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199)
66. 신세계 (3)
5.
멸망이라는 단어를 재료로 만들어 낸 끔찍한 피조물.
녀석의 숨결이 대지에 닿을 때마다 용암이 곳곳에서 솟아오른다.
거칠게 몰아치는 열기.
게다가 녀석의 숨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연기들이 전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가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까다로운 패턴이란 전부 다 가지고 있는 녀석.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설 수 있는 땅이 좁아져만 갔으며, 분노로 가득 찬 묵시룡의 공격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는 중이었다.
나는 녀석의 몸에 발을 고정시킨 채로 침착하게 전장을 둘러보았다.
40명의 공격대원 중 사망한 대원은 단 둘뿐.
유독가스에 노출된 원거리 딜러 중 둘이 사망했지만, 아직은 괜찮다.
탱커들이 사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힐러들의 힐 대부분이 탱커에 집중되고 있었으며, 탱커들은 힐 샤워를 받으면서 효과적으로 묵시룡을 밀어내는 중이었다.
첫 번째 전멸기 이후, 역린을 찔린 묵시룡의 힘은 페이즈 1보다 눈에 띄도록 향상되었다.
공격 범위가 더 넓어졌고, 전장 곳곳에는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구조물들이 생성되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지옥도.
하지만 공격대원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리허설 때 몇 번이고 봤던 상황이고, 이 상황을 이겨 내면서 수없이 묵시룡을 참살했다.
“허수야.”
“알아.”
나는 허수랑 빠르게 호흡을 맞춘 다음, 벌써 4번째 시전되는 전멸기에 대응했다.
페이즈 2부터는 나 혼자서 커버하기 힘들다.
옛날에는 세린 누나랑 함께 막아 냈지만, 이번에는 세린 누나가 아니라 허수였다.
허수는 내가 [가이아 온라인>에서 인정한 몇 안 되는 플레이어 중 하나.
세린 누나 역시 뛰어난 딜러임은 틀림없었지만, 허수랑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허수가 곧바로 등 뒤에서 황금색 날개를 뽑아내면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용기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광휘의 날개>.
페이즈 2에 들어서면서 생겨난 묵시룡의 또 다른 역린들을 향해 허수가 날아갔고, 나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역린을 향해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벌레 같은 것들.
빌딩만 한 묵시룡의 몸 곳곳에서 가디언들이 솟아올랐고, 어느새 하늘에서는 운석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최상위급 마법인 [메테오 스톰>.
묵시룡이 끌고 온 세계의 종말이 펼쳐졌다.
예전 레이드 때는 저 [메테오 스톰>에 꽤 많은 숫자의 공격대원들이 희생당했지.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탱커들 이격!”
“마법사들은 이제부터 공격 중지하고 운석 요격에만 신경 쓴다!”
“좌표 계산 마법으로 우리 쪽에 떨어질 운석들만 조져 버려! 땅에 박힌 꼬리는 2개밖에 안 남았다!”
동수 형의 간단명료한 오더 속에서 공격대는 운석들을 빠르게 극복해 나가는 중이었다.
살아남은 38명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사전에 약속된 공략들을 완벽하게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보여 줄 수 있는 전투력이었다.
“김찬식!”
“알았어!”
공격대원들이 꾸준히 어그로를 끌어 준 덕분에 나와 허수는 곧 역린에 도달했고, 같은 타이밍에 역린에 무기를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악!
다시 한번 묵시룡의 포효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마침내.
[페이즈 3가 시작됩니다.] [묵시룡이 그동안 먹어 치웠던 세상의 힘을 모두 끌어올립니다.]-빌어먹을 벌레들이여, 내 몸속에는 수많은 세계와 그 세계를 관장하던 차원신의 힘이 깃들어 있다. 이 힘을 이끌어 낸 순간, 너희들의 영혼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묵시룡에 도전했던 모든 랭커들의 게임 기록을 삭제시켜 버렸던 끔찍한 페이즈.
세상을 먹고 신까지 먹어 치웠다는 설정답게 아주 무지막지한 힘을 내뿜는 마지막 페이즈였다.
페이즈 1, 페이즈 2는 전멸기만 조심하면서 진행하면 무난하게 깰 수 있는 페이즈다.
하지만 페이즈 3는 페이즈 1, 2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이 페이즈 3는 우리 공격대가 리허설 때 실수했던 유일한 페이즈기도 했다.
숨 쉬듯 튀어나오는 전멸기들.
거기에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잊힌 세계의 망령>들로 인해서 묵시룡에게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도저히 깨라고 만든 페이즈 같지가 않다.
