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28)
43. 될놈될 (2)
3.
“나 때는 말이야, 가이아 온라인 안 하면 친구들이 안 어울려 줬었다고.”
“진짜 옛날 생각나네. 강의 끝나면 다 같이 레이드하러 다녔었는데…….”
“나는 아이템 하나 먹으려고 일주일 내내 수업도 안 갔다니까?”
“우리는 멤버들 중 네 명이 이거 중독되서 매니저 오빠가 철저하게 통제했었잖아.”
오늘의 게임이 SD 코퍼레이션에서 제공해 준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으로 결정되자, 각 출연진은 예전의 추억을 공유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초의 가상현실이자, 최고의 가상현실.
시대가 지날수록 고평가를 받으며, 그 이상의 게임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칭송을 받는 게임이었다.
그만큼 완벽한 세계였으니까.
말 그대로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현실에서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든, 그 세계에서만큼은 무의미했다.
전 세계 통합 서버였던 만큼 대륙의 크기도 거대했다.
거기에다가 현금 거래를 철저하게 제한했던 게임이라서, 이 게임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두 가지뿐이었다.
시간과 실력.
이 두 가지만 있다면 현실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 어떤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던, 충분히 성공을 쟁취할 수 있었다.
뭐, 그 사이에서도 나 같이 의뢰를 수행하면서 돈을 벌어 온 다크 게이머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모두에게 평등한 출발점이 주어졌기 때문에 엄청난 몰입도를 자랑했던 것이 아닐까?
“오시면서 미리 전달받으셨을 테지만, 한 번 더 설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에.”
“알겠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캡슐 여섯 개가 스튜디오에 자리잡고 있었고, 성 피디는 즐겁게 떠드는 우리를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설명을 이어 갔다.
“오늘 저희가 체험해 볼 과정은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의 튜토리얼 부분이고, 촬영 예상 시간은 다섯 시간 정도입니다.”
“다섯 시간이나요? 튜토리얼이 그렇게 길어요?”
“뭐, 대충 무기 사용하는 법 배우고, 촌장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그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아, 기본 플롯 자체는 두 팀으로 나눠서 저희가 드리는 미션을 수행하는 겁니다.”
성 피디는 그렇게 말한 다음, 나와 허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켈베로스 팀과 시아 팀. 이 두 팀으로 나뉘어서 튜토리얼을 수행하고, 지는 팀은 다음 촬영 때 상대 팀이 정해 주는 컨셉으로 코스프레를 하고 와야 합니다.”
그래, 그냥 게임만 즐기면 이 프로그램이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지.
이런 벌칙 정도는 있어야 재밌는 법이다.
성 피디의 말에 해철이 형이 손을 들면서 질문을 던졌다.
“팀 선택은 자유인가요?”
“네. 하지만 한 팀에 세 명 이상이 몰릴 경우, 미니 게임을 진행해야겠죠. 그 부분부터는 촬영을 통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출연진의 간단한 오프닝 멘트와 함께 진행된 팀 선택 시간.
나는 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자 옆에 있던 허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면서 말했다.
“팀원들이 나만 선택한다고 해서 자책하지는 마. 상대가 나잖아?”
그러자 허수는 카메라에 안 보이게 몸을 슬쩍 돌리면서 양손의 중지를 나에게 보여 줬다.
……저놈의 중지, 나중에 뽑아 버리든가 해야지.
볼 때마다 짜증 나네.
“좋습니다, 팀 선택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팀 선택은 각자 이름이 적힌 유기명 투표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를 아는 건 해철이 형뿐이었다.
솔직히 출연진 사이에 의리가 있는데 다들 날 선택하지 않았겠어?
해철이 형은 투표 결과를 확인한 다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출연진 전원이 같은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난 허수를 바라보면서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말했지? 상대가 나…….”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참을 수 없는 배신감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네 명 전원 켈베로스 님을 선택했네요! 이야, 진짜 의외의 결관데요?”
“주작이야.”
“예?”
“이거 전부 주작이라구요! 다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요?”
평소에는 그렇게 나한테 잘해 주면서, 정작 선택한 건 허수라고?
믿고 있었던 해철이 형과 세연 누나마저도 허수를 선택했다는 거 아니야?
