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53)
51. 악플과의 전쟁 (3)
5.
내가 제시한 ‘대안’은 그리 어려운 방법이 아니었다. 방송에서 대놓고 사과를 하라는 것도 아니었고, 금전적으로 부담이 가는 방법도 아니었다.
단 한마디.
딱 한마디로 이 지옥 같은 분위기를 끝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심지어 그 한마디조차 욕설이 아니었다.
내 심기를 거스를 만큼 더러운 패드립도 아니었으며, 단순한 한마디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여 있는 14명 중,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아까 전보다 훨씬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한마디면 되잖아요? 그냥 제 앞에 오셔서, 제 눈 마주치고 ‘넌 그런 욕을 먹어도 싼 놈이야!’라고 하면 되는 건데…… 안 그래요? 솔직히 다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요.”
“절대 아닙니다.”
“흐으으윽.”
“진짜…… 아니에요.”
-저거 할 수 있었으면 진작 우리악한테 패드립 박았겠지
-ㅇㅇㅇ굳이 욕을 하는 게 아니더라도 저 말이 더 심한 것 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여기에도 찔리는 사람 몇몇 있을 거다
-근데 좀 역하긴 함ㅋㅋ 얘도 욕으로 이미지 메이킹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거 아니었음? 내로남불 역하긴 하네
-?
-니는 욕으로 이미지 메이킹 해도 저 자리에 못 올라가잖아ㅋㅋ 니가 욕하면 그냥 인생 시궁창이야 병신아ㅋㅋ
-ㄹㅇㅋㅋ 아직도 눈치없이 설치는 새끼들 존나 많네
이만하면 충분히 그림도 만들어졌다.
나는 14명의 참여자들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예상은 했다만, 실제로 내 앞에서 욕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익명성의 뒤에서 마음껏 날뛰던 사람들.
하지만 이곳에 온 저들은 어떻게든 본인의 실수를 주워 담으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들에게 크게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물론 아까 처음에 그들이 달았던 악플 목록을 확인할 때만큼은 치가 떨리긴 했다.
그러나 오늘 컨텐츠는 단순히 어그로가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14명의 참가자들을 향해서 조용히 말했다.
“사람 앞에서 하지 못할 말이면 당연히 넷상에서도 하지 말아야지. 안 그래요?”
“맞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뭐 하루 종일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하시냐고요. 뭐…… 예상은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컨텐츠를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
자칫하면 선을 넘을 수도 있는 컨텐츠였지만, 성재 씨가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이유가 있었다.
이미지 메이킹.
오늘의 이 컨텐츠를 통해서도 나만의 이미지를 충분히 구축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14명의 참가자들끼리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보는 걸로 하이라이트는 뽑았고, 이제는 명문과 메시지를 챙길 시점이었다.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을 시작했다.
“약속했던 대로 오늘 이곳에 용기를 내서 찾아와 준 당신들에게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비록 이곳에서 활약해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긴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착하게…….”
“그런데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누구부터 물어보는 게 좋을까……. 그래, 범석 군.”
아까 첫 번째 타자로 악플 읽기에 나섰던 6조의 이범석 학생.
내 말에 범석 군은 화들짝 놀라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헤어지기 전에 오늘의 소감을 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어떠셨어요?”
그러자 범석 군은 어색하게 마이크를 잡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책임이 무겁구나.’ 하는 생각이요.”
“책임? 무슨 책임?”
“저는 그냥…… 단순히 재밌자고 댓글을 달기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했는데, 선을 넘을수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냥…… 그게 좋았거든요. 쾌감이 느껴졌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이해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관심에 독이 섞여 있으면 아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유명해졌으니까, 당연히 악플을 감수하고 방송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 감수를 하고 방송을 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감수를 한다고 해서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분명히 그 상처는 누적이 된다.
그렇게 누적된 상처는 언젠가는 곪아 터지면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스스로의 목숨을 던질지도 모른다.
만약 악플러에게 괴롭힘을 받아서 자살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일까?
