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4)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94화(94/350)
처음부터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신수의 아이를 뺏을 생각도 없었고, 여신교와 손을 잡을 생각도 없었다.
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료, 아인테른.
그는 심성이 곱고 항상 밝게 웃고 다니는 용사였지.
그가 프릭칸리스크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듣고 나선 놀라기도 했지만, 일은 건 호기심이었다.
그래, 처음에는 분명 순수한 감정이었다.
사역마와 마물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 정점에 있는 존재를 직접 대면해 보고 싶었지.
그래서 그가 싫다는 걸 억지로 밀어붙여, 간신히 그와 신수의 거처에 발을 들이미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감격하고 말았다.
세상에 이토록 완벽에 가까운 마물이 있었다니.
아인테른이 오두방정은 허풍이 아닌 사실이었다.
그녀는 차갑게 쏘아보며 낯선 사람을 밀어내려 했지만, 그마저도 황홀하게 느껴졌다.
홀로 뒤르테문드에 돌아가선 그녀를 회상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느껴 보는 감격이라는 감각에 매료되어 하루, 일주일, 몇 주일 동안을 그녀만을 떠올렸다.
이 감각은 마치, 대주교 글라샬라볼라스를 처음 봤을 때의 것과 마찬가지였다.
온갖 괴물이 합쳐져 하나가 된 존재와 대등한.
겨울을 담은 십이신수 프릭칸리스크.
‘키메라의 몸에 완전에 가까운 그녀를 넣는다면 더욱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접기로 했다.
아무리 욕심이 들어도 동료였던 자의 아내를 죽여 재료로 사용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프릭칸리스크에 대한 불순한 생각이 들수록 더욱 키메라 연구에 몰두하니 서서히 잊혀 가는 듯했다.
그러나 5년 후.
⎯잘 있어요, 크라인. 그동안 고마웠어요.
은퇴를 선언했던 아인테른이 주어진 모든 기간을 마치고 교회에 무기를 반납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요 몇 년 동안 그와 그녀의 거주지 근방의 마을을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었는데 그것도 이제 임기가 끝나게 된 것이었다.
그가 뻗은 손을 잡자 격한 감정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그 연약한 바람에 다시 살아나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를 다신 볼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이 한구석을 차지하기도 했겠지만, 그건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다.
공간 대부분을, 넘치도록 차지하고 있는 건.
‘이제 신수를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건가…?’
미칠 것만 같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 몸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랬으니, 그런 말을 하면서 붙잡았던 것이다.
이미 그때부터.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음습하게 상상하고 있던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인테른, 마지막으로 나와 술 한잔하지.
그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제안이었다.
아인테른은 난처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천성이 좋은 건 바뀌지 않아 결국 승낙했다.
마지막이라는 사실과 매몰차게 축객령을 내렸던 과거가 구슬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술을 마시는 내내 그는 행복해 보였다.
자랑하진 않았지만,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표정은 풀어져 있었고 실실 웃어댔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분노가 조금씩 올라왔다.
그는 행복하다.
신수를 아내로 두고 그 아이를 품었으니.
이 얼마나 독점욕이 강하며,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인가.
다시금 생각하니 그가 천성이 착한 게 아니라 고약해 보이기 시작했다. 욕심쟁이도 이런 욕심쟁이가 없지.
그런 욕심쟁이는 벌을 받아도 괜찮아.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순간.
그의 잔에다 독을 타 놓았다.
몇 시간 지나고 나서 효과가 발동하는 강한 마비 독이다,
그걸 좋다고 마시는 꼴을 보니 속이 다 후련해졌다.
…하하.
사실을 말하자면, 이건 즉흥적인 계획이 아니었다.
여신교와 따로 연락하여 아미를 접해 놓은 건 진즉이었고. 거래를 했었던 것도 예전이었다.
프릭칸리스크를 본 순간부터 이미 계획은 진행되고 있었다.
저급하고 상스럽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그만큼 마물에 대해서는 진심이니까.
어미는 건드리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좀스럽고, 더 쉬운 목표물을 노린 것이지.
‘그녀에게는 자식이 있지 않은가.’
