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83)
61. 그는 신인가? (2)
3.
성재 씨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가히 충격적인 전화였다.
[점프 엠페러2>를 클리어하면서 느낀 성취감을 가뿐히 덮을 정도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제가 그 자리에 왜 나가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가장 핫한 스트리머시기도 하고, 케이블 방송에서 학부모들에게 은근히 점수를 따기도 하셨고……. 그래서지 않을까요?
“아니, 저 말고 좋으신 분들 많잖아요. 그리고 그 주제, 예전에 한 번 유명하지 않았어요?”
-정식으로 게임을 질병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거든요.
“그러니까…… 하! 그거 꼭 해야 될까요?”
-안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마 대국민적인 인지도를 쉽게 쟁취할 수 있는 기회지 않겠습니까?
다 좋다.
공중파에 출연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미래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에서 제의가 왔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대답했다.
“……저 고졸인 것도 아시죠?”
-네, 압니다.
“저 평소에 동수 형처럼 풍부한 입담, 그런 거 자랑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욕 박는 게 유일한 컨텐츠인 사람.”
-‘였던’ 사람이죠. 지금 찬식 씨가 자랑할 만한 컨텐츠들은 꽤 많지 않습니까?
어째서 한마디도 안 지려고 들까?
내가 공중파 출연을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있는 건, 그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형식 때문이었다.
“제가 똑똑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나가요. 나가 봤자 그냥 개 쪽만 당할 텐데, 이미지 박살 나는 거 아니에요?”
그것은 바로 공중파 방송국인 SBC에서 토요일 오후 8시로 예정해 둔 ‘게임과 중독’이라는 진부한 제목의 토론 때문이었다.
토론.
평범한 학생이라면 학교 교과 과정에서 몇 번은 경험해 봤을, 논리와 논리가 맞부딪치는 전쟁.
원래 그런 건 많이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거다.
나같이 못 배운 녀석들이 감히 넘봤다가는 대판 깨지기가 쉬웠으니까.
성재 씨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적어도 그는 나보다 많이 배웠으며, 이쪽 방면으로는 천부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지니고 있다.
성재 씨의 적절한 조언과 도움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자리까지 오긴 힘들었을지도 모르지.
그런 성재 씨가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는 건, 이 토론이 나에게 있어서 결론적으론 이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만약 이 토론이 지식과 지식, 이념과 이념이 부딪치는 전장이었다면 당연히 전 찬식 씨를 내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요?”
-전 질 싸움에 제 사람을 절대로 보내지 않습니다. 알고 계시잖습니까?
“성재 씨.”
-네.
“성재 씨는 다 계획이 있군요.”
이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이미 수많은 대안을 마련해 놨다는 것.
여기까지 이르렀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 없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춘 다음, 천천히 대답했다.
“내일 치킨박스 사무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제가 자세한 건 오시면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는 그걸로 끝.
성재 씨는 기분 좋은 인사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고, 나는 다시 소파에 누우면서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일거리가 이렇게 끊이지 않는 게 어디야?
“형, 공중파까지 도전하는 거야?”
어느새 왔는지 옆에서 초콜릿을 먹고 있던 진혁이가 넌지시 묻는다.
나는 녀석의 질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될 것 같은데?”
“형, 공중파는 이미 몇 번 출연한 적 있잖아.”
……내가?
“9시 뉴스에서 몇 번 보도하는 거 본 적 있는데.”
“아, 맞다.”
인터넷에서 중국, 일본과 본격적으로 싸우던 시절, 뉴스에서 몇 번 보도된 적 있기는 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 뉴스 보도가 아니라 토론회에 참여하는 거였다.
솔직히 아직도 나를 왜 섭외했는지 잘 모르겠다만, 성재 씨가 친절하게 모든 걸 설명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뭔가 느낌은 좋을 것 같다.
“토론회에 나갈 생각 없냐고 물어보더라?”
“엥? 형이 무슨 토론? 형은 토론의 ‘토’ 자도 모르잖아.”
“그렇긴 하지.”
