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49)
16.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3)
5.
삼국전 이벤트가 종료된 후.
삼국의 반응은 가지각색으로 나뉘었다.
한국은 축제 분위기였으며, 중국은 그럭저럭 선방했다는 분위기였다.
일본은?
당연히 초상났지.
게다가 평소라면 전범기를 쓴, 일본의 게이머들을 지지해 줄 일본의 극우 세력조차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유가 간단하다.
실력이 모자라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전범기가 불태워졌으니까.
심지어 나는 전범기의 잔재를 발로 짓밟는 퍼포먼스까지 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게이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편을 들어 줄 사람이 있겠는가?
게다가 마지막 장면이 대미를 장식했다.
나가토모가 마지막 남은 체면을 위해, 신나게 중국 플레이어들을 몰아붙이고 있을 때.
녀석은 내가 뒤에서 찌른 검에 의해 사망했다.
그리고 나는 늘 그랬듯이, 시체 위에서 여러 가지 조롱을 퍼부어 줬고.
아무튼 그랬다.
이번 삼국전에서 일본 측은 처음부터 끝까지 굴욕적인 장면만 남긴 채로, 게임이 종료되자마자 곧바로 도망쳤다.
그들이 이번 대회에서 남긴 거라곤 전범기 논란뿐.
그렇게 게임은 끝났고, 삼국전이 종료되자마자 판타지 워의 오픈 베타가 시작되었다.
“한국 게이머들이 엄청 많이 구매했다던데?”
“중국인들도 꽤 많이 구매했네.”
“어차피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게임 잘 안 하잖아?”
“그렇지.”
한국 팀은 승리를 기념할 겸, 방송이 끝나자마자 모여서 회식을 즐기는 중이었다.
동수 형은 판타지 워에 대한 기사를 슬쩍 본 다음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내 옆으로 다가와서 맥주잔을 들었다.
“우리의 척준경.”
“형.”
“어, 왜.”
“제발 현실에선 그러지 마요.”
“잘 어울리는데 왜?”
“쪽팔리잖아요!”
“야! 너는 우리 직업이 그렇게 쪽팔려? 어? 방송 한다, 내가 스트리머 샤다. 왜 말을 못 해!”
이 아저씨 술 많이 마셨다.
동수 형은 새빨개진 얼굴로 내 어깨에 팔을 올리더니 기분 좋게 말을 이어 갔다.
다 좋은데…….
술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아까 회식 초반에 마셨던 소맥 폭탄주가 아주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진혁이한테 얘기 들었는데, 월오배 할 거냐?”
진혁이가 실행력 하나는 불도저 같단 말이지.
나는 동수 형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마 별일 없으면 할 것 같은데요?”
“리그 오브 스톰 챌린저 안 찍어?”
“그건 다음 기회에. 리그 오브 스톰 너무 오래 했어요. 제가 리그 오브 스톰 전문 스트리머도 아니고.”
“뭐 어때서? 너 그냥 그거 전문으로만 해도 충분히 돈 벌걸.”
동수 형이 술김에 하는 말이지만, 저 말이 맞긴 했다.
캐릭터 컨셉도 확실히 잡았고, 실력도 이미 검증됐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봐 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악질단의 충성도가 높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악질단이 곳곳으로 퍼져 나가서 어그로를 끌고 있겠지.
그것도 내 이름을 팔아 대면서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술이 당겼다.
“크으.”
내 앞에 놓여 있던 소맥을 한입에 털어 넘긴 다음, 크게 숨을 뱉어 냈다.
“제가 게임 하나만 진득하게 하는 건 좀 그래요. 다양하게 플레이하고 싶어요. 하나만 계속하면 질리지 않아요?”
“너도 그냥 뼛속까지 종합 게임 스트리머다. 그래, 인정한다, 쉐에에에끼.”
“오빠! 왜 자꾸 막내한테 술주정 부리는 거야?”
세린 누나가 동수 형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지만, 오히려 동수 형은 나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귀엽잖아, 우리 막내, 끌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제 님이 조용히 한 말씀하셨다.
“브로맨스 보기 좋네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제발 엮지 말아 주세요.”
“농담이에요.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셔서 그런가? 되게 정색하시네.”
“제가 정색을 했나요? 이런, 정말 죄송…….”
“장난이에요. 진짜 놀리는 맛은 있네. 아, 저희 동갑이니까 편히 말 놔요. 그냥 사석에서는 지수라고 부르세요, 지수.”
