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78화(78/350)
“도착했다. 여기야.”
벽을 매만지던 리암은 특정 부분에 독특한 다중 술식이 걸려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식을 해제하면 열리는 거지?”
“응, 파훼식은 암기해 두었으니까 금방 할 수 있어.”
오필리아의 물음에 리암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꽁꽁 싸매 둔 공간이 아니라, 관계자들이 왕래할 수 있게끔 만든 장치이다.
간단한 식은 아니더라도 식의 종류와 내용만 알고 있다면 리암이라도 열고 들어가는 게 가능했다.
니켈라는 리암을 따라 해당 벽면에 손을 댄다.
그녀의 정령을 통해 귓속말을 들어도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되질 않는다. 혹시나 해서 해 본 행동이었으나, 역시 아카데미아에서 준비한 술식답다.
“쯧. 진짜로 발견했네.”
루카이엘은 발견했다는 사실이 마땅치 않다는 듯 혀를 차며 해리아나의 팔목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그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기존 시험의 루트를 밟아야 한다.
“미리 말한 대로, 나랑 해리아나는 모의 제단으로 간다. 다른 사람들이 온다면 둥지의 함정 때문에 중간에 헤어지게 됐다고 할 거야.”
“고마워 루카이엘.”
“고맙긴 개뿔이.”
루카이엘은 차가운 태도를 일관하며 다른 갈림길로 향했다.
해리아나는 그에게 끌려가듯 하면서도 가벼운 묵례로 리암과 모두에게 사과를 전달했다.
리암은 니켈라와 오필리아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두 사람은 정말 끝까지 따라올 생각이야? 루카이엘과 해리아나를 따라가는 게 분명 나을 텐데….”
“리암… 끈질겨.”
“니켈라가 화를 낼 정도면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되지? 자, 시간 끌지 말고 우리도 나아가도록 하자.”
양 볼을 부풀린 니켈라와 확정을 한 오필리아에 밀려, 리암은 술식의 해제를 이어 나갔다.
소설을 읽었다고는 하나 모든 정보를 암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술식에 대한 종류만 나왔을 뿐 자세한 풀이법은 나오지 않았었다.
아카데미아의 수업이나 도서관의 자료를 통해 획득한 정보가 아니었다면 해답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겠지.
마나를 끄집어내며 세밀하게 식의 비워진 부분을 메꾼다. 다행히도 변형된 식은 없었고, 막힘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1분 정도가 경과하고.
“됐다.”
리암이 뱉은 단어와 동시에, 벽을 이루고 있던 물체가 잔상과 같이 허물어지면서 숨겨져 있던 뒷통로가 드러났다.
비로소 갈림길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앞으로 뻗어 있는 길이 두 개가 되었다.
둘 다 어두운 연기 같은 것으로 쌓여 있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
니켈라는 공중에 떠다니던 플래시용 화염구를 껐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용이하지는 않더라도 내부에는 아카데미아의 관계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들켰다가는 곤란하게 되니, 최대한 은밀하게 행동해야 한다.
셋은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곤, 각오를 마쳤는지 또 다른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들어서자 문이 닫히듯 도로 질척한 내벽이 생성되었다.
그렇게 최대한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통로를 타고 가던 리암 일행.
숨겨져 있는 통로라 그런지 내부에 알티프는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둥지의 함정도 발동하지 않아, 오로지 잠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90도로 꺾인 모퉁이.
궁사인 오필리아는 감각을 최대한으로 확대해 이후에 존재할 광경을 예측한다.
그녀의 오감에는 아무런 진동도 포착되지 않는다. 작은 벌레나, 내벽의 꿈틀거림도 존재하지 않고 고요하다.
오필리아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리암부터 나아간다.
새롭게 들어온 그의 시야에는 정말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벌써 들어온 지 꽤 되었는데 교수나 다른 관계자는커녕,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분명 움직이는 데는 수월한 리암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찝찝한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쉽게 풀리니 오히려 걱정되는 심리였다.
?사삭.
조금씩 공간을 넓혀 가는 그 감정을 누를 수 있는 대로 눌러 둔 채, 전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미 여기까지 와 버렸다.
