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is Too Good at Broadcasting RAW novel - Chapter (97)
32. 한 번 빌런은 영원한 빌런 (3)
5.
블레이드를 상대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 준 뒤, 나는 일부러 몇 판을 더 플레이했다.
그래도 대외적으로는 저격을 했다는 게 드러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아무튼.
동현이로부터도 쓸 만한 정보를 얻었고, 적당히 수금을 끝낸 나는 기분 좋게 방송을 종료했다.
“고생하셨어요, 형. 진짜 괜찮을까요?”
“뭐가 그렇게 걱정되는데.”
“아니…… 형 인성 논란 터지면 막 해명도 하셔야 하고.”
캡슐에서 나온 나를 가장 먼저 걱정해 준 건 성신이었다.
쓸 데 없는 걱정이 참 많다니까.
나는 씨익 웃음을 지어 준 다음, 슬쩍 성신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변명 안 해도 된다니까?”
“진짜예요?”
“너 형 스타일 알잖아. 형 시청자들한테 그렇게 당해 놓고서도 몰라? 아, 그리고…… 아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굳이 지금의 성신이가 알 필요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동현이가 나에게 해 줬던 이야기는 성신이랑 꽤 연관이 되어 있었다.
맞다.
이 이야기를 동수 형한테도 전달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유니콘의 이태호 감독이랑 많이 친하다고 했었으니까…….
“잠시만, 형 전화 좀 할게.”
“예.”
나는 폰을 챙긴 다음, 잠시 집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동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간의 연결음이 이어진 후, 동수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송 잘 봤다. 걔 좀 더 놀려 주지 그랬냐?
걔?
아, 그 친구 말하는구나.
“블레이드요?”
-그래, 블레이드. 그 쉐끼 생각보다 더 건방진 놈이거든. 더 혼내 줘도 좋았을 텐데.
바로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뭔가 들은 게 있는 모양이다.
아마 이태호 감독으로부터 뭔가를 들은 모양인데, 나는 슬쩍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물어보려는 건데.”
-형 내일 게스트 방송이 태호야.
“진짜 그 소문이 맞아요?”
-어, 오늘부로 계약 해지되었는데…… 딱히 태호는 별말 안 하고 있기는 하더라. 안 그래도 곧 태호 만나서 술 마시고 우리 집에서 재울 건데.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성신이를 데리고 자도 된다고 허락해 줬었는데 말이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건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동수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슬쩍 물었다.
“전 그냥 성신이 복수해 주려고 한 건데…….”
-그래서 네가 운이 좋은 놈이라는 거야. 네가 뭘 해도 타이밍이 그렇게 만들어 줄 거라니까?
“형.”
-너 옛날부터 그랬어. 아무튼 오늘 방송 잘했다. 지금 당장은 욕을 먹을 것 같긴 하다만.
안 그래도 이미 유니콘의 팬들이 나에 대한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그냥 일방적으로 죄 없는 프로게이머를 모욕하고 비방한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현이로부터 들은 이야기.
그 내용은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었다.
이태호 감독이 경질될 것이고, 유니콘 내부에 상당한 내분이 일어났다는 말.
월드 챔피언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감독을 자른다는 건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할 내용도 아니었다.
동수 형으로부터 충분한 대답을 들은 후,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대답했다.
“대충 알겠어요, 형.”
-굳이 이 사건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고 다니지는 마. 태호도 딱히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고. 정 궁금하면 내일 우리 집 놀러 와서 태호랑 같이 방송할래? 야, 이것도 괜찮겠다.
“어떤 거요?”
-태호가 네 플레이 직관하면서 직접 피드백해 주는 컨텐츠. 이런 거 되게 괜찮을걸? 조만간 한중 스트리머 전도 홍보할 겸…… 캬, 어떠냐.
오.
확실히 이런 걸 보면 동수 형의 방송 짬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주어진 조건들을 조합해서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능력만큼은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
진짜 내가 사람 복은 있었다.
동수 형의 말대로 확실히 그림이 그려진다.
이태호 감독은 이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확실한 명장으로 분류되는 사람.
게다가 스트리머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사람 중 하나다.
평소에도 틈틈이 동수 형의 방송에 출연해서 본인 선수들에 대해 자랑을 하고는 했었으니,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꽤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커뮤니티에서는 나와 프로게이머들의 실력을 비교하는 논쟁글이 틈틈이 업로드 될 정도였으니까.
