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88)
29. Flex (3)
5.
“저야 거부할 이유가 없죠.”
-어때, 형 계획이? 나쁘지 않지?
“네. 그런데 계획에 동참할 사람들이 있을까요?”
-너랑 나만 있으면 사람들은 알아서 모일 거야. 형 인맥 알잖아? 아마 꽤 많은 스트리머가 호응할 것 같은데.
동수 형이 나에게 야심차게 말해 준 계획의 기본 골자는 이러했다.
이번에 열리는 한중 플랫폼 대전의 스케일은 엄청나게 커졌다.
2개국으로 예정되어 있던 참가국이 4개국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이 말도 안 되는 대진표가 짜였다는 것부터가 놀랍다.
동수 형은 이번 동북아 4개국 플랫폼 대전을 이용해서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우승 상금 전액을 기부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5명이서 팀을 이뤄서 나가는 건데, 2,000만 원이 남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러니까 생각을 물어보자는 거지. 의외로 가담할 사람 많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옛날 PC 시절이랑, 지금이랑 인터넷 방송 환경이 많이 달라졌잖아?
“그렇긴 하죠.”
옛날에는 케이블이나 지상파 방송들에 비해서, 인터넷을 주 매체로 삼는 방송들은 대부분 마이너 쪽에 속하고는 했다.
하지만 요새는 그렇지 않다.
유명한 스트리머들 중에서는 케이블 방송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몇몇은 정말 성공을 거둬서 공중파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인플루언서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은 본인의 영역을 넓히길 원한다.
동수 형은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환원한다는 취지로 모여서 국가 대항전하면 진짜 느낌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럼 일단 의견이나 모아 보죠. 게다가 아직 플랫폼 대전에 참가할 스트리머들도 안 정해졌잖아요. 그리고 옆 동네 플랫폼도 있는데.”
-걱정 마. 내가 기발한 계획 세워 뒀으니까. 아무튼 형이 계획 수립하면 동참할 거지?
“저야 좋죠.”
미담은 쌓으면 쌓을수록 좋은 것.
동수 형이 저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내가 굳이 초를 칠 이유가 없었다.
내 대답을 들은 동수 형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슬쩍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찬식아, 너 오늘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 홍보 모델 계약 맺고 왔다면서?
이것도 성재 씨한테 들었나 본데.
동수 형은 살짝 텐션이 올라간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계약 조건 어땠냐?
이걸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반응을 보아하니 성재 씨는 동수 형에게 내 계약 조건 말 안 해 준 것 같은데.
내가 잠시 대답을 미루자, 동수 형은 혼자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래, 대충 알겠다.
뭘 대충 아시는데요.
-야, 형은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러먹었는데. 당연히 너랑 조건 차이 나는 게 맞지. 상심하지 마. 너도 언젠가는…….
솔직하게 말해 버리면 상처받으려나.
나를 위로해 주는 동수 형의 목소리가 왜 그리 웃기던지.
나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예, 형.”
-오늘 방송 몇 시냐?
“오후 7시부터 할 것 같습니다.”
-컨텐츠는?
“1부는 다크 스피릿, 2부는 리그 오브 스톰요.”
그 말에 동수 형은 거의 반사적으로 나에게 은근슬쩍 말했다.
-2부 듀오각?
“형.”
-왜?
“저 지금 리그 오브 스톰 챌린저 찍었는데요.”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고요. 형도 빨리 방송 켜셔야죠. 저 방송 켜면 좀 힘드실 텐데.”
내가 슬쩍 성질을 건드려 주자, 동수 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가끔 보면 정말 귀엽다니까.
동수 형은 그렇게 힘없이 전화를 끊었고, 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스마트 폰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잠을 잤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계는 벌써 오후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하품을 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미리 방송 세팅은 해 둬야겠다.
오늘 1부 방송은 지난번에 했던 [다크 스피릿>.
여전히 트위팟에서 가장 핫한 게임 중 하나며, 커뮤니티를 확인해 보니 외국까지 빠르게 번져 가고 있다고 들었다.
높은 난이도와 화려한 스킬들까지.
