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7)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97화(97/350)
아미가 군세를 이끌고 뒤르테문드에 쳐들어오고 있다.
안 그래도 프릭칸리스크와 크라인에 관한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뒤르테문드가 더욱 요동친다.
용사, 성직자, 병사들에 의해서 간신히 통제되고는 있지만 각종 물품을 사재기하거나 패닉 상태에 빠진 경우도 상당하다.
대주교가 대도시를 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물론, 함부로 행동을 유추하거나 짐작할 수 없는 괴물들이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는 그랬다.
적 3,500의 군세가 엄청난 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 이들의 두려운 점은 무력과 바퀴벌레보다도 뛰어난 번식력이다.
사람들을 모체로 새끼를 칠 수 있는 사제급 알티프에게 시민들은 크나큰 두려움을 느꼈다.
심지어는 뒤르테문드의 주변 마을이 여섯 곳이나 당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는 와중이다.
자연스럽게 공동체보다는 가족을, 가족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혼란으로 인해 크라인의 사형도 잠시 미뤄지게 되었다. 그는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뒤르테문드 지부 교회의 감옥에 투옥된다.
프릭칸리스크가 그에 대한 처분을 한시라도 빨리 내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
나 또한 가만히 뒤르테문드의 전쟁 준비를 살피며 상황의 흐름을 읽어 갔다.
…그렇게, 비상사태를 맞이한 뒤르테문드 지부 교회는 헤일리온 팀을 불렀고. 나와 핀은 이에 함께한다.
“뒤르테문드는 이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습니다. 악의 무리가 증오와 피의 악취를 풍기며, 그 불길한 이빨을 길게 내빼곤 위협합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든 높디높은 천장에서 변형된 빛이 교회의 내부를 밝힌다.
거대하고 신성한 나무, 위그드라실을 나타내는 각종 그림들과 이를 지키는 용사들, 최초의 마법사가 그려져 있는 화려한 양식이다.
교회의 내부.
복도와 같이 길게 뻗어 있는 신랑과 측랑에는 뒤르테문드 소속의 용사들이 줄 서 있다.
그 최선두. 성가대석과 제단이 놓인 내진의 앞에는 헤일리온과 그의 팀원들. 그리고 나와 핀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다.
해당 지부의 장, 성왕(聖王)의 잔잔하지만 확고한 목소리가 교회에 이어서 울리게 된다.
“이에. 나, 뒤르테문드의 성왕. 성 클레멘스토는 헤일리온과 그 팀원들에게 새롭게 명합니다.”
뒤르테문드 성왕은 위그드라실의 문양이 새겨진 지팡이를 두 번 탁. 탁. 바닥을 쳤다. 이는 용사에게 임무를 내리기 전 하는 의식의 일종이었다.
“대주교 아미와 그 군세로부터 뒤르테문드를 지키십시오.”
명확한 지시가 떨어졌다.
각 지부의 성왕,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중앙교회의 성제(聖帝)의 명은 절대적이다. 용사들은 반드시 이를 따라야만 하며 거부권은 없다.
군대와 종교가 통합된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헤일리온과 팀원들은 짧고 간결하게 승낙의 대답을 보였다. 여전히 고개는 숙인 채 그 명령에 어떠한 불만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전쟁에 관한 정보와 절차로 몇 마디가 더 오가다, 나와 핀의 이름이 나왔다.
“아카데미아의 학생,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과 토이렌 트로아 핀은 선택하십시오.”
듣자 하니, 프릭칸리스크 때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학생들이 강제로 참여하기에는 이번 전장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아직 재능을 온전히 개화하지 못한 학생들이 죽어 나가면 아깝지 않겠는가.
성왕은 우리에게 물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또한, 동시에 프릭칸리스크의 일을 언급한다.
“이미 어린 용사들이 뒤르테문드에 공여한 바는 큽니다. 십이신수인 프릭칸리스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그 누명을 밝혀 준 것. 크라인의 악행을 밝혀낸 것만 하더라도 아무도 우리 용사들을 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컨대, 슬쩍 뒤로 빠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피해가 없을 거라는 말이다. 자신 없으면 이번엔 잠시 물러나서 가지고 있는 재능을 훗날 꽃피우라는 바.
게다가, 사석에서 오고 간 말에 의하면 나와 핀의 이번 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앙교회로 돌아가면 마땅한 보상을 받게 된다고 했다.
아무런 문제 없이 이를 받기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는 편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고작 그런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
난 아직 아미의 심판무구를 얻지 못했다.
또한 승리가 확정된 전장에서 도망치는 것만큼 우책이 어디 있겠는가. 헤일리온을 따라 쉽게 영광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이거늘.
성왕의 물음은 끝이 났다. 잠시 정적이 맴돈다.
이제는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동굴과도 같이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저, 슈겐하르츠의 삼남.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
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성왕을 발치를 바라봤다. 기본적인 예의 정도는 지켜 주는 건 귀족의 소양이다.
