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8화(8/350)
상쾌한 아침.
오래된 창문에서 슬그머니 들어오는 어린 햇빛이 반갑다.
“에구구.”
삐걱. 한 노인이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날이 가면 갈수록 허리나 관절 등, 성한 곳이 없다. 하나뿐인 귀한 손주 장가가는 것은 보고 죽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몸이 버텨 줄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는다. 방 안의 냉기가 차다. 오늘은 날이 쌀쌀하니 더 두껍게 입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외부와의 접촉의 거의 없는 곳, 루비드 마을. 이 작은 마을은 다른 대도시처럼 웅장하거나 대단한 것이 있지는 않지만 언제나 평화롭고, 한결같다. 그의 어린 기억을 되짚어 봐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변하는 것은 구성원뿐. 건물이나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
밖에서 새가 지저귀기 시작한다. 그 감미로운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
“촌장님, 촌장님⎯⎯! 어서 나오세요! 급한 일이에요! 빨리, 빨리.”
쿵쿵쿵. 어떤 남자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그를 찾았다. 그 갑작스러운 소리에 굽어 있던 허리도 잠시 펴질 정도로 놀란 그는, 주먹으로 허리를 퉁퉁 치며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급한 일이라니?”
멀리서부터 달려왔는지 문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성이 숨을 헉헉거리고 있다. 그는 거친 숨이 섞인 말을 이어 갔다.
“헉헉. 아니 그게. 지금 어떤 으리으리한 마차가 나타났는데, 마을에서 가장 높은 분을 찾고 있다고 해 가지고. 아침이 이르니까 저희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라….”
“잠깐, 잠깐. 너무 두서가 없어서 이 늙은이의 머리가 따라가질 못하겠네. 그러니까 마을에 누가 온 겐가…?”
젊은 남자는 숨을 길게 뱉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고위 귀족과는 연이 전혀 없는 이 마을에 왜 갑자기 저런 자가 나타나서 들썩이게 하는 건지! 젊은 남자는 지금의 상황에 쫓기고 있다.
젊은 남자는 이럴 시간이 없고 빨리 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촌장의 손을 끌었다. 하지만 촌장도 이대로 갈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상황은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하다못해 어떤 가문에서 온 것인지 알려 달라는 태도를 일관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 답답하네. 빨리 가야 한다고요! 지금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이 사람아. 적어도 어느 가문의 사람인지는 알아야지 말이라도 할 것 아닌가.”
젊은 남자는 울상을 지었다. 한시가 바쁘건만 이런 승강이를 벌일 틈이 없었다.
“슈겐하르츠!”
남자는 촌장을 재촉했다.
“아 글쎄, 슈겐하르츠의 본가 아들내미가 지금 우리 마을에 왔다니까요!”
“뭐…? 잠깐, 어디 자손이 왔다고?”
그 이름을 듣자, 오랫동안 방치해 둬 먼지가 가득 쌓인 그의 뇌에 갑자기 전기가 들어온 것처럼 괴랄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아무리 마을 밖의 소식에 깜깜하다 한들 그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가문명 중의 하나로, 트로아 제국의 황가 다음으로 가는 명문가 중 명문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명문가의 자제가 이 시골 마을에 왔다고 한다. 어째서? 무슨 연유로 온 것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이유가 없는데.
온갖 의문이 가득해져 가지만 우선, 해야 하는 행동이 정해져 있다.
“어, 어서 가세나!”
촌장의 바빠진 다리는 다행히도 달린다는 행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얇은 두 다리로 경사진 언덕을 헐레벌떡 뛰어갔다.
***
“볼품없는 마을이로군.”
발전이라는 단어는 비료로 묻어 버린 것인지 퇴보해 보이기까지 하는 루비드 마을. 저택이나 대도시에 익숙해진 나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마을의 촌장이라는 자는 내 말을 듣고서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며 고개만을 조아리고 있다. 현 황제의 이름도 모르는 이들로 가득 찬 마을인 줄 알았건만 놀랍게도 슈겐하르츠의 위광은 이 시골 마을에까지 뻗어져 있었다.
“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 저, 저희 루비드 마을은 자랑할 것이라곤 자연밖에 없는 허름한 곳입니다.”
