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80)
27. 업보 (1)
1.
[그렇게 된 거군요.> [애초에 가이아 온라인의 제작사인 ‘코덱스’ 측에서는 묵시룡이 레이드당하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묵시룡이 전설로 남길 바랐죠.>동수 형의 방송의 게스트로 참여한 이낙준 씨는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나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묵시룡> 레이드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까.
게스트로 출연한 [가이아 온라인>의 제작진 출신, 이낙준 씨의 입에서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낙준 씨의 등장과 함께 접속하는 시청자들의 숫자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동수 형이 애초에 계획했던 일이었을까. 저렇게 이낙준 씨를 직접 불렀다면, 준비해 둔 게 더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일단 가만히 그 방송을 지켜보았다.
[묵시룡에 도전하는 길드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건 동수 씨가 이끄는 길드였죠. 비공식 랭킹 1위인 시아가 포함되어 있던 막강한 공격대였으니까요. 실제로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묵시룡은 거의 사망 직전의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만약 저희가 시아를 포섭하지 않았다면, 묵시룡은 클리어되었겠죠.>게임사 [코덱스>는 본인들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낸 최후의 보스 몬스터가 레이드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기를 바랐었고, 그걸 위해서 나를 포섭했다.
그것이 이낙준 씨가 밝힌 [묵시룡> 사건의 전말이었다.
[코덱스는 각 나라의 인재들이 중심이 되어, 가이아 온라인 하나를 만들기 위해 뭉친 기업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욕심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욕심이라니요?> [아무도 정복하지 못했던 최초의 게임. 그런 유치한 타이틀을 말이죠.>어찌 보면 단순히 자기만족일지도 모르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기만족을 즐길 만한 돈이 있었고, 반대로 나에게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뿐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그렇기 때문에 그 거래가 성사되었다.
그래서 나는 게임사를 욕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 거래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걸 얻어 내었으니 말이다.
동수 형은 이낙준 씨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결국 돈 받고 동료를 팔아넘기라는 거였네요?> [……그렇……죠?> [이렇게 관계자에게 직접 들으니 참 감회가 새롭네요.>시청자들에게 명확한 팩트를 체크해 주는 동수 형.
하지만 그 말이 단순히 나를 깎아내리기 위한 말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동수 형은 늘 그랬듯, 방송의 분위기를 잡아 가는 중이었다.
저건 동수 형이 아주 잘하는 거다.
초반부에 시청자들이 집중할 만한 어그로를 잔뜩 끌어 놓고, 본론은 최대한 뒤로 배치하는 것.
동수 형이 지금까지 대기업 스트리머의 자리를 지킬 수 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는 임팩트를 어디에서 줘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다.
사람이 좋은 건 둘째 치고, 상당히 똑똑하고 영리하게 방송을 하는 사람이었다.
동수 형은 이낙준 씨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회사에서 제공했던 게 돈뿐만이 아니었다고 들었는데요.>그 말이 시작이었다.
이낙준 씨와는 미리 이야기를 나눴을 상황.
이낙준 씨의 어색한 연기만 보더라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낙준 씨는 애써 당황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아, 예. 어디서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맞긴 합니다. 그 당시에 코덱스에서 제공했던 편의가 하나 있었죠.> [그게 뭡니까?>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저 한마디를 듣기 위해 동수 형이 여기까지 빌드업을 했던 것이다.
이낙준 씨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동수 형을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좀 복잡한 문제입니다.> [말씀해 주시죠.> [코덱스가 각 국가의 대기업들이 합작해서 만든 프로젝트 회사라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당연히 그곳에는 한국의 대기업 몇 곳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과 그 배신이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아주 큰 연관이 있습니다. 아마 들으시면 시아가 불쌍하게 느껴질…… 아, 안 되겠네요. 더 이상은 안 되겠습니다. 여기서 더 말하다가는…….>여기서 끊는다고?
미리 기획되어 있던 대본인 듯 이낙준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동수 형은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진실을 알고 계시다면서요. 시아, 그 빌어먹을 놈이 뭐가 불쌍하다는 겁니까?> [다크 스피릿 부스 정리하러 가야 하는데…….>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말.
그 말에 이낙준 씨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정말 듣고 싶으십니까?> [예,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할 것 같거든요.> [흐음, 그렇게까지 부탁을 하시니 제가 슬쩍 말씀드려 보죠. 그러니까 그건…….>나는 가만히 폰을 들여다보면서 숨을 죽였다.
