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44)
48. 아수라장 (3)
5.
수많은 레전드 클립을 남겼던 그날의 [GTB 온라인>은, 내가 원했던 컨텐츠들을 생산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내가 그렸던 장면들은 시청자들과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역겨운 결과물이 탄생했다.
만약 단순히 역겹기만 했다면 솔직히 기분은 좀 나빴을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들, 그리고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열광을 했을 정도로 이번 컨텐츠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라고 했다.
지금은 딱 그 말이 맞는 상황이었다.
“주현아.”
“네, 스승님.”
“……하, 아니다.”
“재밌었잖아요!”
내가 기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건 상품도 마찬가지였다.
주현이의 갑작스러운 배신을 통해서 종결된 컨텐츠.
주현이가 배신을 때렸던 장면도 레전드 클립 중 하나로 저장되었으며, 클립 제목은 ‘청출어람’이라 붙었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지.
아무리 백화점 상품권이 걸려 있다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배신을 때릴 줄 누가 알았겠어?
아무튼.
그 덕분에 팬 미팅의 마지막 컨텐츠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나는 극적인 타협을 통해서 컨텐츠에 참가했던 모든 참가자들에게 1년 치 구독권을 선물해 줬다.
“우우!”
“지금 당장 입고 있는 팬티라도 경매에 들어가라!”
“1년 구독은 어차피 하려고 했었다고!”
“팬티! 팬티! 팬티!”
물론 몇몇 악질단들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으나, 결국 그들의 반란은 저지당했다.
시청자들에게는 즐거웠지만 나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던 팬 미팅의 마지막 순서는 그렇게 마무리되어 갔다.
“다들 오늘 즐거웠냐?”
모든 코너가 끝난 다음, 나는 루나 캡슐방의 협조를 받아서 마이크를 빌렸다.
그리고 캡슐에서 나와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다음번에는 절대로 커스터마이징 금지시킨다.”
커스터마이징으로 인해서 오늘 나의 하루가 너무 피폐해졌다.
내 얼굴을 한 악질 쉐끼들이 사방을 가득 채워서 그런지 정신병까지 걸릴 지경이었다.
역시, 게임할 때 가장 피폐해지는 건 몸이 아니었다.
정신 상태가 가장 위험했다.
실제로 저 뒤에서 이를 꽉 물고 있는 허수를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마 네코시아의 공격이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던 모양이다.
“뭘 봐? 뒈질래?”
……저 새끼는 좀 피폐해질 필요가 있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내가 짜증을 내면서 본인을 바라보고 있자, 허수는 내 생각을 빠르게 읽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곧 캡슐 옆에 서 있던 악질단들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스트리머에 그 시청자지, 역겨운 쉐끼.”
“나한테 왜 그러냐?”
“네가 오냐오냐 해 주니까 시청자들이 선을 넘잖아.”
“아니…….”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못 하겠네.
그러나 그 말에 대한 반박은 내가 아니라 내 옆에 서 있던 나영이와 주현이로부터 튀어나왔다.
“선을 넘지 않으면 트수가 아니죠.”
“맞는 말이에요. 켈베로스 님, 왜 그렇게 재수가 없으세요?”
주, 주현아?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가는 저 자식이 폭발해 버릴 거라고.
하지만 의외로 허수는 주현이를 바라보면서 난감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제가 재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와! 진짜 그렇게 정중하시니까 더 재수 없네요. 우리 스승님한테 왜 자꾸 그렇게 질척거리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잠깐만.
나 이거 감 되게 좋은데?
내가 저런 말을 했으면 죽자고 달려들었을 허수가 왜 저렇게 얌전한 걸까?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 하는 건 아닌 듯했다.
주현이 옆에 있던 나영이도 주현이랑 허수를 번갈아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분간 저 둘의 기류를 좀 주시할 필요가 있겠군.
그렇게 한쪽에서 미묘한 기류가 오고가고 있을 때, 이번 컨텐츠에서 분량을 확보하지 못한 병문이 형과 동수 형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수 형님.”
“그래, 병문아.”
“동수 형님은 언제 장가가십니까?”
“……닥쳐라. 너도 곧 헤어질 거니까.”