잘 만든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다크 스피릿>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리빙 데드 2> 역시 기대작이었던 만큼 순항 중이었지만, 언제나 언더독의 반란은 주목받기 마련이다.게다가 [시아>의 존재는 기존 [가이아 온라인> 플레이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나는 캡슐 속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모듈을 확인했다.
트위팟 스트리머 모듈을 업데이트해 주고, 다크 스피릿의 변동 상황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렇게 세심하게 확인하는 까닭은, 오늘 합방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합방 게스트는 나영이.
근래에 [다크 스피릿>에 빠져 있다고 들었는데, 에피소드 1도 영 클리어하기 힘들다고 들었다.
오늘은 내가 플레이하는 것이 주가 아닌, 내가 나영이를 ‘훈수’ 두는 것이 주 컨텐츠가 될 예정이다.
그렇게 1부가 끝나고 나면 리그 오브 스톰으로 건너가 가볍게 솔랭 몇 판을 돌려 주고 끝낼 생각이었다.
딱 적당한 스케줄.
나영이는 아마 지금 방송 중일 테니, 먼저 접속해서 방송을 켜 두면 알아서 연락이 올 것 같았다.
나는 스트리머 모듈을 이용해서 오늘의 방송 제목을 설정했다.
오늘의 방송 제목은.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ㅋㅋ
……로 정했다.
누가 봐도 훈수충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제목.
그 이후로 몇 가지 세부 사항을 조절한 다음, 시간에 맞춰서 방송을 켰다.
오후 7시라면 슬슬 집에 들어와서 여가 시간을 즐기는 시간.
내가 방송을 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트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군대 내무반에서 보고 있습니다. 형! 사람 없는 지금 병장 김호창 파이팅!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ㅋㅋㅋ-군-.
-샤하.
-샤하.
-오늘 나영좌 도와주러 왔음?
-빨리 훈수 두러가라ㅋㅋ나영좌 에피1에서 벌써 42번 죽었다
언제나 화끈한 채팅들.
나는 채팅을 바라보면서 슬쩍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방송 시작한다, 악질 새끼들아. 트게더에 사전에 공지했던 대로 1부 방송은 나영이랑 합방이고, 2부 방송은 LOS다. 그렇게 알고 있고, 나영이한테 나 왔다고 파발 넣어 줄 사람?”
오늘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6.
나영이가 내 파티에 합류하게 된 건 방송을 시작한지 정확히 14분이 지나고 나서였다.
내 초대를 받아들인 나영이는 상당히 화가 나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입술을 삐쭉거리고 있고, 고운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현재 나영이의 시청자 숫자는 1만 7,000명.
원래는 2만 5,000명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나영이의 발암성 플레이로 인해 8,000명이 이탈한 상태라고 한다.
나는 나영이를 향해서 슬쩍 인사를 건넸다.
“왜 시작부터 그렇게 뿔났어?”
그러자 나영이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아니, 게임을 깰 수 있게 만들어야지. 게임 못 깨게 만들어 뒀다니까? 무슨 잡몹 하나 잡다가 자꾸 죽어.”
리그 오브 스톰을 할 때 이미 나영이의 피지컬은 확인했었다.
평균 이하의 피지컬.
그렇다고 게임 지능이 높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러나 훌륭한 선생님과 함께라면 못 할 것도 없는 법이다.
“내가 도와주러 왔다.”
“솔직히 찬식이 너도 힘들지 않을까? 진짜 어렵더라고.”
“……음.”
요새 악튜브 안 챙겨 보는구나…….
좀 속상하네.
나영이는 나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언니들한테 물어봐도, 언니들도 힘들다고 하더라고.”
나영이가 말하는 ‘언니들’이란, 유선 누나와 세린 누나를 뜻한다.
지난번 VR 스타 이후로 셋이 부쩍이나 친해졌었고, 그 이후로도 자주 연락하고 지낸다고 들었다.
음, 그런데 그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던가?
솔직히 개인적으로 난이도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ㄹㅇ루 나영좌 게임 존나 못함.
-눈 정화하러 왔습니다.
-제 눈을 돌려주실 거죠 선생님?
-저쪽 방에서 난민으로 건너왔습니다.