“솔직히 형은 그렇게 논리적으로 싸우기에는 아는 게 너무 없…….”
선 넘네.
나는 진혁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씨익 웃음을 지었다.
“내가 토론의 ‘토’ 자는 모르는데, 네 입에서 토 나오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
“흡!”
안 그래도 요새 팔 운동이 엄청 잘된 편이라서 근육량이 많이 늘었다.
사람의 목을 꺾을 수 있는 수준인지 확인하기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닌가?
내가 팔에 힘을 주자 곧 진혁이가 바닥을 툭툭 치면서 항복을 선언했다.
새끼.
가끔씩 이렇게 좀 어루만져 줘야만 정신을 차린다니까?
그렇게 치킨박스 사무실에 들르는 건 확정되었고, 나는 미튜브에 남아 있는 영상들을 뒤적이며 비슷한 주제의 토론회 영상을 미리 살펴보았다.
이건 꽤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논쟁이기도 했으니까.
어차피 대부분의 준비는 성재 씨가 알아서 해 줄 것이지만, 미리 알아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접속한 미튜브에서 10년도 더 된 토론회 영상을 하나 확인했고, 곧 그 영상을 보면서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레전드네?”
성재 씨가 말하기로는 이때의 출연진이 다시 출연한다고 했었지?
나는 그 영상을 확인하면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성재 씨가 이게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했는지, 그제야 알 수가 있었다.
4.
다음 날 아침.
아침 먹고 운동을 끝낸 다음 집에서 나왔고, 곧바로 지하철을 이용해서 치킨박스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지하철로 한 25분 정도 걸렸나?
다음 주에 차를 뽑기로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좀 버티면 되겠다.
기존에 살던 집과는 달리 지하철 시간도 좀 늦는 편이고,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좀 많다.
차의 필요성을 더 실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가 치킨박스 사무실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얼굴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앗! 시아 님이시군요.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롭게 신입 사원으로 들어온 류성민입니다!”
“저는 황지연이라고 합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근래에 새직원을 뽑았다고 그랬지?
치킨 박스는 소속 스트리머들의 선전 덕분에 예전보다 회사의 규모가 빠르게 커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허수의 합류로 인해서 중국 쪽의 인지도도 많이 올라갔고, 사업 방향성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치킨박스의 덩치가 커지는 게 온전히 우리 덕분이라기에는 성재 씨의 능력이 워낙 탁월했다.
스트리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디에서든지 일을 조달해 왔으니 말이다.
“하하, 저희 신입 사원들 어떠십니까?”
신입 사원들이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쯤, [대표실>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방 안에서 성재 씨가 걸어 나왔다.
“잘 지내셨죠?”
“저희야 항상 스트리머 분들 덕에 잘 지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새로 나온 명함을 안 드렸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치킨 박스 대표 이 성 재
오!
“대표?”
“하하, 사실 저번 주부터 제가 치킨 박스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동수 형의 누님께서 대표로 계셨던 회사였는데, 어느새 성재 씨가 대표의 자리로 올라간 모양이다.
그러나 크게 놀랍지는 않은 일이었다.
사실상 회사 대부분의 실무는 성재 씨가 진행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웃음을 지으면서 성재 씨에게 악수를 권했다.
그러자 성재 씨 역시 웃음을 지으면서 내 손을 맞잡았다.
“축하드립니다, 성재 씨.”
“감사합니다.”
“이제 대표님의 권한으로 계약서도 막 수정할 수 있겠네요? 역시 이래서 사람은 라인을 잘 타야 한다니까.”
라인이라고 할 것도 없는 회사지만 말이지.
내 능청스러움에 성재 씨가 소리를 내어 웃더니, 곧 나를 [접객실>이 아닌 [대표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자, 앉으시죠.”
사실 직함이 달라졌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직원들이 알아서 차를 내왔고, 나는 성재 씨의 옆에 편하게 앉았다.
회사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크게 불편한 게 없는 장소다.
