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6)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96화(96/350)
광장은 소란을 넘어 광란에 가까웠다.
시민의 목소리는 하나가 되어 같은 문구를 외치고 있었던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는데, 그 흐름은 단번에 뒤바뀌어 버렸다.
영상 마법은 끝나지 않고 사후 처리에 대한 발언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잔뜩 흥분하여 본인의 언성을 높이기 바빴다.
영상을 보고 있던 한 남성이 의문을 품자, 주변에 있던 백발의 노인이 답한다.
“그러니까 결국 이게 무슨 말이야?”
“뭐긴 뭐야. 크라인이 우리 모두를 속였다는 게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던 그가 대체 왜….”
“에잉. 쯧쯧쯧. 이 양반아 아직도 그렇게 파악이 안 되나? 신수인 프릭칸리스크를 얻으려고 별 지랄 발광을 한 게 아닌가! 그 때문에 무고한 이들이 죽어 나간 거고! 그 극악무도한 새끼 내 눈앞에 보이면 곤죽을 내 버리겠어!”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우리도 결국은 방금 전까지 이곳에서 프릭칸리스크 토벌을 외치던 다 똑같은 놈들 아니오? 우리도 다 썩을 놈들인데 누가 누구를 욕하는 거요?”
“그거랑 이거랑은 엄연히 다르지! 우린 크라인이라는 개자식에게 속은 피해자들이 아닌가!”
프릭칸리스크의 토벌을 외치던 자들은 여러 갈래로 분산되었다.
⎯이 영상 마법은 바르간이라는 작자가 꾸민 계략이다.
⎯아니다. 지금까지 뭘 보고 있었냐. 크라인의 입으로 직접 뱉지 않았느냐.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용사가 오히려 학살극을 벌인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크라인이 죽일 놈이라는 의견이 강세였다. 그의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기는 했으나 본인의 입으로 직접 자백을 했다는 게 무엇보다 강력한 증거였다.
노인은 소리친다.
“아무튼,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 모든 건 저 죄인 크라인의 탓인 게야! 저놈을 잡아 패야 하는 게지!”
“…….”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탑햇을 쓴 남성은 인상을 구겼다. 인간의 본성적인 악함이 역겨워서가 아니라 노인의 목청이 워낙 커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저들의 목을 베어 침묵을 가져올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삼킨다.
한 손으로 모자의 끝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영상을 바라본다. 실로 귀족적인 화사한 외모의 젊은 학생이 보인다.
영상에 비쳐지는 인물은 바르간.
최근에 ‘테라리움’에 방문해 자신을 놀라게 했던 인물이었다.
‘「추기경의 계약서」를 이렇게 사용하였군요.’
정확히는 추기경 중, ‘벨레드’의 힘을 담아 강제력이 발생하는 계약서였다.
그가 프릭칸리스크와 동등한 계약을 맺었다는 건 사역마 적인 계약이 아닌 추기경의 계약서에 입각한 발언이었겠지.
추측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확정이나 다름없다.
바르간은 테라리움에서 자신을 찾아와 추기경의 힘이 담긴 계약서를 요구했다. 이것만 봐도 확실한 근거였다.
물론, 그것만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었지.
⎯십이신수 중 하나인 프릭칸리스크의 자식이 현재 뒤르테문드 소속의 용사, 크라인에게 귀속되어 있나.
그 질문의 답은 정해져 있으며 알고 있었다.
하나, 이는 굉장히 대답하기 난해한 것이었다.
단순히 프릭칸리스크와 크라인.
이 둘의 문제였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비싼 값을 받은 채 팔아넘기고 수수께끼의 인물인 바르간과 좋은 연의 시작을 맺을 수 있었겠으나,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관계에는 여신교의 아미가 개입을 하고 있는 상태.
쉬울 것이라 여기지는 않으나, 자칫 정보를 넘겼다가는 자간에 이어 대주교 하나의 목이 추가로 날아가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따라서 얼트레만은 아쉽게도 해당 정보는 테라리움에서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전하였는데.
여기서부터 보인 바르간의 반응에 비교적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완전히 전환되었다.
“…….”
잠시 그와의 대화를 되새기고 있던 탑햇의 남성, 여신교의 주교 얼트레만은 작게 미소 지었다.
바르간.
그는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죽일까⎯ 하는 고려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죽일 수 없었다.
그도 그걸 인지하고 있었다.
당당함의 원천은 그것인가.
‘여러모로 만만치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무릇 장사란 이런 족속들에게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많은 법.
