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98)
66. 신세계 (2)
3.
[묵시룡의 존재감이 당신들의 몸을 휘감습니다.] [세계를 잡아먹은 존재가 당신들을 향해 거칠게 울부짖습니다!] [특수 디버프 ‘파멸의 언약’이 시전됩니다.]마침내 묵시룡에 이르렀다.
여태까지의 리허설을 가볍게 압살하는 속도.
나는 몸을 휘감는 기분 나쁜 마나들을 느끼면서 가볍게 숨을 뱉었다.
특수 디버프 ‘파멸의 언약’은 2시간 뒤에 실행되는 시한폭탄 같은 디버프다.
2시간 안에 묵시룡을 박살 내지 못하면 이 디버프에 노출된 모든 플레이어들이 사망한다.
사실 2시간 동안 묵시룡의 공격에서 버텨 낼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제작사 측에서 만에 하나 발생할 편법 플레이에 대비해서 넣어 둔 시스템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도 2시간이나 시간을 소비할 생각이 없었다.
리허설 때 묵시룡을 컷해 낸 시간은 평균 47분 정도.
그 뒤로 갈수록 우리들의 승률이 떨어지는 것도 이미 통계적으로 확인했다.
나는 동수 형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동수 형 역시 입꼬리를 올리면서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탱커들은 지정된 위치로 움직이고, 원딜들이랑 힐러들은 전부 거리 이격해.”
묵시룡 레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초반이다.
묵시룡이 지니고 있는 수없이 많은 꼬리들.
그 꼬리들을 하나하나씩 무력화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그 꼬리 중에는 대지에 꽂힌 채로 대지의 양분을 흡수하는 꼬리들도 존재한다.
그 꼬리들을 잘라 내지 못하는 이상 묵시룡은 끊임없이 회복할 것이다.
-와…… 아포칼립스 분위기 죽이네
-내가 살면서 묵시룡을 다시 볼 줄은 몰랐네
-크기가 무슨 성만 하네
-저거 잡을 수 있는 보스는 맞아여?
-올해로 중학교 2학년 되는 파릇파릇한 신입입니다. 저 보스가 전설의 가이아 온라인을 박살 냈다는 그 보스가 맞나요?
-맞워요
-Plz…… kill the dragon
-POGEERS
수많은 나라의 언어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채팅창.
현재 이 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는 스트리머들의 시청자 수는 하늘을 찌르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허수, 동수 형, 세린 누나 등등.
[가이아 온라인> 시절에 유명했던 스트리머들의 방송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후원 수익도 엄청나게 발생하는 중이었다.많은 사람들이 돈을 후원하면서 제발 클리어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
마치 그때와 비슷하다.
우리의 레이드에 집중되는 관심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들이 소망하는 것.
그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묵시룡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서비스가 종료될 것이라는 게임사의 공표가 있었으니까.
내 등 뒤에 쏟아져 내린 기대가 원망과 증오로 뒤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나는 사람들이 보내오는 열렬한 성원에 보답할 생각이었으니까.
우우우웅.
내 양손에 한 자루씩 쥐어져 있는 내 애검들이 가볍게 진동한다.
이 녀석들은 용살의 힘이 담겨 있는 검.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한정해서 압도적인 전투력을 발휘해 주는 녀석들이었다.
묵시룡 레이드에 성공할 뻔했던 것도 역시 이 두 자루의 검 때문이었다.
묵시룡이 아무리 끔찍한 보스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녀석의 태생은 드래곤이었으니까.
“집중해야 하니까 채팅창은 잠시 끈다. 이따가 끝나고 보자.”
여태까지는 채팅창을 켜 둔 상태로 여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최종 보스인 묵시룡만큼은 달랐다.
나조차도 실수를 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시선을 분산시키는 채팅창의 존재는 독이었다.
내가 채팅창을 끄자마자 곧 허공에서 묵시룡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잔재들이 감히 이곳까지 이르렀구나! 반쪽짜리 피조물들이여, 너희들의 앞에 도래한 멸망을 마주하라. 너희들이 살아갔던 세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너희들의 운명에 순응하거라.
