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85)
62.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1.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뭐, 토론회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몸이 떨리고 긴장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사회자의 말을 경청했다.
“네, 오늘 저희가 이 자리에 모인 건 다시 한번 게임 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대학교 정신의학과 유은찬 교수님, 먼저 발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게임을 질병으로 보고 있는 상대측이었다.
안경을 쓰고, 정말 교수처럼 생긴 중년의 남성이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가져온 자료를 보여 주시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게임 중독 환자의 뇌와 마약 중독 환자의 뇌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1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자료들.
눈살을 절로 찌푸려지게 만드는 자료들이었지만, 상대측 교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보면 알 수 있듯이 게임에 중독된 뇌와 마약에 중독된 뇌의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게임의 중독성이 마약 수준이라는 걸 의미하며…….”
그 이후로 이런저런 전문 용어들이 나오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계속되었다.
그래, 저 정도의 자료를 조사해 와서 말하는 건 그나마 들어 줄만 하다.
적어도 억지는 아니니까.
게다가 토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근거와 논리로 말을 이어 나간다.
교수의 발언이 끝난 다음, 우리측 교수도 발언을 시작했다.
진짜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래도 각자가 조사한 자료에 의거한 토론이었으니까.
본격적인 치킨 레이스는 그다음 발언자인 전국 어머니협회 대표, 서은숙 씨의 발언부터였다.
그녀의 발언은 예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되었다.
“게임 중독은 분명 나라에서 신경을 써야 할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며, 그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죠.”
“게임은 역시 질병이란 말씀이시네요?”
“맞습니다. 요새 게임들은 연속성이 너무 강해져서 자제력이 부족한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는…….”
하나도 바뀐 게 없다.
내가 지난번에 미튜브를 통해서 확인했던 영상과 달라진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논거는 진화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본인의 주장을 납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 같다.
-내가 말할 테니 넌 그냥 듣고,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인정해.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가상현실 게임으로 넘어온 이후, 학생들의 게임 중독 현상은 더 심해졌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게임을 하다가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경우를 봤을 때, 저희들은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더욱더 확실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상현실로 넘어오면서 게임 중독 현상이 심해졌다는 건 잘못된 사실입니다. 제가 통계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
“제 이야기 아직 안 끝났습니다. 제 이야기 끝나고 말씀하시죠.”
그 이후로 그녀의 발언은 일방적으로 이어졌고, 이런저런 논리가 계속 펼쳐졌다.
게임의 사행성이 아이들의 소비 습관을 망친다, 게임에 중독되어 학업 능률이 떨어진다, 게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등등.
그녀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게임을 바라봤는지를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한 미튜버의 SNS에 달린 댓글을 소개하면서 말을 마무리 지었다.
“자식을 기르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게임 중독은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봅니다.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에만 열중하니, 세상 그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습니까?”
소통할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단 한 치의 틈도 없이 그저 상대방에게 패배를 시인하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거기에 학부모라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본인이 이렇게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서라고, 그렇게 스스로 외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속에서 화가 조금씩 치밀어 오를 정도였으니까.
내가 이 정도인데 그녀의 발언을 듣고 있는 다른 패널들이나 청중은 어떨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애써 웃음을 지었다.
그런 내 표정을 본 걸까?
사회자로 나온 전준모 아나운서가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유명 크리에이터시자 젊은 세대들에게는 핫한 아이콘이시죠? 크리에이터 시아 님, 혹시 시아 님께서는 게임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드디어 나에게 발언의 순간이 찾아왔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가볍게 숨을 뱉어 냈다. 그리고 천천히 상대측 패널과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청중의 얼굴을 한 번 씩 바라봤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없지.
하지만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방송할 때 모니터를 통해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적도 있다.
이 정도의 사람으로 압박을 느끼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에게 있어서 게임은 아주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토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옛날에 비해서 아주 유명해졌다고 한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내 인생이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지, 게임과 게임 방송을 통해서 어떤 삶이 펼쳐졌는지.
성재 씨가 해 준 말을 잠시 떠올렸다.
-이기적이세요. 토론회에서 명확한 자료와 근거를 통해서 논리를 펼치고 그런 거, 생각하지도 마세요. 그건 다른 패널들이 알아서 해 줄 겁니다. 찬식 씨가 이번에 하셔야 할 건 오로지 당신의 이야기를 공중파를 통해서 내보내는 겁니다. 토론회의 본질에서 지나쳐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당신은 이야기를 하면 되고, 피디는 당신의 이야기를 맛있게 포장해 줄 테니까요.
이런저런 근거를 내세워서 이야기하는 거?
나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건 딱 한 가지뿐이었다.
내가 가진 특별한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들려주는 것.
나 스스로도 내 이야기가 일반화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꿈은 꿀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게임은 나와 진혁이에게 있어서 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을 위기에 처했던 내 동생을 살려 주었고, 나에게 든든한 형 노릇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서 함께해 주고 있고, 그로 인해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 감정을 정확하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사람들이 게임을 그저 해악한 질병으로 규정하는 발언들이 불쾌하다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전국 어머니협회 대표, 서은숙 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뗐다.
“잠시 논지에서 어긋날지도 모르겠지만, 짧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네요. 혹, 사회자 님, 가능할까요?”
그러자 사회자가 뒤에서 토론회 촬영을 지휘하고 있는 피디를 쳐다보았다.
성재 씨랑 이야기가 된 피디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사회자는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감사합니다.”
내가 팔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비싸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감성.
이성의 탈을 쓴 고집들이 가득 찬 이곳에서 그 감성보다 비싼 게 어디에 있을까?
감성은 그 어느 것보다 강하다.
인간은 공감할 줄 아는 생물이니까.