아인테른이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프릭칸리스크가 불안해질 틈을 타 아미가 그 근처 마을부터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미에게는 이번 교섭을 대가로 마을 6곳과 뒤르테문드의 갖가지 정보를 내주었다. 학살을 이어 간다고 해도 마땅히 옮길 대상이 있으니까 괜찮았다.
어차피 목격자는 모두 알티프로 변해 버릴 것이고, 나중에 조사를 들어갈 적에는 정보를 왜곡하면 되니까.
이곳 뒤르테문드에서 그 정도의 짬과 능력은 있었다.
아인테른이 보호하던 마을이 불타오르자 프릭칸리스크가 튀어나왔다. 그런 그녀에게 아미는 머리를 던져 주었다.
당연히 아인테른의 머리였다.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그녀는 절규했고 설산에는 산사태가 일었으며, 거센 눈바람이 흩날렸다.
그건 신호이기도 했다.
그녀와 아인테른의 거주지로 향했다.
오두막은 5년 전에 봤던 그곳 그대로 있었다.
혹시나 집을 옮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었다. 역시 아인테른이 마을을 수호해야 한다는 명을 받아 옮기기 용이치 않았으니.
…뭐, 전부터 마을을 탐문하기도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10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불과 5년 만에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역시 신수라 사람의 성장 속도로 생각을 하면 안 됐다.
그대로 녀석을 데리고 나왔다.
다소 거친 방법을 쓰긴 했지만, 어차피 재료가 될 녀석이다. 다소 생채기가 생기는 것쯤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를 할 생각에 상당히 들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복귀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은가?
분명 설산으로 돌아가다 아미에게 암살된 아인테른 역시 아무런 불만 없을 것이다.
그렇게나 행복한 표정을 지어 놓고서는 불만을 토한다면 그거야말로 저급한 사람이지.
암, 그렇고말고.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프릭칸리스크의 자식은 십이신수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힘을 숨기고 있는가 했는데 아니다.
신수의 힘이 계승을 통해 전해진다는 정보는 알고 있어도 이렇게 ‘전혀’ 전해지지 않을 줄을 몰랐다.
이래서는 그냥 좀 괜찮은 마물 수준이다.
그 개고생을 했는데 고작…!
이를 해결할 방법은 세 가지.
현 프릭칸리스크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녀를 죽이거나.
힘이 담긴 그녀의 뿔을 잘라 내거나.
「계승」을 하게 만드는 것.
문제는 목숨의 위협을 느낀 프릭칸리스크가 계승을 발동하면, 그 힘이 5일 동안 몇 배로 강해진다는 점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미에게 두 번째 거래를 제안했다.
또다시 손을 더럽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심지어 몸 안에 신충을 박아 넣게 되었다.
아.
어째서 신은 순수하게 학문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 자를 자꾸 더럽히려 드는 것인가!
이게 시련이고 시험이란 말인가.
너무나 고달프구나.
***
프릭칸리스크가 뒤르테문드에서 드래곤의 모습을 보인 채 날아간 밤.
그로부터 3일이 지났다.
크라인은 교회의 지하에 마련된 그만의 장소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본래 그의 계획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아미와의 연락은 끊겼다.
아무래도 그 밤에 봤었던, 싸우다 도망쳤던 거대한 마나의 기운이 아미가 맞는 듯하다.
아마, 다른 인물은 헤일리온이었겠지.
“그 멍청한 자식! 하등 도움 안 되는 괴물 새끼!”
⎯퍽! 퍼억!
크라인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소년에게 발길질해 대거나 짓밟는다.
⎯꾸드득.
소년의 머리에는 만지면 차가울 것 같은 두 개의 뿔이 달려 있다.
온몸에는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고, 공허한 눈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생물처럼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다.
저항의 의지를 잃었는지 가만히 웅크린 채 맞고만 있다.
“그 덜떨어지는 알티프!”
대충 화풀이를 마친 크라인은 구두에 튄 핏자국을 닦아 냈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려 했으나 더는 못 참겠다.
지금부터 밖으로 나갈 요량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감옥과도 같은 그 지하의 방문을 잠갔다. 생기를 잃은 소년, 프리칸리스크의 아들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놈에게 시선을 줄 것도 없이 이동했다.
교회를 나선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아간다.
그 걸음걸이가 빨라 달리는 속도와 얼추 같았다.