아주 보기 좋은 덕담이 오고간다.
사실 배신을 통해서 분량을 확보한 주현이나, 네코시아 덕분에 분량을 확보한 허수 말고는 나머지 멤버들의 분량이 미약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첫 합방이었기 때문에 미숙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컨텐츠는 보다 확실하게 준비해서 스트리머 모두가 알뜰하게 분량을 챙기도록 해야겠다.
특히 나영이랑 병문이 형의 분량이 실종된 상태였다.
본인들도 아쉽겠지만, 나 역시 많이 아쉬웠다.
[나쁜 녀석들>의 첫 단체 합방이자, 내 두 번째 팬 미팅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갔다.슬슬 캡슐방과 계약한 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으니, 자리를 옮겨야겠다.
공식적인 팬 미팅은 끝났지만 아직 뒷풀이가 남았다.
“팬 미팅 일정은 끝이긴 한데, 치킨집은 빌려 뒀다.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이랑 미성년자들은 따로 테이블 잡아 줄 거고…… 갈 사람?”
설마, 전부 다 간다고 하지는 않겠지?
다들 공사다망한 사람들일 텐데, 내일 알바하러 가는 사람도 있을 거고, 교회를 가는 사람도 있을 거고.
아무리 그래도 전원이 간다고 하지는 않을 거다.
“쿠쿠쿠쿠.”
“벌써부터 닭에게 미안해지는군. 오마에와 치킨 킬러데스!”
“이런, 이런! 네 일본어 실력, 그 정도냐?”
“치킨을 안 먹고 간다고? 오우쉣, 그럴 일은 절대 없지.”
“쿠쿠, 내 여태까지의 후원금, 치킨값으로 대체되었다.”
이시국 빌런들과 씹덕, 거기에 각종 컨셉 관종들까지.
이곳에 모여 있는 많은 악질단들 중 치킨집 불참 선언을 한 건 고작 3명에 불과했다.
그 3명조차 오늘 야간 알바라고 해서 이탈한 거다.
……그래, 애초에 트수들인데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걸지도 모른다.
“치킨! 치킨!”
“닭다리 딱 대.”
“팬 미팅 매일매일 했으면 좋겠다. 우리악도 구경하고, 치킨도 매일 꽁짜로 먹고. 아, 생각만으로도 황홀해.”
“그러니까.”
“팬 미팅 매일 하자고 건의해 봐야지.”
팬 미팅 매일 하자고?
미친 새끼들……
그럴 바에 차라리 혀 깨물고 죽음을 택하겠다.
6.
-케이블 방송까지 진출한 스트리머, 애장품 경매를 통해서 발생한 1,200만원의 수익은 전부 말기암 환자재단에 기부!
-인터넷 방송인들의 소중한 선행!
-유명 아이돌 그룹 레드 라인, SNS에서 스트리머 시아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팬 미팅이 끝난 다음 날.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는 속속들이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팬 미팅에 참여했던 기자들의 기사였는데, 그들이 직업 작성한 기사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인터넷으로 퍼져 나갔다.
만약 그 기사에 내 팬 미팅의 클립이 담겨 있었다면 여론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겠지만, 기자들은 그런 디테일까지 챙기지 않았다.
인터넷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하자마자 충격적인 영상들을 접할 수 있었다.
[제목 : ㅋㅋ본인 샤라웃 방에 네코시아 수출하고 옴!] [내용 : (영상 링크).]악질단들 중 누군가가 그 ‘네코시아’를 내 미국 친구 샤라웃에게 수출해 버렸다.
내가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강조했는데 수출을 해 버리다니.
이 빌어먹을 트수 새끼들!
나는 분을 가까스로 삭이면서 그 영상을 확인했고, 곧 의자에 앉아서 ‘네코시아’를 감상하는 샤라웃의 모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Oh! Do you know SIA? He is my best f…….]나를 향해서 친구라고 말해 주려다가 곧 영상에 드러난 충격적인 모습을 발견한 샤라웃.
샤라웃은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잃더니, 곧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He is best cat in the world.]-LOL LOL LOL
-WTF
-monkaS
-POGGERS POGGERS POGGERS
-Do you know PSY? Do you know Yuna KIM? Do you know SON?
