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95)
32. 한 번 빌런은 영원한 빌런 (1)
1.
세상에는 꼭 착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동수 형처럼 좋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그에 못지않은 나쁜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나 같은 사람들?
“꺼어억.”
나는 가볍게 트림을 내뱉어 주면서 폰으로 트위팟을 켰다.
성신이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오, 게임 하고 있네.”
“형, 진짜 괜찮을까요?”
“어, 괜찮아. 블레이드? 얘 솔랭에서 맞라인으로 몇 번 만난 적 있거든.”
유니콘 소속의 탑 라이너 블레이드.
내가 지금 한국 서버 7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당연히 게임을 돌리면 프로게이머들을 많이 만난다.
블레이드 역시 몇 번 만났던 프로게이머 중 하나였다.
실력은…… 음,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내가 그 게임에서 막 나가더라도 나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어.”
“정말요?”
“당연하지. 내가 원래 그런 놈인데.”
확고하게 구축된 빌런의 이미지.
사실, 이 빌런 컨셉은 많은 상황에서 나에게 도움을 줄 때가 있다.
도의적으로 문제만 되지 않는다면, 일정 수준의 나쁜 짓은 오히려 내 방송을 살려 준다.
다들 내가 어떤 방송을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프로게이머들을 상대로 놀리면서 플레이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저놈이 뭐 그렇지’라는 식의 반응으로 그냥 저냥 넘어가고는 했다.
내 솔랭 방송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고는 했으니, 프로게이머 하나 골려 주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얘를 왜 그렇게 싫어해?”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저는 처음에 진짜 열심히 배우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제가 그분이랑 상대팀에 걸린 적이 있었어요.”
소속팀의 프로게이머를 상대팀으로 만나는 경우는 꽤 자주 있다.
솔랭은 솔랭이니까.
그런 경기는 대부분 분위기가 재미있게 흘러가는 법이다.
일부러 갱을 오는 경우도 있고, 평범한 게임들과는 살짝 다른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래서 그냥 재미있는 사건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성신이의 말에 다소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마 블레이드 님이 방송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상대팀으로 가서, 갱을 몇 번 갔거든요? 블레이드 님이 다른 라이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갱을 잘 당해 주셔서…….”
“어, 나도 알아.”
“그런데 그 방송 이후로 숙소에서 저 만나실 때마다 인상을 찡그리시더라고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숙소에서 좀 많이 힘들더라고요.”
“뭔 놈이 그렇게 치졸해?”
“사실 그분이 대표님이랑 엄청 친하시거든요. 그래서 겉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해요.”
“대표님이 좀 무서운가 보다?”
“……예. 연습생들을 그렇게 좋아하시지는 않아요. 가끔은 너희들한테 주는 돈도 아깝다고…….”
나는 진혁이랑 가끔 치킨을 시켜 두고 리그 오브 스톰 대회를 보는 편이다.
지난번 멸망전을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된 동현이 같은 애들도 있거니와, 프로 리그가 은근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니콘이라는 팀이 지닌 특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탑 라이너가 약한 팀.
상대적으로 강한 다른 라인에 비해, 탑 라인이 유난히 부실하다.
지난 시즌까지는 괜찮았다고 하지만, 이번 시즌부터는 무너지는 경우가 상당했다.
성신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대표 놈이 어지간히 쓰레기인 모양이다.
뭐, 성신이가 거짓말을 할 경우의 수도 있다지만, 굳이 성신이가 나에게 거짓말을 칠까.
저렇게 순수하고 착한 놈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성신이의 등을 몇 번 두드려줬다.
“그래서 이렇게 귀엽게 복수하고 싶은 거야?”
그러자 성신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놈.
나였다면 좀 다른 방식으로 복수를 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이래서 사람이 천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충 상황을 인지했으니, 어디 한번 몸을 움직여 볼까.
“좋아.”
나는 폰을 내려놓은 다음, 가볍게 기지개를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주를 조금 마시기는 했지만 게임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성신아.”
“예, 형.”
“네가 선택해. 형이 방송 켜고 게임 할까, 안 켜고 게임할까? 딱 말해.”
그러자 성신이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방송 켜고 해야겠다. 나도 용돈은 좀 벌어야지?”
리그 오브 스톰의 시청자들은 흔히 [롯크리트>라고 불린다.
다른 게임에 비해서 악성 시청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한다.
