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2)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92화(92/350)
“이거 봐, 아인테른. 당신과 나의 아이야.”
프릭칸리스크는 천에 싸인 아이를 품에 안고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항상 얼음과 같이 차가운 표정을 하고 다녀 예전부터 그 인상만으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기도 했는데, 지금의 이 여인을 보게 된다면 아무도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리라.
“그렇게도 좋아요?”
멀리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인테른이 그녀의 한마디에 곧장 다가와 말했다. 프릭칸리스크가 아이를 보며 이와 같은 말을 한 게 벌써 스무 번은 넘은 것 같다.
“그럼 당신은 안 좋아?”
“저야 당연히 너무 좋아서 행복사 할 것만 같죠.”
“아인테른. 장난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하하. 미안해요.”
아인테른은 아이의 꼬물거리는 손바닥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아이는 반사적으로 그 손가락을 움켜쥐었고. 그 조그만 몸에서 나오는 힘을 느끼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눈은 동글동글하고, 코는 오뚝한 게 딱 이리스를 닮았어요.”
“입이나 귀는 당신을 빼닮았는걸.”
이리스는 프릭칸리스크의 진명이었다. 프릭칸리스크라는 이름을 받기 전에, 그녀가 그녀의 부모로부터 불리던 이름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그녀의 남편인 아인테른만이 진명을 알고 있다.
“걱정이네요. 우리 아이가 이리스의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아 지나치게 예쁘게 생겨서 나중에 여자라고 오해받고 다니는 건 아닌지.”
“아인테른의 유전자도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은 제가 못생겼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뭐, 못생기진 않았어.”
둘은 가끔 장난도 치며, 오순도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거주지로 잡은 곳은 트로아 북부의 한 설산에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폴리모프를 풀지 않는 이상은 둘이서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아이까지 해서 셋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아인테른이 아직 용사의 일을 그만두지 못해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동안 교회에서 돌아오지 않는 날에는 쓸쓸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아내를 위해서라면 한평생을 바쳐 온 용사의 인생을 겸허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해서 미안해.”
“또 그 말이에요? 제가 용사를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건데 왜 이리스가 미안해해요.”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못하니까 그런 거잖아.”
프릭칸리스크는 불문율로 인해 사람들의 일에 개입하면 안 됐다.
어긴다고 해서 그녀에게 커다란 피해가 생기고 하는 건 아니었으나, 깊게 뿌리 잡혀 있는 신념이자 원념 같은 일종의 저주라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이리스.”
아인테른이 어울리지도 않게 눈썹의 각을 세워서 그녀를 불렀다. 이리스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지켜본다.
“이제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 할 때마다 혼날 줄 알아요.”
나름 무서운 목소리로 한다고 했지만, 선천적으로 무르디무른 사람이다. 힘이 실리기는커녕 어색하기만 했다.
이리스는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간지러운 감정을 꾹 누르며 답한다.
“감히 신수를 혼내려고 하네?”
“지금은 신수이기 전에 제 아내이니까요.”
이리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봄의 꽃이 핀 것처럼 화사하면서 아름답다. 그녀는 말한다.
“맞네. 신수보단 당신의 아내가 먼저지.”
최면에 빠진 듯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인테른은.
“제가 오늘 사랑한다는 말 했던가요?”
“가, 갑자기…?”
“이리스가 웃는 모습을 보니까 말하고 싶어졌어요. 사랑해요, 이리스.”
“…또 이렇게 나오고. 내가 매번 당황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아쉽네요. 이리스는 당황하는 모습이 가장 귀여운데.”
“…….”
“아, 얼굴 빨개졌다.”
프릭칸리스크에게, 더 나아가 신수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말은 신수의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방증이었다.
남은 삶은 대략 50년. 그녀가 살아온 500년이라는 긴 시간에 비하면 무척이나 짧았다.
하지만, 프릭칸리스크는 슬퍼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50년이 지금까지 살아온 500년보다 소중하고 값져서, 오히려 평생 누려 보지 못한 행복감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항상 사람들에게는 고통과 상처만을 받아 왔었는데. 그런 이들로만 가득한 게 사람이라는 종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라는 생물이.
남자라는 인간이.
아인테른이라는 남편이.
이토록 커다란 선물이 되어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와 함께 아이를 기르며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50년이 될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 남자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
“삐졌어요?”
“안 삐졌어.”
“삐졌군요….”
“안 삐졌다고.”
