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10)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10화. 처음이었어?(10/92)
#10화. 처음이었어?
2024.05.10.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따스한 체온과 함께 탱탱한 피부가 느껴졌다. 꿈이 아니라 현실인 것처럼.
하지만 현실일 리가 없잖아. 내가 에던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을 일은 절대 없으니까.
그렇긴 한데…….
뭐가 이렇게 리얼하지? 조물조물하는 느낌도 그렇고 탄력도 그렇고.
에던은 상체를 탈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몽롱한 가운데서 의도치 않게 그의 가슴과 배에 온 신경을 쏟게 되었다.
“상처가…….”
그동안 얼굴에 상처가 하나도 없어서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피니 팔뚝에도, 완벽히 짜 맞춰 놓은 듯한 복근에도 베인 흉터가 여러 개 있었다.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크고 작게 난 수많은 상처의 흔적들은 그가 오랜 시간 전쟁에서 싸운 전쟁광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아팠겠다. 그래도 예쁜 얼굴에는 상처가 없어서 다행이네.”
혼잣말을 하며 상처를 더듬어 보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에던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에던의 붉은 눈동자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또렷하게 날 바라보는 시선에 순간 잠이 달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현실 감각이 애매하게 돌아오지 않고 있었는데 머리 아래에서 에던의 팔이 움직이는 순간, 나는 고장 난 장난감 스프링이 튕기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꺄아악!”
미쳤다! 꿈이 아니라 진짜였다니. 심지어 나는 에던의 팔베개를 베고 누운 채로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엄청난 소리를 내지르며 나는 지금 여기가 침대 위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몸은 바로 침대 끝에 닿았고 중심을 잃으며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에던이 내게 팔을 뻗었다.
“뭐해.”
시큰둥한 얼굴로 덥석 내 팔을 붙잡은 에던이 침대 쪽으로 휙 끌어당기고, 나는 순식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윽!”
가볍게 잡아당긴 것 같은데 얼굴을 그대로 가슴팍에 부딪혀 버렸다.
얼얼한 감각에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자,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내게 팔베개를 해 주고 있는 에던이 앞에 있었다.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창문과 천장 벽의 몰딩을 보니 내 방은 아니었다.
고성이라 원래부터 화려하진 않았지만 내 방은 나름 작은 노란색 커튼으로 꾸며 놨었는데, 여긴 창에 아무것도 없을뿐더러 장식품은 하나도 없이 그저 침대와 협탁 하나만 놓인 아주 삭막한 공간이었다.
에던의 방인가?
어젯밤에 북부에 갔다가 힐스타인을 보고…… 오로라가 가득 펼쳐져 아름답지만 오싹하기도 한 검은 하늘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떨어지는 걸 봤던 기억까지는 나는데…….
내가, 내가 왜 이 남자랑 같은 침대에 있냐고?
제대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
에던이 팔을 붙잡은 상태로 날 빤히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럴 때마다 정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곤욕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자, 잘 잤어요?”
최대한 침착한 척 눈치 엄청 보며 겨우 내뱉은 말인데 에던이 느른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침밥.”
“네?”
당황함에 재빠르게 대답을 하고 난 후 난 후회했다. 왜 내 이름이 아침밥이 되었는지 먼저 따졌어야 했는데.
에던은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너 어젯밤 일 기억나?”
무슨 일? 우리가 무슨 일이 있었어? 아, 아니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하지만 에던이 말하는 어젯밤의 일이라는 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파악이 안 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잘 기억이…….”
“그래? 그럼 도망가려다가 걸려서 엉엉 울고 평생 내 밑에서 일하기로 했던 것도 기억이 안 나나 보군.”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내가 언제 그랬어. 운 적도 없을뿐더러 평생 밑에서 일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주인님이랑 북부에 갔던 것까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요. 달밤에 체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끌고 가셨잖아요.”
그제야 에던이 피식 웃었다. 무표정일 때는 진짜 너무 얼음장 같아서 무서운데 웃으니까 그나마 좀 살 것 같아서 자주 웃어 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래서 그다음은.”
“그다음은·… 루벤 기사님이랑, 마물이랑·… 힐스타인 기사단장님을 봤고·… 꺅?!”
내가 웅얼웅얼 말을 잇는데 갑자기 에던이 내 허리를 붙잡더니 휙 몸을 돌려 자세를 틀었다.
“무, 무슨·…!”
심장과 얼굴이 터져 나가기 직전이 되어 버렸다.
에던의 양손이 허리를 붙잡고 있었고, 나는 뭘 어떻게 해 볼 새도 없이 자세를 바로 돌려 누운 에던의 배 위로 올라와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서둘러 내려오려고 하자 허리를 감싸 쥔 에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이건…·.”
“떨어지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
“네? 제가 언제요?”
“어젯밤에.”
“기억 안 나는데요!”
민망한 만큼 언성이 높아진 내 말에 에던이 한 손을 놓더니 머리를 쓸어 넘겼다.
“불리하니까 그렇게 나온다고?”
