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15)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15화. 이상한 쾌감(15/92)
#15화. 이상한 쾌감
2024.05.15.
“하아…….”
불규칙하게 숨을 몰아쉬며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에던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주, 주인…… 읍!”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비켜 달라고 부탁할 새도 없었다.
초점을 잃어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응시한 에던은 그대로 상체를 숙여 내 입술을 집어삼켰다.
“자, 잠깐…… 만…… 읏!”
에던이 내게 미친 듯이 몸을 밀어붙였다. 목과 허리를 끌어안은 힘에 의해 두텁고 단단한 흉부가 내 가슴에 틈 없이 밀착되었다.
자비 없이 짓누르는 그의 무게에 나는 거대한 야생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작은 초식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부드러운, 그러나 상처로 까칠한 입술 사이로 비릿한 피의 맛과 뜨거운 숨이 빠르게 겹쳐 들어왔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에던이 날 흡수하는 것 같은 기분이 휩싸였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오싹하고도 기묘한 감각이었다.
온몸의 피가 빨려 나가는 듯한, 그러나 알 수 없는 기분 좋은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를 훑으며 지나가는 듯한 그런 이상한 느낌.
이대로 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 그 자체로는 굉장한 쾌감이 일어나는 알 수 없는 기분.
‘미쳤어…….’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스킨십으로 인한 치유는 이능력자에게만 쾌감을 주는 게 아니었다.
성녀 후보들도 비슷한 쾌감을 느꼈던 거다. 결국 제가 죽게 되는 줄도 모르고.
발현된 치유력을 멈추려 했지만 마음대로 멈춰지지 않았다.
난 에던을 떨어트리기 위해 그의 어깨와 팔을 아무렇게나 두드려 때렸다.
당연히 에던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막혀 오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에던은 입술은 점점 내려가 목덜미로 옮겨지고, 나는 그 찰나에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손을 아무렇게나 뻗어 바닥을 더듬었다.
아까 분명 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이 근처에 있었어. 제발, 어딨어. 잡혀!
“제발…….”
내가 책을 찾고 있는 사이 에던의 얼굴은 점점 목덜미를 지나 쇄골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에던의 고통이 가라앉는 만큼 내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힘이 빠져나갔다.
‘이젠 진짜 기절할 것 같아!’
시야가 가물가물해지는 찰나, 더듬거리던 내 손에 드디어 책이 잡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책 모서리를 에던의 머리에 내리꽂았다.
퍽! 퍼억!
한 대 맞았을 때 움찔하며 에던의 행동이 멈추긴 했지만, 혹시 몰라서 두 대 때렸다.
에던은 몸에 힘이 빠져 버린 듯 풀썩 내 위로 쓰러졌다.
동시에 나는 발현하고 있던 치유력을 멈췄고, 힘을 강제로 흡수해 가던 에던의 기세도 사그라들었다.
도서관을 채우고 있던 빛이 사라지며 주변의 공기는 재빨리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아, 하아.”
그리고 정말로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절묘하다고 해야 할지.
때마침 포털에서 물약 병을 쥔 루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루벤은 우리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기절한 에던의 밑에 깔려 어깨너머로 고개만 겨우 내밀고 버겁게 숨을 쉬고 있던 나는 루벤에게 개미똥꾸멍처럼 작은 목소리로 요청했다.
“무, 무거워…… 루벤 경 살려 줘요.”
루벤은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에던의 몸을 돌려 날 벗어나게 해 주었다.
구출된 나는 온몸이 붉게 달아오른 상태로 숨을 몰아쉬었고, 루벤은 일단 에던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 후에 나와 에던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아니, 뭡니까…?”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에던이 어린아이처럼 너무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숨을 겨우 진정시키며 그때까지도 꽉 붙들고 있던 책을 바닥 저 멀리 내던졌다.
“약 효과가 이제야 돈 거 같아요.”
“봐서는…… 그런 것 같군요.”
그러나 내 말에 동의하는 루벤의 눈에는 의심이 서려 있었다.
눈동자가 찌그러진 책 모서리로 향했다.
“그런데 책은 왜 저렇게 되었죠?”
“방금 제가 너무 세게 던져서 그런 거 아닐까요?”
내가 생각해도 뻔뻔한 변명이었다.
책 모서리가 찌그러질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에던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이 남자는 에던을 대신해 채찍에 제 얼굴을 내어 줄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기사인데.
“그런데 왜 대공님 밑에 계셨던 겁니까?”
루벤은 차근차근 이 의심스러운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기 위해 나는 뇌를 핑핑 가동해야 했다.
“루벤 경이 가고 주인님이 피를 토했어요. 부축하려고 다가갔는데 눕혀 주려다가 그만.”
“…….”