나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모든 출연진이 내 시선을 회피하면서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네가 워낙 게임 가르쳐 줄 때 스파르타로 알려 주잖아?”
“솔직히…… 너한테 게임 배우는 건 좀…….”
“원래 가까운 사람한테 게임 배우는 거 아니래. 닭살 커플들도 게임 같이하면 헤어진다더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 저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스스로를 열성 악질단를 자부하는 주현이는 왜 허수를 선택한 걸까?
아까까지만 해도 나한테 허수 별로라고 했었다.
저럴 거면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주현아.”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주현이한테 곧바로 물어봤자.
그러자 주현이가 부끄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오빠.”
“너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허수 욕하고 있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진짜 주현이가 허수를 선택한 건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뒤이어 주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찬식 오빠, 저를 바라봐 주지 않는걸요.”
“주현아.”
“네.”
“그런 거 어디에서 배웠어?”
저건 트수들 중에서 일부 계층, 소위 ‘씹덕’이라고 불리우는 계층들이나 사용하는 드립인데.
저렇게 귀엽고 예쁜 여자애가 사용하니까 사실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외모지상주의 사회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만, 예쁜 애가 저런 드립을 사용하니 살짝 심장이 덜컹거리는 기분이었다.
내 질문에 주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다른 트수들한테 배웠다……랄까?”
더 이상 주현이에 대한 분석은 포기해야겠다.
내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캐릭터였으니까.
원래 저런 말투를 현실에서 사용하거나, 선을 넘을 경우에는 대부분 ‘뇌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뇌절도 시전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마치 지금 주현이처럼 말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성 피디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피디 님. 저 오늘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그런데, 조퇴 좀 해도 될까요?”
오늘 하루가 아주 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4.
우여곡절 끝에 팀 선택이 완료되었다.
허수에게 모든 인원들이 몰린 바람에 제비뽑기를 통해서 팀원이 결정되었고, 출연진 중 두 명이 내 팀에 합류했다.
“……배신자들.”
“하하, 방송 재밌으려고 한 거잖아?”
“맞아요.”
주현이와 해철이 형이 우리 팀으로 결정되었다.
나쁜 사람들.
내가 얼마나 잘해 줬었는데!
이미 아까 전에 나에게 드립을 통해서 폭탄을 던졌던 주현이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나에게 팩트를 날렸다.
“그런데 오빠가 배신자라고 표현하니까 진짜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한데?”
“음. 약간 원조 배신 맛집에게 인정받은 기분……이랄까?”
“주, 주현아.”
“네, 해철 오빠.”
“너 그 말투 제발 그만하면 안 되냐? 우우우욱!”
해철이 형은 주현이가 새로 장착한 ‘씹덕체’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중이었다.
어지간한 내성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말투이기는 하지.
아마 오늘 방송도 여러모로 레전드를 찍을 것 같긴 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현이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주현이를 바라본 다음, 빠르게 포기하면서 캡슐에 접속했다.
그러자 곧 익숙한 인트로 영상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들이 빠르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많은 도전과 낭만의 세계, 세상 속에 존재하는 또다른 세상.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에 접속하신 걸 환영합니다!] [현 버전은 베타1.3 버전입니다.] [베타 버전 사용 권한 허가 완료. 테스터 1. 시작 진영과 종족을 선택해 주십시오.] [가이아 온라인>에서 플레이어는 총 두 가지 진영을 선택할 수가 있다. [연합>과 [혈맹>.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지고 각 진영마다 선택할 수 있는 종족이 다르다.
물론 기본적인 [인간>을 선택할 수 있는 건 동일했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종족은 각 진영마다 달랐다.
나는 오랜만에 보는 진영 선택 창을 바라본 다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혈맹 진영 인간.”
[진영 [혈맹> 소속의 [인간>을 선택하셨습니까. 맞습니까?]옛날에 선택했던 그대로를 따라 했다.
[가이아 온라인>은 수많은 패치를 통해서 밸런스를 유지해 갔지만, 사실 출시 초반부에는 그렇게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각 종족마다 능력치 같은 게 달랐고, 종족 고유 스킬도 달랐다.