“정말로 기억이 안 나요.”
“기억해 내. 명령이야.”
미친놈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기억을 해!
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에던의 가슴을 짚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본 순간 짜증을 낸 것이 무색하게도 모든 게 기억이 나 버렸다.
‘추워.’
에던은 열이 올라 반쯤 몽롱한 상태인 날 안고 고성으로 들어왔었다. 주변 공기가 조금 따뜻해지고 에던의 품 안이 포근하다고 느껴졌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에던이 날 침대에 내려 주려고 할 때, 내가 그를 꽉 껴안고 말했었다.
‘안아 줘. 떨어지지 마. 추워.’
씨부레! 미쳤어! 거기까지 떠올린 나는 충격에 물들어 싸해진 안색으로 눈을 크게 떴다.
알코올 한 방울 안 마시고 뭔 소리를 지껄인 거냐고.
추웠다. 춥긴 했었다. 내내 따듯한 곳에서 지내고 있다가 그 옷차림으로 갑자기 북부에 갔었으니까. 또 매우 긴장 상태로 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래도 정신 줄을 붙잡았어야지. 왜 그런 소리를 해 버린 거야!
“분명히 말해 두는데 먼저 달라붙고 애원한 건 너야. 지금도 내 가슴에 올린 손은 그대로 있고.”
기억이 났다는 걸 눈치챈 에던이 놀리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으힉! 미안해요!”
나는 가슴에 대고 있던 손을 떼고 화들짝 양팔을 올려 들었다.
맹세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자세도 그렇고, 예쁜 남자를 덮친 변태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당하는 쪽인 듯한 에던은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고, 덮친 쪽인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고개를 숙이다 난 불현듯 또 다른 이상함을 감지했다.
“……내 옷.”
분명 어제 외출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 내 상태가…….
나는 어리둥절하게 에던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눈으로.
“왜.”
에던은 무미건조하게 물었고, 너무 당당한 태도에 조금 당황했다.
“아니…… 옷이…….”
“그게 왜.”
“어제 다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옷을 갈아입힌 거냐고, 라고 직설적으로 묻기가 민망해서 애매한 대화법을 시전하고 있는데 에던이 큰 인심을 썼다는 듯이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됐어. 네가 작아서 금방 갈아입혔으니까.”
“갈아입…… 직접요? 주인님이 직접 갈아입혔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지금 내 알몸을 봤단 소리지? 맞지?!
머릿속에서 별의별 생각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에던이 너무 뻔뻔하고 당당해서 나만 홀로 창피함으로 얼굴이 새빨개지고 있었다.
너무나 수치스럽지만, 에던의 반응을 봐선 강아지 옷 갈아입히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으니 오히려 따지고 들면 나만 변태처럼 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걸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
“미쳤어!”
결국 나는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퍽! 내리치며 소리 질러 버렸다.
“왜 남의 옷을! 막……! 그렇게! 마음대로! 하! 나!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솔직히 무섭기는 해서 숨을 크게 몰아쉰 뒤 겨우겨우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에던은 내가 때린 주먹질에는 타격이 전혀 없었고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귀찮다는 듯 말했다.
“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사과해요!”
“내가 왜.”
“허락도 없이 알몸을 봤잖아요! 아무한테도 보여 준 적 없는데!”
그 말에 순간 에던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뭐야. 처음이었어?”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처음이지, 누가 내 옷을 벗겨 줬겠냐고!
마차에서 굴러떨어져 죽을 뻔했을 때 날 간호해 줬던 제널드랑도 이런 적은 없었다.
“하. 그래?”
에던은 가볍게 조소를 흘렸다.
사과를 하라고 말을 했으니 미안하다는 말까지는 아니어도 좀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일 줄 알았는데, 웃어?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내 태도가 더 마음에 든다는 듯이 에던은 매끄럽게 입술을 끌어올려 보란 듯이 미소 지었다.
조금 즐거운 듯한 얼굴로.
“괜찮아.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네?”
“너도 처음이고, 나도 처음이었으니. 괜찮다고.”
진짜 저 인간 머리 회전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어차피 미치광이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뭐.”
말을 마친 에던은 나를 휙 옆자리로 내려 준 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참고로 난 네 가슴은 아직 안 만졌어.”
“…….”
“넌 만졌지만.”
“…….”
“내 가슴 만진 여자는 네가 처음이니까 그것도 참고하고.”
그…… 그건 실수였는데…….
아직까지 손끝에 가슴의 감촉이 남아 있기도 했고, 처음이라는 말에 가슴의 순정을 빼앗아 버린 기분이 들어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계산이 이게 맞는 건가? 너무 당당해서 따질 수가 없잖아.
나는 씩씩거리면서 에던의 넓은 등만 계속 노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에던이 휙 뒤를 돌아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도 뭐, 아쉬우면 너도 보든지.”
에던이 잘게 웃더니 바지 허리 부분에 슬쩍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주 천천히 바지가 끌려 내려가고 복근에서 이어지는 근육으로 단단히 짜인 장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 있는데.”
싫어,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