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91)
64. 클라쓰는 영원하다.
1.
여러 가지 준비 속에서 나에게는 역사적이었던 2030년이 지나갔다.
연말에 있는 송년회 일정도 빠듯했지만, 선천적으로 간이 튼튼했던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성수 형이 싸게 넘겨준 차를 타고 해돋이도 실시간으로 방송했었고, [요즘 것들>과 [시은교>의 촬영도 계속되었다.
정신없이 보낸 2030년에 이어, 또 정신없는 2031년이 찾아왔다.
사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달라진 거라곤 2031년 초부터 공중파 예능 출연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1월 중순까지 이르렀고, 어느덧 대망의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 오픈이 한 달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세웠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했다.
SD 코퍼레이션의 대폭적인 후원 속에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
[클라쓰는 영원하다>라는 제목이 붙여진 프로젝트였고, 그 프로젝트의 기본 골자는 아주 간단했다.묵시룡을 거의 레이드하려고 했던 동수 형의 공격대를 한 달 먼저 소집해, 실수 없이 레이드에 성공할 수 있도록 게임에 대한 감각을 살려 주는 것.
우리가 실패하면 SD 코퍼레이션의 계획도 크게 어긋나기 때문에, SD 코퍼레이션 측에서도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줬다.
한참 추운 겨울날.
나는 나영이와 나영이네 아버지인 이 사장님이 운영하는 루나 캡슐방에서 코코아를 마시는 중이었다.
물론 내 옆에는 일찍 도착한 동수 형이 살짝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뭐가 그렇게 긴장돼요? 지난번에 광고 영상 촬영할 때 다 같이 모였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너도 그때 봤잖아? 다들 썩 좋지는 않아, 실수도 몇 번 있었고.”
지난번에 한 번 모여서 광고를 촬영한 적이 있었다.
확실히 그때 몇 명이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하기는 했었지.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스포츠계와 이스포츠계에는 명언이 하나 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나는 예전에 나와 함께했던 공대원들의 기량을 믿는다.
그들은 [가이아 온라인>에서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들이었고, 지금은 단지 실력에 살짝 녹이 슬었을 뿐이다.
기름으로 조이고 닦아 준다면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예리함이 사라진 그들에게 예리함을 주입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대단위의 중세 시대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 나이트 앤 블레이드. 가이아 온라인처럼 특수 능력은 없지만, 병장기를 사용하는 감각 정도는 돌아올 거예요.”
SD 코퍼레이션 측에서 동수 형의 공격대에게 한 달 동안 호텔방을 빌려줬다.
1인 1실.
지방에 거주하는 공격대원들의 숫자가 12명이었고, 광명시로 오고 가기 힘든 사람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총 28명의 방을 빌려줬다.
성도 그룹의 계열사기 때문에 이런 지원은 너무나도 손쉬웠다.
성수 형의 누나가 경영하고 있는 가까운 호텔을 그냥 빌려 왔으니까.
이래서 모기업이 대기업이면 참 편한 거다.
“나이트 앤 블레이드라…… 대규모 전투를 펼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원래는 월드 오브 배틀도 고려했는데, 그건 총으로 싸우는 거라서 큰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합을 맞추는 게 먼저다. 그거지?”
“네.”
예전에 플레이해 본 적이 있는 [월드 오브 배틀> 역시 40명의 인원이 한 중대를 이루어서 싸울 수 있는 게임이었으나, 합을 맞추기에는 템포가 너무 빠르다.
게다가 사용하는 무기도 총기류.
우리들의 훈련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늘은 방송 켜고 할 거야?”
“그래야죠. 상대 팀도 시청자로 모집하려구요.”
오늘 우리가 플레이하게 될 [나이트 앤 블레이드>는 중세 시대의 전투를 보다 리얼하게 구현한 게임이다.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기사부터 시작해서 석궁병, 중장보병 등.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상대방과 전투를 치루는 게임.
