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34)
11. 그래서 어쩌라고? (3)
5.
내가 대놓고 ‘스트리머 하잉’팀을 저격한 후, 다시 한번 곳곳에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아주 다양한 논란들이었지만, 결국 그건 트위팟에서 주최하는 멸망전에 대한 관심도를 빠르게 급증시켰다.
기존의 리그 오브 스톰, 일명 ‘롯크리트’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아주 광범위한 시청자들을 유입시켰다.
게다가 프로게이머들까지 합류한 덕분에 프로 리그의 애청자들까지 멸망전 컨텐츠에 유입된 상황.
덕분에 멸망전에 참가하게 된 스트리머들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시청자들을 거느린 채로 방송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내 평균 시청자 숫자는 4만. 평소보다 1만 정도 증가한 상태인데, 새로운 유입들 중 대부분은 프로 리그를 즐겨 보는 시청자들이었다.
멸망전을 준비해서 그런지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당분간은 리그 오브 스톰 컨텐츠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라, 몇몇 시청자들은 ‘또그 오브 스톰’이라고 부르면서 빈정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어.
이미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참가했으면 적어도 우승이라도 하고 가야지 내 체면이 살거든.
그렇게 2주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고, 대망의 멸망전 1차전 당일이 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한 다음, 가볍게 운동을 하면서 컨디션을 체크했다.
멸망전은 홍대에 위치한 트위팟 오픈 스튜디오에서 진행된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애초에 멸망전의 기획 의도 자체가 팬들과 함께하는 문화제,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을 위해서 미리 사 뒀던 깔끔한 슬랙스와 셔츠를 걸친 다음, 곧바로 밖으로 나섰다.
슬슬 더위가 꺾여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꽤 선선해졌다.
시간은 10시쯤.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나와서 가는 건 우리 팀원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점심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리 스튜디오에 가서 캡슐을 체크한다.
간단한 리허설 작업이 끝나면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는 팬 미팅 행사에 참여 후, 오후 6시부터 본게임을 시작한다.
그것이 오늘 하루의 아주 알찬 계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내가 외출 준비를 끝내고 잠시 소파에 앉아 있자, 진혁이가 눈을 비비면서 거실로 나왔다.
“형 오늘 가서 칼에 찔리면 안 돼. 방검복 주문했지, 형?”
“방검복?”
“그년, 아주 독한 년이라니까. 진짜 칼을 들고 올지도 몰라.”
……음, 그건 나랑 아주 다른 의미로 미친년 같은데.
그러나 더 무서운 건 진혁이의 목소리에 진심이 일부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머리를 슬쩍 긁은 다음, 넌지시 진혁이에게 말했다.
“그냥 형이랑 오늘 같이 갈래?”
“응? 우리 팀 경기는 내일인데?”
“아니, 네가 대신 찔려 줘야지. 그게 하청기업의 의무야.”
“……형.”
농담인데 그렇게 정색할 필요가 없잖니?
그렇게 나는 진혁이와 몇 번 농담을 따먹은 다음, 천천히 집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동수 형도 없고, 나를 픽업해 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통해서 이동할 생각이었다.
조만간 8월 치 후원이 정산되면 경차라도 하나 사든가 해야겠다.
아무래도 차가 없으니 여러모로 불편하단 말이지.
집과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한 다음, 곧바로 홍대로 향했다.
한 40분쯤 걸렸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홍대에 도착했고, 곧바로 역 밖으로 나서서 트위팟의 오픈 스튜디오로 향했다.
역에서 한 10분 거리에 위치한 한 빌딩.
그 앞에서는 미리 약속이 되어 있던 우리 팀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우, 오셨어요?”
“샤 님!”
커물쥐 님과 킹종우 님은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줬다.
나는 그들에게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인 다음, 뻘쭘한 자세로 서 있던 다른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동현이랑 희수. 어제 잘 잤지?”
우리 팀의 프로게이머인 템플러와 킹즈.
3일 전쯤에 이미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둘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파릇파릇한 유망주들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나를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오셨어요, 형?”
“둘 다 아침은 먹었니?”
“예. 숙소에서 아침은 먹었어요.”
“성장기 때는 잘 챙겨 먹어야지. 그러면 딱히 배는 안 고프겠네?”
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비교적 붙임성이 좋은 정글러, 동현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오늘 점심 사 주신다고 하셔서 적당히 먹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 게임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목소리에 자신감이 상당히 붙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주 동안 우리 팀에서 나 다음으로 주목받고 있는 게 동현이었기 때문이다.
프로 리그에서의 부진과는 다르게 스크림에서는 거의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 주었다.