그는 아마 크라인이 말한 ‘목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파악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애써 모르는 척 연기하며 크라인을 단지 미친놈으로만 취급했으나,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게 되어 있다.
속에 똬리를 튼 거대한 뱀을 키우고 있는 얼트레만은 바르간이 자신과 동류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테라리움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손님.’
그는 이어지는 바르간의 영상을 바라보기를 멈췄다. 모자를 내리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모래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는 사막의 동물처럼.
군중 속으로 숨어 기척을 지운다.
바르간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제 머지않아….
‘이거… 새로운 대주교들을 선발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들은 항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곳은 이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크라인을 제압한 자리에서.
바르간을 주도로 해서 그에게 저주 마법을 걸었다.
초점이 사라진 그의 입은 멋대로 움직였다.
뇌에 제한이 풀린 것처럼,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술술 꺼낸다.
그러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통신이 가능한 사역마를 데리고 있던 야닉의 팀원 중 한 명이 이를 듣고는 보고를 올렸다.
“프릭칸리스크의 아이를 안전하게 확보했다고 합니다. 다만, 상처가 너무 심해 우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야닉은 착잡하면서도 부글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듯하지만, 확실하게 타오르는 불길이 그의 눈동자 안에서 타올랐다.
해당 소식을 같이 듣게 된 크라인은 외친다.
분명 저주 마법을 통해 멀어진 정신 속에서 모든 사실을 불고 있었는데, 프릭칸리스크의 아이를 확보했다는 소식이 그의 정신을 깨웠다.
“너희가 뭔데 그걸 훔쳐 가나! 그건 내 것이란 말이다⎯⎯!”
“크라인….”
“아,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라 목소리가… 분명히 내 것이지만, 나는 그저….”
야닉의 굵은 다리가 바닥을 꺼트릴 듯이 무겁게 다가갔다. 크라인에게 다가가는 그의 손은 꽉 주먹 쥐어져 거칠었다.
그런 야닉을 보며 크라인은.
“야닉… 자네가 날 도와주게. 아인테른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지내 왔던 사이가 아닌가…. 나의 오해를 풀어 주게!”
간신히 화를 억눌러 오던 야닉은 추락할 대로 추락한 남자를 보고 있을 수만 없어.
퍼억⎯!
커다란 무쇠주먹으로 크라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 진동은 방 안의 물건들이 떨릴 정도의 바람을 일으켰고.
코가 깨져 버린 크라인은 코피를 흘리며 괴로워한다.
“크라인, 자네는 정녕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가⎯⎯!”
달아오른 숨을 내쉬는 야닉은 이빨을 갈았다.
그는 죽도록 패고 싶다는 욕구를 억제하고 억제하여 대신 입을 연다.
“알아 두게! 내 아무리 자네의 심장을 뽑아 버리고 싶어도, 그건 내 몫이 아니기에 참고 있는 것이지 자네를 용서하기 때문이 아니야!”
야닉이 생각할 때 그에게 직접적으로 처벌을 내릴 인물은 자신도, 바르간도 아닌 다른 존재였다.
배신감과 죄책감에 심장이 괴로워도 그녀에 비하면 자신의 감정은 모래성의 모래알 정도이니까.
야닉은 정중하게 헤일리온 일행과 바르간, 핀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마치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그는 깊게 사과하며 말한다.
“이만, 크라인을 데리고 가서 심판을 받게 하겠네. 이번 일은 정말로… 면목이 없었군.”
뒤르테문드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프릭칸리스크의 토벌하기 위해 지원군으로서 중앙교회에 요청하여 헤일리온 팀의 힘을 빌렸고.
순전히 그들의 도움만으로 일을 해결하나 싶었더니, 그 원흉이 뒤르테문드의 내부에 있었다.
그들의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수준이다.
“사후 처리에서 이를 모두 배상하도록 하겠네. 그럼….”
그는 굳이 ‘배상’이라는 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가면서 구속당한 크라인을 끌고 갔다. 그의 팀원들도 나가기 전에 모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크라인은 마지막까지 정신이 빠져나간 눈으로 바르간을 쏘아보았다. 막상 당사자인 바르간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헤일리온 팀과, 바르간, 핀만이 남게 되고.
“바르간 학생은 교섭하는 걸 잘하나 봐요. 프릭칸리스크와 계약을 맺지도 않고 구두로만 일을 처리하다니.”