“이리… 프릭칸리스크. 내가 미안해요. 함부로 이곳에 타인을 데려오면 안 됐던 건데. 경솔했어요.”
아인테른이 집요하게 굴자,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고 있던 프릭칸리스크는 도로 시선을 바로 해 그를 노려보았다.
“아인테른. 십이신수를 뭐라고 보는 건가. 고작 그런 걸로 마음이 상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이리스가 고압적인 말투가 될 때는 당황하거나 마음이 상했을 때뿐이라고 순간 말할 뻔했지만 침과 함께 목구멍 뒤로 넘겼다.
그러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프릭칸리스크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그의 거동을 멈춘다.
“그 이상 다가오면 다리를 잘라… 아니, 아니다….”
그녀는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아무리 낯선 이가 자신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에 더러운 발을 내밀었다고 하더라도, 이 남자는 아인테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이다.
“내가 첫 손님에게 실언을 뱉었군.”
프릭칸리스크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음성이 들린다.
“아닙니다. 신수님. 아인테른이 몇 번이나 거절했던 걸 제가 사정사정을 해서 오게 된 것이니…. 냉대당해도 마땅하죠.”
그 남자는 하는 목소리는 힘이 없고 낮았다.
진중하게 말을 이어 가는데.
천천히 자신을 낮추고 있음은 분명한데.
“실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죠.”
불쾌했다.
그녀는 저 남자가 처음 자신을 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똑똑히 봤다.
어두운 동굴 속에 빛이 드리운 것처럼 확대되는 동공과 순간 불규칙하게 바뀐 숨소리를 정확히 들었다.
프릭칸리스크가 아인테른에게 차가운 모습을 보이는 건 단순히 낯선 사람을 데려왔기 때문이 아니다.
‘저 남자는 불길하다.’
그런 생각에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혹여나 저 남자가 자기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천을 가려 숨겼다. 아이만큼은 절대로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어두운 남자가 떠나가고.
“이리스 내가 진짜 잘못했어요. 확실하게 거절했어야 했던 건데.”
“…….”
“어떻게 하면 화를 풀어 줄 건가요…. 한 달 동안 제가 아이를 재울까요? 당연히 중간에 깨는 건 제가 책임지고요. 아, 그게 아니다. 이리스는 아무것도 하지 마요. 제가 집안일이랑 육아 전부 도맡아 할게요!”
“…….”
프릭칸리스크는 한숨을 쉬었다. 아인테른이라면 분명히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거 말고.”
그녀는 아인테른이 내세운 안과는 다른 걸 제시했다.
“앞으로 저 인간 데려오지나 마.”
“정말로 미안해요.”
“…….”
분명 꺼림칙하고 싸한 기운이 드는 남자였으나, 아인테른과 친한 인물을 함부로 뒤에서 욕하는 건 마음에 걸렸다.
아인테른은 자신을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이곳에 온 것이다. 그냥 느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어울리지 말라거나, 흉을 보거나 할 순 없었다.
“정말로, 데려오면 안 된다?”
오지 못하게 말해 두기만 했다.
…왜.
왜 그랬을까.
“알겠어요. 용사를 그만두면 ‘크라인’과 만나는 일도 거의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럼 다행인데….”
크라인이라는 놈이 이곳에 왔을 때.
좋지 못한 낌새를 느꼈을 때.
거기서 바로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사지를 절단하고 머리를 으깨 버렸어야 했는데.
그래야 달라졌을 텐데…….
⎯빠드득.
프릭칸리스크는 과거의 악몽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이빨을 갈았다.
자기 아들을 납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떠올리자 핏줄이 올라오며 마나가 뛰쳐나가고자 꿈틀거렸다.
“…….”
진정하자.
괜히 감정과 함께 조금의 마나가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위치가 발각될 위험이 커진다.
이미 아인테른을 욕한 두 놈을 가루로 만드는 데 사용한 적 있으니 포위망이 좁혀졌을 것이다.
그녀는 현재, 뒤르테문드에서 가장 서늘하고 서글픈 곳에 있었다.
스산한 나무의 그림자가 커다란 비석들을 쓰다듬어 위로한다. 지금 이 땅의 아래에는 뜨거웠던 육신은 사라지고 차가운 백골이 되어 묻혀 있다.
프릭칸리스크는 그중 한 묘비의 앞에 서 있었다.
묘비에는 이름이 적혀 있다.