막힌 것도 아니고 잘 풀리고 있는데 이 점이 불안하다고 하여 물러선다면, 그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다.
‘제단이 있는 방에 도착하게 되면 곧바로 튀어 나가 핵을 부수자.’
억지스럽더라도 관계자들이 제지하기 전에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알리시아가 알티프와 조우하게 될 것이다.
뇌의 한편으로는 그런 사고를 이어 가고 있자 제단이 있는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둥지에 ‘문’이라는 개념은 없다.
개조되어 이용되는 둥지인지라 사람의 흔적이 묻어나는 도구들이 가끔 보이기는 했으나,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몸을 숨긴 채 그 안을 조심스레 살피자, 어둠 속에서 얼핏 제단과 주변에 존재하는 인영이 보였다.
더는 망설일 것 없다.
거칠게 나아가 저 제단에 있는 핵을 부수면 된다!
탓?!
리암은 니켈라와 오필리아에게 간단한 신호를 줌과 동시에 땅을 내디뎠다.
리암은 겉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일체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제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빼 둔 지 오래.
일격에 핵을 파괴할 그의 검에는 번개의 속성을 띤 오러가 둘러싸여 있다.
파지직?.
상황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진행되고, 속도를 높이는 리암은 바로 앞에 존재하는 핵을 마주한다.
그 상태로 내리꽂는 검. 그렇게 둥지의 핵은 파괴되나 했는데.
턱.
“어…라?”
전류가 튀기는 소리만 들릴 뿐 리암의 검은 핵에 자그마한 상처도 주지 못했다.
마치 나뭇가지로 쇠를 가격하듯 각자가 지닌 물체의 성질 자체가 다른 듯하다.
다급해진 리암은 곧바로 마나를 출력을 높여선 재타격을 잇는다.
…아마, 아마 긴장한 탓일 것이다.
소설의 정보에 의하면 주인 없는 둥지의 핵은 물렁물렁하여 약한 충격에도 금세 파괴되고 만다.
그러나.
“여기요, 괜찮아요? 여기요???!”
다시금 막혀 버린 리암의 검과 함께 뒤에서 오필리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구멍을 강타한다.
리암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리, 리암…! 사람들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숨을 안 쉬어!”
니켈라의 여린 음성. 그제야 리암은 고개를 돌리고 같은 공간 전체를 살필 수 있었다.
리암 일행이 갑자기 들이닥쳤는데도 이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행동을 보이기는커녕,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다.
제대로 그들을 눈에 담으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뭔가가… 뭔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
제단 아래에서 오필리아가 치유 마법을 걸면서 지속해서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니켈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바쁘게 움직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순간 패닉이 온 리암의 입에서 숨이 뱉어지듯 한심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자신의 귀로 들어왔을 때, 리암의 뇌는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은 이상 상황이다.
더는 시험이 문제가 아니다.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누군가에게 당한 건가?
어서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해…! 니켈라와 함께 이곳에 남아 사람들 회복을 도우며 오필리아는 밖으로 보내 사람들에게?
『저래도 소용없을 텐데. 이미 죽었거든.』
리암의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어린 목소리는 그가 숨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턱 막히게 했다.
쿵쿵쿵. 몸은 심장의 고동을 전한다. 마치 심장이 두 개가 된 것처럼 그 진동은 유별나게 커 귀에 들릴 정도였다.
지상에 내려오는 천사와 같이 느린 속도로. 차가운 손은 리암의 머리를 훑어 뺨을 어루만졌고, 목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심장이 위치한 부근에 도착했다.
리암보다 얼굴 하나는 작은 아이.
아이와 눈이 마주친 리암은 단번에 이게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
아인종도 아니다. 이 불길한 아우라와 뿜어대는 지독한 살기는, 결코 사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 아이의 입은 길게 찢어져 기쁜 듯 보였다.
『생각보다 손님이 빨리 왔네. 아직 이 둥지를 제대로 점령하지 않았는데.』
아, 내가 누군지 모르겠구나.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오싹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입을 벌렸다. 죽어 버린 시체처럼 새하얀 입에서 음성이 이어진다.
『여신교에서 대주교를 맡은 ‘자간’이라고 해.』
리암은 그녀를 알고 있다.
