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8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86화(86/350)
십이신수(十二神獸).
세상에 존재하는 12마리의 영물.
본래는 마왕을 따르는 각 마물 세력의 정점이었으나, 그들의 주인인 마왕이 최초의 마법사에 의해 사망한 뒤, 마법사를 새로운 주인으로 모셔 지하에 갇히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던 이들.
그들의 이름은 힘과 함께 유일한 후손이 명맥을 이으며, 현재는 오로지 한 개체만이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던 신수이고 나머지는 그 후손이다.
각자의 영토에 귀속되어 있어 그 구역을 벗어나는 일이 없으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는 최초의 마법사와의 약조에 의한 것으로 세상만사에 개입하지 않기로 한 바이다.
열두 마리의 마물의 힘은 방대하고 신비로워 자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트로아 제국 북부를 터전으로 잡은, 겨울을 관장하는 드래곤, 프릭칸리스크가 노하면 뒤르테문드의 설산에서는 눈사태가 일어나고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 우박이 내린다.
우리는 예부터 그 놀라운 힘을 신성시하였으나 유일신 위그드라실 님을 따르기에 숭배하지 않는다.
하나, 그 경이와 권한은 존경받기에 마땅하여 우리는 이 열두 마리의 마물을 별도로 ‘신수’라 칭하였다.
⎯「트로아 제국의 역사와 십이신수」
251쪽 첫째 줄에서 발췌.
***
다시 말하지만,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내가 얻을 것은 대주교 아미의 목이다.
녀석을 죽이고 심판무구를 얻는 것.
그게 일차적인 달성 목표.
아마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탑승할 수 있을 터.
다만 작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번 여름방학에 헤일리온과 그 일행이 겪었던 사건에 대한 건 원작의 메인 전개에서 아예 벗어난 외전 같은 거라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그나마 알려진 기존의 스토리대로라면 프릭칸리스크를 토벌하러 온 헤일리온 일행은 프릭칸리스크와 대주교 아미 사이에 어떤 유착 관계를 발견했고, 용맹스럽게도 물러서지 않고 이 무시무시한 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프릭칸리스크의 죽음으로 뒤르테문드와 그 인근의 기후는 기존대로 돌아왔고, 열다섯의 대주교 중 하나인 아미의 목이 어둠으로 꺼지게 되어 교회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다.
또한 안 그래도 눈이 부신 헤일리온의 업적이 더욱 광을 발하게 돼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용사랭킹이 한 단계 상승한다.
용사랭킹을 전투력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그게 아예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정확히 말해 용사랭킹이란 ‘기여도’다.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순위로 매긴 것이다.
하여간, 헤일리온은 본래의 전개대로 진행되면 7위에서 6위로 올라가게 되며 그의 팀원들도 그 명예를 나눠 받는다.
대주교의 힘이나 피해를 생각하면 마땅한 일이었다.⎯라고 알려져 있었으며 소식이 전해 들은 아카데미아의 학생들은 모두가 그에게 열광하는 데 바빴다고 묘사되었다.
…한데,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분명히 헤일리온의 무력은 훗날 용사랭킹 2위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대주교 아미와 십이신수 중 하나인 프릭칸리스크를 동료들과 함께 잡았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어 보인다.
동료들도 이 과정에서 사망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꽤 높은 랭킹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말이다.
흠.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솨악!
일정한 동작, 일정한 호흡이 공기를 가르며 반복된다. 소리에 사고의 흐름이 잠시 정지하고 절로 눈길이 가게 된다.
철검을 휘두르고 있는 남성, 토이렌 트로아 핀의 꽤 단련된 신체는 주변의 온도와 크게 상반된다.
핀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가 방 안의 온도를 높인다.
뜨겁게 달궈진 주전자에서 나오는 증기와 같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후끈거림이 느껴졌다.
핀은 연구회에 들어오고 나서 주야장천 한 동작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상대의 머리를 빠르게 노리는 기본 중의 기본 동작으로, 응용 따위도 없다. 우직하게 하나다.
“…제법 나아졌지만, 아직도 멀었구나.”
이를 본 나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벌써 몇십만 번은 반복한 동작이거늘, 아직도 허접하다.
헤일리온의 유물로 인해 단련된 건 순수한 검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마나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지금의 수준은 오로지 핀의 역량으로 달성했다고 봐도 된다.
