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26)
42. 새로운 빌드업 (3)
5.
랭커 30명이 모인 대규모의 광고 촬영.
시작부터 난항을 겪을 줄로만 알았던 촬영은 나머지 랭커들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이 맛이지!”
“크으으으으!”
“메테오오오!”
“다 죽여어어!”
처음 나를 째려보던 사람들도 캡슐에 접속하자마자 스탠스가 아예 달라졌다.
그들 역시 우리들처럼 과거에 사용했던 아이디를 복구한 상태인데,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초기 광고 계획은 나를 포함한 10명이 한 팀, 동수 형을 포함한 10명이 한 팀, 허수를 포함한 10명이 한 팀, 이렇게 3팀이 서로 뒤섞여서 난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니, 팀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
마법사들은 대형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으며, 다른 직업군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이아 온라인>은 강한 스킬일수록 이펙트가 화려하다는 특징이 있었다.콰아아아아앙!
번쩍-!
그 덕분에 현재 이곳에는 운석과 불기둥, 용암, 천둥벼락 등 세기말에나 볼 수 있을 법한 모든 재앙들이 날뛰고 있었다.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가이아 온라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했던 최고의 게임이었다. 그중 극히 소수만이 랭커라는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전투력이란 두말할 것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게임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그들의 청춘이자, 또 하나의 세계였던 게임.
추억 보정만큼이나 강력한 버프는 없는 법이다. 랭커들 모두는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 보였다.
원래의 기획 의도와는 달라졌지만, 총괄 프로듀서인 나PD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웅장하면서 충분히 매력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위의 랭커들을 둘러보면서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있으니 꼭 옛날 길드 공성전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동수 형과 함께 성 하나 먹겠다고 그렇게나 난리를 쳤었는데 말이지.
그러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것도 잠시.
콰아아아앙!
허공에서 거대한 창 하나가 나를 향해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렸다.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담긴 광역기.
고작 창 한 자루가 보여 줄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지만, 창을 이용해서 저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놈이 딱 한 명 있었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팔을 벌렸다.
“그 모습 진짜 오랜만이네. 와, 솔직히 나 같으면 그 날개 너무 쪽팔려서 당장 찢어발겼을 것 같은데?”
“안 닥쳐?”
“너 지금…… 나방 같아. 아, 나비인가?”
등에 빛의 날개를 달고 있는 허수가 허공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록빛의 갑옷.
그리고 등에 돋아난 신성한 날개.
저것이 신창이라고 불렸던 허수의 과거였다.
말은 저렇게 쌀쌀맞게 해도, 허수 역시 설레는 모양이다.
내가 오랜만에 시아로 접속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랑 크게 다르지 않겠지.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쌍검을 X자로 교차시키면서 녀석에게 이죽거렸다.
“근데 너 나 이겨 본 적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허세를 부리냐, 뒈지려고.”
허수가 두르고 있는 아이템 역시 그 당시 전 세계 유일의 아이템들이었다.
악룡의 침입이었나?
묵시룡의 바로 전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 에피소드에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보였던 플레이어가 허수였다.
그 덕분에 허수 역시 용의 뼈로 만들어진 갑옷과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내게 훨씬 뛰어나다.
나는 악룡들의 로드를 잡아 죽였으며, 드워프들 중에서도 최초의 드워프들인 에이션트 드워프들을 이용해서 장비를 제작했다.
만약 계정을 팔거나 현 거래를 할 수 있기만 했어도 재벌이 되었을 거다.
“파천극.”
허수는 내가 고개를 까닥거리자 곧바로 본인의 대표 스킬을 시전하면서 공격을 시전했다.
[파천극>.허수가 지니고 있는 가장 위력적인 범위 기술이자, 파괴력이 극히 뛰어난 기술이기도 하다.
강화 마법이 걸려 있던 성벽도 무너뜨렸던 굉장한 놈이긴 하지만, 내 앞에선 그냥 거대한 창에 불과했다.
파아아앗.
나는 간단한 이동기인 [점멸>을 통해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여전히 X자로 교차시킨 검을 어깨로 지탱하면서 소리쳤다.
“업보.”
[가이아 온라인> 시절 나를 대인전 최강의 플레이어로 만들어 주었던 특수 스킬. [업보>.이 스킬은 상대방의 어떤 공격이든 반사시켜 주는 최강의 반격기이기도 했다.
쿨 타임이 3시간이나 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묵시룡>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기술이기도 했다.
콰아아아앙!
검에서 뿜어져 나간 X자의 빛이 나를 향해 쇄도하던 창의 궤적을 정반대로 뒤바꿨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 작은 유성이 다시 고개를 돌려 허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지고의 방벽.”
어디선가 나타난 동수 형이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방패를 소환해 내면서 유성을 막아 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진짜 옛날 생각나긴 하네요.”
“기억 나냐? 너 옛날에 우리 길드 본부에서 허수랑 대판 싸운 거? 그것 때문에 우리 길드 본부 싸그리 날아갔었잖아. 그거 복구하느라 1달은 걸렸었는데.”
“그러게 누가 우리 길드도 아닌데 본부에 찾아오라고 했던가요?”
“너 보러 간 거 아니야. 동수 형 보러 간 거지. 말은 제발 똑바로 해라. 빡대가리 새끼도 아니고…….”
“뭐? 빡대가리?”
“그래, 이 빡대가리야.”
우리가 내뱉고 있는 이 비속어 정도는 알아서 편집되겠지?
이번 기회에 저 나쁜 자식의 입버릇을 고쳐 줄 때가 된 것 같다.
우우우웅.
두 검의 그립을 한곳으로 모으자 검은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처럼 합쳐졌다.
잠시 후.
