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38)
46. 산 넘어 산 (3)
5.
“세상에 악플러들을 데리고 컨텐츠를 만들 생각하는 놈 너밖에 없겠다.”
“글쎄요.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저뿐이었겠어요?”
“아마도?”
이곳은 청담동의 한 의류 매장.
나는 동수 형과 함께 미국에서 입을 옷들을 쇼핑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수 형은 성재 씨로부터 내 고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런데 악플러들 데리고 뭘 하게?”
“음, 공익 광고 느낌으로다가 합의해 주는 대신에 방송 출연해서 자기가 쓴 악플을 읽는 챌린지를 해 볼까 합니다.”
“오! 그거 엄청 쌈박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애들한테는 합의를 해 주려고요.”
고소.
그건 현대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공인이나 스트리머 들을 상대로 무분별한 악플은 상당히 위험하다.
PC 시절부터 이미 몇몇 선례가 있을 정도로,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에 하나였다.
얼굴을 드러내 놓고 방송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작정 악플을 달았다가는 고소장을 받게 될 테니까.
게다가 악플로 인해 목숨을 끊는 연예인들이 늘어감에 따라서 관련 법안도 아주 타이트하게 개정되었다.
법안을 개정하면 악플이 살아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악플을 다는 놈은 여전히 많았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닌 법.
동수 형을 비롯한 스트리머들에게도 악플을 달아 대는 놈들이 꽤 있는 걸로 기억한다.
심지어 나영이마저도 악플러들이 있을 정도였다.
아무튼.
악플러에 관한 문제는 컨텐츠 생산자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예민한 문제였다.
“야.”
동수 형은 옆에 걸려 있던 가죽점퍼를 입어 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네, 형.”
“악질단에게 있어서 악플은 거의 일상 아닐까? 자칫하면 방송에 해가 될 수도 있어.”
“으음, 그건 좀 달라요.”
“뭐가?”
“악질단들 중에서도 선을 못 지키는 놈들은 벌 받아야죠. 사실 제가 악플은 안 읽는 편이긴 한데…… 아시다시피 돈과 컨텐츠에 미친놈이잖아요?”
“……난 가끔 네가 내 편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형은 살려 줄 거지? 옛날에 악플 달았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아까 진혁이가 고소 얘기에 발작하던데요?”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쉐끼 조심해. 언젠간 네 등에 칼을 꽂을 놈이여.”
동수 형은 사극 톤으로 장난스럽게 말을 걸더니, 곧 입고 있었던 점퍼를 계산대로 가져갔다.
나도 오늘 옷을 꽤 많이 샀다.
원래대로라면 나영이랑 또 쇼핑 오기로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영이와 쉽게 연락이 되지 않는다.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던 주현이가 당분간 나영이네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이다.
겜덕후인 주현이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영이가 캡슐방 사장 딸내미인 덕분에 캡슐방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나영이가 주현이에게 합동 방송을 제의했다고 한다.
집에서 신세를 지는 동안 방송이나 같이 하자고 했다던가?
오늘부터 둘의 방송이 시작된다고 하니,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요새는 나영이랑 시청자 경쟁하는 것만으로 버거운데, 주현이까지 더해진다면…….
후우.
당분간 나영이에게 대세를 넘겨주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나영이도 비즈니스 감각이 있단 말이지.
“찬식아, 너 그런데 나영이한테 고백은 언제할 거냐?”
“또 물어봐요?”
“아니, 어제 술자리 재밌었다면서. 아이돌한테 썸 타자는 제안까지 들었다던데?”
“……성재 씨가 생각보다 입이 싼 스타일이네요.”
“사업적인 건 입이 참 무거운데, 재밌는 일에 관해서는 입이 자유로운 편이지. 그래서, 넌 누군데?”
“아, 형! 뭘 또 누군데예요.”
“하긴, 괜히 물어보기는 했다.”
동수 형이랑 같이 있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그의 흐름에 빠져들게 된다.
동수 형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언변이다.
저렇게 부드럽게 이어지는 토크 덕분에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한숨을 푹 내쉬었고, 동수 형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영이 걱정되어서 그렇지?”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여자 스트리머에게 연애라는 게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영이와의 관계를 쉽게 진전시키지 못하는 거다.
내 권유를 받아들여 트위팟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특유의 캐릭터성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었는데, 그 상황에서 나와의 열애설이 터진다면?
