이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겠지. 도시의 불빛이 저토록 밝은 빛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도련님, 아직도 안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체내의 마력으로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와중, 고된 수련을 마친 알리시아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얀 머리카락에 온전히 털어 내지 못한 수분감이 더해져 반짝인다.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얼어 버릴 것이다.”
“…아, 맞습니다. 방금 씻었던 물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금방 말리도록 하겠습니다.”
알리시아는 마력을 활성화해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의 사이사이를 지나가게 하였다. 내가 앞에 있다는 것을 신경 써서인지 세기를 약하게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추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것이겠지.
“됐습니다. 이제 바짝 말랐습니다.”
“아카데미아를 졸업하면 용사가 될 텐데, 그 예비 용사가 감기라도 걸린다면 꼴이 우습게 된다. 주의하여라.”
“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도련님? 혹시 얼마나 이곳에 더 계실 예정이십니까?”
대략 1시간 정도 더 있지 않겠느냐.
아직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으니.
그렇게 말하자 알리시아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곤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되돌아온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자신의 물기를 닦아 내던 수건이 아닌 다른 것이다.
“날이 춥습니다. 이거라도 두르고 계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언제나처럼 은은한 미소를 보이는 알리시아. 그녀가 건넨 것은 방 안에 있던 담요였다. 열기가 후끈한 것이 아무래도 가져오는 도중 마법으로 데운 것 같다.
“내가 감기에 걸려 우스운 꼴이 될 것은 걱정한 것이로구나?”
“도련님의 일이니 그런 염려는 들지 않으나, 시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을 뿐입니다.”
항상 당황하며 얼을 타던 알리시아가 어쩐 일인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는다.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는 방증인가. 재미있군.
“그건 그렇고, 왜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냐. 이제 그만 가도 좋다.”
“도련님께서 추운 겨울날 밤 밖에서 계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저만 따뜻한 방에서 수면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혹,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옆에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습니다.”
“오, 그러니까 네 말은 당장 침대로 가서 두 발 뻗고 편히 자고 싶으니 지금이라도 그 헛짓거리를 멈추고 가서 잠이나 자라, 이 말이구나?”
“오, 오해이십니다 도련님!”
두 입술이 동시에 벌어지며 허둥거리는 손이 이리저리 배회한다. 조금은 익숙해진 듯했지만 아직 멀었구나.
그녀가 가져다준 담요로 몸을 덮는다. 따뜻한 온기가 어깨와 등에 곧바로 전해진다.
“벌이다 알리시아. 네 주인에게 돌려 유익하지 않은 주장을 피력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것이다.”
“도련님… 정말 그런 뜻이 아니라….”
“여기에 앉아라.”
툭툭.
비어 있는 옆자리를 가볍게 친다.
“겨울의 추운 밤바람을 맞으며 나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있어라. 몸을 데울 것은 그 얇은 옷만을 허하겠다.”
“예…?”
알리시아는 내 말이 의외였는지 선뜻 움직이지 못한 채 행동을 망설이고 있다.
“잠시 이야기나 하자꾸나.”
이 사소한 에피소드도 앞으로 이어질 전개를 위해 필요한 절차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판단 내렸다.
***
“저어… 도련님? 이야기라고 하시면….”
“별건 아니다. 너의 최근 상태에 대한 보고라고 하면 되겠구나. 일의 진행을 위해 마땅히 너의 성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네에… 하지만 마법에 관한 것은 저보다 훨씬 잘 꿰뚫고 계시지 않습니까?”
“본인이 아니면 모르는 일도 있는 법이다.”
여태까지는 알리시아가 마나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자신의 상태에 무지했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몸의 변화를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감을 잡기 시작한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 말이 그리도 의외였느냐. 또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좀 의외… 아, 그런 것이 아니라. 갑자기 제 의견을 물어보셔서 당황한 것뿐입니다.”
뭔, 헛소리지.
그게 그거 아닌가.
알리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현재 자신의 상태에 대해 곰곰이 분석한다.
