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61)
54.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 (2)
3.
방송의 신은 항상 나를 참 아껴 주신다.
문제는 아껴 주지 않아도 될 시기에도 변함없이 아껴 준다는 점이었다.
나는 식탁 옆에서 산산조각이 나 있는 고급 식기들을 바라보면서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았다.
이사를 위해서 일부러 사 둔 유럽 직수입 고급 식기들이다.
접시 한 장당 20만 원.
엄청 부자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겠지만, 졸부나 다름없는 나에게는 진짜 큰 마음먹고 산 비싼 접시다.
예전에는 다이X 같은 곳에서 가성비 좋게 샀지만,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플렉스를 했었다.
하지만 그 플렉스는 오래 가지 않았다.
“……누구야.”
이삿짐도 별거 없었고, 이미 가구들은 전부 도착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사 센터 직원분들은 돌아간 상황.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메라 각도도 잘 안 나왔음
-우리악 눈에서 흐르는 거 눈물 아니지? 형? 접시 하나 깨졌다고 우는 거야?
-저거 접시 존나 비싼 모양이네
시청자들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고에 그저 싱글벙글할 뿐이었다.
스트리머의 고통이 곧 그들의 행복인 법이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자수하세요.”
그러자 동수 형을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절대 아니야.”
“나도.”
“식탁 근처로 간 적도 없어.”
“그러게 누가 식탁에다가 접시 올려 두랬냐? 바로 선반에다가 정리를 해야지.”
허수 이 나쁜 새끼는 말하는 것도 띠껍게 말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허수의 싸가지가 아니었다.
범인을 색출하는 거지.
“지금 나오면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손해배상만 하시면 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인원들은 모두 저 접시를 배상해 줄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접시 한 장이야 새 집 들어왔으니까 액땜했다고 치겠습니다. 본인의 양심을 속이시겠습니까?”
내 압박에 그들은 곧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각을 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살피면서 빠르게 눈을 좁혔다.
표정에는 모든 게 드러나기 마련이었으나, 누가 스트리머들 아니랄까 봐 표정 연기까지 완벽하다.
젠장, 도대체 누구……
‘명탐전느그난’님께서 1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고 접시 군의 명복을 빕니다…… 진실은 하나…… 접시 군의 억울한 죽음이 꼭 밝혀지기를 바랍니다!]“어?”
“찬식아, 웃어? 지금 네 접시가…… 깨진 거 아니야?”
“일단 본전치기.”
방송을 켜 두기를 잘했다.
만약 방송을 안 켜 뒀다면, 이 자리에서 아주 끔찍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오늘 우리 집에 온 손님들은 전부 돌아가지 못했겠지.
범인을 밝혀낼 때까지 말이다.
나는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금융 치료가 완료되었으니 군자의 도리를 실천해 줘야 할 때였다.
“관용을 베풀 터이니, 속히 나오도록 하세요.”
내가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자, 드디어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풀렸다.
15만 원 접시가 깨진 거, 뭐 까짓것 새로 하나 사면 되는 거고.
이사하자마자 불운을 씻어 냈다고 생각하면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하지 않던가.
이사 온 집에서 방송이 더 흥하려는 모양이지.
그렇게 내가 자애롭게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동수 형이 멋쩍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미안하다, 찬식아. 형이 그만 엉덩이로 쳐 버렸다. 너도 알다시피 형 요새 엉덩이가 많이 힙 업 되어 있잖냐?”
“그런데 왜 솔직하게 말씀 안 하셨어요?”
“……너라면 했겠냐?”
“저요?”
내가 반대 상황이었다면…… 동수 형 말대로 끝까지 잡아뗐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동수 형을 향해서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와ㅋㅋ인성 봐
-역시 배신에는 배신인 건가?
-ㅋㅋㅋㅋ그래도 우리 동수 형이 진짜 착하긴 해ㅋㅋ 그냥 끝까지 비밀로 숨기지
-저 표정 봐ㅇㅇ 너무나도 당당하게 본인이 했다고 하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입술 그냥 확 딱밤 때려 버리고 싶네
시청자들의 말대로 동수 형은 넉살 좋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동수 형은 항상 스탠스가 어중간할 때마다 웃더라.
