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88)
63. 세기의 이벤트
1.
[가이아 온라인>은 인류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VR 게임이었다.1세대 VR 게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현실감.
이 세상의 과학이 아니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기술력을 자랑했었고, 그 기술력은 고스란히 2세대로 이어지면서 VR 게임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냈다.
캡슐의 상용화를 이끌었으며, 게이머들의 꿈을 이루어 줬던 게임.
게임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던 사람들조차 [가이아 온라인>을 플레이했었던 것처럼, 그 당시에는 혁신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내 앞에 놓여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SD 코퍼레이션 기획팀장의 프레젠테이션을 조용히 경청했다.
“기존 유저들만 복귀를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아주 강력할 겁니다. 아직도 가이아 온라인을 그리워하는 유저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상황이며, 전 세계적으로 예상 복귀 유저들의 숫자를 추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지? 어차피 가이아 온라인의 영향력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어.”
“저희가 준비한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의 첫 컨텐츠는 바로 이겁니다.”
그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 거대한 드래곤이 한 마리 등장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꼬리를 가졌고, 노란색으로 빛나는 눈을 가진 존재.
그것은 바로 묵시룡이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비주얼이다.
최근에 찍었던 광고에서도 상대했던 녀석인데, 이런 식으로 다시 등장할 줄은 몰랐다.
나는 묵시룡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린 다음,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봤다.
“묵시룡과 관련된 컨텐츠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시아 님.”
“좀 불편하네요.”
“하하하하!”
“하하하.”
살짝 경직된 분위기가 내 말에 풀린다.
묵시룡과 나는 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다.
[가이아 온라인의 시아>를 빌런으로 만들어 버린 존재이자, 내 게임 라이프의 종지부나 다름없던 녀석.그러나 묵시룡으로 인해서 진혁이를 살릴 수 있었고, 우리 형제의 인생이 계속될 수 있었다.
내 시작과 끝.
그 모든 것과 연이 맞닿아 있는 기분 나쁜 녀석.
저 도마뱀을 데리고 무슨 컨텐츠를 하려는 걸까?
기획팀장은 내 얼굴을 슬쩍 바라보면서 능청스럽게 발표를 이어 나갔다.
“가이아 온라인이 서비스를 종료할 때, 묵시룡에 의해 세상이 멸망했다는 표현으로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전 세계를 독점하면서 PC 게임의 시대를 끝내고, VR 게임의 시대를 열어 버렸던 [가이아 온라인>의 마지막은 놀랍도록 초라했다.
유저들 중 그 누구도 묵시룡을 막아 내지 못했다.
가장 클리어 확률이 높았던 동수 형의 공격대가 실패했으니, 다른 공격대로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
그 이야기를 왜 지금 꺼내는 걸까?
멸망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좀 불편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기획팀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어 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희 팀원들이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어떤 명목으로 닫힌 세계를 부활시키고, 임팩트있는 오프닝이 가능할지. 대표님께서 전적으로 지원해 주신 덕분에 저희들의 계획은 차근차근 세워져 나갔으며, 마침내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발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깨알 같은 아부는 옵션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이번 이벤트의 배경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묵시룡에 의해 멸망한 세상이지만, 창조자가 세상을 아깝게 여겨 시간을 되돌렸다. 이미 죽어 없어진 영웅들의 혼도 부활하였으며, 묵시룡을 막아 낼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그럴듯한 스토리다.
아니, 사실 판타지 장르의 게임이라서 어떤 스토리라도 상관없다
다만, 그 기회가 수년이 지난 지금에야 주어진 게 어색할 뿐이다.
기획팀장은 이번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가이아 온라인 전 세계 최고의 공격대를 다시 소집하여, 묵시룡의 레이드에 성공하는 것. 가이아 온라인에서 유일하게 정복되지 않았던 최악의 적을 정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그것이 저희들이 준비한 내용입니다.”
“최악의 적을 남겨 두는 게 여러모로 흥행에 좋지 않겠어?”
“대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준비한 컨텐츠는 예전보다 훨씬 방대합니다. 그리고 묵시룡보다 더 강력한 최후의 보스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묵시룡을 불쏘시개 삼아서 가이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겠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흐으음.”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성수 형이다.
성수 형은 청산유수처럼 쏟아진 기획팀장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나와 허수 그리고 동수 형을 바라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우리 자랑스러운 광고 모델 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그 당시에 함께했던 공격대원들을 다시 모으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은데요. 다들 생업이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기획팀장의 계획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수 형의 공격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스트리머가 되었고, 그들을 불러 모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보이겠지.
동수 형이 걱정하는 건 이제는 사회에 뛰어든 공격대원들.
시간이 꽤 흘렀고, 그들 역시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을 테니 쉽게 결정하기 힘든 문제일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예정입니다.”
“다들 생업이 있는…….”
“생업으로 인해 참여가 곤란한 경우, SD 코퍼레이션과 성도 그룹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질 예정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성수 형을 쳐다보았고, 성수 형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들, 진짜 저질러 버릴지도 모르겠다.
“생업을 떠나서…… 본인들의 청춘이 담겨 있는 캐릭터를 플레이할 마지막 기회잖아?”
동수 형이 슬며시 웃음을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 역시 동수 형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감성이란 건 그리 쉽게 놓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지난번에도 한 번 모였었지.
