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Bought the Fe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8)
악역이 여주인공을 구입했다-98화(98/350)
『먹는다… 반드시 씹어 먹는다… 이젠 영혼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내가, 대주교인 내가 인간 따위에게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다니…! 헤일리온, 네 녀석의 신체를 육포로 만들어 잘근잘근 씹어 주마…!』
짙은 핏빛 색의 알티프를 타고 있는 아미는 분노에 가득 차 중얼거렸다.
그를 태우고 있는 알티프는 근육이 단단한 말의 형태로 되어 있어 거친 지형도 아무런 문제 없이 달릴 수 있는 ‘특이체’였다.
특이체는 투레질로 아미의 시선을 끌었다.
잠시 분노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어느새 뒤르테문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미의 옆으로 커다란 덩치의 외눈박이 주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어딘가 아픈 것처럼 안색이 좋지 않다.
『아미 님, 정말 이대로 진격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외눈박이 주교는 침을 삼켰다.
아미를 포함한 대주교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높은 존재들인지 알고 있어 입에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더욱 나은 방안이 있는 건 확실하기에 간신히 입술을 벌려 말을 꺼낸다.
『…저희에게는 용사 크라인에게 받았던 뒤르테문드의 정보가 많이 있습니다. 언제가 가장 취약한 시기인지, 심지어 문의 배치는 누구로 되어 있는지까지요.』
물론, 크라인의 범행이 밝혀지면서 강화되었을 것이고 배치 또한 완전히 바뀌었겠지만, 이는 쏙 빼었다.
그의 첫 번째 목적은 회군.
나중에 아무리 보강된다 한들 지금 쳐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아미는 그에게 뒷말을 이을 것을 강요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확언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시기가 좋지 않아? 시기… 시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아미는 물었다.
『왜?』
주교는 놀랐다. 아미의 눈동자는 동족을 바라보는 것이라고는 여기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고 흐려져 있었다.
구심점을 잃은 새카만 우주가 활동을 멈추고 그를 바라본다.
주교는 그에게서 명백한 살기를 감지했다.
느낌이 온다.
삐끗하면 전쟁이 나기도 전에 여기서 죽어 버릴 거란 걸.
그 공포를 이겨 내고 말한다.
『헤…일리온이… 현재 뒤르테문드에는 헤일리온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아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내려다봤다.
주교는 그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고개를 내렸다. 차라리 죽을 것이라면 때를 모른 채 죽어 버리는 게 낫다.
그렇게 심판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자.
『네 말이 맞아. 15년 전의 헤일리온과 지금의 헤일리온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봐야 할 정도로 강해졌지.』
『아미 님….』
고개를 들어 다시 아미를 바라보자, 그가 자신의 충언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일 것처럼 타오르던 그의 눈이 잠잠하다.
상황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며 정확한 분석을 이어 나간다.
『헤일리온 일행만 없다면 지금의 전력으로 뒤르테문드를 쓸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야. 나도 알고 있어. 근데…』
아미는 묻는다.
『그게 언젠데?』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 치욕을 갚을 수 있는 건데?
헤일리온이 다른 임무를 받고 뒤르테문드를 빠져나갔을 때?
아니면, 나이가 너무 들어 비실거릴 때가 되어야 겨우 침공할 수 있는 건가?
아미의 눈동자가 잠잠했던 것은 안정된 평화가 아니라, 태풍이 오기 전의 불안정함이었다.
『그럼 나는, 그때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패배한 개처럼 멀리서 헥헥거리고 있어야겠네? 몽둥이를 든 주인이 무서우니까?』
『아, 아미 님… 고정하시고…!』
『그뢰펜. 넌 헤일리온은 두렵고 난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나?』
외눈박이 주교, 그뢰펜의 떨리는 눈동자에 아미가 비친다.
아미의 모습은 항상 입고 다니는 간편한 복장 따위가 아니었다. 마치 전장을 나서는 장군의 모습처럼 위풍당당하고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다.
이는 그의 피부였으며 온전하고 견고해 보였다.
하얀 피부를 감추듯 전신을 감싸고 있으며 투구까지 쓰고 있는 아미. 그가 들고 다니던 대낫은 신체 일부가 되어 꼬리에 달려 있다.
「권능해방」을 마친 진정한 모습이다.
아미는 저 모습으로 몇백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용사를 학살하고 농간해 왔다. 그 세월이 묻어나듯 아미가 이 모습을 할 때마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네가 잊고 있나 본데. 나 여신교 대주교야. 대주교라고…! 용사?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는 놈들도 먹어 왔어. 그 감미로웠던 영혼들이 아직도 내 안에 갇혀 있다고!』
아미의 권능에 의해 당한 사람들은 죽지 못한다.