“오늘 이렇게 모신 이유는 SBC의 토론회 때문입니다. 자, 여기 프로그램 기획 의도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간단하게 정리된 서류 몇 장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가 건넨 서류를 천천히 살폈다.
내가 열심히 서류를 확인하고 있을 때쯤, 성재 씨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토론에 대한 준비를 부담할 쪽은 저희 쪽이고, 찬식 씨는 그저 몇 번 대본을 연습해 주시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거, 저한테 이득이 되는 일 맞죠?”
그 말에 성재 씨는 본인의 앞에 놓여 있던 커피 한 잔을 가볍게 입에 머금었다.
그러더니 곧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슬슬 찬식 씨의 캐릭터를 한 번 더 각인시킬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들은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이미지를 스스로 구축해 나가면서 끊임없이 대중에게 우리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했다.
스트리머들이 기회가 되면 케이블이나 공중파 방송으로 진출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시대에는 인터넷 방송과 케이블, 공중파 방송이 큰 차이가 없다.
케이블 방송들 중 상당수가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까지 진출한 건 물론이며, 대표적으로 VRN은 이미 트위팟과의 협력을 통해서 소기의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스트리머들과 연예인의 경계가 많이 희미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현재 공중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인터넷 방송 출신인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니 지금 성재 씨가 말하는 ‘각인’이라는 것은.
“찬식 씨의 몸값을 띄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시기죠. 지금까지 탄력을 받아 왔으니, 이번 기회에 점을 하나 찍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팩트가 큰 컨텐츠가 필요한 거고, 거기에 걸맞은 게 이번 토론회라는 말이지?
좋아, 이해는 했다.
나는 성재 씨의 설명에 슬쩍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앞에 놓여 있던 꿀물을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석청으로 만든 꿀물입니다. 제가 찬식 씨가 워낙 꿀물을 좋아하시기에, 잘 아는 분에게 부탁 드려서 공수해 왔습니다. 돌아가실 때 석청 좀 챙겨 가세요.”
석청?
그거 엄청 귀한 꿀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입안에 스며든 꿀물의 향이 더욱더 향긋한 기분이다.
몸에 힘이 넘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대표가 되더니 확실히 스케일이 커지셨구먼.
“입에 맞으십니까?”
“향이 제가 먹던 꿀물과는 다르네요.”
“좋은 것만 드셔야죠. 제가 종종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슬슬 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SBC에서 특별히 편성한 토론.
제대로 된 제목을 확인해 보니 [현실을 침범하는 가상현실.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딱 봐도.
“게임돌이들 저격하는 특집이네요.”
“맞습니다.”
“가상현실이랑 현실을 구분 못 하고 날뛰는 몇몇 범죄자들을 예시도 들겠고요?”
“아마 그럴 겁니다. 거기에 상대측 패널로 나오시는 분이…… 꽤 유명하신 분이거든요.”
“설마?”
“네. 전설의 그분이십니다.”
2010년 대 중반쯤이었나?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했던 토론이 하나 있었다.
유명 게임 미튜버도 참여했던 그 토론.
학부모 대표라는 사람이 나와서 대차게 게임을 근거도 없이 까기만 했던 토론은 수많은 게이머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때의 그 주인공이 이번에도 또 출연한다고 한다.
나는 성재 씨의 말에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기 힘든 싸움이네요.”
그러자 성재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들 말하는 꼰대 스타일이라고 하죠?”
“제가 토론회에서 맡을 역할은 꼰대에 저항하는 현 젊은 세대고요?”
“그렇습니다.”
“저 시은교를 통해서 학부모들한테 꽤 괜찮은 이미지 쌓고 계시는 거 알죠?”
시은교.
[시아의 은밀한 교습>의 줄임말인데, 내 말에 성재 씨가 그 어느 때보다 사악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자, 일단 제 말을 들어 보실까요?”
그렇게 3분 정도 조용히 성재 씨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가볍게 입을 벌리면서 말했다.
“와……!”
“왜 그러십니까?”
“사탄이 오열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네요.”
대표란 자리는 고스톱을 쳐서 따낸 자리가 결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