트수들의 특성상 부정적인 반응이 올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한심하기는.”
“그러면 어떻게 해요?”
“트위팟 고대 신인 내 경험상, 만약 너희 둘이 커플 되면 트수들은 쌍수 들고 환영할걸?”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누가 장난 삼아 했던 후원 메시지가 떠오른다.
‘샤영코인100000층 가즈아!’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ㅋㅋ둘이 결혼해서 애 낳으면 무조건 스트리머 시켜라ㅋㅋ 태어났는데 아빠가 시아고 엄마가 나영이다? 오우쉣ㅋㅋㅋㅋ돌 잔치 때도 무조건 방송 키고 해라ㅋㅋ]아마 나영이와 합방할 때 터졌던 후원이었지?
나는 그 후원 메시지를 떠올리면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동수 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두고 봐야 알죠.”
“그나저나 나 토요일 날 몇 시에 가면 되냐?”
“진짜 오시게요?”
“지난번 팬 미팅 때 못 간 거 아직도 화나거든? 야, 형 그래도 게스트로 가는 거야. 출연료는 챙겨 줘라.”
이번 주 토요일은 대망의 그날이다.
제2차 팬 미팅.
내 트게더와 팬 카페에서는 이미 당첨된 사람들의 인증 글과 함께 어마어마한 미친놈들이 본인들의 광기를 마음껏 발산하는 중이다.
‘시아의 팬티를 훔치는 방법’, ‘시아 진텐으로 빡치게 만드는 방법’ 등의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나는 혼돈의 카오스를 연상시켰던 악질단들의 행패를 떠올리면서 몸을 떨었다.
그런 내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던 동수 형이 한 마디 던졌다.
“악질단이 너 조지는 모습 보기 위해서라도 게스트로 꼭 갈 거야, 이 자식아. 육개장 잘하는 집으로 미리 식장 잡아 뒀지? 믿는다?”
“형, 그러다가 형 먼저 가세요.”
“응, 너보다 많이 살았어. 지금 가도 너보다는 이득이야.”
진짜 한마디도 안 지려고 그러네?
그나저나 이번 주 토요일 날도 내 목숨이 걸려 있는 하루구나.
확실히 올해 내 운세에 마가 낀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와이셔츠를 계산했다.
……그래, 할 일이 많은 게 어디야?
없는 것보다 훨씬 괜찮지.
그렇게 내가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면서 쇼핑을 계속하려 할 때였다.
내 옷들을 계산해 주던 알바생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혀어어엉, 시아 형 맞죠?”
“아, 예.”
이래서 유명인은 어딜 가나 고달……
“형,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런데…… 혹시, 오늘 팬…….”
미친 새끼들.
그냥 다 나가 뒈져 줬으면 좋겠다.
6.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팬 미팅이 있는 토요일이 찾아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광을 낸 다음, 곧바로 치킨박스 사무실로 향했다.
늘 그렇듯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 주는 건 성재 씨였다.
“오셨습니까?”
“예, 성재 씨. 요새 제 이야기 밖에서 많이 하고 다니신다면서요?”
“그럴 리가요. 동수는 우리 식구 아니겠습니까. 하하! 가족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뿐입니다.”
말이라도 못하면…….
동수 형이나 성재 씨나, 둘 다 말을 너무 잘해서 뭐라고 화를 낼 구석이 없었다.
“아,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악플러에 관한 고소 건, 곧바로 저희랑 계약된 법무법인을 통해서 진행 중입니다. 빠르면 2주 내로 결과를 받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빠르네요?”
“충분히 고소가 가능할 정도로 자료가 모인 대상자는 37명이며, 추후 계속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좋아.
나는 그러면 37명 중에서 골라먹으면 된단 말이지?
역시 먹거리는 미리 준비해 두는 게 가장 든든하다.
든든한 국밥을 37그릇이나 먹은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추첨 과정은 투명하게 진행되었으니 별 탈은 없을 겁니다. 오늘 초청된 게스트 분들도 이미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허수도 왔어요?”
“허수 씨도 미리 도착해 계신 상태입니다. 찬식 씨만 가시면 됩니다.”
[나쁜 녀석들> 크루원 4명에 동수 형과 주현이까지.오늘 준비된 게스트는 대규모 합방을 진행해도 충분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게스트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쁜 녀석들> 크루의 공식적인 발대식이라고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어차피 팬 미팅이 예정된 컨벤션 홀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차 타고 10분 정도?