방금 수련했을 때는 어땠지. 마나의 흐름이 더욱 원활하게 바뀌었나. 그런 과정이 그녀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민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저렇게 티 나다니. 성격이 바뀌지 않는 이상 거짓말은 평생 못 할 녀석이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시적인 성과야 도련님께서 잘 아실 거고, 몸 안에서부터 뭔가가 변한 그런 느낌은… 아, 그리고 보니. 최근 체력이 좋아졌다고 부쩍 느낍니다.”
“원래 마력을 다스리면 자연스레 향상되는 것이다. 다른 건?”
“다른 것 말입니까? 으으음….”
다시 한번 고뇌에 빠지는 알리시아.
“굳이 마법과 관련되지 않아도 된다.”
“아, 그런 겁니까? 당연히 그런 쪽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것도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항이 있다.
“최근 우울감이 든다든가, 아침에 몸이 찌뿌둥하다든가 같은 사소한 것도 좋다.”
“아침… 아.”
그리 눈을 키우는 것을 보면, 뭔가를 떠올린 모양이구나.
“뭔가 있구나.”
“아… 그것이… 별건 아닙니다. 정말 사소한 일인지라….”
알리시아의 맑은 눈을 마주한다. 눈동자가 나를 직시하지 못하고 다른 비어 있는 곳으로 한순간 향했다.
“주인에게 숨기는 것이 있음을 알고도 간과할 순 없구나.”
이어서 말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지 않는다면 최면을 걸어서라도 불게 할 테니 곱게 말하라고.
알리시아는 내 강압적인 태도에 모른 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는지 쭈뼛대며 입을 열었다.
“그… 어린아이 같은 고민이긴 하지만, 최근 악몽을 자주 꿉니다.”
“오호, 악몽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지?”
“어린 시절의 기억… 정확히는 제가 살았던 마을이 불타오르던 순간의 파편입니다.”
알리시아의 고개가 점점 숙여진다. 눈가의 총기는 사라져가고 어둠이 그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말해 보아라.”
“계속… 말입니까?”
누가 봐도 명확할 정도로 꺼려 하는 기색을 비추는 알리시아. 하지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저번, 아침 식탁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지. 주인에게조차 말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는 것이냐?”
“…그런 건 아닙니다.”
알리시아의 목소리가 쥐구멍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져 간다.
“재미없는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듣고 싶으신 겁니까?”
“그런 건 내가 판단하겠다. 네가 멋대로 지레짐작하지 말아라.”
그녀의 눈망울이 나를 피해 이리저리 쏘다니다 결국은 포기하고 정지한다.
그리고.
무거운 그 입이 겨우 열린다.
“…사실 도련님께서 저희 집에 오셨던 날 만나셨던 분은 제 친부모가 아닙니다. 고아인 저를 거두어 주신 두 번째 어머니이십니다.”
“그렇군.”
원래의 스토리대로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다는 데 가치가 있다.
“두 번째 어머님을 만나기 전의 저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언니와 부모님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구성원이었습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무척 단란한 가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생각하는 알리시아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문제는 그것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도련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마나를 처음 건든 것이 아니라고. …맞을 겁니다. 어렸을 적부터 마법에 관해 뛰어난 재능을 보인 언니를 따라 하고자 가족 몰래 노력했던 적이 있습니다. 워낙 아무것도 몰랐었고 저에겐 재능이 없다고 여겼기에 확신은 없지만, 건드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재능 있는 언니에.
재능 없는 동생이라.
비록 자신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그 엇갈림으로 인해 알리시아는 이후부터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말했습니다. 저희 언니는 용사가 되어 마을의 자랑이 될 거라고.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모두의 기대를 받는 언니를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는 언니를 시샘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신께서 그런 벌을 내리신 겁니다.”
알리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손으로 쥐고 있는 옷에는 주름이 더욱 깊어진다. 꽁꽁 싸매 두고 숨겨 두었던 그때의 일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밀었다.
“…어느 날, 붉은 괴물들이 마을을 덮쳤습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사라져갔습니다. 언니는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고, 모두가 언니의 보호를 받기 원했습니다.”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 알리시아는 억지로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한번 뱉기 시작한 감정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언니는 강했습니다. 괴물들이 아무리 쏟아져 나와도 꿋꿋이 버텼습니다. 저는 언니의 곁에서 한심하게 울고만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못 한 채 언니의 곁에만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아무리 언니라고 해도 모두를 지키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차례로 피를 토했고, 그건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져 감을 느낀 언니는 저를 주변 창고에 가둔 채 싸움을 이어 나갔습니다. 언니의 몸은 점차 상처로 물들어 갔습니다.”