그만큼 리그 오브 스톰이 한국에서 사랑받는 게임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악성 시청자란 무엇인가.
내 코어 시청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악질단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내가 리그 오브 스톰을 플레이할 때마다 악질단들은 ‘아, 또 롯하네’, ‘지긋지긋하다’라고 하면서 계속 방송을 본다.
거기에 다른 방송의 시청자들까지 유입이 되니, 당연히 시청자 숫자가 방어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싫다고 하지만…… 어쩌면 속으로 가장 원하는 게임이 리그 오브 스톰인 게 아닐까?
아무튼.
나는 성신이에게 씨익 웃음을 지어 보여 준 다음, 곧바로 캡슐에 접속해서 방송을 켰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방송 시작에 놀란 악질단들이 헐레벌떡 내 방송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뭐야.
-오이오이! 우리 버리지 않은 거냐구! 쥐애애애앤장! 믿고 있었다구!
-님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간다면서요ㅋㅋ
-시아 특)방송 안 한다고 한 날에 방송 켜면 무조건 리그 오브 스톰함ㅋㅋ.
-ㄹㅇㅋㅋ.
-리그 오브 스톰도 좋아! 형 오늘 팬티 색깔만 알려 줘!
아니, 방송 켜자마자 오늘 컨텐츠를 눈치챈 미친놈들은 뭐야?
나는 채팅창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음을 지은 다음, 슬쩍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내 팬티 색깔? 나 오늘 팬티 안 입었다.”
-ㅗㅜㅑㅗㅜㅑ
-도를 넘은 인터넷 방송ㄷㄷ
-ㅅㄱ풍기문란으로 신고함.
-역시, 캡슐은 알몸으로 들어가야 제 맛이지ㅋㅋ.
……알몸은 아닌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방송을 켠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다들 알지? 갑자기 리그 오브 스톰이 마려워서 게임 켰다. 솔랭 좀 돌리다가 끌 거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좋아.
기분 좋게 게임이나 한 판 돌려 볼까?
2.
리그 오브 스톰이라는 게임의 특성상 순위가 올라갈수록 누군가를 저격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나는 ‘그 친구’의 게임이 끝날 때까지 시청자들이랑 놀고 있다가, ‘그 친구’와 함께 게임을 돌렸다.
내가 선호하는 포지션 순위 1위는 탑.
서로 같은 라인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상대팀으로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리그 오브 스톰 마려웠어, 쟈기?
-오늘 밤 뭐 하고 보내야 하나 고민 많았는데 우리 쟈기 덕분에 오늘 밤도 따뜻하겠다.
-ㅎㅎ오늘도 인성질 해 줄 거지?
-프로게이머들 벌써부터 부들거리는 거 눈앞에 보이누ㅋㅋ
‘시아의소중한배렛나루’ 님께서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미튜브 보고 유입된 뉴비입니다! 트위팟으로는 처음 보는데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우리악 파이팅!]-닉 ㅆㅃㅋㅋㅋㅋ.
-닉 악질.
-닉부터 바꾸고 후원해라 ^^ㅣ발롬아!
-아ㅋㅋ 유입 컨셉 역겹네.
-ㄹㅇㅋㅋ
리그 오브 스톰을 플레이하면 좋은 게 바로 저런 부분이다.
내가 딱히 입을 털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후원을 하면서 아주 잘들 논다.
그냥 나는 몇몇 채팅이나 후원을 골라 읽어주면서 호응을 이끌어 내면 된다.
가끔씩 채팅들이 역겹다는 것 빼고는 참 최고의 직장이었다.
[매칭이 잡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시청자들과 노닥거린 지 한 7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게임이 잡혔고, 나는 곧바로 경기를 수락했다.
그러자 단조로운 기본 배경이 사라졌고, 월드 챔피언십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대기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트로피들로 가득한 대기실.
아름다운 동상들과, 역대 우승자들의 석상이 자리 잡고 있는 대기실의 모습.
음, 최근에 패치된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 어! 찬식이 형!”
“동현이니?”
“예, 형. 잘 지내셨죠?”
대기실로 입장하자 이번 판을 함께할 4명의 동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아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지난번에 나와 멸망전을 우승했던 동현이.
강팀으로 이적해서 주전 정글러로 열심히 활약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캬ㅋㅋ.
-팀원 매칭 좋고.
-이 정도면 거의 매수한 팀원 아님?