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내 플레이라…….
악튜브 각도 쏠쏠하게 잡을 수 있겠군.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다음, 동수 형은 전화를 끊기 전에 나에게 말했다.
-맞다. 그리고 우리 [가이아 온라인> 클래식 광고 찍는 날 있잖아?
“예, 형.”
-그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일 거거든? [가이아 온라인> 때 유명했던 사람들도 광고 계약 맺었다 하더라. 우리처럼 본격적인 계약 말고 출연료 받는다는데…… 아무튼 그때 추억팔이도 할 겸, 끝나고 다들 모여서 술자리도 가질 예정이야.
……솔직히 그건 좀 무서운데.
내가 워낙 그때 만들어 둔 적이 많아서 말이지.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나에 대한 원한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술 마시다가 소주병으로 뚝배기 안 깨지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이후로 동수 형이 제시한 달콤한 당근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네 계정으로 방송하자. 어때?
“그럼 당연히 가죠.”
추억팔이는 언제나 흥한다.
[가이아 온라인>을 즐겼던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상황.옛날의 랭커들과 같이 추억을 파는 방송이라…….
이건 못해도 중박 이상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네. 그래, 잘 쉬고. 내일 연락해라.
띠롱.
그 말을 끝으로 동수 형과의 전화가 끝났다.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조용히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진혁이와 성신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해요?”
“음…… 야, 성신아. 너희 감독님 오늘부로 계약 해지하셨다는데?”
그러자 성신이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계약 해지가 무슨…… 경질이요?”
“너는 모르고 있었나 보네.”
그래, 하루 종일 게임 연습만 하던 놈이 뭘 알겠냐.
나는 성신이의 등을 몇 번 두드린 다음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게임해서 배고픈데. 족발이나 더 시켜 먹을까? 진혁아, 어때? 소주도 같이.”
시간이 늦었지만 성신이도 우리 집에서 자니까 더 먹여 줘야지.
내 말에 진혁이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주문했지.”
“역시, 내 동생이다. 성신아,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말고 편히 먹고 놀자.”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내 말에 성신이가 웃음을 지었고, 얼마 가지 않아 족발이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정신없이 음식을 먹었고, 다 먹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말이다.
6.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나에 대한 글들을 살펴보고는 한다.
물론 내 컨셉상 욕하는 글들을 상당히 많이 보는 편이다.
그러나 이미 [가이아 온라인> 배신 사건을 통해서 꽤나 단련이 된 상황이라, 그런 관심조차 과분하게 여겼었다.
어제 내가 블레이드라는 프로게이머를 대놓고 욕한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이 가득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사건은 내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제목 : ㅋㅋㅋ이 정도면 우리악 진짜 뭔가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 소름 돋네>내용 : 우리악이 나쁜 놈들만 건드린다는 거 이 정도면 증명된 듯 ㅋㅋ나도 어제 우리악이 블레이드한테 인성질 할 때 선 넘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게 뭐냐ㅋㅋ 알고 보니까 예절교육해 줬던 거네ㄷㄷ우리악 선구안 인정해 줘야지.
-생각해 보면 시아가 아무 이유 없이 조졌던 상대방이 있었냐?ㅋㅋ딱히 없던 것 같긴 한데.
└무고한 일본인들 상대로 옛날 일 꺼내면서 조롱한 거 모름? 그 새끼 그냥 인간쓰레기라니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ㅋㅋ.
└사무라이 워즈? 야스쿠니 신사 맵 있는 게임 하는 놈들은 욕 처먹어도 쌈.
└ㄹㅇㅋㅋ
-아직 밝혀진 것도 없는데 너무 섣부르게 판단한 게 아닐까싶음…… 스트리머라면 나름 공인인데, 아직 사실 여부도 확인 안 된 사건에…….
└어른이 되세요, 제발.
└어른이라면 스스로 판단하는 거지 아ㅋㅋ
이런 게시물을 비롯한 다양한 게시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었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유니콘 측에서 이태호 감독의 계약 해지를 공식으로 발표하고 곧 그 이유에 대해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성적 부진과 선수단 충돌로 인한 사실상의 경질.
이태호 감독과 동수 형의 합방으로 시작되었던 그 사건의 전말은 아주 천천히 드러나고 있었다.