그래서 아쉬운 것 같다.
보니까 철검의 무게도, 일반적이지 않고 상당하고 모래주머니도 70킬로는 넘게 달고 다녔음에도 크게 효과는 없는 듯하다.
‘이 녀석에 관한 확인은 이쯤 하면 되었고.’
이곳은 트로아 제국 최북단에 있는 도시, ‘뒤르테문드’의 낡은 숙소 중 하나다.
우리를 안내하던 카닐라는 여기서 대기하도록 지시를 내려 두고는 헤일리온 일행을 데리러 갔다.
그렇게 발생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자 나와 핀은 각자의 개인 정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핀은 언제나처럼 무거운 철검을 휘둘렀으며, 나는 사역마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마나를 보급해 주었다.
사역마란 단순히 애정만으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속적이고 적합한 관리와 시기에 맞는 질 좋은 마나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당연하지만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까다롭다.
⎯갸르릉.
빗으로 늑대 사역마의 털을 부드럽게 쓸어 주자, 녀석은 기분이 좋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한다.
얼굴로 나에게 비비며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언뜻 보면 추위 때문에 따뜻한 곳을 찾고자 파고들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짜 아찔할 정도로 귀엽네.
하여간.
뒤르테문드는 드넓은 트로아 제국의 최북단에 있는 만큼, 항상 눈과 함께하는 도시다.
마차를 타기 전, 고속 비공정을 타지 않았더라면 몇 주는 걸려야 도착했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
찬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이 허연 눈으로 뒤덮여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로 결코 이상할 게 없다.
…눈발의 세기에 밖의 형태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장난이 아니네요. 뒤르테문드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지만, 설마 여름인 지금 시기에도 이 정도로 눈보라가 칠 줄은 몰랐어요.”
창문의 요란한 소리는 멈출 줄 모르던 핀의 집중도 흩트렸던 모양이다.
어느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창문 밖에 함께 시선을 주고 있다.
“원래는 이렇지 않다. 지금의 기후가 잠시 맛이 가 버린 거지.”
“이것도 프릭칸리스크의 탓인 건가요?”
“그래. 녀석의 폭주가 지금의 사태를 이끌었다.”
헤일리온의 팀이 중앙교회로부터 부름을 받은 이유는 하나. 뒤르테문드의 근방에서 날뛰고 있는 프릭칸리스크를 토벌하는 것.
십이신수 중 겨울의 드래곤인 그녀의 폭주로 인해 안 그래도 얼어서 죽는 사람들이 다수 발생하는 이곳의 기후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농작물은 물론 가축, 인명피해, 건물 붕괴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경제가 파괴되고, 구제받지 못한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해서, 피해 정황을 파악한 교회는 프릭칸리스크의 퇴치를 결정했는데, 이 근방 교회에 배치된 어지간한 수준의 용사들로는 프릭칸리스크를 잡는 게 용이하지 않아 중앙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경위다.
⎯크르르릉.
내 품에서 고이 잠들 것처럼 얌전하던 늑대, ‘늑돌이’가 갑자기 털을 삐죽삐죽 세우며 이를 갈았다.
문 쪽으로 고개를 향한 채 경계의 태세를 갖춘다.
그런 녀석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진정시킨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한 카닐라였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확인해야 하는 정보가 많이 있어서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됐다.”
그녀의 뒤에서 제법 눈에 익숙한 사내가 다가왔다. 그는 반갑다는 듯 지긋한 미소를 짓고 있다. 감정이 담기지 않더라도 꽤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바르간 학생, 핀 학생. 다들 못 본 사이에 많이 강해진 것 같군요.”
핀은 90도로 인사한다.
“오랜만입니다. 헤일리온 님…!”
“주신 유물의 품질이 워낙 뛰어나, 꽤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보람을 느끼네요.”
일체의 미동도 없는 헤일리온의 눈.
과연 저게 보람을 느끼는 사람의 얼굴인가⎯ 하는 당연한 의문이 들지만, 헤일리온의 언어 방식에도 적응이 된 터라 어색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표정을 자연스럽게 다루는 게 완벽하지는 않은 남자다.
그는 시간을 끌지 않는다.
“그러면 바로 이번 임무에 관해 설명하도록 할게요. 다른 방으로 가도록 하죠.”