유저들의 패배를 염원하면서 만들어 낸 끔찍한 페이즈.
[가이아 온라인> 최악의 보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마지막 페이즈.거의 다 도달했다.
이제 이 페이즈만 넘겨서 녀석의 목을 잘라 내기만 한다면, 우리들의 계획은 모두 이루어진다.
콰아아아아아앙!
페이즈 3가 시작됨과 동시에 녀석의 몸에 붙어 있던 나와 허수가 거칠게 뒤로 나가떨어졌다.
묵시룡의 몸 전체에서 묵빛 마나들이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묵시룡의 적들을 모두 밀어내는 끔찍한 힘.
나와 허수는 빠르게 본대에 합류하면서 탱커들의 뒤에 몸을 숨겼다.
동수 형은 우리가 본대에 합류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했네.”
“가장 위험한 구간이죠?”
“네가 배신을 때렸던 바로 그 구간이지. 기억은 나냐, 이 자식아?”
지옥 같은 페이즈 3의 끝.
묵시룡 레이드 성공을 눈앞에 뒀던 순간, 나는 동료들의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래,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그러네요는 무슨 그러네요야. 야! 형이 바빠서 두 번은 말 안 한다.”
동수 형은 저 멀리서 날아오던 묵시룡의 보라색 브레스를 거대한 방패를 소환해 막아 낸 다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기다리던 기회 아니냐?”
“……맞아요.”
“여태까지 그렇게 기다렸던 기회니까, 이번에도 너한테 양보한다, 찬식아.”
콰아아아앙!
동수 형이 다시 한번 적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 나에게 말했다.
“가서 끝내고 와. 네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란 거, 다 알고 있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번 레이드.
우리들의 방송 인생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차지하는 레이드였다.
만에 하나 이번 레이드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우리에게 쏟아져 내렸던 관심들이 전부 적의로 바뀌게 될 테지.
스트리머에게 있어서 그런 적의란 곧 치명적인 극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본인이 여태까지 일구어 온 것들이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수 형은 다시 한번 나에게 모든 걸 걸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동수 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동수 형은 씨익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막내야, 형들 고생한다. 우리 잘 버티고 있으니까, 어서 가서 끝내.”
내 손으로 결착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천천히 몸을 돌려 묵시룡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수십 겹의 방어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묵시룡의 동체.
그 누구도 쉽게 뚫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아주 완벽한 방어 기재처럼 보였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 시절, 게임사에서 다른 공격대원들을 제치고 나에게 의뢰를 했던 이유.
이유는 수없이 많았겠지만, 가장 확실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내 존재가 게임사에서 통제할 수 없는 가장 큰 변수였으니까.
내 학창 시절을 바쳤고, 내 가족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던 나의 또 다른 인생.
이 세계로 인해서 동생을 살렸으며,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한때 나의 모든 것이었던 세계.
그 세계를 내 손으로 멸망시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기억이었는지.
우우우우웅.
“메타몰포시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고 한들, 과거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미래만큼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몸에 내재되어 있던 용살의 기운이 극성으로 깨어납니다.] [특성 [어벤져>가 발동합니다.] [스킬 [메타몰포시스>가 활성화합니다!]스킬을 시전함과 동시에 온 몸에서 흘러나온 마나들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전신을 타고 흐물거리면서 퍼져 나간 검은색의 마나들은 곧 내 양손에 쥐여 있던 검들까지 먹어 치웠다.
최후의 각성기 [메타몰포시스>.
캐릭터의 레벨과 스텟 들을 제물로 바쳐서 짧은 시간 동안 극한의 힘을 이끌어 내는 스킬.
“다녀올게요, 형.”
내 말에 동수 형은 그저 주먹으로 내 등을 후려칠 뿐.
레이드의 마지막이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왔다.
6.
끊임없이 베고, 또 베었다.
샤르르르륵!
세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운 숫자의 꼬리들이 당장에라도 내 몸을 꿰뚫기 위해서 뻗어 온다.
푸우우우우욱!
그러나 꼬리들은 내 뒤에서 나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허수의 창에 의해 빈틈없이 봉쇄당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살아남은 마법사들이 어떻게든 묵시룡의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남은 마나를 쥐어짠다.
힐러들의 마나는 이미 떨어진 지 오래.
기나긴 싸움의 끝이 다가오자 모든 임무를 수행한 탱커들은 방패를 든 채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까지 견고하게 버텨 줬던 공격대원들이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아낌없이 몸을 던졌고, 그들의 희생을 지르밟으면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동료들의 비참한 죽음이 당신의 힘을 일깨웁니다.]특성 [어벤져>.