원래는 본인의 왕국을 만들어서 세계를 정복하는 게임이지만, VR 버전으로 넘어오면서 전투만 따로 떼어 둔 커스텀 모드가 존재하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역사도 아주 오래되었지.
나와 동수 형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캡슐방 안으로 공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 동수 아이가.”
“형님.”
“키야아아아, 호텔 윽수로 좋데. 지릴 뻔했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부터 시작해서,
“오, 동쑤.”
노란 머리 외국인들까지.
각양 각생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공격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오늘 캡슐방은 우리가 전부 다 빌렸다.
이 사장님께는 내가 톡톡히 챙겨드렸으니 큰 문제는 없었고, 우리는 이곳에서 열심히 기량을 되찾으면 된다.
어느새 공대원들이 다 모이자, 동수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공사다망하신 분들이 이렇게 시간을 내서 모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찬식이 녀석이 미리 말했던 대로, 저희는 오늘부터 한 달 동안 꾸준히 각종 게임을 하면서 감을 살려 갈 예정입니다. 게임 외의 시간에는 놀러 다니셔도 좋고, 술을 드셔도 좋습니다.”
기숙사 같은 시스템은 전혀 아니다.
하루에 4시간 정도씩만 게임을 하기로 했다.
나머지 시간은 공대원들도 각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여기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정도의 자유는 충분히 주어져야만 했다.
나는 동수 형의 말을 이어받았다.
“오늘은 첫 연습이니만큼 방송은 켜고 하긴 할 텐데, 크게 부담 가지실 필요 없어요.”
“걱정 마라.”
“야, 기억 못 하냐? 우리 전부 다 관종이야!”
“낄낄, 동수 녀석 하꼬였을 때부터 함께했는데 방송 무서워할 것 같냐?”
생각해 보니 저 공대원들이야말로 지금의 동수 형을 키워 준 일등공신이겠구나.
그래도 시작하기 전에 저분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저질렀던 짓은 저분들의 꿈에 못을 박아 넣었던 일이었으니까.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죄송…….”
“야아아아아!”
“우리 다 용서했다니까!”
“그렇게 미안하면 끝나고 고기랑 술을 사면 되잖아!”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짜증 그 자체.
……참 좋은 사람들이구나.
나는 멋쩍게 헛기침을 몇 번 내뱉은 다음, 곧바로 방송을 실행시켰다.
허공에 촬영 드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곧 채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악하
-샤하
-와ㅋㅋ 저 분들이 전설의 칸 공격대임?
-포스들이 장난이 아니누
-오늘 무슨 게임함?
-정보)우리악이 이미 트게더에 [나이트 앤 블레이드> 시참 컨텐츠 할 예정이라고 못을 박아 뒀다.
늘 그렇듯이 소란스러운 채팅창.
나는 그것을 잠시 보다가, 내 뒤에서 흥미롭게 채팅창을 들여다보고 있던 경상도 형님 한 분께 인사를 부탁했다.
그러자 그 형님은 촬영 드론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호탕하게 말했다.
“마! 개쉐이들아! 내가 왔다.”
가끔은 이렇게 다른 맛도 봐 줘야지.
안 그래?
“말했던 대로 시참 컨텐츠 준비해 뒀다. 본인이 [나이트 앤 블레이드> 유경험자고, 실력이 좀 괜찮다 하는 애들만 신청해 봐. 자동 추첨으로 뽑을 거니까 늦으면 참여 못 한다. 알겠지?”
수많은 시청자들의 신청 속에서, 공격대 컨텐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
수많은 시청자 참가자들 덕분에 우리를 상대할 시청자들은 빠르게 모였고, 우리들은 곧바로 전장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나이트 앤 블레이드>.엄청난 숫자의 병력을 지휘하면서 전투를 펼칠 수도 있으며, 지금처럼 대단위의 PVP도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게임인 건 틀림없었다.
