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3)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73화(73/350)
광활한 영토와 무한한 영광으로 빛나는 트로아 제국.
그 찬란한 제국의 수도, 브루템베르크.
정식으로 확인된 인구수만 28만이 넘는 대도시 브루템베르크에는 세계 곳곳에서 물건을 들이는 상인의 무리와, 위그드라실교에서 파견된 성직자들, 던전을 탐험하면서 마물을 잡아들이는 헌터들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터전을 잡아 항상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에선 헌터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들의 일터이자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길드에 방문하기 위함이다.
해당 거리에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길드들이 본부를 두고 있었는데, 최근 이곳을 뜨겁게 달구는 헌터 길드가 하나 있다.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해 가며 초신성 같은 인재들을 방방곡곡에서 발굴해 오는 길드.
이 새롭게 떠오르는 길드의 장을 맡은 바르간의 충신, 브람은 현재 자신의 맡은 업무를 잠시 중단시키고 바르간과 수정구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주인인 바르간이 아카데미아에 재학해 있는 상황이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정구에서 약간의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그 던전의 2할은 사망했다는 것이로구나. 가엾지만 어쩔 수 없군.
“제 능력이 부족하여 발생한 일입니다.”
?아니다. 브람. 너는 충분히 네 일을 문제 없이 수행해 주고 있다. 통솔에 따르지 않는 마물이 발생하는 건 당연지사. 오히려 손실이 고작 2할이라 치하받아야 마땅한 일이니.
브람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바르간에 대한 자신의 충의를 드러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제로 주인이 앞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이제 제법 명성이 올라, 슈겐하르츠의 지원이 필요 없게 되었구나. 실무도, 칼로스가 우리를 배반한다는 우책을 벌일 위인이 아니니 이 또한 걱정 없고.
바르간은 길드를 창설해 아카데미아 이외에 숨겨져 있는 인재들을 포섭하는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칼로스는 가장 먼저 영입한 인재로, 손익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돈이 되는 것을 파악하는 안목이 뛰어난 길드의 실무 담당이다.
바르간이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겼을 때, 그의 길드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해당 생태계의 정상에 우뚝 설 것이 틀림없었다.
이는 명백히 소설의 내용을 전부 암기하고 활용하는 바르간의 두뇌의 덕도 있었으나, 온갖 무기를 제 손처럼 다루며 남들을 이끌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브람의 도움이 컸다.
?이번 결과로 얻은 유물 중에서 1품에 속하는 창이 하나 있었지. 그건 네가 사용토록 해라.
수정구에 비치는 바르간의 영상이 웃는다.
?그건 손을 잘 타야 하는 물건이니 네가 제격이다.
브람은 알리시아처럼 당황하거나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욱 낮추며 감사를 표할 뿐이다.
“주인께서 하사하여 주신 유물. 일신(一身)의 사지와 같이 여기겠습니다.”
브람은 바르간이 유일하게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언제나 바르간에게 깍듯하며 한마디의 말도 흘려듣지 않는다.
?네 무력의 발전은… 아니,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무례한 일이군. 이 정도면 확인할 건 모두 끝난 듯하구나.
지극히 귀족적이고 갑질하기를 즐기는 바르간이 무례하다는 단어까지 보였다. 그는 통신을 종료하려는 기색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다.
“명심하겠습니다. 주인.”
바르간과의 통신이 끝난 이후에도 브람은 한동안 꿇은 무릎을 펴지 않으며 있다가, 느지막이 몸을 일으켰다.
타이밍을 노린 것처럼 노크 소리가 들리며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 바르간 님과 통신하고 있었구나.”
“무슨 일이지.”
브람의 고즈넉한 눈동자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남성이 보인다.
그는 길드의 장인 브람의 뒤에 바르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방금 바르간이 돈의 흐름을 볼 줄 안다고 언급한 인재이기도 했다.
칼로스는 버릇처럼 안경을 치켜올렸다.
“이번 원정으로 인해 브루템베르크 내뿐만이 아니라 근방의 위성도시들에서도 우리 길드의 위상이 한층 올랐어. 지금처럼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을 수 있는 안이 생겨서 말해 주려고 왔지.”
“내가 나서야 하는 일이군.”
“여럿이서 몰려가는 것보단 한 사람, 그것도 우두머리로 알려진 인물이 정의를 내세우고 나선다면 보다 뛰어난 선전 효과가 발생할 테니까.”
브람은 근처에 있는 검을 들려다 말았다.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1품 유물을 사용해 볼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칼로스는 설명을 덧붙인다.