하지만 어림도 없다.
“형. 그래도 손해배상은 손해배상이죠?”
“뭐? 우리 사이에 왜 그래.”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 관리를 철저하게 해라, 그게 형이 저에게 전역하고 나서 처음으로 했던 조언이잖아요. 기억나시죠?”
처음, 동수 형과 대면하게 되었던 그 날.
진혁이의 소개로 동수 형과 가볍게 맥주를 기울였을 그 때, 동수 형이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본인이 해 준 말에 당해 버리자 동수 형이 침음을 삼키면서 말했다.
“아까…… 시청자분이 후원……”
“그건 시청자님 돈이지 형 돈 아니잖아요. 인정?”
“젠장.”
논리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동수 형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미안하다. 형이 지금 곧바로 계좌로 입금해 줄게.”
“빠른 처리 감사합니다. 좋아, 이제 슬슬 중국집에서 중식을 시켜 볼까요?”
이삿날에는 중국집 음식이 최고지.
그렇게 내가 즐겁게 웃음을 지으면서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를 확인한 진혁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곧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목소리를 떨어 대는 걸까.
에이, 고작 첫날인데 무슨 일 더 있겠어?
나는 진혁이를 바라보면서 자비롭게 웃음을 지었다.
“TV에 문제 생긴 거 빼고는 전부 다 봐줄 수 있어. 무슨 일인데, 진혁아.”
그러자 진혁이는 입을 다물었다.
-이 집은 시작부터 마가 끼었네ㅋㅋ
-어어ㅋㅋ TV 저기 액정 보셈
-??? 금이 가 있네 ㅋㅋㅋ
-촬영 드론 요새 성능 좋다
-대피하라! 대피하라! 곧 화산 터진다!
아니……
이사 첫날이잖아?
게다가 저 TV는 오늘부로 우리 집 보물 1호가 된 녀석. 그런데 하루도 못 가서 화면에 금이 가 버렸다니.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극한의 순정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다음, 주먹을 불끈 쥐면서 소리쳤다.
“누구야아아아아아아아!”
4.
“아니 아까 쟤가 우리 다 죽이려는 줄 알았다니까?”
“리얼루.”
“저 형한테 말 잘못 했다가 맞아 죽는 줄 알았어요.”
TV에 금이 가 있던 해프닝은 곧 배송 중 발생한 트러블인 걸로 밝혀졌다.
성수 형이 다급히 후원을 통해서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금이 간 TV는 내일 곧바로 교환해 주기로 했다.
성도전자 측에서 직접 신경을 써 주기로 했으니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나는 짜장면을 한 입 먹으면서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니, 누구라도 화를 낼 만하지 않았겠어요?”
“극대노 잘 봤다.”
“네가 그렇게 극대노하는 건 진짜 처음 봤던 것 같은데?”
“게임에서도 화 잘 안 내잖아. 화 안 낸 상태에서 욕을 열심히 박아 넣어서 그렇지.”
동수 형과 다른 동료 스트리머들은 실실 웃음을 지으면서 식사를 이어 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진심이긴 했다.
생각해 봐라.
TV를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금이 가 있으면 누구라도 화를 내는 게 당연한 거다.
살아있는 부처가 아닌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 맞다.”
식사가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열심히 짬뽕 국물을 마시던 동수 형이 그릇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 생각보다 오픈 빨리할 것 같던데? 이야기 들었어?”
“진짜요?”
“어. 일자도 곧 확정될 거라더라. 내년 2월 12일로 당겨졌어.”
진짜 얼마 안 남았네.
동수 형의 말에 허수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클래식 열리면 목표는 어디까지세요, 형님?”
“당연히…….”
동수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째려보았다.
“묵시룡까지지. 우리 그때 실패했잖아.”
만약 그때 내가 동수 형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트라이를 해 봤다면, 정말 묵시룡 퍼스트 킬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짜장면을 목으로 넘기면서 동수 형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제대로 한번 트라이해 보죠. 파밍이 귀찮을 뿐이지……”
-ㄷㄷ
-배신 안 하는 시아? 그거 오버 밸런스 아님?ㅋㅋㅋ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 조기 오픈은 조금 기대되긴 하네
-틀딱 쉐리들 벌써부터 설레여 하누ㅋㅋ 가이아 온라인 틀래식이 그렇게 재밌을 것 같음?