쇠를 긁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목소리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묵시룡의 대가리를 향해서 가볍게 검기를 날리면서 대답했다.
“나한테 뒈질 뻔했던 게 주둥이만 존나게 나불거려요. 야, 너 그냥 도마뱀에 불과한 놈이야. 너 내가 우리 팀원들 배신만 안 했으면 그냥 뒈졌잖아. 인정?”
-……네 이노오오오오옴!
높은 AI를 지닌 묵시룡의 약점 중 하나가 바로 AI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감정까지 최대한 리얼하게 구현해 낸 몬스터였기 때문에 쉽게 흥분하기도 한다.
아마 저 녀석에게 있어서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늘처럼 따가울 것이다.
시아가 수없이 많은 드래곤들을 참살해 가면서 획득했던 특수 패시브 스킬.
[용의 천적>.종족 카테고리가 [드래곤>인 이상, 나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드래곤을 상대로는 각종 스텟과 스킬의 효과가 2배 이상 상승하는 말도 안 되는 특수 패시브 스킬.
나 혼자서 용을 1,000마리 정도 잡아 냈을 때 얻게 된 특수 패시브였다.
[가이아 온라인> 시절, 이 패시브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공격대가 묵시룡의 퍼스트 킬을 노려볼 수가 있었겠지.내가 혼자서 묵시룡의 어그로를 끌고 있을 때쯤이었다.
내 뒤에 있던 동수 형이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대지랑 연결된 꼬리 7개 파악 완료. 시작하자.”
“좋아요.”
“너한테 너무 의존하는 레이드 택틱이기는 한데…… 묵시룡이 분신 사용하는 것만 좀 봉쇄해 줘라.”
“그 정도쯤이야 껌이죠.”
“가자.”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전략은 어떤 상황에서도 위험한 법이다.
그 사람의 실수가 공격대의 운명을 결정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동수 형의 표정에서는 그 어떠한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의존하는 그 한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이번에도 형 실망시킬 거야?”
동수 형이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 장난스러운 말투 안에 담겨 있는 복잡한 감정이 흐물거리면서 다가온다.
나는 동수 형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찬식아.”
“예.”
“형은 항상 우리 찬식이만 믿는다.”
……고마워요.
동수 형은 그 말을 하자마자 곧바로 공격대원들에게 오더를 내렸고,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묵시룡의 아가리에서 보라색의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4.
사방에서 불이 타오른다.
감각들을 리얼하게 살린 [가이아 온라인>의 시스템 탓에 온몸이 뜨겁다.
열기 때문에 곳곳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시야가 제한된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마법사들이 각종 얼음 마법들을 내 몸에 걸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감당할 수 없는 화염계 마법들이었다.
검은색과 보라색으로 불타오르는 끔찍한 지옥의 겁화들.
묵시룡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화염계 마법들이었다.
나는 가쁜 숨을 내뱉으면서 묵시룡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이 거대한 녀석에게도 드래곤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하는 약점이 존재한다.
그 약점이 위치한 곳은 녀석의 짧은 목 쪽.
그러나 이 끔찍한 놈의 비늘은 다른 드래곤들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발을 내딛는 녀석의 비늘에서 기괴한 형상들이 솟아오른다.
회백색의 비늘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체들.
그로테스크한 비주얼을 자랑하며, 개개인이 상위급 랭커들의 힘을 보유하고 있는 녀석의 가디언들이었다.
-그것들은 그동안 내가 잡아먹은 세상들의 영웅들. 너희들의 영혼 역시 내 몸에 깃들어 그리될 것이다. 나는 살아 있는 재앙. 세계를 잡아먹는 포식자. 내가 잡아먹은 모든 세계가 너희들을 적대하리라.
묵시룡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진다.
의미 없는 멘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 목소리에는 묵시룡의 마력이 담겨 있다.
마법 저항력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현혹을 거는 목소리.
하지만 우리 공격대원들은 이미 마법 저항력 세팅을 한 상태로 이곳에 입장했다.
한 번 상대해 봤던 적이다.
비규칙적으로 튀어나오는 전멸기가 문제였지, 그 외의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른 공격대들은 정형화되어 있는 패턴에도 쩔쩔 맸지만, 적어도 우리 공격대는 그렇지 않았다.