“이미 헤일리온 님께 말씀드렸습니다만, 한 번 더 말씀드리자면, 상대가 원하는 바와 제가 원하는 바가 같으면 교섭이 틀어질 일은 없습니다. 굳이 강제성을 띠지 않더라도 말이죠.”
바르간은 추기경의 계약서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숨겼다.
헤일리온 또한 그의 말을 순전히 믿고 있는 건 아니었으나, 굳이 내색하지 않는다.
“아미에 관해서는 발설해 주지 않아서 고마워요. 아무리 크라인에게 모든 비난을 모은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위상이 크게 떨어질 만한 일이었는데 덕분에 그나마 유지가 가능하겠어요.”
크라인이 독단적으로 움직였다는 것과.
여신교의 아미와 함께 움직였다는 것은 그 크기와 무게가 다르다.
가능하면 아미에게 모든 화살을 쏘이게 만드는 게 가장 보기 좋았겠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교회는 크라인만을 버리기로 택했다.
모든 일은 크라인이 독단적으로, 단독으로 움직여서 벌어졌다고 전해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며 교회의 무능을 최대한 감춘다.
또한, 용사와 알티프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신뢰성과 이미지에 지대한 타격을 입히기에 보안에 붙이기로 했다.
결국 썩은 줄기를 잘라 낸 셈이다.
다른 것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원래 세상이라는 게 이렇게 굴러가는 게 아니겠는가.
“저 사역마는 바르간 학생이 양도받고 싶다고요?”
헤일리온은 크라인의 사역마인 키메라를 가리켰다.
키메라의 몸에는 빛의 사슬이 칭칭 감아져 있는데, 헤일리온의 강력한 마법에 의해 봉인된 것이었다.
“네, 아시다시피 저는 사역마를 다루지 않습니까. 비록 주인인 크라인은 쓰레기에다가 형편없는 자였으나, 그가 만들어 낸 사역마 또한 하나의 마물. 사랑으로 보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강해 보이니까 데려가는 건 아니고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만, 사역마를 진심으로 아끼는 자의 정의심. 이라고 봐 주시면 감사할 것 같군요.”
헤일리온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간은 이번 일에 가장 공로를 많이 한 인물이다.
본래라면 크라인의 사역마를 교회에서 보호해야겠지만, 그에게 선물하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르간은 바닥에 딱 달라붙어 그르릉거리는 키메라의 앞에 웅크려 앉았다.
사자의 갈기가 아주 멋들어지는 아이다.
천천히 이를 쓰다듬자, 날카로운 이빨로 위협을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기에 저항은 불가능하다.
“겉으로는 다섯 종류의 마물을 섞은 듯 보이지만… 안에 두 마리가 더 섞여 있군. 총 일곱 마리가 합쳐져 있는 건가… 그야말로 키메라로군.”
바르간은 마나를 흘려보내며 사역마의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최초의 두 마리의 사역마. 이중융합이 틀이 되어 그 겉을 다섯 마리가 감싸고 있다. 삼중융합은 실패한 것으로 보이고 그 빈틈을 물리적으로 메꾼 것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자면, 솜씨가 나쁘지 않아 일반적인 삼중융합보다 효율이 좋다.
재료라는 표현은 불쌍하지만, 재료로 사용된 사역마도 모두 수준급이고.
이 정도라면… 상급 마물 네 마리를 제대로 융합시킨 것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 심지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사용된 사역마의 수와 동일하게 7개.
이런, 보면 볼수록 불쌍하지만 매력적인 아이다.
단순 위력으로 보자면 지금 데리고 있는 그 어떤 사역마보다 강력한 아군이 생겼다.
“말만 잘 듣게 하면 되겠군.”
바르간은 키메라를 쓰다듬으며 혼잣말한다.
그러다.
헤일리온 팀의 막내, 가온의 앵무새 사역마가 울부짖는다.
⎯뒤르테문드를 향해 다가오는 무리 발견. 무리 발견.
잠시 안정되었던 모두의 청각이 곤두선다.
⎯대주교 1체. 주교 8체. 사제 약 3,500의 군이 뒤르테문드를 향해 진격 중 뒤르테문드를 향해 진격 중.
그렇지.
슬슬 올 때가 됐다 했다.
그렇게 꼴사납게 도망쳤는데 가만히 있을 녀석이 아니지.
바르간은 헤일리온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아미가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군요.”
분명 이번에는 권능해방을 마치고 오는 중이겠지.
방심하다가 호되게 당했으니까.
뒤르테문드에서의 이야기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