그 악플들을 충분히 ‘감수’하지 못한 그 사람의 잘못인가?
유명세로 돈을 벌었으니, 그 상처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개소리지.
누구나 다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
내가 스트리머가 된 이후로 보았던 악플들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들이 아니었다. 키보드로 사람을 죽이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깨달을 수 있게 해 줬다.
오늘 내가 이 자리를 빌어서 시청자들에게 똑똑히 해 주고 싶은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후회하나요?”
“……네.”
“언제 그렇게 후회하기 시작했죠?”
“사실…… 지난번에 부모님이랑 같이 이곳에 온 적이 있어요.”
아마 성재 씨가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 합의 절차를 밞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그때 나는 방송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없었다.
아마 그때의 일을 말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범석 군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부모님께서 제가 작성한 악플들을 보셨거든요.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우시더라고요.”
순간, 스튜디오 내부에 정적이 흘렀다.
범석 군은 계속 흐느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아버지께서는 그냥 별말씀 안 하셨어요. 그냥…… 저에게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치킨박스 담당자 분께 연신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가능하다면 시아 님 찾아뵙고 사죄드리고 싶으시다고…….”
“제가 거절했죠.”
거절과 동시에 건넸던 제의가 바로 오늘의 이 자리였으니까.
나머지 학생 참가자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대부분 범석 군과 비슷한 사연을 지닌 녀석들이 참여하게 된 거니까.
성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 내 제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벌금을 내는 것이 빠듯할 정도로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튼 범석 군 이후로 다른 참가자들의 고해 성사도 이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14명 모두의 솔직한 고백이 끝났고, 나는 마이크를 건네받은 다음 천천히 말을 맺었다.
“오늘 내가 준비해 온 컨텐츠는 여기서 빨리 끝내야 할 것 같다. 아,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자.”
옆에 두었던 망치를 가볍게 움켜쥐면서, 카메라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경고했지만, 오늘 이 자리에 안 나온 악플러들은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날 원망하지 마라.”
전쟁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비릿하게 웃음을 지으면서 카메라를 끝까지 직시했다.
6.
처음에는 단순히 컨텐츠 욕심에서 시작된 방송이다.
그러나 방송이 종료되자마자 더 큰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스트리머 시아, 악플러들과의 전쟁 선포!
-본인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 동료 들을 건드리는 건 참을 수 없다!
-법 알아보기! 2028년 개정된 법안에 따라, 최대 1,000만원의 벌금 부과 가능!
-유명 스트리머와 미튜버들의 잇따른 활동 중단, 악플에 대한 지속적인 경각심이 필요…….
-연예계를 포함한 다수 집단에서 스트리머 시아에게 지지성명을 발표?
“노리셨던 결과가 나왔군요.”
“제가 노렸던 결과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성재 씨가 원하던 결과 아니에요?”
“전부 찬식 씨를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하하.”
“그래도 당분간 좀 얌전해지겠네요.”
치킨박스 측에서도 최근에 악플러들에 대한 문제를 민감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이곳에 소속된 스트리머들에게 쏟아졌던 악플들.
실제로 몇몇 치킨박스 소속 스트리머들은 장기 휴방을 선언하면서, 휴식기에 접어들었을 정도였다.
멘탈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동수 형조차 최근에는 벅차다고 할 정도였으니, 더 설명이 필요할까?
나는 방송 후 정리가 끝난 치킨박스의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하며 핸드폰을 열심히 확인했다.
최고 시청자 11만 명.
그 어떤 스트리머들도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고소미 컨텐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과 속에서 마무리되어 갔다.
“오늘 이곳에 안 온 대상자들은 어떻게 하죠?”
“법정 공방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쪽에서 순순히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도 않을 거고요.”
“비용이 조금 더 발생하겠네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 비용 역시 청구해 버리면 됩니다.”
“뭐, 성재 씨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아서 해 주시겠죠.”