정말로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아니, 과연 사람들이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나를 이해해 줄까.
확신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동수 형이 저렇게까지 해 줄 필요도 없었다. 동수 형에게 미안한 건 난데, 책임감을 느끼는 건 동수 형인 아이러니한 상황.
저렇게 뻔히 보이는 연극을 하는 이유도 오로지 나를 위해서였다.
……난 그냥 버려도 되는데.
동수 형의 대본은 절정에 다다랐고, 그와 동시에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치치치지지직.
화면을 통해 기괴한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다급한 동수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동수 형의 계획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2.
동수 형의 방송이 불가피한 사고로 인해 종료된 후.
인터넷 커뮤니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동수 형은 약속했던 것과 다르게 방송을 다시 켜지 않았다.
그저 카메라 이슈로 인해서 방송을 더 진행할 수 없다는 공지만 남겼을 뿐.
누가 봐도 핑계였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동수 형의 고백 방송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더 거세게 타올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목 : 시아 불쌍하다는 말 ㄹㅇ트루일까?>내용 : 그 이낙준이라는 사람이 말 제대로 못 끝내고 방송 종료되었는데, 도대체 뭐가 불쌍하다는 거지? 누가 봐도 걍 돈 받고 팀원 죽인 쓰레기 새끼인데ㅋㅋ 안 그러냐?
-야 근데 이 시간에 여기서 글 싸지르는 니도 좀 불쌍함ㅋㅋ
-스트리머 걱정은 할 필요도 없는데ㅋㅋ
-시아 걔 이번에 방송으로 돈 존나 땡겼으니 걍 방송 접고 떵떵 거리면서 잘살듯ㅇㅇ
-근데 돈 말고 또 제공해 줬다는 거, 그게 도대체 뭘까? 존나 궁금하긴 하다.
-칸은 언제 시아랑 현피 뜨러 감? 둘 다 VR 스타 참석하지 않았음?
동수 형은 일부러 이런 상황을 원했던 모양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나를 놓고 다양한 시점을 제시하면서 잔뜩 진흙탕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폰을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자, 내 옆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던 동수 형이 내 폰을 빼앗으며 말했다.
“더 봐서 뭐 하려고?”
“……신경 쓰이잖아요.”
“야, 김찬식. 너 우리 앞에서 자꾸 그럴 거야? 그럼 우리가 뭐가 되고, 동수 오빠는 또 뭐가 돼?”
“언니, 찬식이한테 그러지 마요.”
“야! 나영아. 너는 저런 배신자가 뭐가 좋다고 감싸? 어? 쉐끼, 우리가 이렇게 용서해 줬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웃어야지!”
지금 이곳은 숙소 근방의 한 술집.
치킨박스 소속 스트리머들과 나영이까지 껴서 회식을 하는 중이었다.
진혁이는 급한 일이 있다면서 미리 서울로 올라간 상황.
녀석이 마음을 잡는 건 스스로의 몫이었다. 그것까지 내가 도와줄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 자리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자리였다.
세린 누나는 나를 째려보면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풀 죽어 있지 마라. 누나가 딱 한 번만 말한다. 알았어?”
“예.”
“좋아. 건배해.”
짜아아안.
술자리의 분위기는 어느새 무르익은 상태였다.
다들 오늘따라 오버 페이스로 달린 바람에 얼굴 가득 술기운이 올라 있는 상황.
나에게는 가시방석 같은 자리라서, 나는 딱히 술이 취하지 않았다.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확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찬식아.”
이번에는 유선 누나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평소에도 얌전한 사람이지만, 술을 마시면 더 얌전해진다.
“네, 누나.”
“방송 진짜 접을 거야? 나는 네가 안 접었으면 좋겠는데…….”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제가 여기서 더 방송 생각하면 그게 욕심이에요. 누나나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만 더 주…….”
“야!”
그때였다.
바로 옆에 있던 동수 형이 주먹을 테이블을 강하게 후려치더니, 곧 나를 향해서 화를 잔뜩 쏟아 냈다.
“너 아까 형이 뭐라고 그랬어? 어? 나만 믿고 있으라고 그랬지! 형이 씨바, 너 어떻게든 도와주려는데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오빠, 진정해. 그러다가 한 대 치겠다.”
“아니, 얘 말하는 꼬라지 좀 봐. 화 안 나게 생겼어? 이 자리에서 너 욕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어, 이 새끼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들은 너 욕 절대 안 해. 어? 씨발.”