거대한 크기의 흑도가 생성되었고, 곧 그 위로 푸른색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동수 형은 내 검을 바라보면서 경악성을 내뱉었다.
“야야! 그거 지금 쓰면…….”
늦었어.
내가 광역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난장판 구도의 광고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 주려면 어쩔 수 없이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화르륵.
어느새 대검을 전부 잡아먹은 푸른 화염이 거대한 새의 형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허수에게 말했다.
“이번엔 네가 막아 봐. 너 반격기 없잖아.”
“솔직히 그건 반칙 아니냐?”
“뭐가?”
“그거 네 스킬이 아니라 템 스킬이잖아. 그러고도 실력…….”
콰아아아아앙!
검에서 흘러나온 주작은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더니, 곧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리고 곧 허수를 향해서 날갯짓을 시작했다.
“템빨도 실력이야, 새꺄.”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6.
시작부터 요란했던 특별 광고 촬영은 아주 성공리에 끝났다.
성수 형은 나 피디와 함께 오늘의 광고 영상을 확인한 다음, 크게 만족한 얼굴로 출연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먼 걸음을 이렇게 달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아낌없이 활약을 해 주신 덕분에 오늘 광고 촬영이 아주 수월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저희들이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하이 퀄리티의 결과물이라서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성수 형의 거듭된 칭찬에도 불구하고 캡슐에서 나온 다른 출연자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감정이 한가득이었다.
이곳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그들의 추억.
한때 [가이아 온라인>이라는 세계를 호령했던 영웅들의 모습은 더 이상 현재 진행형이 아니었다.
출연자들의 복장만 봐도 그랬다.
누구는 양복을, 누구는 작업복을, 누구는 평상복을.
너무나 당연하게도 랭커들 역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촬영은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이곳까지 와 주신 여러분들의 계좌로 출연료가 입금되었으니 확인해 주세요. 당초에 책정했던 출연료보다 훨씬 넉넉하게 챙겨 두었습니다.”
기존에 약속했던 출연료가 500만 원이라고 했던가?
출연자들 중 성격 좋아 보이는 대머리 아저씨 한 명이 손을 들면서 말했다.
“더 안 챙겨 줘도 됩니다. 오랜만에 옛날 추억 되새길 수 있어서 참 좋았거든요. 성 대표님, 참 감사합니다.”
그 말에 성수 형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저야말로 저 감사드리죠.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일부러 돈을 넉넉하게 지급했으니,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출연자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천만 원?”
“와아!”
한 명당 천만 원이라…….
그것도 연예인이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주어진 단발성 출연료치고는 굉장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수 형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저희 SD 코퍼레이션 측에서 미리 장소를 협조 받아 뒀습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남으셔서 회식에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우리처럼 방송이 본업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모두들 각자만의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일부러 연차를 내고 왔지.”
“어? 그쪽 분도요?”
“저기 회식 딱히 필요 없으니…… 저희 조금만 더 캡슐 사용하면 안 될까요?”
“술보단 게임을 더 하고 싶은데.”
진짜 뼛속까지 겜돌이들 아니랄까 봐, 회식 대신에 게임을 선택하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와 동수 형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역시 랭커였던 이유가 있네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저랬을걸?”
“그랬을까요?”
“나는 한창 레이드 뛸 때 하루 종일 밥 안 먹은 적도 있었어. 형 그때 진짜 죽을 뻔했잖아.”
나는 피식 웃음을 지은 다음,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미리 준비된 장소로 향했다.
강남에서 유명한 한우 고깃집을 통째로 빌린 모양.
그곳에는 미리 세팅된 고기들과 함께 각종 주류가 테이블 가득 놓여 있었다.
“오오.”
그렇게 회식은 시작되었다.
사실 오늘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옛날 랭커들한테 맞아 죽는 게 아닐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어…… 음, [시아> 님이라고 부르면 되겠지요?”
마침 딱 그 생각을 했을 때였다.
팔뚝이 내 머리통만큼이나 두꺼운, 턱에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보기만 해도 두려운 인상.
아무리 내가 요새 운동을 열심히한다고 하더라도 저 사람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내 양쪽에 있던 동수 형과 허수는 넋이 나간 내 표정을 보면서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야, 너 이제 뒈졌다.”
“멀리 안 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육개장이 맛있는 곳으로…… 알지?”
내 편은 없는 거 맞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신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달마>라고 기억하십니까?”
“……글, 글쎄요.”
기억날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열심히 기억을 더듬으려고 할 때, 동수 형이 손바닥을 치면서 말했다.
“오! [달마>! 붓다 길드의 길드 마스터 아니셨습니까?”
“네, 맞습니다.”
“당연히 기억나죠! 찬식이 놈한테 5번이나 전멸당하셨던…… 크흠.”
아!
기억났다.
[가이아 온라인> 시절 나름 명문 길드였던 [붓다> 길드의 마스터 [달마>.나와는 지긋지긋한 악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왜냐고?
예전에 길드원 한 명이 나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가서 길드원들 전부를 베어 줬다.
그것도 일주일 내내.
마지막에는 길드 단위로 뭉쳐서 나를 척살하고자 했지만,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 것이다.
“제가 [시아> 님한테 긴. 밀. 히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저…… 한테요?”
“왜요? 혹시 제 말을 듣기 싫으십니까?”
그의 팔뚝의 힘줄이 불끈거렸고, 나는 잔뜩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상황을 즐겁다는 듯 지켜보고 있던 허수가 한마디 던졌다.
“손수 너를 묻어 주실 분들이 많아서 참 부럽다. 혹시 나랑 내기 하나 할래? 오늘 네가 무사히 나간다, 못 나간다. 나는 못 나간다에 걸게, 너는?”
……나도 못 나간다에 전 재산 건다.
이 나쁜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