처음엔 자잘했던 상처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성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을 뒤덮는다.
“결국 끝까지 버틸 순 없었다. 이거냐.”
“네…. 그때의 저는 창고에 나 있는 작은 틈새로 밖을 내다봤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봐 버렸습니다. 언니가 붉은 괴물에게 몸이… 심장이….”
뚫리는 것을.
알리시아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 괴로운 이야기의 끝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것이다.
“그 이후론 정신을 잃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을에서 살아남은 것은 저 혼자였고 언니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아마 심하게 훼손되어 못 알아본 것 같습니다.”
알리시아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후에 그녀는 마을 사람들 전부의 묘를 만든다.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그녀는 모두를 추모했다. 그 믿기 힘든 일을 해낸 알리시아는 당시 10살에 불과했다.
“그렇게 폐허가 된 마을을 떠나 방황하던 저를 거두어 준 것이 도련님께서 만난 그분입니다.”
자식을 100골드에 넘긴 어미.
알리시아를 마음대로 부려 먹은 여자.
그녀에게도 나름의 변명거리는 있다는 말이다.
알리시아는 말한다.
그녀의 악몽에 등장하는 장면은, 언니의 죽음을 목격하는 그 어두운 창고. 크면서 점차 악몽을 꾸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최근에 다시 도졌다고 했다.
“아… 도련님께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걸 듣기 원하시지는 않으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니다. 이런 것을 듣기 원했다.”
알리시아에게는 다소 잔인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스토리를 알던 내가 반드시 확인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
주위에 흘러가는 마력의 흐름을 느낀다. 시계가 없어도 마력은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증거품이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난 듯하군.”
나는 몸을 일으키곤, 앉아 있던 알리시아 위에 담요를 대충 올렸다. 알리시아의 어깨에 담요가 얹혀져 그녀를 감싸게 되었다.
“나는 이만 들어가겠다. 내 시종이 우울한 이야기를 들려줘 흥이 식었구나. 마나의 확인은 다음으로 미뤄야겠어.”
“역시… 기분이 상하신 것이….”
“너도 그러고 있지만 말고, 이만 방으로 돌아가거라. 밤이 너무 깊었다.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욱 바쁠 것이니 마땅한 휴식은 필수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다. 알리시아가 주섬주섬 담요를 접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살짝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예쁘게 개어진 그것을 팔에 두르곤 말한다.
“도련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꽃이 지는 것처럼 단아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알리시아. 내가 대답을 하지 않는 이상 저 고개를 일으키지는 않겠지. 무의미하게 괴롭힐 필요는 없다.
“그래.”
나는 짧게 답했다.
***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만이 방 안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다. 그 진득한 곳에서 고급진 의자에 몸을 기대며 그림자를 마주한다.
알리시아는 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했다. 약간의 강제성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살짝 밀었을 뿐 나머지는 그녀의 의지였다.
그녀가 말한 내용은 내가 알던 스토리와 같다. 이것으로 알리시아의 일정에 변화수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알리시아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 그녀가 말한 특정한 단어가 떠오른다.
악몽.
매일같이 반복되는 언니의 죽음.
언제부터 다시 그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혹여나 눈치를 채면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별다른 이득도 없이 그런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아마,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모를 것이다.
“잘 진행되고 있군. …뭐, 당연한가.”
그야 필연적으로.
최근에 다시 악몽을 꾸겠지.
“내가 그리 걸어 두었으니까.”
그녀가 잡벌레 구덩이에서 쓰러진 날.
나는 알리시아의 머리칼을 넘기며 저주를 걸었다. 가장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 그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죄악감?
그런 것 따위는 들지 않는다.
그녀의 비약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면 트라우마든 모든 사용한다. 설령 그 탓에 알리시아가 심적으로 위태롭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익을 이끌어 낸다.
그게 악역이 살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