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9화(9/350)
“그으으….”
멀리서 알리시아를 노려보는 한 작은 소녀의 시선이 멈추지 않고 광을 쏘아 댄다. 저렇게 돌담 옆에 고개를 내밀고 있으면 다리나 허리도 아프겠건만 기세를 죽이지 않는다.
그녀의 일행이 머물고 있는 촌장댁 근처의 소녀는 알리시아를 공주님이라고 확정시하곤 요즘 매일같이 아침마다 찾아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알리시아는 그 시선을 견디다 못해서 하던 잡일을 잠시 멈추곤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경계 어린 그녀가 도망가지 않도록 작은 동물을 대하듯 조심스럽다.
“그렇게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서 좀 앉아 있으면 어떤가요…?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확. 소녀는 알리시아의 손을 잡으며 끌었다. 순간적으로 있는 힘을 다한 얼굴이 빨개진다. 알리시아의 몸도 그녀의 이끌림에 잠시 주춤하지만, 역으로 힘을 주어 그녀의 행동을 막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저는 공주님이 아니에요. 제가 모시는 분도 나쁜 마법사 대장 같은 게 아니고요.”
“끄으응…! 가야 해요 공주님! 공주님은 지금 속고 있는 거예요.”
“…정말 아니라니까요. 에델, 그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잠시 이야기라도 하죠. 맛있는 케이크도 있어요.”
“케이크…?”
케이크라는 단어에 소녀의 귀가 쫑긋해진다.
에델이라 불린 소녀의 눈과 입이 벌어지며 손아귀의 힘이 풀린다. 멍한 시선으로 알리시아를 직면하게 된다.
“네, 케이크예요. 부드러운 빵에다 달콤한 크림을 바른 맛있는 간식이죠!”
“성에서 맨날 먹는 그런 음식이잖아요! 알고 있어요!”
성에서 매일 케이크를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이야기를 들어 줄 기미를 보인다. 알리시아가 모시는 주인은 그런 꼬맹이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하라 했으나 매일같이 찾아오는 어린 소녀를 무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오해를 풀어 자신을 구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면 더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음…?’
그렇게까지 생각이 되자 알리시아는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평소였으면 일과에 방해가 되니 무시하라고 말씀하실 게 아니라, 아예 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시거나 강한 제재를 하셨을 텐데….’
“안 돼!”
일순간 들리는 소녀의 외침. 에델의 뜻밖의 행동에 알리시아의 사고는 이어지지 못했다.
“안 돼, 안 돼. 에델 정신 차려! 공주님을 구해야지. 곧 나쁜 마법사들이 올 거라고.”
에델은 작은 손으로 뺨을 팡팡 치며 자신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 어린아이임에도 유혹에 지지 않는 면이 대견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하나 지금은 좀 넘어가 줬으면 했다.
에델이 다시 알리시아의 손을 잡았다. 어린아이의 높은 체온과 살짝 땀에 젖은 것이 느껴진다.
‘이걸 어쩐담.’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에델! 얘가 또 그러고 있네. 그만둬, 곤란해하시잖니!”
소녀의 집 쪽에서 기겁하며 달려오는 여인이 있다. 방금까지 밭일을 하고 있었는지 옷의 군데군데 흙이 묻어 있었지만, 딸아이의 만행을 인지하고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것이다.
그녀는 에델을 양손으로 들고는 알리시아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업었다. 에델은 그것을 강하게 거절한다.
“이거 놔 엄마! 공주님을 구해야 해!!”
“엄마가 여기 와서 난리 치지 말랬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하지만 공주님을….”
“공주님은 지금 바쁘시잖아. 너 때문에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하고 계신다고!”
“나 때문에…?”
아등바등하던 에델의 몸이 멈추며 힘이 다 빠진 생선처럼 축 처진다. 에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알리시아를 바라본다. 소녀의 눈동자에는 방금과 같은 굳은 의지가 사라져 있었다.
“공주님, 나 때문에 나쁜 마법사들한테 혼나…? 내가 와서 괴롭힘당하는 거야?”
이런, 물방울 같은 눈이 곧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고, 애가 왜 이럴까.”
낌새를 눈치챈 소녀의 어머니는 더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애의 등을 토닥이며 울음이 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래야만 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여인의 마을에 온 가문의 사람들이 무척이나 높은 신분이라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신과는 연이 없는 일이겠지… 밖에서의 행동거지를 조심하긴 해야겠구나.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동생과 놀다 온 자신의 첫째 딸이 기절초풍할 만한 일을 입에 담는 것이 아닌가.
에델이 아침마다 그곳을 찾아가 귀찮게 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혔을 때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놀라서 기절해 버릴 뻔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철이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여인에게 괜찮다며 그렇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손을 젓는 알리시아.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델은 여전히 울상이다. 무척이나 침울해져 기운이 없는 에델.
알리시아는 에델의 시선이 더는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숨이 먹은 풀처럼 몸을 늘어뜨린 채 여인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녀의 모습을 보다 문뜩 깨닫게 된다.
아. 그런 거구나.
구출하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어.
알리시아의 손이 작은 소녀에게 향한다.
잘 익은 벼처럼 고운 색을 띠고 있는 에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위에서 아래로. 빗질하듯이 부드럽게.
그러자, 에델은 고개를 들었다.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 있지만, 아직 흐르지는 않고 고여 있다.
“저는 공주님도 아니고, 나쁜 마법사에게 잡혀 있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는 건 사실이죠.”
에델이 눈을 깜빡인다.