트위팟으로부터 퍼져 나간 불씨는 아주 빠른 속도로 번져 갔다.
사실상 리그 오브 스톰 월드 챔피언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의 갑작스러운 사건.
“와.”
나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정보들을 살펴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태호 감독이 말주변이 딱히 없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걸까?
화가 많이 났는지, 선수들끼리 통화를 했던 이야기도 슬쩍 말을 흘렸다고 한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건 블레이드 선수와의 전화 통화.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겠지만, 이태호 감독의 말을 들어 보니 나 같았어도 화났겠다.
감독에게 어른이 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한 것 같은데…….
음,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성신아.”
“예, 형.”
“너 다른 팀 알아봐야겠다. 형이 도와줄까?”
“헤헤, 괜찮아요.”
성신이는 진혁이가 직접 만들어 준 시리얼을 먹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지금 이곳의 그 누구보다 혼란스러운 게 성신이일 터였다.
나야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성신이는 현재 유니콘 소속의 연습생.
그러나 성신이는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저 갈 곳 있어요!”
“그래?”
“네! 걱정 안 해 주셔도 돼요, 형.”
뭔가 성신이는 자꾸만 챙겨 주고 싶은 스타일이라서 말이지.
뭐, 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성신이었으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나는 폰으로 슬쩍 이런 저런 글을 더 본 다음, 가볍게 기지개를 펴면서 하품을 뱉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진혁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될 놈은 진짜 뭘 해도 되는구나.”
“하늘 같은 형한테 놈이라고 했냐? 뒈지고 싶어?”
“아니…… 형 어제 블레이드한테 쌍욕 할 때만 해도 사고 친 줄 알았단 말이야. 실제로 방송 끝나고 민심도 그랬잖아?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이렇게 된 거란 말이야. 형이 하는 일 대부분이 그렇지 않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혹시, 형 트루먼 쇼의 주인공인 거 아니…… 미안해. 때리지 마.”
쓸데없이 드립이나 치고 있고 말이야.
이 시간에 오늘 방송에서 뭘 할지나 고민하고 있어야지.
나는 진혁이를 째려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숨을 뱉어 냈다.
확실히 내 운이 좋기는 하다.
내 딴에는 아무 생각 없이 벌인 일이, 엄청난 파급을 가져올 때가 대다수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형 어디 가게?”
“운동 가야지. 게임한다고 캡슐에만 누워 있으면 몸에 안 좋다.”
늦게 일어났지만 몸은 챙겨야지.
늘 그렇듯이 운동을 갈 시간이었다.
성신이도 이제 곧 간다고 하니까, 같이 나가면 되겠다.
내가 본인을 쳐다보자 성신이가 웃음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그래야지. 형이 차만 있었어도 너 태워다 주는데.”
“아니에요! 버스 타고도 금방 가요!”
성신이랑 같이 집 밖으로 나온 다음, 미리 준비해 뒀던 봉투를 성신에게 하나 건네주었다.
봉투를 받은 성신이가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예요 형?”
“어, 갈 때 택시비하고 먹고 싶은 것 좀 사 먹고 가라고.”
“아니, 엄마가 용돈 주시는…….”
“형이 주면 그냥 받아.”
동수 형이 항상 나에게 해 주는 말인데, 내가 반대로 하게 될 줄은 몰랐네.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면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성신이를 태워 준 다음에 슬쩍 말했다.
“힘들면 또 연락해. 우리 집이 넓지는 않은데 학생 한 명은 가끔 재워 줄 수 있으니까. 알겠지?”
“……정말 고마워요, 형.”
“그래. 들어가고.”
“나중에 또 연락드릴게요!”
곧 택시가 출발했고, 나는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뭐 한국 프로리그에 몇 번 출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줬던 녀석이니, 팀이 어찌 되든 혼자 살 길 알아서 잘 찾아갈 것이다.
나랑 같이 게임할 때도 매일같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 줬던 녀석이니, 큰 걱정은 없었다.
“흐으음.”
그나저나 당분간 방송을 켜면 다양한 밈이 새로 모습을 드러내겠군.
유니콘에 관한 밈이 벌써부터 동수 형의 채팅방에서 보이던데…….
뭐, 성신이의 부탁을 받아서 블레이드를 놀려 준 것 빼고는 나랑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런 민감한 문제일수록 아무 일 없듯이 내 방송을 해 나가면 될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헬스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 사건이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