“게임은 질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예전부터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질병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제 동생의 질병을 치료해 줬거든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저에게는 동생 한 명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고, 제 동생은 암에 걸려서 죽을 위기에 놓여 있었죠.”
그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감성팔이가 시작되었다.
2.
내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던 청중도 있었고, 모르고 있던 청중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많은 수의 청중이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는 것이다.
발언 시간을 생각해서 최대한 가지를 쳐서 필요한 감성만 전해 주었고, 내 발언이 끝나자마자 서은숙 씨의 반박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시아 님께서는 본인에게 게임이 구세주였으니까 게임은 질병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주장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건 너무 성급한 일반화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저 게임 역시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업이 될 수도 있으며, 꿈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드렸을 뿐입니다.”
“그건 정말 소수의 경우죠. 게임을 하는 아이들 중에서 게임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게임을 하는 모든 아이들이 시아 님처럼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 어차피 확률이 낮으니 꿈조차 꾸지 말라는 말로 들리는데요.”
“제 말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 어떤 꿈을 가져보고 싶다, 어떤 사람처럼 되어 보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되고 싶은 직업 1위가 미튜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직업이 게임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 꿈은 꾸어서는 안 될 꿈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말에 서은숙 씨는 입술을 부들거리면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한층 더 여유롭게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올 때 게임 중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었습니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일상생활이 침해되면 정말 위험한 일이죠. 게임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이든지 위험합니다. 그런데 제 부족한 식견으로 듣기에는…… 서은숙 씨께서 말씀하시는 발언들은 게임 중독보다는 게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혹시 뉴스 안 보시나요?”
“예?”
“세계 각지에서 게임을 모방한 범죄가 일어납니다. 이런데도 게임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보십니까?”
갈 때까지 가는구나.
예전의 토론 사회자였다면 여기서 제지를 시켰겠지만, 이번 사회자는 재밌다는 듯이 패널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따지면 드라마나 영화를 모방한 범죄도 일어납니다.”
“제 말은 그게 아니잖아요? 예?”
“게임을 모방한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에 게임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요?”
“이, 이……!”
“잠시 촬영 쉬었다가 진행하겠습니다.”
적당한 타이밍에 촬영이 끊겼고,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아줌마가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해서는 이미 예상 질문을 전부 세워 뒀다.
그래도 내가 할 일은 대충 이뤄 낸 것 같다.
감성도 성공적으로 팔았고, 논리도 그럴듯하게 말했고.
사실 철저한 논리로 무장된 건 아니지만 상대가 워낙 자폭을 해 줬기 때문에 무난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내가 잠시 토론석에서 내려오자 성재 씨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를 맞이해 줬다.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제가 민폐를 끼치거나 그러진 않았겠죠?”
“시나리오대로 잘 흘러갔습니다. 예상대로 상대방이 알아서 자폭해 주네요. 감성도 잘 먹힌 것 같고요.”
그렇게 성재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토론회를 담당한 총괄 피디, 선정수 피디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스트리머셔서 그런가, 진짜 말 잘하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어그로 좀 제대로 끌 수 있겠는데요?”
공중파 피디의 입에서 어그로라는 말이 나오니까 참 기분이 묘하네.
“이대로라면 대통령 후보 토론회까진 힘들더라도 최근 토론 시청률 1위 찍을 수 있겠는데요?”
“잘되면 한턱 쏴라.”
“뭔 소리야, 이성재. 네가 쏴야지.”
“네가 편집 잘해 주면, 내가 당연히 한턱 쏴 주지. 나 모르냐?”
“잘 알지, 인마. 야, 걱정하지 말고 있어. 이미 편집 방향 다 짜 뒀으니까. 편집 그렇게 많이 안 해도 맛있는 맛이 나겠다. 야, 국장님 오셨다. 먼저 가 본다. 시아 님, 후반전도 잘 부탁드립니다!”
피디들 기본 특성이 좋은 붙임성인가?
지금까지 본 피디들은 거의 전부 저렇게 싹싹한 것 같다.
“성격 좋아 보이죠?”
“그러게요.”
“성격 좋은 사람들이 피디가 된 게 아니라, 피디가 되었으니 성격 좋아 보이는 척하는 겁니다. 쟤 원래 아주 양아치스러운 놈이었거든요, 하하.”
뭔가 진짜일 것 같은데.
나는 성재 씨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쩍 미리 작성된 내 대본을 숙지해 갔다.
그때였다.
열심히 토론을 준비하고 있던 내 앞에 한 아줌마가 나타났다.
“유명 미튜버라고 너무 건방떠시는데, 그러다가 진짜 큰 코 다쳐요. 학부모들 무시하지 마세요.”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잔뜩 화가 솟아올랐었는지, 쉬는 시간에 찾아온 서은숙 씨.
원래 저렇게 화난 사람한텐 웃어 줘야 더 화가 나는 법.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드렸다.
“학부모 무시한 적 한 번도 없는데요.”
“나이도 어리시고, 경험도 적으신데 어른한테 말대꾸를 그렇게 하세요? 부모님한테 예절 같은 거 못 배우셨어요?”
……또 선 넘네.
내가 좋게좋게 말해 주니까 그냥 등신으로 보이는 거지?
나는 자리에서 슬쩍 일어난 다음, 그녀의 귀에다 조심스럽게 속삭여 줬다.
“제가 부모 없이 자란 놈이라 좀 거친데, 애써 참고 있는 거야. 꼰대,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뭐…… 뭐?”
“아시겠으면 틀니 그만 딱딱거리시고 자리로 돌아가서 본인 스스로나 돌아보십쇼.”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거든.
그렇게 몇 마디 던져 준 다음,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 부들거리는 꼴이 아주 보기 좋네.
“촬영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제 자리로 돌아와 주세요!”
2차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