몸은 죽었으나, 영혼은 구속되어 영원히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헤일리온의 왼쪽 팔 또한 그런 처지였다.
『그런 내가, 묵혀 놨던 먹잇감이 조금 강해졌다는 걸로 모른 척하고 다른 녀석을 노리라고…? 하, 하하하! 그뢰펜. 네가 아주 미쳤구나?!』
『죄, 죄송합니다. 아미 님의 무구한 영광을 위하여 올린 발언이었으나,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를… 크헉!』
아미는 꼬리에 달린 살벌한 기운의 낫을 그의 목에 들이밀었다. 그뢰펜의 고개가 빳빳하게 올라간다.
『네가 주교 중에서는 제법 강한 편이었지?』
아미의 쭉 찢어진 동공이 그뢰푄을 살핀다.
그뢰펜은 전신에 커다란 근육이 박혀 있는 자로, 알티프 특유 풍부한 마력에 의해 강화된 육체로 상대를 으깨 버린다.
주교 중에서도 실력이 천차만별인데, 그뢰펜은 중간 이상 정도 된다. 아미가 데리고 다니는 주교급 중에서는 가장 강한 개체이기도 하다.
아무리 무례하고 짜증이 나도 그냥 죽이기에는 아깝다.
이 아이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아.
아미의 입가에 길게 미소가 지어졌다.
눈과 함께 웃고 있으나 전혀 상냥하지 않다.
『최근 헤일리온이 마음에 들어 하는 꼬맹이가 있더라고.』
아미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는 최근 여신교 사이에서 이름이 종종 들리는 예비 용사로, 자신의 여동생인 자간의 목을 베어 버린 남자였다.
추기경 벨레드 님의 권능에 저항했다나 뭐라나, 아무래도 그건 헛소리인 거 같지만. 그에게 머물러 있는 자간의 냄새가 거슬리기는 했다.
『나는 이번 전쟁에서 헤일리온을 상대할 거야.』
아미의 목표는 오로지 그 하나였다.
사실상 뒤르테문드는 곁다리일 뿐.
『너는 헤일리온의 제자인 슈겐하르츠 트로아 바르간이라는 꼬맹이를 죽여. 자간의 냄새가 배어 있으니 찾는 데 어렵지는 않을 거야.』
저번, 프릭칸리스크를 사냥하기 위해 묘지에 들렀을 때 얼핏 보기는 했지만, 건들지 않았었다.
헤일리온에 눈이 돌아가 버려 방치했던 것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침 잘되었다.
『녀석의 목을 가지고 내게로 와. 헤일리온의 눈앞에서 터트려 버릴 거니까.』
헤일리온이 신경을 쓰며 제자로 들였다는 건 나름 소중한 존재라는 말이다.
제자의 죽음을 본 헤일리온은 발작하거나, 전력을 보여 주겠지.
아미는 모든 힘을 쏟아붓는 헤일리온을 사냥하고 싶었다. 그게 치욕을 갚을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콰학!
아미의 꼬리가 그뢰펜의 심장에 박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콕 빠지더니, 찢어졌던 상처가 금세 메꿔졌다.
아미는 권능을 사용하여 그에게 시간제한을 걸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뢰펜.』
아미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
그뢰펜의 발언은 오히려 그의 투쟁심에 불을 붙인 꼴이었다.
『어서 달려.』
***
지면을 울리는 무리.
붉은 파도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곧이라도 성벽을 부술 기세로 밀고 들어올 알티프의 군세들이 한가득하다.
이 정도의 수를 직접 보는 건 처음.
이후의 전개에서 벌어진 전쟁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이겠으나, 아미가 그동안 꾸역꾸역 마을을 먹어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크라인이 벌여 놓은 판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
“오, 진영을 나누는 건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대략 3,500마리의 사제급 무지성체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잘 훈련된 군대를 보는 듯하다.
순식간에 세 진영으로 나뉘어 다가온다.
진군 속도에 차이가 있다.
최전방의 한 진영은 1,500.
후방의 두 진영은 각기 1,000.
돌격대와 후속 부대를 따로 둔 것이다. 전방의 부대가 교전할 때 나머지 병력이 틈을 노리는 전법이다.
거인을 형상화하는 20m는 족히 넘는 특이체들이 다섯 마리씩 후속 부대에 배치되어 있는데 전방의 부대에는 열 마리다.
성문을 부술 충차 따위는 필요 없겠다.