이번에는 그저 레이드의 일부만 촬영했던 그때의 광고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의 레이드 과정이 담길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편하다.
내가 천천히 생각을 이어 나갈 때쯤, 기획팀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묵시룡 레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시간으로 중계될 겁니다. 그리고 공격대의 레이드가 성공한 그 순간, 서버가 열리도록 할 예정입니다.”
“영화 같구만.”
“물론입니다. 묵시룡 레이드의 모든 과정은 추후에 시네마틱 영상으로 편집될 예정입니다.”
“중계는?”
“인터넷 플랫폼인 트위팟과 협의 중이고, 세계 각지의 VR 전문 방송국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VRN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국인 SBC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본격적이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조용히 기획팀장의 말을 들은 다음, 조심스럽게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획팀장님?”
“말씀하십시오, 시아 님.”
“레이드에 실패하면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게 무용지물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기획팀장은 내가 그 질문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나에게 대답했다.
“저희들이 [가이아 온라인>을 담당하는 슈퍼컴퓨터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시아 님이 배신하지 않았을 경우의 클리어 확률은…….”
“음?”
“100프로였습니다.”
크흠.
맞는 말이지.
기획팀장의 말에 내 옆에 있던 동수 형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배신 한 번 때려 봐라.”
“에이, 형도 참…… 제가 왜 그러겠어요?”
무섭다.
이번에도 배신하면 동수 형이 어떤 짓을 할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후우.
조심해야지.
“시아 님.”
기획팀장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인원들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이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왜 이래?
“이번 이벤트의 주연은 시아 님이십니다.”
“……저요?”
“시아 님의 어깨에 참 많은 게 달려 있다.”
거, 사람 부담 주는 솜씨가 일품이구나.
내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을 때쯤, 성재 씨가 나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계약 조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아,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계약을 진행해 볼까요?”
성재 씨의 말을 받은 건 성수 형이었다.
성수 형은 비서를 시켜 계약서 세 장을 가져오게 한 다음, 우리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자, 원하는 금액을 표기만 하면 됩니다. 참 쉽죠? 우리 회사의 명운이 담겨 있는 만큼, 부디 잘들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2.
회의는 아주 생산적으로 진행되었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무려 7억짜리 계약.
허수와 동수 형도 5억짜리 계약을 맺었지만, 내 계약 조건이 가장 높았던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이번 이벤트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내 역할이기도 했으며, 현재 내 몸값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SBC 같은 공중파 방송국에서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공중파 예능의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지난번 토혼회 이후로 저에게 찬식 씨와 미팅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공중파 쪽 피디들이 부쩍이나 많아졌어요.”
“햐, 우리 찬식이 진짜 월클이네.”
“VRN 쪽에서도 출연 계약 조건을 높여 주겠다는 확답이 왔습니다.”
몸값이 확실히 뛰었다는 걸 이럴 때 실감하고는 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좋네요.”
“이번에 받은 계약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20프로 정도는 기부하고, 나머지로 차나 한 대 사려구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원하시는 브랜드가 혹시 있으시다면 나중에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딜러들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창문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들.
그 풍경을 감상하면서 아까 전의 회의를 떠올렸다.
묵시룡 레이드와 함께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을 부활시키겠다는 계획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히 묵시룡과 연이 깊은 내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묵시룡 레이드.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숨기고 싶었던 일.
게임 사상 최악의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레이드였기도 했고, 나를 소중하게 대해 줬던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했던 레이드기도 했다.
나는 동수 형을 슬쩍 바라보았다.
저녁에 이곳에 약속이 있어서 차를 그냥 이쪽 주차장에 댄 다음, 성재 씨랑 같이 치킨박스 사무실로 간다고 했던가?
동수 형은 내 시선을 느끼자마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임마.”
“이번에도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형.”
“너 때문에 함께하는 거 아닌데? 야, 5억이 뉘 집 개 이름이야? 5억이면 어? 얼마든지 난 널 용서해 줄 수 있어.”
“진짜요?”
“뭘 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냐.”
동수 형은 피식 웃음을 지은 다음,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묵시룡 레이드는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거거든.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 서버 열리면 최대한 빠르게 파밍해서 공격대를 만들려고 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가이아 온라인에서 유일하게 이루지 못했던 거였거든.”
나 때문에.
내 배신 때문에.
공략에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내 배신으로 인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지.
동수 형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마. 그때 네가 우리들 뒤통수 때려서 진혁이가 살아난 거 아니냐?”
“……형.”
“다들 이해해. 지난번 광고 촬영할 때도 우리 공대원들 만났었잖아? 그걸로 된 거야. 우리들에게 게임이 인생이었다고 해도, 네 배신에는 납득할 만한 사연이 있었잖아. 야, 그리고 형이 더 이상 그 일로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랬지? 내 말 여전히 개똥으로 알아듣냐?”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허수도 슬쩍 쿠션에 머리를 기대면서 말했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어울리지 않게 시무룩해 하지 좀 마. 역겨워 뒈지겠다.”
거, 새끼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동수 형은 허수의 말을 듣자마자 소리를 내서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와 허수 어깨에 팔을 올리면서 말했다.
“머리로 이미지트레이닝이나 잘들 하고 있으라고. 이번 레이드는 무조건 성공으로 만들 거니까. 알겠지?”
2달 정도 남았네.
그 전까지 준비할 게 아주 많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