“그 자연도 포함해서 말한 것이다.”
“아….”
거대한 산이 있거나 멋들어진 바위가 있는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자가 말하는 자연이랄 것도 눈에 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수함이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다만 나의 시선을 끌지는 못한다.
“…저기… 저.”
촌장이라는 자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꼴이 썩 유쾌하지는 않아 고개를 끄덕여 입을 여는 것을 허했다.
“며, 명망 높은 슈겐하르츠의 자손께서 …어, 어찌 이리도 누추한 마을에 방문해 주신 건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안 된다.”
“예?”
평민들은 다 이런 것인가. 알리시아랑 반응이 판박이라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어서 얼간이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촌장.
“네가 알 필요는 없다 한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저 따위의 것이 알 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송구⎯.”
“며칠 동안 있을 것이니, 이곳에서 가장 좋은 방을 제공해라. 아, 그래. 촌장이라 했으니 자네의 방이 가장 좋겠군.”
“…예, 알겠습니다. 이 천한 놈의 방이라도 괜찮으시다면 곧바로 청소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빌빌거리던 촌장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그리 볼썽사나운 표정 짓지 말아라. 내가 설마 깡패도 아니고 아무런 이득을 쥐여 주지 않을 것 같으냐?
철턱. 얇은 전도체가 가득 들어 있는 보따리를 바닥에 던지자, 꽤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촌장도 살짝 고개를 들어 그것을 훔쳐본다.
“안을 열어 확인해 보아라. 섭섭지 않을 정도론 넣어 두었다.”
촌장의 거동이 수상쩍은 물건을 만지듯 조심스럽다. 주름이 자글거리는 손이 화려하게 장식된 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그러곤 살며시 안을 열어 확인한다.
“이, 이걸… 저, 전부 주시는 겁니까?!”
휘둥그레지는 눈과 입.
은화 보따리 들고 있는 손은 바들바들 떨리기까지 한다.
응, 이 정도면 평민들의 반응은 다 비슷한 것이 맞는 것 같다.
대도시 로즈에서도 제일가는 고급 여관과 같은 액수를 넣어 두었다. 이거라면 이 작은 마을에서 지내는 비용으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싫다면 일부만 줄 수도 있다.”
“바로 방을 청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신다면 곧이라도!”
“방 청소는 됐으니 양이나 몇 마리 구해 와라. 생생한 놈들로 말이다.”
“가, 가축인 양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아주 팔팔한 놈들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촌장의 바쁜 하루가 신호탄을 날렸다.
***
“작지만 소소한 맛이 있는 좋은 마을이네요. 도련님께서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온갖 인상을 다 찌푸리셨지만 저는 마음에 들어요.”
파울라는 대답을 바란다는 눈으로 옆에 서 있는 알리시아를 바라봤다. 그러나 알리시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기만을 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알리시아 양?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
“알리시아 양?”
“아? 아! 죄송해요 선생님.”
“그러고 보니 알리시아 양의 고향도 시골이었죠? 고향의 향수에 젖어 있는 건가요?”
“네….”
이미 베어져 짤막해진 수확의 흔적들. 황금빛의 줄기에 검은 비료 같은 것이 군데군데 묻어져 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각진 돌을 여러 개 올려 만든 작은 돌담이 길게 뻗어져 있다.
꽤 오래되었는지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어? 누군가 있네요?”
파울라는 손가락으로 돌담의 부근을 가리켰다. 알리시아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한다.
살랑. 갈색 머리칼이 보인다. 몸을 가린다고 가렸지만 긴 머리칼까지 감추는 것은 고려하지 못한 듯하다.
자박자박. 알리시아는 그 돌담에 다가갔다. 그녀가 다가가자 설마 접근할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란 아이들이 고개를 올리며 눈을 깜빡거린다.
낮은 돌담보다도 더욱 작은 여자아이 두 명. 둘의 외관이나 키 차이로 봤을 때 자매인 것 같다.
언니로 추정되는 아이는 동생의 앞을 막으며 알리시아의 접근을 막았다. 경계를 줄이지 않는 눈동자로 그녀를 맞이하며 말한다.