-운명에 순응하거라.
[보스 몬스터 [묵시룡>이 [필멸의 선고>를 시전합니다!] [주문이 완성되기까지 남은 시간 1분.]저렇게 갑작스럽게 발동되는 전멸기가 문제라는 거다.
나는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참룡의 춤.”
내가 지니고 있는 돌진기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돌진기.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묵시룡의 가디언들을 베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곧 내가 목표로 삼고 있던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용이라면 가지고 있는 약점.
용의 역린.
다른 비늘과 정반대의 결로 나 있는 극소량의 비늘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묵시룡은 내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공격대를 전멸시킬 수 있는 끔찍한 마법을 시전하면서도, 본인의 역린 주위에서 다시 한번 가디언들을 소환했다.
-너의 악몽을 마주하라.
“이게 무슨…….”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고, 나는 나를 가로막은 가디언들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반복했던 리허설에서는 연출되지 않았던 상황.
내가 이렇게 경악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묵시룡의 비늘에서 솟아오른 가디언들의 형상이 놀랍도록 나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쌍검을 들고 있는 3마리의 가디언.
녀석들의 얼굴은 묵시룡의 비늘에 의해서 가려져 있었지만,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과 공격 준비 자세를 보면 완벽히 나를 닮아 있었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가디언들을 주시했다.
남아 있는 시간은 단 36초.
그 안에 빠르게 루트를 확보해서 역린에 검을 찔러 넣어야만 한다.
그래야 저 전멸기의 캐스팅이 중단된다.
“야.”
내가 방법을 궁리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찰나, 어느새 뒤에서 나타난 허수가 창을 휘두르면서 나에게 말했다.
“뭐 하냐. 빨리 뚫어.”
“3명 상대 가능하냐?”
“어차피 가디언이잖아. 기껏해야 네 힘 50%만 따라 할 수 있을걸? 그리고 그 정도는…….”
푸슈우우우욱!
갑작스럽게 나타난 허수의 창이 가장 앞에서 나를 가로막고 있던 가디언의 가슴팍을 가차 없이 뚫어냈다.
“너무 쉽다고.”
“그러면 틈만 만들어 줘봐.”
“안 달려가게?”
“달려가는 것보다는 이게 더 빨라.”
남은 시간 29초.
예상치 못한 가디언들의 등장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하지만 레이드에서 변수가 발생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최고의 공격대라면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금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되는 법.
동수 형이 나에게 부탁한 역할은 바로 그 변수의 차단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허수라는 든든한 백업을 내 뒤에 붙여 줬던 거다.
나는 남아 있는 마나의 양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기술을 시전했다.
묵시룡의 마나로 가득 찬 이곳.
녀석의 비늘에 서 있는 이상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며, 이 녀석의 목을 베어 내기 전까지는 마법조차 쉽게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이아 온라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스킬 중 몇몇은 그런 묵시룡의 디버프 속에서도 자유로웠다.
“크로노스의 검.”
내 손에 들려 있던 두 자루의 검이 잠시 사라지더니, 곧 멀리 보이던 묵시룡의 역린 위로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기습을 느낀 녀석의 역린이 비늘을 빠르게 생성하면서 공격을 막아 보고자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내가 보유한 몇 안 되는 원거리 기술.
시공간을 넘어 내가 원하는 위치를 베어 버리는, 내 비장의 수 중 하나였다.
물론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려 2시간이 되는 기술이었지만, 전멸기와 교환한다고 생각하면 썩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푸우우우우!
-크아아아아아악!
검에 의해 뚫린 2개의 구멍에서 암적색의 피가 잔뜩 솟아올랐고, 전멸기의 캐스팅이 중단되었다.
그와 동시에 동수 형이 사자후를 사용하면서 전장 전체에 소리쳤다.
“역린을 건드려서 전멸기 캐스팅을 취소했다! 이제 페이즈 2야! 다들 정신 차려!”
페이즈 2.
묵시룡의 분노.
-모조리 먼지로 만들어 주겠다! 하찮은 피조물들이여! 너희들을 내 몸속 무저갱에 처박아 주마!
페이즈 2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