“최근 새롭게 창설된 헌터 길드에 대한 건인데, 알고 보니까 길드는 이름뿐이고 밀거래를 하는 곳이더라고. 마약, 사람, 마물 등 품목도 다양했고. 위치는 이곳이야.”
지도를 건네받은 브람은 잠시 훑어보더니 위치 파악을 끝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갔다 오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도시를 지키는 방위대는 아니었으나, 이따금 사회를 좀먹는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을 자진해서 해결하기도 했다.
“길드의 이미지는 중요하니까. 사람들 많은 곳에서 잔인하게 죽이거나 하면 안 된다?”
“알고 있다.”
브람은 오러를 끌어올리며 가볍게 몸을 달군다.
오랜 세월 단련된 그의 단단한 다리가 문밖으로 향했다.
최근 브람이 세간에서 불리는 이름은 ‘브루템베르크의 무신(武神)’. 그는 거의 모든 무기를 극도로 단련한 무인이었다.
***
브람과의 통신을 종료한 후, 나는 개인적인 단련을 2시간 동안 이어 간 뒤 기숙사 밖으로 나섰다.
이미 날이 바뀐 밖은 어두컴컴했으며 달은 구름에 가려져 끄트머리만을 내밀고 있었다.
그렇게 갈 길을 나아가자 익숙한 붉은 머리가 목소리를 키우며 성을 내는 게 보였다.
이 늦은 밤에 왜 그렇게 열을 올리고 있나 보고 있자니 주변에 늑대의 모습을 한 남자와 말다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변에 리암과 그의 조원들이 함께 있다.
“아… 이 짐승 냄새 나는 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털을 다 뽑아 버릴 수도 없고.”
“리암, 네 소꿉친구라는 이 계집 좀 패도 되지? 실수로 확 죽여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장면이다.
에밀리와 싸우고 있는 저 늑대인간은 루카이엘이라는 놈인데, 원작에서는 바르간의 조원이었으며 에밀리와 자주 마찰이 있었다. 가끔은 리암과도 대립 관계를 형성했었지.
이번에는 리암과 같은 조가 되어 문제없이 지내나 했더니… 에밀리와 다투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단순히 조 때문이 아니라 본래의 성격 차가 큰 원인인 듯싶다.
“그, 그만해… 싸우지 마….”
“비켜, 니켈라. 오늘 저년의 붉은 머리칼을 전부 뽑아 버릴 테니까.”
옆에서는 후드로 머리를 가리고 있는 여학생이 벌벌 떨며 말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는 기존의 전개와 동일하게 리암과 같은 조가 된 ‘니켈라’이다.
그녀가 루카이엘에 의해서 밀쳐지자 주변의 두 여성과 리암이 추가로 나섰지만, 내 눈에 그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정령술사 니켈라.
알리시아, 에밀리, 프란체스카에 이은 리암의 마지막 히로인이다. …하여간 여자도 더럽게 많이 꼬이는 놈 같으니라고.
소심한 성격이지만 이와는 대비되게, 보기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여인이라 리암을 돕는 것도 그렇고, 마음을 전하는 면에서도 그렇고 종종 얼굴을 보였다.
이런 특성 탓에 에밀리가 연애 관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경계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알리시아는 뭐… 분명 주인공의 도움이 많이 되는 강력한 아군이었으나, 타이틀만 메인 히로인이다 뿐이지 그런 방면에서는 다른 여인들에게 묻히기 십상이었으니….
“둘 다 진정하고…! 에밀리, 잠깐 나랑 저리로 가서 대화 좀 할까? 우리 요즘 둘이서 대화 나눈 지도 오래됐잖아.”
리암의 필사적인 중재하에 둘의 분쟁은 잦아들었다. 화를 식힌 에밀리는 뚱한 눈으로 니켈라를 지나치고는 리암을 바라본다.
“…됐어. 아직 오늘 치 훈련 다 못 했어.”
오, 이건 놀라운 발언이다.
리암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단장할 에밀리가 단둘이서 대화할 기회를 마다하다니.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핀의 입김이 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가지’의 책임자로서의 압박감 때문일까. 최근 에밀리의 훈련 강도나 양이 부쩍 늘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다소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리암.
내가 확인한 장면은 여기까지였다.
어딘가에 숨어서 훔쳐보던 게 아니라, 지나가는 도중에 잠시 본 게 전부였기에 정보가 제한적이다.