주변의 변화를 무시하며 그는 잠시 끊긴 사고를 이었다.
아미.
그렇게 개무시를 하더니 결국은 헤일리온에게 패배해 뒤꽁무니를 치며 달아났다.
녀석의 성격상 그냥은 물러나지 않을 거 같긴 하지만, 아마 프릭칸리스크와 관련된 일은 완전히 잊어버렸겠지.
아무리 사람인 척해도 결국은 알티프에 불과하니 말이다.
‘아니. 그딴 녀석은 됐고. 눈에 들여야 할 건 따로 있다.’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프릭칸리스크와의 불가침협정을 파기하라! 파기하라!”
“프릭칸리스크를 토벌하고, 떠나간 이들의 넋을 달래 줘라! 달래 줘라!”
광장에 사람들이 구름과 같이 몰려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외치는 건 공통으로 프릭칸리스크와 맺은 협정을 파기하고 그녀를 토벌하는 것.
프릭칸리스크가 잠들어 있던 도시를 깨운 그날 밤.
모든 시민은 도시에서 날아올라 설산으로 돌아가는 드래곤을 보게 되었고, 이는 당연히 화자가 되었다.
드래곤의 정체는 프릭칸리스크.
최근,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니며 마을을 파괴하는 걸로 유명한 신수였다.
그런 그녀가 뒤르테문드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들이 화를 내는 건 그런 사항이 아니었다.
모두의 앞에서 연설을 했던 한 남자가 떠오른다.
⎯프릭칸리스크와 저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은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는 곧 불가침 협정을 의미하여 더 이상 그녀가 살인을 이어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카데미아에 멘토로 갔을 적부터 눈독을 들이다 실패한 사역술의 천재.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헤일리온의 멘티로 이곳에 온 그가 프릭칸리스크를 이 도시에서 내쫓아낸 장본인이었다.
바르간은 첫날. 성난 시민들에게 전했었다.
프릭칸리스크의 토벌이 아닌 회유를 택했노라고.
…어이가 없다. 누구 마음대로?
누가 멋대로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단 말인가!
그녀는 죽어야 한다.
죽어야만 그녀의 자식이 힘을 물려받게 되는데 회유는 무슨!
어처구니가 없는 점은 한둘이 아니다.
그녀와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는 바르간.
자식을 내버려 두고 순순히 물러난 프릭칸리스크.
이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교회 등.
교회의 일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곧바로 쳐들어갔었으나, 토벌을 해야 한다는 청원은 거절되었다. 아예 읽어 보지도 않은 듯했다.
뒤르테문드의 입지가 있는 자신이 이 정도의 취급을 당한다면 분명, 헤일리온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겠지.
…그 새끼.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해서 크라인은 현재 바르간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그와 직접 대면하여 겉으로 발라져 있는 거짓이 아니라 속에 담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만약 순순히 입을 열지 않을 거 같다면 자신의 사역마를 사용할 의향도 충분히 있었다.
분명 바르간이 말한 바는 모두 거짓이다.
프릭칸리스크가 그냥 물러났을 리 없으며 아인테른에게도 하지 않은 ‘계약’을 했다는 건 더더욱!
어차피, 녀석은 더 이상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멘티의 관계였다면 조금은 친절하게 했을지도 모르나, 코웃음 치며 뻥 차 버리지 않았던가.
헤일리온의 팀원들과 같이 있더라도 상관없다.
교회의 일로 사실을 확인하러 왔다고 하면 누가 막을 것인가.
크라인은 나름의 타당한 이론을 가지고 행동했다.
현재 이 도시에서 악평이 날리고 있는 건 사건의 주동자인 크라인이 아닌, 바르간이다.
그가 어떤 뜻과 사상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모든 비난의 화살은 그에게 향해 있으니 적어도 정의와 민심은 그에게 있지 않다.
쾅쾅⎯!
바르간이 있다는 숙소의 앞에 도착한 크라인.
성난 걸 숨기지 않은 채 거칠게 문을 두드리자.
“오랜만에 뵙는군요.”
능글맞은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대도시에 속하는 인수에게 욕을 먹는 이의 얼굴이 이렇게 평온하고 여유로운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바르간.”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녀석아.
네 거짓을 파헤쳐 내 연구의 토양으로 삼아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