***
『지금 그 말… 거짓이 아니라고 다짐할 수 있어? 만약 거짓이었다면 임시 동맹이든 뭐든 바로 죽여 버릴 건데?』
기괴한 형태의 말에 타고 있는 10대 소년의 눈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를 향한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은 가로로 찢겨 있던 또 다른 대주교 자간을 연상시켰다.
대주교 아미는 섬뜩한 눈초리를 하고 있다.
최근 자기 여동생 격인 자간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분이 영 좋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런 장난을 하는 거라면 가만두지 않을 그였다.
후드의 남성은 천성적인 우울한 어조로, 대주교의 앞에서 비교적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남자는 거짓을 고하고 있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나한테 뭐가 남지도 않으니.”
아미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뚫어질 듯 후드 속의 인물을 노려봤다.
그렇게 그의 발언이 진실임을 느낀 아미의 입이 한순간, 귀까지 걸리게 된다.
그 미소는 무척이나 순수하고 잔인했다.
아미는 환호한다.
자간의 죽음을 가볍게 잊어버릴 정도로.
15년 동안 숙성시킨 뛰어나게 맛이 좋은 영혼을 다시 음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만나고 싶다.
너를 어서 만나서 게걸스럽게 뜯어 먹어 버리고 싶다.
단 한 점의 남김 없이…!
아미는 입맛을 다시며 멀리서 보이는 도시 뒤르테문드를 내려다봤다. 그 모습은 접시 위에 올려진 최고급 고기의 한 덩어리를 바라보는 듯하다.
“헤일리온이 왔다고 해서 일을 성급하게 처리했다가는 꼬이게 될 거야. 우선순위는 확실히 지켜.”
아득히 떨어져 있는 곳에 준 시선을 떼지 않는 아미였으나, 이를 모르진 않았다. 그가 이곳에 온 최초의 목적은 헤일리온이 아니었으니까.
『15년을 기다렸어. 몇 주일 뒤로 더 미룬다고 해서 눈 뒤집혀선 달려들 생각 없어. 그런데….』
아미의 눈이 가늘어지며 후드의 남자를 향하게 된다.
그러다 돌연.
“끄으으아악…!”
남자가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외부의 자극 때문이 아니라, 몸속 깊숙한 곳에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심장을 움켜쥐려 한다.
후드의 남자는 눈밭에 나뒹굴며 전신 이곳저곳에 하얀 눈을 묻히게 됐다.
가볍게 말에서 내린 아미는 발로 그의 턱 끝을 들어 올리며 못다 한 말을 이었다.
아미의 시선은 사람이 아닌 가축보다 급이 낮은 개체를 보는 듯 무심했다.
『기어오르지 마. 인간아.』
후드 속에 가려졌지만 얼핏 비치는 인상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몸속에는 「신충」이 자리 잡고 있다.
아미의 피를 먹은 그 벌레는 아미가 원하는 언제라도 크라인을 알티프로 변환시킬 수 있으며, 고통을 주는 게 가능했다.
『너와 내가 맺은 동맹은 일시적이야. 그리고 동등한 조건도 아니지.』
어떤 동맹, 그 어떤 계약이 그렇듯 서로가 완전히 동등한 상태에서의 수립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주교인 아미와 용사인 후드의 남자가 맺은 동맹도 그랬다.
이번 일에 한해서 잠정적으로 손을 잡았으며, 그마저도 불평등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네가 원하는 건 줄 거야. 하지만, 내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면 어느 정도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서슴없이 너의 모가지를 잘라 버릴 거라는 사실 잊지 말도록 해.』
아미의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를 듣던 후드의 인물은 두려워하기는커녕 낄낄거리며 웃어 대기 시작했다.
고통이나 공포심에 미쳐 버린 건 아니었다.
“그래… 그거면… 그거면 된다.”
그는 본래 이런 인물이었다. 자신의 원하는 바가 있으면 다른 건 전혀 상관하지 않고 이루어야만 하는 용사. 어떤 것에 관한 강렬한 열망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대상이 마족이건 알티프건 그 어떤 이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애초에 용사인 그가 사랑하고 있는 건 인류가 아니었다.
“흐, 끄흐흐….”
심장을 파먹는 고통에도 욕망의 근원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는 이렇듯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