“교회의 영광, 그리고 뒤르테문드를 위해. 이번 전장의 출전을 받들겠다. 밝히는 바입니다.”
당연히 핀도 마찬가지이고.
***
교회에 출전을 알리고 나서 나와 핀은 헤일리온을 따라 뒤르테문드 교회의 무기 보관소로 향했다.
아카데미아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으나 전체적인 질은 그보다 높다.
아카데미아에서 지급받는 건 연습용 무기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번쩍번쩍한 무기의 향연을 보던 핀은 헤일리온에게 묻는다.
“정말 여기에 있는 것 중 아무거나 가져가도 괜찮은 건가요?”
“네, 원래는 훨씬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핀과 바르간 학생에게는 프릭칸리스크의 일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참여하게 된 거라 간단하게 생략되었어요.”
물론 여전히 수여의 형태가 아닌 대여지만, 이곳에서도 나름의 성의를 보이겠다는 뜻이었다.
사실, 나야 뭐. 하얀이 안에 각종 무기들이 있기도 하고 중앙교회도 아닌 이곳에 쓸 만한 게 이 안에 있을 리 없으니 그다지 매혹적인 안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카데미아의 연습용 무기를 들고 다니던 핀에게는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흐음.”
나와 핀은 무기들을 살피며 무엇을 고를지 두리번거렸다. 역시 마땅히 눈에 띄는 게 없다.
분명 보관 상태나 질은 괜찮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쉽다.
단련을 위해서 하얀이 안에 들어 있는 것들도 사용하지 않는데 굳이 이 안에서 찾는다는 것도 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헤일리온이 다가와 갸웃거린다.
“마음에 드는 게 없나 봐요?”
“솔직히 말해 그렇습니다. 어차피 대여라 더 흥미가 가지 않는군요.”
“용사 개인이 직접 공수한 물건이 아니면 교회의 물건은 공용 재산이라서요. 미안하지만 선물로 줄 순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저 제가 고를 만한 건 마땅히… 음?”
헤일리온과 대화를 이어 가며 무기를 살피던 내 시야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단검이 들어왔다.
보관 상태가 최악이다.
다른 것들은 어제 광을 낸 듯이 빛이 나는데, 저건 무덤에서 꺼내서는 녹을 제거하지 않은 그대로인 듯하다.
단검을 집어 들어 상태를 살핀다.
모든 군이 그렇듯. 상비된 물건들의 상태가 항상 좋을 리는 없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치다. 특정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아마, 특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물일 확률이 높다.
정화 작업을 하게 되면 부여되어 있는 식이 꼬인다든가. 아니면, 녹을 제거하지 못할 정도로 연약하거나. 아니, 그랬다면 공기와의 접촉도 피하게 두었겠지.
하여간 아무런 마법이 걸려 있지 않은 일반 녹슨 무기라면 교회에서 보관할 리 없으니 이건 유물일 터이다.
“특이한 걸 고르네요?”
미력하게 마나를 집어넣으며 분석하고 있자 헤일리온이 물었다. 참,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기도 하다.
“어떤 특성이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죠.”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따로 보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기에 있는 무기들은 유물이라고 해도 최대 3품일 테니까요.”
그의 말이 옳다.
희귀하거나 값진 물건이었으면 이렇게 쉽게 대여가 가능하게 두지 않았겠지. 나도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그냥 궁금할 뿐.
그렇게 흘려보냈던 마나가 돌아오고 분석 결과를 보인다.
예상대로, 안에 담긴 마나의 양이 정해져 있는 3품 유물이다. 앞으로 몇 번 더 사용하면 파기될 물건이다.
효과는… 아, 저주 해제에 도움이 되는 거네.
“바르간 학생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인 거 같네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중간한 내 반응에 헤일리온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마음에 든 건가요?”
“사용 횟수가 극도로 적은 대신 출력이 상당해서 말이죠. 담긴 마나만 많았다면 충분히 더 높은 등급을 가졌을 유물이라 흥미가 가는군요.”
소모성 유물에 마나를 부여하는 게 불가능하다.
저번 자간을 잡을 때 사용한 마력의 반지도 소모성 유물이었었고. 그 대신 효력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나는 헤일리온에게 물었다.
“헤일리온 님. 만약, 대여 중인 무기가 모종의 이유로 파기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부분 넘어가요. 다른 일도 아니고 알티프와의 격전에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헤일리온은 내가 이 유물을 선택하려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이런 일로 거짓을 뱉지 않는다.
“저는 이 단검으로 하겠습니다.”
설령, 이번 전쟁을 통해서 해당 유물이 파손된다 하여도 말이다.
***
뒤르테문드에서 조금 떨어진 설산의 중턱.
그 순백의 장소에 겨울의 드래곤, 프릭칸리스크가 곧 전장의 피바람이 불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장면만 본다면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맨발로 눈 위를 밟고 있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아미….”