-걍 추억 보정 게임인데 재미는 무슨ㅋㅋ 파밍 지루해서 다들 제대로 하지도 않을 듯ㅇㅇ
배신 안 하는 시아라……
나쁘지 않은 별명이군.
그 시절, 내 유일한 오점이 바로 배신자였으니까.
모든 장점을 덮어 버릴 정도로 치명적인 오점이었지만, 필연적인 오점이었기도 했다.
아마 동수 형은 나를 탓하려고 저 말을 꺼낸 건 아닐 것이다.
“이번에는 함께하자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동수 형의 친근한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형.”
“클래식 시작되면 한동안 신규 유저들도 많이 유입될 거고, 트위팟 전체가 그것만 스트리밍하고 있을 거야. 샤라웃이 묵시룡 퍼킬 내기하자던데?”
“퍼킬 내기요?”
“어. 아직 뭘 걸지는 안 정해졌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 생각 있지?”
“저야 언제든 환영이지만……”
다른 크루원들의 생각도 물어봐야지.
아마 게임이 시작되면 동수 형네 크루와 우리 크루가 힘을 합쳐서 길드 하나를 결성할 것 같긴 하다.
동수 형 크루에는 동수 형뿐만 아니라 세린 누나나 유선 누나처럼, 한때 가이아 랭커 출신 스트리머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슬쩍 허수를 비롯한 [나쁜 녀석들> 크루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굳이 거절하려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다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당연히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을 플레이할 것이다.
“그거 컨텐츠는 길게 못 가요. 아시죠, 형?”
내 말에 동수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묵시룡 컷하고 끝내야지. 레벨 올리는 거야 다들 노하우 있잖아? 그리고 마지막 패치 버전으로 나온다고 했으니…… 레벨보단 장비가 문제겠지.”
“알았어요.”
2월 12일이라.
여전히 많이 남기는 했다만, 그래도 충분히 기다릴 만한 날짜였다.
좋게 생각하면 2월 이후의 컨텐츠를 날로 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그 게임을 한다고 해서 말릴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으리라.
-시아가 가이아 온라인 하는 거 진짜 보고 싶기는 하다
-비공식 랭킹 1위였지?
-비공식 랭킹이랑 공식 랭킹 차이는 뭐임?
-그거 정보 공개 비공개 차이임ㅇㅇ
-근데 정보 공개하면 템 세팅이나 이런 거 노출돼서 꺼리는 사람들 많았어
-그때는 그랬지ㅋㅋ
언제나 중간 이상은 가는 것이 바로 추억 코인이다.
[가이아 온라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채팅창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다들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자 나는 채팅창을 바라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열심히 이야기들 해.”
오늘만큼은 방송을 날로 먹을 수 있겠구나.
상당히 만족스럽구나.
우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열심히 중식을 해치워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이 자리에 있던 전원이 찍먹파라서 탕수육에 관한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날로 먹는 이사 방송이 부드럽게 진행되어 갔다.
평소 같은 자극적인 맛의 방송이 아니라, 짐을 나르고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방송.
간만에 가지는 여유에 만족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악질단들도 자기들끼리 열심히 노는 중이었다.
일부는 후원해서 드립 치고, 일부는 채팅창에서 난리를 피우고.
여러모로 편한 방송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궁금증빌런’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럼 내일부터는 무슨 방송 할 거야? 이번 주 케이블 방송 촬영 없잖아?]쓸모 있는 질문이군.
나는 촬영 드론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곧 있으면 리그 오브 스톰 세기말이지?”
1년 중 [리그 오브 스톰>이 가장 재밌는 시기.
시즌의 마무리이자, 수많은 사건 사고가 생기는 시기.
[세기말>이란 언제나 방송인들에게 아주 자극적인 맛을 선사해 준다.그런 기회를 쉽게 놓칠 리가 있나.
나는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리그 오브 스톰으로 기강 안 다졌으니, 간만에 기강 한번 다져 보자.”
이사 후 내 첫 컨텐츠.
그것은 바로 [리그 오브 스톰 – 세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