아마 SD 코퍼레이션 측에서도 기본적인 밸런스 패치는 한 다음에 클래식을 출시할 것 같긴 하다만, 초반부터 끝까지 만능으로 평가받았던 종족은 하나뿐이었다.
인간.
[연합>, [혈맹> 둘 다 선택할 수 있는 공통 종족이자, 팔방미인의 종족.일부 무기만 다룰 수 있는 타 종족과는 다르게 사실상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종족이었다.
“다들 인간으로 하시죠.”
“알았어…….”
“네, 오빠.”
해철이 형 같은 경우에는 [가이아 온라인>을 경험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크게 알려 줄 필요는 없고.
내가 오늘 신경을 써야 하는 대상은 주현이었다.
그렇게 내 말에 따라 둘은 인간을 선택했고, 곧 튜토리얼 과정이 시작되었다.
[튜토리얼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몰려드는 늑대들로부터 살아남으십시오.]“아, 이 퀘스트는 안 바뀌었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튜토리얼 퀘스트에 씨익 웃음을 지었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 여기서 죽어 나간 초보자의 숫자만 해도 가뿐히 억을 넘길 것이다.
누적 킬 수를 계산했을 때, 최종 보스였던 [묵시룡>은 고작 3위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저 [튜토리얼 늑대>들의 순위는 2위.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어느새 우리는 어둠이 스물스물 깔려 있는 산으로 이동되었고, 사방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리얼한 사운드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비록 지난번까지만 하더라도 [시아>를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동일한 출발 선상에 서 있었다.
옛날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슬쩍슬쩍 플레이해 보도록 할까?
“야, 찬식아. 여기 맞지?”
“……형, 뭐 해요?”
“여기가 국민 자리잖아. 늑대 피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었던 해철이 형은 어느새 뒤에 있던 나무 틈 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크게 한숨을 뱉어 냈다.
“그거 1인용이잖아요.”
“원래 이 퀘스트 이렇게 깨는 거 아니었어?”
“후우.”
솔플이라면 저렇게 깨면 되긴 하지.
하지만 지금은 세 명이 함께 파티로 튜토리얼 퀘스트를 깨게 된 상황.
저 조그만 굴에 세 명이 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해철이 형의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주현이가 몸 쪽 꽉 찬 돌직구를 던졌다.
“추철 오빠. 해해요.”
“뭐?”
“추하시다구요.”
“……크흠. 원래 고인물들은 이렇게 해. 오빠 부캐 키울 때마다 항상 이런 식으로 했거든?”
뭐, 맞는 말이긴 하다.
오픈 초에 유행했던 방식이기도 하고, 튜토리얼 퀘스트를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히든 루트였다.
하지만 저렇게 게임하는 건 재미가 없다.
자고로 이 게임은 전부 박살 내야 재밌는 게임이다.
“형, 저희 오늘 튜토리얼 퀘스트 타임 어택으로 승패 정하는 거거든요?”
튜토리얼 퀘스트는 평균 5시간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값이었다.
퀘스트 동선만 잘 짜면 1시간도 충분히 가능했다.
나도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지만, 허수 역시 만만치 않은 고인물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해철이 형처럼 안전한 방식으로 플레이했다가는 승부에서 질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주변 나무에 박혀 있던 녹슨 검을 뽑으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튜토리얼 퀘스트에서 출현하는 늑대의 숫자는 사람당 4마리.
지금은 세 명이서 퀘스트를 수행 중이니, 총 12마리가 등장할 것이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
“저만 따라오시…….”
그러나 그때였다.
[[요즘 것들>과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의 특별 콜라보레이션!] [특수 튜토리얼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 [회귀>가 시작됩니다.]예상하지도 못했던 특별 이벤트가 발생했고, 곧 이어 우리 주변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적들이 등장했다.
“저, 저거!”
주현이는 멀뚱멀뚱 그 적들을 보기만 했지만, 녀석들의 정체를 알고 있던 해철이 형이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경악성을 내뱉었다.
나는 한숨을 크게 뱉어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걔네들이에요.”
[가이아 온라인> 누적 유저 킬 1위.뀨우?
필드 보스, [발정기가 찾아온 거대 산토끼>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