원래는 [기마병> 병종들이 상당한 게임이었으나 레이드 준비를 위해서 그 병종들은 제한되었다.
나와 동수 형은 사전에 편성되어 있는 대로 병종을 구성했다.
탱커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방패를 든 중장보병.
근거리 딜러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거대한 양손 검을 든 버서커.
원거리 딜러들은 석궁병과 궁수.
힐러들은 의무병.
이 정도의 편제를 끝냈고,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원래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대형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리가 아니었다.
그저 감을 익히는 것.
우리 공격대원들 중에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했기 때문에, 그들의 감을 살려 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일단 합을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말이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곧바로 상대 쪽을 바라보았다.
최소 6개월 이상 경력을 지닌 플레이어들로만 선별한 시청자 팀.
채팅을 보아하니 고인물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는 듯 보였다.
-ㅋㅋㅋㅋㅋ대검살인마 쟤 이 게임 대표 고인물 아니냐?
-ㅇㅇ스트리머 방송 찾아가면서 학살하는 놈이잖아
-ㅉㅉ저런 놈들은 왜 게임하는지 모르겠음 어차피 전부 양민인데 학살을 그렇게 하고 싶었나?
-내 말이ㅋㅋ
-근데 쟤 말고도 이름이 익숙한 애들이 꽤 보이는데?
애시당초에 이 게임은 마니아들이 정말 많은 게임이다.
마니아가 많다는 뜻은 그만큼 고인물들이 많다는 뜻.
하지만 우리 공격대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이기려고 굳이 목을 매지 않아도 좋다.
즐기면 되고, 적응만 하면 된다.
내가 우리 공격대원들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이었다. [가이아 온라인>이 종료된 이후, 많은 수의 공격대원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현실로 돌아갔다.
그들을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청춘은 게임을 위해 불태워졌지만, 이 자리에 그걸 후회하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후회를 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겠지.
내가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건 게임의 즐거움을 되찾아주는 것뿐.
나는 천천히 시청자의 부대가 다가오는 걸 확인하면서 공격대원들에게 말했다.
“그냥 다들 편하게 노십쇼. 져도 좋습니다.”
내 말에 다들 호탕하게 웃더니, 어느새 우리 앞까지 다가온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사실, 이 게임에 대해 기본적인 걸 알려 준 적은 없었다.
채애애애애앵!
그러나 잠시 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서 전투를 개시한 건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들고 있던 허수.
내가 알기론 허수 녀석에게 이 게임은 처음일 텐데, 녀석은 엄청난 장면을 연출해 내기 시작한다.
허수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적들이 사분오열한다.
채애애앵!
게다가 적들이 허수를 노리고 검을 찔러 들어오면, 중장보병 병종을 선택한 동수 형이 방패를 통해서 적절하게 공격을 커트한다.
동수 형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공격대에서 탱커를 맡고 있던 플레이어들 모두가 약속이라도 했던 듯이 적들의 공격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건 의도된 행동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웠다.
[가이아 온라인>에서 보스몹의 공격은 이보다 훨씬 빨랐으니까.물론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도 [가이아 온라인> 쪽이 훨씬 압도하는 편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기본적인 게임 센스라는 게 존재했다.
-????????????
-저 사람들 뭐임?
-??????
-이거 오늘 처음 한 게임 맞냐?
-와ㄷㄷ 패링 봐
-방패 존나 섹시하게 사용하네
-냥개좌 진짜 미친개처럼 뛰어노네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은 경악으로 일관되어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한 걸음 물러선 상태에서 전장을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전투.
고인물로 이루어진 적들의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 내고, 재빠르게 이어지는 반격.
그제야 나는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내가 불러 모은 40명은 단순한 게이머가 아니다.
한 때, 한 게임의 정점에 올라섰던 사람들.
전 세계가 빠져들었던 신화적인 게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그들의 감이 녹슬었어도.
그 때의 경험은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