「아인테른」
이건, 그녀의 남편이었던 자의 이름이었고.
빼앗긴 아들의 아비였던 자의 이름이었고.
인류의 적과 싸우다 전사한 용사의 이름이었다.
“…….”
그녀는 이곳에 꽃 한 송이 올려놓을 수 없다. 향을 피울 수도 없고, 추도문을 읊을 수도 없다.
그럴 자격이 없다.
프릭칸리스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아.”
그녀의 차가운 손이 더욱 차가운 비석을 만진다. 그녀는 달라진 것이 하나 없이 그대로였는데, 아인테른은 너무 달라져 스스로 손을 뻗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녀가 손을 맞대지 않으면 감촉을 느끼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안정감을 주던 따스한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고. 그 온기를 느끼는 것도 불가능하다.
“…조금만 기다려 줘.”
프릭칸리스크는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그녀의 감정을 대변하듯 여름을 밀어낸 겨울의 건조한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은 다른 이의 냄새를 타고 오게 했다.
그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기 전.
다시 남편에게 전한다.
“첫 번째 복수를 지금 끝낼게.”
『우리 오랜만이다. 그치.』
각종 뼈로 몸체가 구성된 괴기한 대낫. 그걸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니는 지나치게 창백한 남자아이.
그 남자아이는 한 손에는 검은 쥐를 들고 있었다. 이미 목숨은 사라졌는지 움직이질 않는다.
『여기에 있으면 곧 불청객들이 올 텐데. 어떻게 할래?』
남자아이는 장난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은 어디여도 상관없지만 네가 원한다면 장소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미. 뻔뻔하게도 내 앞에 나타나는구나.”
남자아이의 이름은 아미.
여신교 대주교 중 하나인 아미였다.
『나도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너를 좀 찾아다녔어. 근데 숨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더라? 고생깨나 했다고.』
아미는 말한다. 자신은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나는 네 뿔만 있으면 돼. 그 한 짝의 뿔만 잘라서 준다면 내가 엄청난 선물을 줄게.』
키득거리며 말을 잇는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에는 비아냥이 담겨 있다.
『무려 ‘살려 준다’라는 선물 말이야!』
순간.
아미는 커다란 대낫을 들고는 달려들었다.
영혼을 약탈하려는 사신과 같이 잔인하고 매섭게 선을 긋는다.
캉⎯⎯!
그러나, 뿔을 베지 못하고 제지당하는 낫.
프릭칸리스크의 왼팔의 피부가 얼음판처럼 변하더니 그 충격을 막아 낸 것이다.
힘겨루기하는 동안 그녀는 물었다.
“왜 내 남편을 죽인 거지?”
그 대답에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아미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눈은 악마와 같이 잔혹하다.
『알티프가 용사를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끝까지 그렇게 발뺌하겠다 이거로구나.”
그녀는 강화된 몸으로 낫을 튕겨 내더니 아미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의 몸은 냉기 그 자체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얼릴 기세로 온도를 떨어뜨렸다.
묘지를 감싸는 허연 연기가 얼어붙어 땅에 달라붙는다.
아미는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목부터 해서 조금씩 얼어붙고 있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손톱으로 목을 긁으며 눈알을 굴렸다. 그녀가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이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두 사람.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아, 내가 뭐랬어. 불청객이 올 거라… 어?』
대상을 본 아미의 눈이 회동그래진다.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은 뜻밖의 환희를 맞이하여 크게 요동친다.
마치 첫사랑을 한다는 게 이런 거라는 것처럼 심장은 크게 벌떡거렸고. 입꼬리는 길게 찢어져 이빨이 전부 보이게 된다.
『이거 놔.』
아미는 순식간에 프릭칸리스크의 결박을 풀었다.
매달려 있던 그의 작은 몸체는 땅에 떨어지고 이성이 없는 짐승처럼, 네 발로 땅을 짚은 그.
곧이어.
콰앙⎯⎯!!
잔뜩 응축시켰던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폭발적으로 뛰어든 아미.
그의 번들거리는 눈에는 그토록 기다렸던.
무려 15년간을 숙성시켰던 최고의 식사가 있었다.
이 순간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아직 시기가 빠르긴 하지만, 그까짓 약속 따위 알게 뭔가. 지금 이렇게 눈앞에 그가 살아 있는데 이걸 어떻게 참으라고!
아미는 환호에 울부짖는다.
드디어. 드디어 만났다.
드디어 만났어!
『헤일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