그녀의 고운 미간이 일그러지며, 멀리서 알티프를 이끌고 오고 있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짙게 깔려 있는 그 분노의 음성은 지금이라도 날아가 녀석의 목을 날려 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내재하고 있다.
하나, 불가능.
십이신수라고는 해도 그녀의 무력만으로는 부족하였으며. 바르간이라는 인간과 맺은 추기경의 계약서의 조약을 벗어나는 독단적인 행위이다.
“…….”
사고의 발자취는 곧 바르간과 계약을 맺었던 그날로 넘어가게 된다.
⎯네 복수를 도와주마.
그 인간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인간이 무슨 말을 하는지 화를 내려고 해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가 부른 이름, 이리스.
자신의 진명을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 바르간이라는 인간의 존재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설마 아인테른이 생전에 외부로? 라는 의심이 순간 스쳐 가기도 하지만, 인간은 이를 먼저 부정했다.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네 남편인 아인테른은 입놀림이 가벼운 사내가 아니다. 크라인의 일은 안타깝게 된 것이지만, 이는 크라인이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군 것이지 않느냐.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크라인을 적대하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은 한 패인 건가?
자신의 이런 사고를 읽었다는 듯 말했다. 표정을 읽는 게 능숙한 인간이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뭐?
미래를 알고 있다고?
그럼 이런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 성자라는 말인가.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자를 보고 들었던 그녀이지만, 사고를 시각화하는 힘을 발현시키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시기에 성자는 항상 두 명씩 존재했지. 교회에서 성자의 위상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겉으로 밝히지 않았던 인물들을 제외하면 항상 그랬다.
세간에서는 성자가 한 명, 혹은 두 명씩 발현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 옳지 못하다.
성자는 항상 두 명씩 존재한다.
한 명이 죽거나, 힘을 잃은 상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면 몇 년 정도는 공백기가 생기기도 하나, 법칙과도 같이 둘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성자이다.
다만, 상식과는 달리 반드시 교회에 뜻을 가진 신실한 인물들에게만 성자의 힘이 내려지는 건 아니다.
또한 성인의 힘을 깨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도 틀렸다.
간혹 뒷골목 깡패가 이 힘을 받기도 하고, 희대의 살인마가 받기도 한다.
따라서, 교회는 부정한 자에게 힘이 내려지면 죽이거나, 개화가 가능하다 판단되면 음지에서 활동하게 만든다.
현재 알려져 있는 건 성녀 디피엘리아 하나.
곧, 혹은 조용하게 활동하는 성자가 있을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는 그녀였다.
⎯나는 너를 구하려고 한다.
그녀가 멸하는 미래를 보았고,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이 나섰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진명은 아인테른이 그녀를 부르는 장면을 보았다고.
솔직히 미심쩍었다.
하나, 그 인간은 세 치 혀가 예술적일 정도로 현혹적인 자였다.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자니,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었으며 희망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그의 사고 또한 거짓을 뱉고 있지는 않았다. 거짓을 고했다면 아무리 능숙한 자라고 해도 배경이 검은색으로 칠해졌을 터인데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숨겨 놓았던 상처를 파고 들어와 이를 낫게 할 방법을 알려 준다며 치료제를 내밀었다.
추기경의 계약서에 진명을 적을 때까지. 아니, 지금도 의심을 온전히 지워 낼 수 없지만.
인간이 아닌 계약서의 효력을 믿기로 했다.
여신교의 놈들은 하나 같이 꼴 보기도 싫으나, 추기경의 힘은 진짜다.
십이신수의 힘이라고 해도, 혹은 아무리 저주에 뛰어나다고 한들 이를 어기게 되면 순식간에 끔살 당한다.
벨레드의 계약서를 통해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협력. 그 충족 조건으로 그녀가 제시한 것은.
아이의 구출 및 보호.
크라인의 처벌에 대한 권한.
이 두 가지였다. 하나, 그는 신뢰의 값이라며 누명까지 벗겨 주겠다고 말했고 이를 간단하게 해냈다.
…….
어째서인지 악마와 계약한 것 같은 꺼림칙함이 감돈다.
이대로 수월하게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아이를 지킬 수 있다면.”
그는 계약대로 움직여 주었다.
이번엔 그녀의 차례였다.
회상을 마친 프릭칸리스크의 외관이 서서히 변해 간다.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녀는 얼음의 갑옷을 입고 커다란 날개를 펼친 드래곤이 되었다.
겨울의 드래곤.
십이신수인 프릭칸리스크의 본래 모습.
장엄하다고 불리기 마땅한 날개가 양쪽으로 쫙 펼쳐져 바람을 일으킨다.
활공.
그 한 번의 날갯짓에 저 아래, 그녀가 서 있던 곳에서는 눈보라가 일었다.
그녀는 다시금 자신을 다잡는다.
위대한 드래곤은 전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