술이 좀 들어간 여제 님은 방송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활발하고 편한 분위기를 보여 주는 중이었다.
아니지, 이제부터 지수라고 부르라고 했지?
아무튼 지수의 낯선 모습도 썩 괜찮았다.
방송에서는 공략과 설명 위주로 해서 차갑고 딱딱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만나 술을 마시니 느낌이 꽤나 다르다.
그냥 내 또래의 여자 같은 느낌?
이러고 보니 내 신세도 참 많이 바뀌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뭘로 먹고살지 고민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내 옆에 있는 동수 형에게 참 미안한 감정이 많았다.
매일 생각하는 거지만,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군대 간 사이에 진혁이를 잘 챙겨 준 것도.
그리고 전역하고 나서, 내가 방송에 데뷔할 수 있게 도와줬던 것도.
만약, 동수 형이 내가 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문득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내 속을 모르는 동수 형은 그저 싱글벙글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회식 자리는 웃음 속에서 술잔이 오고 갔고, 분위기는 천천히 무르익어 갔다.
동료 스트리머들은 대부분 취했고, 술집에서 끝까지 정신을 챙기고 있던 건 나와 세린 누나뿐.
나야 원체 술을 잘 마셨지만, 세린 누나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음을 지었다.
“술 좀 잘 마신다? 내가 아는 동생들은 군대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 술 더럽게 못 마시던데…….”
“집 유전자가 그런가 봐요.”
“진혁이는 너만큼 못 마실걸.”
“진혁이랑 술 마신 적 있으세요?”
“어, 예전에 동수 오빠가 우리 모임에 한번 데려온 적 있었거든. 그때 자기 형 자랑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아?”
……나쁜 자식.
누구는 군대에서 여자도 못 만나고 있을 때, 본인은 미녀들이랑 신나게 놀았다는 건가?
세린 누나는 웃음을 지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진혁이가 그때 술 잔뜩 취해 가지고 네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 그래서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막상 만나 보니까 그 착하다는 형이 순 악질이더라고.”
“컨셉이잖아요.”
“그렇긴 해. 나도, 다른 사람들도 네가 착한 놈인 건 알고 있어. 다들 너 좋아하잖아? 그냥…… 그렇다는 거야. 누나가 술 마셔서 말이 좀 많네.”
그렇게 말하면서 세린 누나는 술 한 잔을 목으로 더 넘겼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 줬다.
그리고 나도 한 잔을 마시려던 찰나였다.
잔뜩 술에 취해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던 동수 형이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찬식이, 이 나쁜 쉐끼.”
……술주정 레퍼토리 참 단순한 사람이라니까.
6.
회식이 끝난 다음 날.
큼지막한 이벤트가 끝났기 때문에 하루의 휴방을 선언했다.
하지만 아예 쉬지는 못했다.
다음 컨텐츠와 함께 진행될 아주 중요한 행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근데 형, 내가 왜 여기까지 따라오게 된 거야?”
“왜긴, 네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니까. 그리고 형제는 하나라는 말 몰라?”
“진짜 몰라. 어떻게 사람이 하나일 수가 있어.”
“너 그러다가 형 진짜 너한테 호스팅해 버리는 수가 있다?”
“……나한테 왜 그래.”
왜 그러긴, 친동생이니까 그러지.
나는 진혁이에게 한마디 쏘아 준 다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난번의 루나 캡슐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영 씨가 우리를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 오늘 두 분 다 방송 쉬는 날이세요?”
“아니…….”
“진혁이는 오늘 저녁에 방송한다고 그래서요. 나영 씨 잘 지내셨죠?”
“당연하죠. 지난번 방송 출연 덕분에 캡슐방 매출도 엄청 올랐거든요. 감사 인사 드릴까 했는데, 이렇게 오실 줄은 몰랐네요. 아! 이번 삼국전 이벤트 진짜 재밌게 봤어요.”
크흠.
현실 지인이 이렇게 방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건 왜일까?
나는 난감하게 웃음을 지은 다음,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혹시 지금 사장님 계신가요?”
“아,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제가 이번에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캡슐방 50좌석 정도 빌려야 하거든요. 상의를 좀 할까 해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 말에 나영 씨는 곧장 뒤쪽으로 가더니, 문을 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게임 그만하고 와 봐! 큰손님 오셨어!”
아, 게임 중이셨구나.
나영 씨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흉악한 인상의 중년인이 등장했다.
루나 캡슐방의 두목, 아니 사장님.
이 사장님이셨다.
이 사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시면서 손을 건넸다.