알리시아의 손이 다가올 때마다 한 번씩 눈을 감는다.
“할 일을 다 마치면 제가 에델의 집으로 놀러 갈게요. 그때까지만 잠시 기다려 줄래요?”
쓰다듬는 것을 멈춘 알리시아의 손은 새끼손가락만이 펴져 있었다. 에델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웅….”
그렇게.
알리시아의 약속이 하나 늘었다.
***
“헥… 헥… 도련님… 이쯤 되면 왜 이걸 하는지 정도는 알려 주시죠. 제 마력을 이렇게나 쏟아붓고 있는데… 적어도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파울라가 커다란 지팡이에 자신의 체중을 기대며 버텨 서고 있다. 구역감이 올라온다는 듯 길게 늘어진 혀와 크게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몸은 그녀의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다.
파울라의 평소 행실 때문에 간과되어서 그렇지 그녀도 상당한 재능의 소유자로 아카데미아의 교수 직책을 맡는 자다.
마나 총량도 상당한 수준인데, 그런 그녀가 마력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죽을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지간해서 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조용히 해라.”
파울라의 불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녀에게 지금의 의미를 알려 줄 경우 계획에 방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알려 줄 수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파울라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팡이에 기대던 몸을 바로 하곤 눈썹에 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자꾸 그렇게 비밀로 하실 거면 더 이상 안 도와드릴 거예요! 제가 아무리 가정교사라고 해도 이건 횡포라고요 횡포!”
“30골드.”
“말 돌리지 마세요! 지금 화내고 있는 사람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이해를 못 하겠나?
그렇다면 조금 더 말해 줄까.
“선생이 매달 슈겐하르츠에서 받아 가는 돈이다.”
“확실히 그건….”
폭발적으로 타오르려 했던 파울라의 불꽃이 사그라진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그녀를 마주한다.
“설마 일목요연한 설명을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윽.”
파울라는 이빨을 갈며 나름 대항하려 했으나 곧 바람이 빠진 풍선 꼴이 되었다.
그녀도 알고 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파울라가 받는 금액은 상당한 수치였다.
그것은 아카데미아의 교수라고 한들 마찬가지다. 초임 교수의 월급이 10골드임을 고려하면 지금 그녀가 받는 액수의 무거움이 체감될 것이다.
게다가 파울라 같은 경우 아카데미아에서 온갖 문제를 일으켜 월급이 상당히 감봉되어 있는 상황. 어쩌면 초임 시절보다 수입이 적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게 맞긴… 하아… 맞아요. 제가 잘못했네요. 월 30골드씩이나 받는 게 뭔 말을 할 자격이 있겠어요. 닥치고 해야지.”
잠시 정적을 유지하던 파울라는 웬일로 입을 여는 것이 쉽지 않다는 티를 냈다.
“…그럼, 이거 하나만 물을게요.”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다량의 노기(怒氣)와 소량의 장난이 섞인 표정은 사라지고 우려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알리시아 양을 죽일 생각이신가요?”
파울라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그 소리를 귓등으로 한번 튕겨 들으며 병에 담긴 마력을 땅에 심어진 대상물에 부었다.
주르륵. 투명한 병에서 액체가 흐른다. 약간의 마력으로 그 푸른 액체가 깊숙하게 침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거… 저번 잡벌레 구덩이에서 얻은 알리시아 양의 마나잖아요.”
농도가 매우 높은 액체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마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밀도를 자랑한다.
알리시아라는 희대의 천재의 마력을 뿌리 끝까지 뽑아 댔으니 압축시킨다 한들 그 양이 적지 않다. 아직 완성된 몸도 아닌데 말이다.
“도련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알리시아 양에게 올 반작용이 상당할 거라는 건 알아요… 게다가 재료가 될 경험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지죠.”
현재 하고 있는 것과 분야는 다소 달라도 파울라는 마법 술식의 전문가이다. 본인이 확인한 준비물이 이번 술식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맥락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나를 귀찮게 굴고 있지.
파울라는 처음부터 나의 행동을 막고 싶었다. 힘들다며 화를 내는 것은 적당한 방패막이일 뿐.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이기에 언제나처럼 가볍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겠지.
“알리시아 양을 아끼는 게 아니었나요? 그녀는 이런 방법이 아니라도 장래에 충분히…!”
“선생은 미래를 알고 있나?”
“예?”
파울라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조금 전처럼 지금 그런 말이 왜 나오느냐고 쏘아붙일 것만 같다.
“선생은 미래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도련님, 저는 지금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예요!”
“파울라.”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파울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한 결과와 같을 것이다.”
격언이나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정상적인 사고 과정이고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
파울라는 연유를 알지 못했으나 내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입술을 깨물며 우울감에 젖은 눈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말한다.
“알리시아 양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결과’라는 것에 도달할 수조차 없는 거 아닌가요.”
파울라의 힘없는 질문은 내 대답을 원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진행할 것을 알고 있고 그녀도 반대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데도 저런 물음을 한 까닭은 최후의 양심 같은 것이다. 알리시아와의 관계가 파울라 자신의 입을 열어 말하게 했다.
상당히 괴로운 표정이구나, 파울라. 그새 이 정도로 정이 쌓였단 말이냐.
이래서 감정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 불합리한 것은 언제나 이성을 잡아먹으려 들고 통제하려 든다. 감정에 먹히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어도 사람은 동물이 되어 쾌락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런 것에 넘어가지 않는다.
알리시아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내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땐 다른 방안을 사용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