술이 한참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동수 형은 거칠게 소주를 따라서 목으로 넘겼다.
그러더니 내 목을 본인의 팔로 조르면서 말했다.
“그냥 너는 이번 일 끝나면 우리들한테 한턱 쏘는 것만 생각해.”
“오늘 이곳도 제가 계산을 할게요.”
“닥쳐. 오늘 여기는 내가 산다. 왜냐고? 나 오늘 기분 존나 좋거든!”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일 뿐일까?
그러나 동수 형은 나를 노려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오늘 기분 좋은 날이야, 이 새끼야. 너 그동안 우리 속인다고 얼마나 고생했었냐? 안 그래?”
“속아 주는 것도 힘들더라.”
“헤헤, 맞아.”
유선 누나와 세린 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동수 형은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나중에 옛날 우리 길드원들 싸그리 모을 테니까, 거기서 대가리 박고 사과나 해. 우리는 진작에 너 용서했지만 나머지는 아니야. 잘 알지?”
“……예.”
“오늘의 찬식이는 저렇게 닥치고 있는 게 참 귀여워. 평소 같으면 아득바득 나한테 대들었을 텐데……. 나영 씨, 안 그래요?”
“음, 네?”
“와. 나영 씨도 술 진짜 잘 먹네.”
“아, 저희 아빠 닮았거든요.”
나 말고 취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영이.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저 집의 주량은 쉽게 가늠이 안 되는 수준이다.
나영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동수 형을 바라보았다.
“찬식이가 좀 귀엽긴 하더라고요.”
그러자 세린 누나와 유선 누나가 반쯤은 취한 목소리로 유난을 떨기 시작했다.
“뭐야뭐야, 두 사람?”
“부부 스트리머 탄생, 뭐 그런 거야?”
“애는 몇 명까지 낳을 생각이야? 나는 개인적으로 두 명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해. 아들 하나, 딸 하나. 이렇게!”
누가 트위팟 스트리머들 아니랄까 봐 선 넘는 속도도 장난이 아니다.
그런 사이도 아닌데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 아주 적절치 못…….
“저도 두 명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어머어머.”
“안 되겠다. 우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줘야겠네.”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농담들이 오가는 술자리.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새벽에 다다랐다.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음에도 그들은 나를 배려해 주며 최대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
나 역시 그들에게 고마워하면서 그 자리를 최대한 편하게 즐겼다.
동수 형의 말대로 내가 폰을 부여잡고 고민한다고 해도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없었다.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논란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어우, 죽겠다.”
나는 술자리가 끝나자마자 동수 형을 데리고 숙소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샤라웃이 어눌한 필체로 써 둔 쪽지가 한 장 남아 있었다.
[헤이, 나 오늘도 안 들어간다. 한국 재미있는 나라야.]……이 녀석이 플레이보이인 건 나랑 딱히 상관없는 일.
어제도 안 들어왔으니 고민도 하지 말자.
그렇게 나는 술 취한 동수 형을 침대에 눕힌 다음, 가볍게 기지개를 켜면서 침대에 누웠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던 하루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루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누워서 생각해 보니 나쁜 하루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동안 가슴속에 묵혀 두었던 감정들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는 것.
예전처럼 혹여나 들키면 어떻게 할까, 이런 고민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 차라리 이런 게 좋은 거다.
나는 천천히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갑자기 오늘 마셨던 술기운들이 한 번에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기나긴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3.
수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또 새로운 하루가 찾아왔다.
나는 때늦게 찾아온 숙취를 느끼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벌써 오전 11시.
주위를 둘러보니 숙소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원래라면 나랑 같이 자고 있을 동수 형의 모습은 이미 없었다.
……뭐야, 먼저 일어나셨나?
내가 동수 형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폰을 들어 보자 부재중 전화가 무려 17개나 와 있었다.
대부분의 전화가 성재 씨로부터 온 전화였다.
맞다. 오늘 아침에 인터뷰하기로 했었는데?
“여보세요. 성재 씨?”
급히 전화를 걸자, 곧바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전화 너머로 상당히 다급해진 성재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식 씨? 이제 일어나신 겁니까?
“아, 예.”
-동수로부터 어제 술 많이 드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도 평소보다 많이 늦게 일어나셨네요.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급히 준비해서…….”
-아,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인터넷 좀 확인해 보시겠어요?
“인터넷이요?”
-현재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십니다. 빨리 확인해 보세요.
뭐라고?
그 말에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로 접속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을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내가 잠든 사이에.
모든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