“아이고, 잘 지내셨습니까?”
언제 봐도 무서운 남자다.
저렇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살짝 위협이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그가 건넨 손을 맞잡았다.
“딸내미가 큰손님이라 해서 나왔는데, 정말 큰손님이셨군요. 저와 따로 나눌 말씀이 있으시다고…….”
“아, 예.”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본인이 나온 ‘사장실’로 안내했다.
카운터 뒤쪽에 딸려 있는 사장실.
말이 사장실이지, 사실상 개인 캡슐실이나 다름없었다.
업무와 관련된 거라곤 덜렁 놓여 있는 책상 하나뿐.
나머지는 캡슐과 캡슐 부속 장비들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앉을 만한 소파는 있다는 점.
우리가 소파에 앉자, 나영 씨가 음료수를 가져다주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더니 곧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도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말이다.
안 그래도 예쁜 여자가 저렇게 바라보니 헛기침만 나왔다.
“크흠.”
“그나저나 어쩐 일로 캡슐방에…….”
“제가 조만간 시청자 참여 이벤트를 진행할 거거든요. 팬 미팅 겸 해서요.”
“오, 저희 캡슐방에서 그런 이벤트를 진행해 주신다니, 오히려 감사하죠. 혹,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저를 포함해서 50명입니다.”
“으음, 찬식 군은, 아, 찬식 군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예.”
부르지 말라고 그러면 진짜 죽일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 사장님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찬식 군은 스트리머 전용 캡슐을 사용하실 테고, 49개라……. 알겠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정하셨는지.”
“다음 주 토요일 오후 6시 전후일 것 같습니다.”
“저희도 미리 공지를 해 둬야 하는 부분이니까, 알겠습니다. 아, 혹시 이용객분들께 공지를 할 때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내가 이곳에서 이벤트를 개최한다는 내용의 공지.
아마 이 사장님은 그걸 이용해서 홍보를 하실 계획인 모양이다.
“최대한 저렴하게 요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사장님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감사합니다.”
돈은 제값을 낼 생각이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깎아 준다니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선뜻 수락하자 이 사장님은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크하하.”
웃음소리 한번 독특하시네.
우리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영 씨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그런데 어떤 이벤트예요? 따로 공지 안 하셨던 것 같은데.”
“아, 월드 오브 배틀이라고 아시죠?”
“오! 이번에 그 게임 하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저 요새 그 게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게임 이름을 말하자마자 이 사장님이 눈을 빛내면서 크게 반응했다.
어우, 무서워.
나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리머들끼리 대결을 하기로 했거든요. 각 방 시청자 50명씩 모아서, 제대로 한판 붙기로 했습니다. 저는 시청자들도 모을 겸, 팬 미팅도 진행할 겸 해서 그렇게 진행하는 겁니다.”
그 말에 이 사장님의 눈빛이 더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자기도 참여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피부를 때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옆에 있던 나영 씨도 그런 이 사장님의 눈빛을 눈치챘는지, 이 사장님의 등짝을 후려치면서 말했다.
“아빠! 그렇게 아빠가 목소리 높여서 말하면 사람들 다 놀란다니까! 찬식 씨가 부담스러워하시잖아.”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만 너무 앞서서…….”
“아, 아닙니다. 이 사장님이라면 제가 자리 한번…….”
“오! 저 월드 오브 배틀 꽤 잘하는데, 한번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떻게 내가 안 된다고 그래?
……어차피 이 세상, 인맥으로 살아가는 건데, 한 명쯤이야.
그렇게 순식간에 이 사장님의 합류가 결정되었고, 기분이 좋아진 이 사장님이 캡슐방 대여료를 더 싸게 깎아 주셨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게다가 이 사장님의 컨셉이 워낙 확고한 탓에 방송 재미도 꽤 살아날 것 같았다.
“형.”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혁이가 슬쩍 내 귀에 말했다.
“왜?”
“나영 누나한테 접근하기 전에 장인어른부터 조진다, 뭐 그런 거야?”
“미친 새끼냐?”
“……크흠.”
이 새끼는 머리가 그쪽으로만 돌아가는 건가?
아무튼 캡슐방의 협조도 구했으니, 다음 계획을 진행할 시간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미리 저장되어 있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스트리머 샤입니다. 국뽕미션맨 님 맞으시죠?”
-오오! 전화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크으! 이렇게 통화하게 된 게 꿈만 같네요.
국뽕미션맨.
내 방송 최대 후원자이자, 앞으로도 그 자릴 지켜 줄 그와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