-우리 시아 인중 딱 대^^ 너 때문에 나영좌 씹크 혐피릿 시작했어ㅎㅎ
채팅창의 민심을 보아하니 나영이가 정말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 줬던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빨리 같이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자.
오늘 컨텐츠의 진행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지난번에 내가 일 대 일 컨텐츠를 진행했던 [영령> 시스템을 이용하여, 나영이의 이야기에 참여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먼저 시범으로 몬스터들을 잡는 걸 보여 주면 끝.
오늘을 위해서 일부러 예습까지 해 뒀다.
에피소드 1만 진행할 예정이었기에 살펴볼 몬스터의 패턴도 별거 없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니, 참 이해하기 힘들었다.
“게임 시작해 봐. 내가 영령으로 따라갈게.”
“……후.”
“어디까지 진행했어.”
“……중반부 정도?”
응?
“너 오늘 아침에 켜지 않았어?”
“응.”
즉, 8시간 동안 에피소드 1의 진행률이 50%라는 소리.
에피소드 1의 클리어 타임이 평균 4시간이라는 분석 결과와 비교해 보자면 처참한 진행 속도였다.
나영이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몇 번 더 하다가 안 되면 그냥 오늘 쉬러 갈게.”
“야. 너도 할 수 있어.”
-야너두ON.
-ㅋㅋㅋㅋ자신만만한 거 봐.
-스포)아니, 아…… 아니 진짜. 어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행세계의나’ 님께서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S…… t…… a…… y]도대체 어느 정도기에 저렇게 다들 학을 떼는 건지.
나영이는 내 말에 감동을 먹은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당신의 파티원 ‘개나영’이 당신을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영령이 되어 함께하시겠습니까?]다른 사람의 게임에 참여할 때 나오는 메시지창인 듯싶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 눈앞의 풍경이 빠른 속도로 달라졌다.
[[다크 스피릿 ? 제1장 : 어둠속의 횃불> – ‘개나영’의 이야기]……아이디는 왜 또 개나영이야.
잠깐 동안의 배경 전환 후, 내 눈앞에는 모닥불, 노인, 그리고 나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닥불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은 내 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흘흘, 귀인이 오셨군 그래. 세상을 호령한 영웅의 혼이라…… 자네, 실력 대신 인복이 있었던 모양일세. 이 이야기에도 희망이 아직 남아 있었군.”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있던 대사인가?
그러나 나영이가 눈을 둥그렇게 뜨는 걸 봐서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저 할아버지가 저렇게 말하는 건 처음 봐.”
“그래?”
놀라워하는 건 나영이뿐만이 아니었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영령으로 소환되면 저런 멘트 나오나?
-절대 아니던데.
-아까 트롤끼리 같이 하는 거 있었는데, 거기서는 저 할아버지가 트롤 영령 보자마자 온몸을 부르르 떨더라ㅇㅇ
-시이라서 저렇게 말하는 건가 봐.
-‘시아’가 그저 ‘시아’했을 뿐.
아무래도 소환된 영령마다 다른 식으로 반응을 하는 모양인데?
나 역시 [다크 스피릿>의 에피소드를 플레이하지는 않았지만, [시아>를 잡으면서 얻은 칭호들이 존재했다.
거기에 내가 들고 있는 [망령이 깃든 검>으로 인해서 이런 특수한 이스터 에그가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볍게 검을 휘두르면서 몸을 푼 다음, 나영이에게 말했다.
“바로 진행하자.”
“응!”
내가 합류한 덕분에 힘이 생긴 걸까?
나영이가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앞으로 향해 나아갔다.
내가 나영이를 따라서 [모닥불 할아버지>의 옆을 지나갈 때쯤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를 조심하게. 이 세상의 희망을 잠재우는 존재일세. 부디, 그녀에게 물들지 말게나.”
……도대체 뭔 짓을 하면 저 할아버지가 저렇게 싫어하는 거야?
사람이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다고.
그러나 10분 후.
나는 그때의 그 생각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나영아?”
“게임 쓰레기 같잖아. 갈비지 게임이라니까? 어우, 씨이이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