심지어 리그 1위팀 정글러를 상대로 압도했던 경기도 있었는데, 그때의 임팩트 덕에 많은 수의 악질단으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음, 악질단의 지지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겠다만.
아무튼 팀의 임시 감독님에게도 눈도장을 찍을 정도로 좋아진 기량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서포터인 희수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래도 동현이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편.
내가 프로게이머 둘을 챙기고 있자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커물쥐 님이 속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제가 팀장인데…….”
“비선실세 하라면서요?”
“저도 챙겨 주시죠, 샤 님. 질투 나네요, 정말.”
확실히 우리 팀은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게다가 커물쥐 님 옆에 있던 킹종우 님도 나를 향해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 말했다.
“저도 속상합니다.”
우웩.
남자들이 저러니까 진짜 역…….
6.
우리 팀은 사이좋게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오픈 스튜디오로 가서 캡슐의 점검을 끝냈다.
캡슐 점검이라고 해 봤자 동화율 체크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형, 동화율 몇 퍼라고 하셨죠?”
캡슐 점검을 하는 와중에 동현이가 슬쩍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해 줬다.
“지금 한 93프로 나오나?”
“……예?”
“아무튼 그래.”
동화율이란 게 아주 일정한 편은 아니지만 내 경우에는 평균 90프로 이상을 넘긴다.
내 전용으로 세팅된 우리 집의 캡슐에서는 97프로까지 동화율이 올라가기도 한다.
동현이는 내 대답을 듣더니 한참을 벙쪘다.
뭐, 그렇게 간단하게 캡슐 점검도 끝냈고, 어느새 시계는 3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트위팟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팬 미팅이 시작될 것임을 알려 줬고, 우리는 곧장 스튜디오 앞에 설치되어 있는 팬 미팅 전용 부스로 향했다.
“아, 오늘부터는 팀명을 제출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트위팟 관계자가 커물쥐 님에게 말했고, 커물쥐 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들의 팀명을 말했다.
“저희 팀은 간단하게 팀 SB라고 불러 주세요.”
그러자 관계자가 미간을 살짝 좁히면서 물었다.
“혹시 뭐의 약칭인가요? SB…… 뭐, 스페셜 브라더스 그런 겁니까?”
“아니요. 팀 시발이요.”
“예?”
“아무튼 그렇습니다.”
“……예.”
이건 내 의견이 반영되었다기보다는 우리 시청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게 맞지.
그렇게 팀명 제출도 끝났고, 우리는 곧바로 팬 미팅 부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들은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많아?”
“와…….”
팬 미팅 부스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각양각색의 치어풀들이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커물쥐 님은 팬들의 치어풀을 슬쩍 살피더니 내 옆구리를 건드리면서 말했다.
“역시, 샤 님은 여성들한테도 인기가 참 많으세요.”
눈에 보이는 여성 팬들 대부분이 나를 그려 넣은 치어풀을 들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장면에 헛기침을 몇 번 내뱉은 다음, 최대한 뻔뻔한 말투로 말했다.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라고 하잖아요?”
“……음, 그런 방식으로 나쁜 건 좀 다르지 않을까요?”
“커물쥐 님.”
“예.”
“가끔씩 보면 상당히 논리적이세요.”
“……감사합니다.”
나도 왜 내 여성 팬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동수 형이 가끔 팬 미팅하면 남자들만 바글거린다고 하는데.
트위팟 관계자들은 우리가 부스에 앉자마자 곧바로 일정을 진행시켰고, 곧이어서 팬들이 부스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팬 미팅은 하잉의 팀과 우리 팀이 동시에 진행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스트리머 하잉이 있는 부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 팀의 부스와 비교하면 절반조차 안 되는 듯했다.
“꺄아아악! 이거 드세요. 오빠 드리려고 직접 과자도 만들어 왔거든요?”
1순위로 부스에 들어온 남학생이 나에게 쿠키가 담긴 주머니를 건네주면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머쓱하게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사인을 해 줬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빠! 그때 방송에서 약속하신 것 있잖아요!”
……음, 내가 약속한 게 너무 많아서 헷갈릴 지경인데.
“죄송하지만 그게 뭐였죠?”
“그, 조공하면 귀에다가 욕해 준다는 거. 저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조공도 준비해 왔어요!”
……아니, 진짜 내 시청자들은 다 또라이밖에 없는 거야?
게다가 아까 전부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학생, 저한테 왜 자꾸 오빠라고 불러요? 남학생 아니에요?”
그러자 그 남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오빠라고 불러 주면 좋아하잖아요.”
“……예?”
“오빠! 나 기억 안 나? 나 맨날 오빠 방송에서…….”
너였냐?
이 더러운 자식……!