-kookoorookookoo
돌아오는 주에 미국을 가서 샤라웃을 만나기로 했는데, 빨리 가서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내가 그렇게 소파에 누워서 영상들을 확인하고 있을 때쯤, 샤라웃으로부터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디지털 시대라서 그런지 요새 호랑이들도 통신 장비를 사용하는 모양이다.
[샤라웃 : 오, 내 친구…… 요새 연애 사업이 힘들어? 고양이 분장. 많이 디스거스팅. 트위팟 파티도 고양이 분장하고 오는 거지? 기대하겠어.]에라이, 이 미친놈.
“후우.”
나는 폰을 소파 구석에 던진 다음 하품을 내뱉었다.
어제 팬 미팅이 있었던 탓에 오늘은 휴방을 하겠다고 일찍이 선언을 해 뒀다.
오늘 내가 방송을 켜지 않더라도 뭐라고 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진혁이 녀석도 지금 해외여행을 간 상태라서 집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정적.
그러나 오늘부터는 슬슬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짐도 미리 싸 둬야 했고, 쇼핑도 하러 가야만 했다.
……음, 일단 잠을 자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내가 나른한 기분으로 소파에 몸을 묻으려고 할 때였다.
띠리리링.
주말의 불청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성재 씨였다.
“여보세요?”
-주말에 이렇게 전화를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음, 성재 씨가 주말에 자주 전화를 하는 편은 아니다. 뭔가 이유가 있을 때만 전화를 한다.
지금처럼 따로 전화를 했다는 건 뭔가 건수가 있다는 뜻.
그리고 그 경우의 대부분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이었다.
-어제 잘 들어가셨죠?
“어유, 성재 씨가 도와주신 덕분에 팬 미팅도 수월하게 끝났는걸요.”
-다행이네요, 하하! 그래도 어제 팬 미팅, 결과는 좋아서 개인적으로 아주 흡족합니다.
성재 씨를 비롯한 치킨박스 직원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무난하게 끝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악질단들의 호응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치킨박스 직원들과 게스트들의 협조였다.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성재 씨도 주말이신데 좀 쉬고 계신가요?”
-아, 예, 저야 뭐 항상 쉬고 있죠. 고생하시는 건 찬식 씨랑 다른 스트리머 분들이신데요 뭐, 하하.
언제나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저러니까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지.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걸까.
급하게 처리할 비즈니스가 있다는 뜻인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뭐, 급히 제 이야기를 들을 만한 일이 있나 보네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성재 씨의 텐션 높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알아 맞히시네요.
“성재 씨가 주말에 전화를 걸 이유는 그것밖에 없잖아요?”
-아, 예, VRN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가로 제작한다고 합니다.
[요즘 것들>의 방송국이자 나를 케이블 방송에 데뷔시켜 준 VRN 방송국. [요즘 것들>의 시청률이 예상보다 훨씬 좋게 나와서 그런지, 곧바로 다음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간 모양이다.무슨 프로그램이려나.
기대가 되기도 한다.
[요즘 것들>의 촬영으로 바쁘기는 했지만, 촬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그게 전부 다 돈 아니겠는가.
원래 프로그램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래, 이야기나 한번 들어 보자.
“어떤 프로그램인가요?”
-들으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저도 깜짝 놀랐었거든요.
그리고 곧 전화기 너머로 예상하지도 못했던 컨텐츠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반문했다.
“케이블에서 정말 그런 컨텐츠를 만들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서브 MC 자리에는 주현 씨를 낙점했다고…… 이렇게 급히 연락드린 까닭은 그쪽에서 내일 미팅을 원하고 있습니다. 찬식 씨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야기가 진척이 되어야 예산 배정받기 쉽다고…….
예산은 사실 내 문제가 아니지.
하지만 서브 MC로 주현이가 낙점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제가 메인 MC가 되어서…… 그 미친 컨텐츠를 진행하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에.”
세상이 미친 건지.
내가 덜 미친 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난 프로 방송인이기 때문에 이런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일 약속 바로 잡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