같은 대주교, 헤일리온의 팔의 영혼을 먹은 ‘아미’의 쌍둥이 동생 같은 존재.
알리시아보다도 더욱 하얀 머리칼과 창백한 피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그녀는 눈동자, 손톱, 입술, 눈썹, 모든 게 눈처럼 하얗다.
아미가 영혼을 먹어 몸을 썩게 만든다면.
『우리 재밌게 놀아 보자. 어린 인간족 아이야.』
자간은 ‘신체’라는 개념을 먹어 내부가 텅 빈 마네킹으로 만들어 버린다.
***
꿈틀꿈틀.
둥지가 생명 활동을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둥지의 입구가 닫히며 초입을 감싸고 있던 모든 마법 술식이 해제된다.
이는 명백하게 다른 알티프에게 점령당했다는 표시다.
1학년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여 놀란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든다.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있었으나, 상당수의 학생이 비교적 침착하게 움직인다.
“결국,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 건가.”
가장 먼저 상황 파악을 마친 바르간은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낮은 확률로 고려하고 있던 길로 나아가고야 말았다.
헤일리온이 아카데미아에 관심을 보이게 되고, 이 작용이 아미나 그의 여동생 격인 자간의 행동을 부추긴다.
아미는 지금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을들을 차례로 초토화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데 바쁠 시기니, 가능성으로 따지면 자간이 둥지를 점령했을 터이다.
바르간은 아공간 주머니 역할을 하는 사역마, 하얀이를 펼쳐 손을 집어넣었다.
곧 그의 손은 푸른 검과 함께 빠져나왔고 알리시아를 부른다.
“예, 도련님.”
“받아라.”
다소 험하게 검을 던졌음에도 알리시아는 부드럽게 검을 받았다. 알리시아는 바르간의 의도를 파악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상냥하던 그녀의 눈은 곧 사냥을 할 맹금류로 변모한다.
바르간은 주변을 살피며 필요한 인원을 살폈다. 그들은 동급생들을 진정시키는 데 애쓰고 있다.
“시험은 끝났다. 지금부턴 각자 조를 이루어서 움직여야 한다.”
입구가 막힌 이상 밖에 있는 교수들이 둥지 안에 들어오려면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자간이 왔다면 외부 교사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휘하의 주교급들을 데리고 왔을 터.
이대로 가만히 기다려, 그들의 힘을 빌리기에는 발생할 피해가 너무 크다.
“현재까지 출발한 조는 넷이었지. 1학년들 중 인원을 추려 둥지를 떠돌고 있을 세 조의 안전을 확보한다.”
“그럼 나머지 한 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 조는 말이다….”
아직 모든 학생이 둥지로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발동했다는 건, 본 제단을 장악하고 있을 자간 쪽에 침입자가 존재한다는 것.
여기에 있는 학생 중에서 본 제단의 위치를 알고서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단 하나, 그 덜떨어진 주인공밖에는 없다.
“우리가 직접 간다.”
구더기 같은 존재일지라도 리암은 사기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 그리고 그 조원들은 이후가 창창한 소중한 인재들이다.
내 후일을 위해서라도, 이토록 가볍게 꺼질 목숨은 결코 아니다.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인물들과 접선해라.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도 직접 움직일 터이니, 이들을 데리고 신속히 내부로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대주교.
주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진 열다섯의 존재들.
현실적으로, 이들부터는 지금의 나로서 감당할 수 없다. 대주교부터는 정말 급이 다른 괴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아카데미아 1학년의 모든 학생의 현 전력은 파악이 끝났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인재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은 끝났다.
둥지의 초입에서 모두를 통제할 이를 한 명을 제외하고, 엘리트들만을 선출해서 가야 한다. 많아서도 안 된다. 괜한 희생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을 데리고 힘을 모아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
그 빌어먹을 리암 자식이 독단적으로 움직여 제단에 홀몸으로 들이닥쳤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잘 풀리지는 않겠지.
바삐 움직여야 한다.
다소 귀족의 품위가 없을지라도 뛰어야 한다. 만약 이대로…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의 조원들은 모두.
몰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