성 정체성에 혼란이 온 듯한 그 남학생은 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빨리 해 주세요, 오빠.”
“야.”
“네!”
“너 오늘 멸망전 끝나고 남아라.”
“예?”
“내가 저번에 분명히 뜯어 준다고 했었는데,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딱 기다려, 씨발 새끼야.”
그제야 그 남학생은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대한민국에 망조가 들었다.
저런 변태가 대놓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이 나라의 앞날이 두렵구나.
남학생이 물러나자 곧바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학생들이 다가왔고, 그녀들도 나에게 조공을 바쳤다.
몇몇은 직접 그린 내 캐릭터를 나에게 건네주었고, 그 보답으로 시원하게 욕 한 번씩 듣고 나갔다.
확실한 건 내 팬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점.
옆에서 가만히 내가 사인을 해 주는 걸 보고 있던 커물쥐 님이 또 한마디 던졌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샤 님. 앞으로 롤 모델로 삼겠습니다.”
“뭐가요?”
“저도 시청자들한테 그렇게 시원하게 쌍욕 박고 싶을 때가 많거든요.”
“그래요?”
나는 내 앞에 놓인 종이에 사인을 해 주면서 커물쥐 님의 말에 대답해 줬다.
“나중에 욕 진짜 하고 싶으시면 통화 거세요. 커물쥐 님이라면 대리 욕설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오…… 역시…….”
“우리는…… 팀이잖아요?”
“오우쉐에엣!”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팬 미팅은 진행되어 갔고, 어느새 내 책상 위에는 팬들의 조공으로 쌓아 올린 탑이 완성되었다.
그래도 제법 내가 유명해졌다는 걸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1시간 30분 뒤.
예정되어 있던 팬 미팅 행사가 전부 끝났지만, 아직 내 사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정해진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팬 미팅은 여기서 끝.
행사는 곧바로 진행되었고, 우리 팀과 스트리머 하잉의 팀은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경기장이라고 해 봤자 거대한 스크린과 그 앞에 놓인 10개의 캡슐이지만 말이다.
각 팀이 무대 위에 오르자 개막전의 MC를 맡은 갓태가 진행을 시작했다.
“트위팟 리그 오브 스톰 멸망전의 MC를 맡게 된 스트리머 갓태입니다. 즐거운 주말임에도 이곳을 찾아 주신 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의례적인 말로 멘트를 시작한 스트리머 갓태는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웃음을 지었다.
“멸망전의 개막전을 시작하기 전에, 각 팀의 각오 한마디부터 듣고 가시죠. 가장 먼저 팀 SB…… 이거 뭐의 줄임말인가요?”
커물쥐 님은 본인이 팀장임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를 나에게 넘겼다.
나는 마이크를 잡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시발.”
내 말에 갓태 님은 여유를 잃어버리더니 곧 허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
“전설의 시발점, 뭐 그런 의미로 지은 겁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구차한 변명이지만 내 시청자들은 시발의 의미에 대해서 이미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어디까지나 공식 석상.
이런 변명이라도 해 줘야지.
갓태 님은 내 변명을 들으며 난감하다는 듯 웃음을 짓더니, 재빠르게 다음 멘트를 던졌다.
“좋습니다. 팀 SB. 오늘 개막전에 임하는 각오가 따로 있습니까?”
각오라.
아마 커물쥐 님은 나에게 이 각오를 양보해 주기 위해서 마이크를 건네주었을 것이다.
나는 마이크를 잡은 채로 슬쩍 옆에 서 있던 스트리머 하잉을 쳐다보았다.
그다음, 무대 앞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운영자 잭슨 오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보냈다.
“오늘 제 팬분들이 엄청 많이 오셨는데, 아쉽게도 챙겨 드리지 못한 분들이 많았거든요.”
“예에.”
“그래서 경기 빨리 끝내고 남은 팬분들과 팬 미팅을 더할 예정입니다. 2시간이면 충분하겠네요.”
명백한 도발성이 담긴 멘트.
저쪽에 붙은 프로게이머들에게는 별다른 감정은 없다만, 결국 모든 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잭슨 오와 하잉은 내가 대놓고 무시하자 불쾌감을 강하게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여유롭게 잭슨 오를 쳐다보면서 말을 맺었다.
“트위팟 운영자님들, 팬 미팅 준비 좀 부탁드릴게요. 그리 오래 안 걸려요.”
우우우우우.
몇몇 팬들이 나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아마 하잉의 팀을 응원하러 온 시청자들인 것 같다.
참 오래간만에 듣는 야유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걸로 기분 나빠 해서는 안 되지.
진정한 굴욕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테니까.
그렇게 멸망전 1차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