저들이면 문이 아니라 벽도 부술 텐데 뭘.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돌격하지 않고 나름대로 전술이라는 걸 펼치는 걸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하기야, 정말로 제대로 된 침공이 목적이라면 지금의 시기에, 심지어 공성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나였으면 장기전이 되더라도 보급로를 끊고 농성했을 것이다. 또한 도시 내부에도 활동을… 뭐, 이건 어디까지나 잡생각이고.
지금의 아미의 목적은 뒤르테문드도 아니고, 화가 잔뜩 나 원래도 잘 하지 않는 판단이라는 걸 잊은 듯하다. 그나마 진형을 유지하는 게 최대치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헤일리온이 다가왔다.
내 옆에 있던 핀은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되건만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바르간 학생이랑 핀 학생은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데 정말 괜찮겠어요?”
헤일리온의 표정을 보자, 기가 찼다. 실제로 걱정은 하지도 않고 있으면서 말은 번지르르하다.
“헤일리온 님, 예전에 저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하셨었죠.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이상한 성향이 있다고.”
“멘토링을 제안했을 때를 말하는 거군요?”
“헤일리온 님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헤일리온은 작게 웃어 보였다.
입으로 ‘하하.’라며 소리까지 내면서 말이다.
“여전히 웃음이 어색하긴 합니다만.”
“이번에도 그랬나요? 나름 자연스럽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잠시 대화에 정적이 찾아오자.
헤일리온은 다가오는 붉은 군세에 눈을 돌렸다.
정말로 고요한 바다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태평하다.
그가 묻는다.
“바르간 학생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나요?”
자신감이 없다는 표현을 알맞지 않다.
그는 순수하게 나의 판단이 궁금한 듯하다.
“어찌 한낮 학생 따위가 거친 전장의 판도를 읽을 수 있겠습니까만, 감히 예측해 보자면.”
눈을 돌린 헤일리온과 마주한다.
“승전임은 확실합니다.”
“되게 확고하게 말하네요? 상대는 권능해방을 한 대주교와 군세인데 말이죠.”
뭐, 그렇긴 한데.
이미 한번 읽어 본 줄거리라서.
“헤일리온 님과 그 팀원분들을 믿습니다.”
대놓고 가식적인 느낌의 말을 뱉자 헤일리온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감췄다. 저건 진실한 웃음이다.
비록 가식적이게 표했지만, 알맹이는 진솔한 발언이었는데 말이지.
“바르간 학생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는 본래 이어질 뒷말을 삼키는 대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떴다.
“그렇지만, 점쟁이 님의 말이니 그 어떤 말보다 든든하군요.”
아니, 떴다는 말은 이상하다.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뒤르테문드를 지키려는 용사들의 앞.
수십의 용사 앞으로 날아가 마법을 시작한다.
주변의 모든 마나의 흐름이 그에 의해서 움직이는 듯하다. 마나가 바람이라면 그는 태풍의 핵.
그 가운데에서 기도를 읊었다.
이는 술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순전히 앞으로 재가 될 생명에 관한 기도였다.
“핀, 지금 네 눈앞. 전방에서 다가오고 있는 적이 몇으로 보이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홀린 듯 헤일리온과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핀에게 물었다.
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더니 눈 간격을 좁히며 수를 파악하려 든다.
“주교급이 넷… 특이체를 포함한 사제급이 1,50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틀렸다.”
“네? 구체적인 수는 다를지 몰라도 대략적인 수는 맞지 않습니까?”
나는 그 거대한 군세를 바라보며 웃었다.
내 표정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아마 신문물을 접한 아이와 같이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적의 전군(前軍)은 단 넷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헤일리온의 마법이 완성된다.
그것은 헤일리온이 영웅이라고 불리게 된 결정적인 시작점. 뒤르테문드를 구원한 용사의 대규모 술식이자.
헤일리온의 ‘첫 번째 고유술식’이다.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사이에서 영광의 빛이 폭포처럼 내려와 세상을 비춘다. 세상 만물을 어루만지는 그 따스함은 밝은 자를 드높이고 어두운 자를 성스러운 빛으로 태운다.
신앙심이 없는 자도 절로 고개를 조아리며 찬양하게 만들 것만 같은 저 놀라운 신비는 경이로웠다.
전쟁이 밤에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 인방의 모든 생물이 갑작스레 찾아온 낮에 깜짝 놀랄 테니까.
그렇게 내려온 하늘의 영광은 최전방에서 다가오던 적들에게 내려졌고.
찬미한 비명 끝에 남은 적은 고작.
넷.
1,500의 사제급 알티프들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전쟁의 서막이 화려하게 열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