-나머지 3명도 프로네ㅇㅇ
-속보)적 팀도 프로게이머 5명.
-레전드 매치ㄷㄷ
요새는 프로게이머들이 방송을 하는 게 거의 당연하다시피 되었다.
선수로서는 부수입도 챙겨 갈 수 있고, 이미지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굳이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덕분에 다른 방송도 보고 있던 악질단 몇몇이 정보를 건네줬고, 나는 그 채팅창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와, 시아 님이랑 게임 잡히는 건 처음이네요. 안녕하세요?”
“오, 저 시아 님 방송 많이 보는데.”
“시아 님은 프로게이머 하실 생각 없으세요? 저희 팀 오면 진짜 롯드컵 우승각인데.”
나머지 프로게이머들도 나에게 호의를 표하면서 다가왔다.
음.
나에게 인성질을 당하지 않은 프로게이머들인 모양이다.
나는 그들을 향해서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우리들은 빠르게 영웅을 선택했다.
순식간에 밴 픽 과정이 지나간다.
적들의 밴 픽을 바라보면서 나는 동현이에게 슬쩍 말했다.
“동현아.”
“예, 형.”
“이번 판은 탑 갱 절대 오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동현이와 나는 이미 트위팟 멸망전을 통해서 합을 맞췄던 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녀석은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동현이는 상대방의 아이디를 슬쩍 보더니, 살짝 난색을 표하면서 대답했다.
“괜찮겠어요, 형? 그래도 상대방 유니콘 탑 라이너인데…….”
“나 못 믿냐?”
딱 한마디였다.
그 말에 동현이는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시야라도 잡아 드릴게요.”
“백정이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로게이머 정글러를 백정으로 부르는 당신은 도대체…….
-이분 누구인가요? 프로게이머들한테 저렇게 막말해도 되나요?
-ㅇㅇㅇ
-우리악이 저렇게 말하는 거 존나 얌전한 거임.
-‘그 사건’ 전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더한 망나니였는데ㅋㅋ 뉴비 귀엽누.
갱 오지 않는 대신 시야만 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지.
애초에 리그 오브 스톰은 팀 게임이다.
아무리 내가 피지컬이 좋고, 판단이 빨라도 적 정글의 개입은 신경 써 줘야 한다.
나는 동현이랑 간단한 소통을 끝낸 다음 여유롭게 적 탑 라이너의 영웅을 확인했다.
[고대 문명의 학살자>, 일명 악어.일방적인 딜 교환을 자랑하며, 기절 스킬을 통한 능동적인 갱 호응까지.
주도권을 잡기만 하면 적을 압도해 버리는 영웅이기도 하다.
초반 구간에는 사실상 깡패라고 해도 좋은 픽.
게다가 상대방의 정글러는 탑갱이 유리한 [공허의 벌레 여왕>을 선택했다.
누가 보더라도 초반부터 탑을 강력하게 압박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선택이었다.
-살벌하네.
-이번 판 우리악 최소 3데스 예약이요.
-아무리 시아라도 저 조합 상대로 버티는 건 힘들지ㅇㅇ.
‘악성롯크리트’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킬당 1만 원, 데스당 ?5,000원, 어시당 3,000원 미션 ㄱㄱ? 미션 금액이 0원 미만으로 내려가면 구독권 10개 뿌리기.]내가 여유로운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하려고 할 때, 아니나 다를까 꾸준히 미션을 걸어 주는 시청자가 등장했다.
저 친구는 매번 나한테 돈 빨리면서 꾸준히 미션을 걸어 주더라.
고마운 시청자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이고, 블랙 말랑카우 사장님…… 또 오셨습니까? 그 미션, 바로 받아들이죠.”
쏠쏠한 보상도 걸렸겠다.
남은 건 야무지게 먹어 치우는 거지.
성신이의 복수와, 짭짤한 보상까지.
“형, 진짜 그 영웅으로 괜찮겠어요? 그거 과학…….”
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다시 한번 동현이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가볍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주면서 대답했다.
“괜찮아. 나 문과형 인재야.”
[방랑자>.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이자, 피지컬로 시작해서 피지컬로 끝나는 영웅.
그와 동시에 수많은 유저들로부터 혐오를 받는 영웅이기도 했다.
[경기가 시작됩니다!]웅장한 음악과 함께, 꽤 많은 것들이 걸린 게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