“외, 외부인이 들어 온 건 처음이라서… 그래서… 나쁜 짓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소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혹여나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식되어 있으나 자신보다 더 작은 생명을 막는 몸은 비키지 않는다.
알리시아는 소녀와 같이 맑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그녀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작을 이었다.
양손으로 치맛자락의 끝을 잡으며 오른발을 살짝 뒤로 민다. 고개는 약간 숙여 예의가 드러나도록 한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알리시아라고 해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 알리시아가 바르간에게 팔려 와 배운 것은 마법이나 검술뿐만이 아니었다.
앞에 서 있던 소녀는 다시 눈을 깜빡이기 시작한다. 커다란 두 눈꺼풀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어서는 겁에 질려 있던 얼굴의 근육이 변화한다. 그러곤 높은 톤으로 말한다.
“공주님 같아!”
소녀의 눈이 반짝인다. 하늘에서 내린 눈을 처음 본 아이가 몸을 부들거리며 감탄을 표하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주님? 공주님이에요? 성에서 온 거예요? 왜? 왜 공주님이 밖으로 나온 거예요?”
소녀는 알리시아의 주변을 빠르게 돌며 물음을 이어 갔다. 소녀는 알리시아의 존재를 그 특정한 것이냐고 물으면서도 동시에 확신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반짝거리고 몸도 엄청나게 하얘! 역시 공주님이라서 하얗구나! 그런데 왜 공주님 옷을 입지 않은 거예요?”
“그건, 제가 공주님이 아니….”
“아! 저 알아요! 변장한 거죠? 왕자님 만나려고 몰래 변장해서 나온 거죠!”
소녀만의 동화가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들은 지도 벌써 7년. 오랜(?) 간접 경험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던 소녀의 머릿속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소녀는 몸을 움츠리며 안 그래도 작은 몸을 더욱 작게 만들었다. 검지만을 펴내어 입을 막기도 한다.
“쉬잇! 조, 조용히 해야 하는 거죠? 비밀이라 들키면 안 되는 거죠?”
긴장된 소녀는 심지어 목울대를 울리며 침을 넘기기 시작했다. 알리시아는 그녀의 예상외 반응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알리시아가 당황하고 있자 파울라가 다가왔다.
알리시아는 파울라가 이 상황을 매끄럽게 끝내 줄 것이라 여기고 한숨 놓았으나.
“맞아~ 이분은 공주님인데 지금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몰래 성을 빠져나온 거야. 그러니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 조용히 숨기는 거야, 알겠지?”
“마법사! 마법사죠! 진짜 큰 모자를 쓰고 있어. 동화 속 그대로야!”
“방금 조용히 하라고 했던 거 같은데… 확, 개구리로 변신시켜 버린다!”
파울라가 손을 위로 뻗으며 과장된 동작을 취하자, 소녀는 다시 자신보다 작은 소녀를 감싸며 막아섰다. 입으로는 ‘착한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나쁜 마법사였어!’와 같은 말을 뱉고 있다.
“이런, 상황이 더욱 악화하였네요. 미안해요 알리시아 양.”
“아니에요. 애초에 제가 똑바로 해야 했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잘못인 걸요.”
뒤에 있던 작은 꼬마는 빼꼼 고개를 내민다. 두려움 없는 그 눈에 담긴 것은 호기심이었다.
“곤듀님? 언니, 곤듀님?”
“프리지아, 안 돼. 나쁜 마법사도 있어!”
“나쁜 마버사? 왜 나쁜 마버사랑 곤듀님이랑 이써?”
“그건….”
소녀는 오랜 간접 경험으로 쌓아 올린 지식을 뒤적거렸다. 비슷한 상황을 알고 있다. 어머니께서 이야기해 주신 수많은 이야기 중에는.
“납치?!”
그런 것도 있었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소란스럽구나. 내가 협상을 할 동안 놀고만 있었던 거냐? 한심스럽긴, 한 번이라도 더 오러를 둘러야 하거늘!”
알리시아가 오해를 풀려고 하자 그녀의 말을 끊는 남자의 목소리. 촌장과 이야기를 마친 바르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이들이 보기에 그 장신의 체구와 날이 선 말투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녀는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그 작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손가락도 쭉 뻗어 확실히 대상을 지적하면서.
“나, 나쁜 마법사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