제법 흥미롭기는 했으나, 나에게 이득 될 게 없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최근 리암 녀석이 불현듯 다가와 했던 제안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금세 잊혀졌다. 녀석은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와 다름이 없었다.
그대로 걸음을 재촉하여 아카데미아의 한구석에 위치한 고분을 찾아간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이 어두워지며 으슥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고분. 거대한 크기의 흙무더기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철문이 달려 있었다. 이 문을 통해 고분의 안으로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
끼이익?.
원래라면 닫혀 있어야 할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황금 머리칼을 가진 여인이 단번에 보였다.
“빨리 왔네.”
“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말이죠.”
나를 마주하는 어딘가 서늘한 눈빛의 주인은 프란체스카.
2학기 축제에서 벌어질 난동의 주범인 사령술사였다.
***
“푸하??! 이거지, 이게 삶의 맛이지!”
같은 시각.
아카데미아에 위치한 아카데미아 관계자 전용 주점.
파울라와 루이사는 한편에 자리 잡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들의 테이블은 세 주먹은 들어갈 커다란 유리잔들만이 가득했고, 다른 요리 따위는 없었다. 안주라고는 가게 주인이 우려 차원에서 건넨 약간의 견과류가 전부였다.
꿀떡거리며 커다란 잔에 담긴 맥주를 목 뒤로 넘긴 파울라는 기세 좋게 테이블 위에 잔을 때리듯 올렸다. 그러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한 입을 쓱 닦는다.
“진짜 술 없으면 이 세상 어떻게 사나 몰라. 젊었을 때는 술 같은 건 냄새만 맡아도 질색이었는데. 인생 참 어떻게 될지 몰라.”
은근히 반응을 바라는 파울라의 말투.
루이사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한다.
“지랄. 1학년 때 내 방에서 술 퍼마시다가 골병 나서 수업 못 들어간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음? 내가 그랬나?”
“그랬어, 이년아.”
“아, 맞아 맞아. 이제야 생각나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젊을 때가 아니라 어릴 때였나 봐. 아… 아닌가? 아니면 말고!”
적당히 취기가 오른 파울라는 평소보다 텐션이 높았다. 루이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혼자 꿀꺽거리며 술을 넘긴다.
“아, 왜 혼자 마시고 그래. 같이 마시자고 같이!”
그렇게 둘은 한참을 웃고 떠들며 음주를 즐겼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잠깐 찾아온 정적에서, 살짝 풀린 눈으로 맥주잔을 바라보던 파울라가 주제를 던진다.
“…이번 기말고사는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가면 좋겠는데.”
그건 넋두리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녀가 술김에 뱉은 말에 루이사의 눈에 담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이를 털어 내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신다.
“크으?”
여전히 맛있지만, 기분 탓인지 술이 조금 써진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이야… 나는 이런 위험한 기말고사 제도가 이해되지 않아.”
“알아. 넌 항상 폐지하자는 쪽이었으니까.”
“참… 그놈의 전통이 뭔지. 애들 목숨보다 중요한 건가. 다치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냥 확 깽판 치면서 폐지 주장해 볼까?”
“아서라, 그러다 또 근신 당한다. 이번에 또 근신 당하고 돌아오면 절대 단순 감봉으로는 안 끝나.”
현실적인 대답에 파울라는 ‘큭… 그건 맞는데.’라며 약간의 여지만을 남겨 둔 채, 자기주장을 접었다. 설령 그렇게 나선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기에.
파울라가 긴 한숨을 쉬었고, 루이사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하는 바를 꺼낸다.
“애들이지. 아직 어려서 보호받아야 하는 꼬맹이들.”
파울라가 술잔을 들고 있는 사이, 루이사는 말을 잇는다.
“그런데 어떡하겠냐. 어리다곤 해도 용사 지망생들인데.”
일정 보호를 하며 성장을 돕는 게 교수인 그들의 임무였지만, 품에 안고 있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용사가 되지 못한다.
달궈진 철을 만져서야 비로소 뜨거움을 알 듯, 상처받을지언정 그 아픔으로 하여금 더욱 나아갈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아픔을 참지 못하고 떨어지는 이들도 있었으나, 별수 없다. 이 정도의 충격에 떨어질 잎이었으면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잎인 것이다.
“크으….”
루이사는 잔에 남긴 모든 술을 털어 넣었고. 때마침 파울라의 술도 동이 났다. 파울라가 말한다.
“여기요?! 맥주 둘 추가요!”
두 교수는 술과 함께 쓰린 현실을 목 뒤로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