악플러들을 컨텐츠에 이용해서 재미를 뽑아낸 건 좋지만, 오늘 이후로 나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여지는 충분히 존재했다.
댓글의 자유를 침해한다든가, 독재자라든가.
벌써부터 몇몇 커뮤니티에는 그런 반응들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언제나 최전선에 나서주는 건 악질단들이었다.
[제목 : 시아 새끼 내로남불 하는 꼴 더 이상 못 보겠다>내용 : 처음에는 게임도 잘하고 욕도 잘해서 재밌게 봤었는데, 최근에 너무 나대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보기도 싫어짐. 나만 그러냐? 지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꾸 메시지 주고, 댓글도 통제하고ㅋㅋ 여기가 무슨 공산국가임? 난 먼저 탈갤한다 ㅅㄱ해라
나름 중립적인 척을 하면서 나를 교묘하게 까 내리는 게시 글.
저런 게시 글이 곳곳에서 꽤 보였다.
그러나 저런 게시 글에는 아니나 다를까 악질단의 선봉대장들이 나서는 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ㅆㅃ련아 꼬우면 쳐 보지를 말라고ㅋㅋㅋ 누가 너 하나 안 본다고 해서 망할 것 같음?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새끼 예전부터 우리악 싫어했으면서 아닌 척하는 거 존나 역겹네
-공산국가 보내 줄까ㅋㅋ? 걍 선 넘는 욕하지 말라고 했을 뿐인데 존나 지랄 떨어요
-야…… 너 Hoxy…… 우리악한테 고소당한 놈이냐?
-킹리적 갓심
-니 아이디 다시 이 갤에서 보이잖아? 그럼 나 네 얼굴에 오줌 쌀 거야!!
지난 방송에서 동수 형이 큰 방송 사고를 냈던 것.
‘~~하면, 네 얼굴에 소변을 보겠다!’는 곧 하나의 밈으로 자리를 잡아 버렸다.
그 와중에 본인 방송 분량을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술 취한 동수 형은 저렇게 거칠게 들이박는 게 매력이란 말이야.
그렇게 한참 동안 웹서핑을 끝낸 나는 푹신한 사무실 소파에서 가볍게 몸을 뒤집으면서 성재 씨에게 말했다.
“그 [시아의 하꼬식당>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전적으로 찬식 씨의 스케줄에 맞춰서 결정될 예정입니다. 곧 첫 번째 촬영에 참여할 학생들이 정해질 것이고…… 듣자하니 이미 프로그램의 플롯은 다 잡혔다고 하더라고요.”
VRN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프로그램 가제 [시아의 하꼬식당>.
정규 편성이 되면 이름이 바뀔 테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서 놀라웠다.
[요즘 것들>에 다가 [시아의 하꼬식당>까지 겸하게 된다면 진짜 정신없을 것 같기는 한데…….그렇게 내가 이후의 스케줄을 떠올리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내일부터 휴방 일주일만 할게요.”
“나쁘지 않네요. 오늘 논란과 이어지면, 생각보다 여론을 쉽게 움직일 수도 있을 겁니다.”
성재 씨가 순순히 내 결정을 인정해 주었다.
근래에 너무 달리기만 했다.
잠시 쉬어 갈 타이밍이 필요했다. 원래는 지난번 미국 여행 때 충분히 쉬었어야 했는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쉬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리프레쉬 할 타이밍이었다.
지난번에도 일주일 쉬었다고 말하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이후의 일정을 위해서라도 잠시 쉬면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시아의 하꼬식당>, 그거 미리 촬영 스케줄 잡아도 될 것 같아요.”
“복귀하시는 대로 추가 미팅을 잡아 볼까요?”
“그렇게 하시죠.”
“알겠습니다.”
모든 상황을 정리한 다음, 성재 씨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일주일 동안 연락 안 드릴 테니 편하게 쉬십시오.”
“감사합니다.”
내뱉은 말은 지키는 성재 씨라서 믿음이 가는군.
그러나 정확히 3일 뒤.
그 약속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건과 함께 깨져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