성재 씨와 업무상의 이야기를 끝내고, 처리해야 할 서류를 확인한 다음 곧바로 이동을 시작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성재 씨는 나에게 슬쩍 말했다.
“다음 주에 미국 트위팟 파티 말입니다.”
“네.”
“일본 측 스트리머랑 중국 희야티비 스트리머들도 많이 초청되었다고 하더군요. 전 세계 인터넷 플랫폼 화합의 장이라고 하던데…… 몸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미국 갈 날이 다가오니까 뭔가 설레는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성재 씨의 말대로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동안 중국 코인과 일본 코인을 워낙 효율적으로 사용했어야 말이지.
농담 안 하고 가자마자 주먹다짐부터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거기에 대해 보험은 미리 깔아 뒀다.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 유일한 외국인 친구, 샤라웃과 그의 동료들과 어울릴 계획이다.
이래서 사람이 글로벌하게 인맥이 있어야 한다니까?
그렇게 성재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우리들은 어느새 2차 팬 미팅이 개최된다는 컨벤션 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컨벤션 홀의 일부만 대여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넉넉하게 대여했다.
팬들끼리만 진행했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이번 팬 미팅에는 기자들까지 참여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찬식아!”
내가 컨벤션 홀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반겨 준 건 오왕, 병문이 형이었다.
“형, 요새 공개 연애해서 그런가, 얼굴이 너무 좋아 보이는데요?”
“하하, 그래?”
“형수님도 모시고 오지 그러셨어요. 공짜 뷔페인데.”
“어제 싸웠어.”
“아!”
싸웠으면 솔직히 좀 그렇긴 하지.
병문이 형은 우리 크루에 가입한 이후, 더 왕성하게 방송 활동을 진행 중이었다.
원래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 굳이 도와줄 것도 없었다.
“조만간 좋은 소식 기다릴게.”
“예?”
“너도 공개 커플 되기를 간절히 빈다. 나중에 더블데이트 느낌으로 합방 진행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크으…….”
병문이 형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 내 귀에 대고 한마디를 속삭였다.
“형은 샤영코인이다. 알겠지?”
아…… 예.
병문이 형은 순식간에 내 정신을 흔들어 둔 다음, 기분 좋게 성재 씨에게 가 버렸다.
시작부터 진이 빠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 제자빨로 내기에서 이긴 김찬식 씨?”
“허수야.”
“네 팬 미팅에 참여하진 않을 거고, 그냥 나쁜 녀석들 소개할 때만 나섰다가 집 갈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야.”
“왜?”
“너한테 팬 미팅 참여하라는 소리 한 적 없는데?”
“……나쁜 새끼.”
늘 그렇듯이 허수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녀석만큼은 참 놀려먹는 맛이 있다니까.
아무튼.
허수의 뒤를 이어서 주현이와 나영이와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건, 처음 서로를 견제하는 듯했던 둘이 거의 친자매처럼 붙어 다닌다는 점이었다.
여자들의 세계란 남자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오늘 이 자리를 위해 모여 준 게스트들과 기자들에게 한 번씩 인사를 건넨 다음,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문을 바라보았다.
슬슬 팬들이 입장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1차 팬 미팅 때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마음가짐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때보다 미친놈들이 많겠어?
악질단들도 나름 선을 지키는 놈들이란 말이지.
“팬들 입장합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팬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더라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저 눈빛과 나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 팬들.
“야, 너 오늘 너무 재밌겠다.”
“……안 닥쳐?”
“팬들 눈빛 뜨거운 거 봐. 아주 그냥 꿀이 떨어지네, 꿀이 떨어져.”
허수 이 새끼는 어떤 타이밍 때 내 속을 긁어야 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니까.
나는 허수를 어깨로 밀쳐 버린 다음, 다시 한번 심호흡을 시도했다.
“혀어어엉! 애장품 경매 딱 대! 형 코푼 휴지도 있지? 나 그거 사려고 부산에서 왔어!”
“님, 왜 유세 떰? 저 우리악 손톱 사려고 씨애틀에서 날아옴.”
“현실 도네 하면 리액션 바로 해 주겠지? 쿠쿠쿠쿠.”
제 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광란의 파티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쒸……이불.”
팬 미팅 한다고 하지 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