함께 싸우는 동료들이 죽을수록 그들의 힘을 흡수하는, 존재만으로도 끔찍한 특성.
우리 공격대의 전략이 나라는 건 온화한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우리 공격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략.
그리고 우리 공격대가 선택할 수 있었던 비장의 한 수.
옛날에는 내 배신으로 인하여 실패했던 전략이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동료들을 양분 삼아 끝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막내야! 네가 알아서 끝내라!”
“형들 먼저 간다!”
“누나들도 1인분 하고 가는 거야. 알지?”
공격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면서 몸을 던졌다.
등 뒤에서 가해진 내 공격에 당혹스러워하고 원망으로 가득 찼던 표정들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그들이 웃으면서 길을 만들어 준다.
자폭 기술이 있는 몇몇 공격대원들은 몰려오는 가디언들 사이를 깊숙하게 침투하면서 극한의 효율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허수랑 나를 제외한 동료들이 전부 전장에서 사라졌을 때쯤, 나는 마침내 묵시룡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묵시룡의 남아 있는 체력은 단 9%.
하지만 묵시룡은 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나를 내려 볼 뿐이었다.
-버러지야, 네 동료들이 전부 죽으니 기분이 어떠하냐! 크하하! 너희들의 영혼을 되살린 가이아, 그년이 참으로 불쌍하구나! 고작 이따위 잡것들에 희망을 걸다니! 내 반드시 너희들의 세계는 오랫동안 내 뱃속에서 즐겨 주도록 하마!
광오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질 때쯤, 눈앞에 붉은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당신의 몸을 휘감은 불길한 힘이 당신과 거래를 원합니다.] [당신의 무엇을 희생하시겠습니까?]‘메타몰포시스’를 시전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나를 갉아먹으려고 했던 불길한 힘.
대가를 알 수 없는 힘이었기에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쉽게 사용하지 못했다.
레벨과 스텟은 게이머가 쌓아 온 ‘역사’다.
하지만 지금은 그깟 역사쯤은 상관없었다.
이 자리에서 저 녀석을 보내지 못하면 더 이상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회사 측에서는 만일에 대비한 계획을 만들어 뒀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내 배신으로 무너졌던 세계.
그 세계를 다시 쌓아 나가는데 필요한 양분이 고작 나의 역사 따위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묵시룡을 끝내지 못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공격대원 모두의 역사가 부정당하겠지.
나는 단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남는 장사였으니까.
그리고 우리 공격대원 모두가 함께 결정한, 이 빌어먹을 레이드의 결말이었으니까.
“모든 레벨과 스텟.”
[불길한 힘이 당신의 거래를 받아들입니다.] [특수 칭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획득하셨습니다!] [강대한 힘이 당신을 휘감습니다.]이제 종장이다.
온 몸 구석구석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힘들을 느끼며, 천천히 묵시룡에게 말했다.
“재밌었냐?”
-……네놈.
“이번에도 동료들 희생시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똑같은 실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안 그래?”
푸우우우욱!
바닥에서 급작스럽게 솟아오른 꼬리가 내 몸을 공격했지만, 내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허수가 몸을 던져서 그 꼬리를 막는다.
허수는 로그아웃이 되기 전,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 힘까지 가져가는 거니까, 한턱 쏴라.”
“곧 보자.”
전장에 남은 건 나 혼자.
마침내 허수의 힘까지 넘겨받은 나는 검을 꽉 움켜쥐면서 묵시룡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세상을 멸망시킨 악룡.
‘시아’가 최악의 빌런이라고 불리게 만들었던 시작점.
‘시아’의 무덤으로 이곳만큼 어울리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다음, 묵시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인공지능을 향해 말했다.
“네깟 놈 따위가 최종 보스라고?”
-이노오오오오오옴!
잔뜩 흥분한 묵시룡이 남아 있는 마나를 끌어 모으면서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모든 걸 멸망시키는 최후의 브레스.
그러나 나는 녀석의 아가리에 모이는 마나를 바라보면서 비웃듯이 한마디 던졌다.
“지랄하지 마. 너 때문에 멸망한 세상이 아니야. 내가 멸망시켰던 세상이지.”
-같잖은 벌레 따위…….
“자, 이제 끝내자.”
묵시룡의 아가리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 브레스를 바라보면서 그저 검을 앞으로 베어 내렸다.
내 검으로부터 뿜어져 나간 거대한 검은색의 반월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마침내,
푸우우우욱-!
모든 것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