“지, 진짜예요. 기운이 빠졌는지 쓰러지려는 것 같아서 붙잡아 주려다가 깔린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약 효과가 이렇게 빨리 돈 적은 없었는데.”
뭐야. 나도 몰라. 그런 거. 효과가 있으니까 준 거 아니었어?
나는 되려 루벤에게 되물었다. 이번에는 솔직한 질문이었다.
“원래는 더 늦나요?”
기억을 더듬는 루벤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심할 때는 다섯 병까지 한 번에 마신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가라앉은 적은 처음입니다.”
“……보통은 얼마나 걸리는데요?”
“빠르면 반나절, 늦으면 이틀 정도요.”
“…….”
할 말이 없다. 염병. 이 정도면 황제가 정말로 성녀 물약 짝퉁 보낸 거 아니냐.
황실에서 에던이 이능력의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랬으면 애초에 선심 쓰는 척 물약을 하사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정말로 에던을 생각했다면 킬리언의 미움을 받고 있는 그에게 북부 대공 자리를 주면 안 되었다. 북부 산맥의 무너지지 않는 벽은 마물이 가장 자주 출몰하는 곳이니까.
킬리언의 미운털은 막아 줄 생각은 없고, 그렇다고 에던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어중간한 물약으로 환심이나 산 거 아니냐고. 도와줄 거면 확실하게 도와주던가. 이런 식으로 일을 부려 먹으니까 애가 미치지!
“아무튼……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렇죠?”
“그렇네요.”
내 말에 루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던에게 다가가 재차 그의 상태를 체크했다.
“어…… 어때요? 괜찮아요?”
솔직히 나도 걱정이 되어서 물었다. 너무 세게 때렸나?
내 생애 그 정도로 힘껏 남의 머리를 내리쳐 본 적은 처음이었다.
보통 때의 에던이라면 그런 것 정도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까.
“잠든 것 같군요.”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내게 루벤이 물었다.
“그쪽은 괜찮습니까.”
“저요?”
“네. 대공님 근육이 꽤 무거웠을 텐데.”
“아. 그런 거라면 괜찮…….”
응. 안 괜찮았다.
“아침밥 양!”
말을 하다 말고 나는 머리가 핑글 도는 느낌에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에던에게 치유력을 빼앗겨서인지, 깔린 상태로 실랑이를 한 탓에 몸이 힘들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만 너무 피곤했다.
지난번 북부에 갔을 때 극도의 긴장 상태로 있다가 기절했던 것처럼.
‘그런데 루벤, 왜 다시 아침밥이야. 아까 분명 제대로 이름 불렀었잖아…….’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루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나는 까무룩 눈꺼풀을 감았다.
***
정말로 싫다.
꿈에서 에던이 날 잡아먹겠다고 늑대탈을 쓰고 나타났다.
‘싫어! 살려 줘!’
나는 숨을 곳 하나 없는 드넓은 벌판에서 계속 쫓기고 있었는데, 내 구원자 제널드가 앞에 나타났다.
‘제널드! 도와줘! 늑대가 날 잡아먹으려고 해!’
하지만 다정하기 그지없는 제널드는 왜인지 날 싸늘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왜 그랬어?’
‘무슨 말이야? 제널드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늑대가 지금……!’
‘라티에나. 왜 그랬냐고.’
‘뭐, 뭐가?’
‘어떻게 다른 남자랑 입맞춤을 할 수가 있어?’
실망으로 충격받은 제널드의 얼굴.
‘어? 그,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그리고 그건 입맞춤 따위가 아니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었어.
‘미안해, 제널드. 안 돼! 떠나지 마!’
정말로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나는 뒤돌아서는 제널드를 붙잡기 위해 따라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자 땅이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냈고 나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다가 눈을 떴다.
“으아아악!”
몸을 벌떡 일으켰다.
평소처럼 따스한 햇살이 커튼 사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억울하다 진짜. 죄책감은 왜 내 몫이야. 왜 남을 도와주고도 악몽을 꿔야 하는 거냐고.
제널드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솔직히 어제 에던의 입맞춤은 기분이 좋았다. 그 상황에서 말이다. 진짜 어처구니없게.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치유력을 전달하면서 본능적으로 일어난 감각이다.
아무리 내가 머릿속으로 에던과의 스킨십을 싫고 짜증 나고 불쾌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몸은 기분이 좋다고 느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에던을 도와주고 싶었으니까 그 정도로 싫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제널드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할 정도로 에던의 몸을 탐내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목말라…….”
치유력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인지 입안이 타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목을 붙잡고 얼굴을 찌푸리는데 마법이라도 일어난 듯 눈앞에 스윽 물컵이 나타났다.
“마셔.”
“아, 고맙…… 응?”
난 고개를 소리 난 쪽으로 휙 돌렸다.
에던이 침대 옆에 물컵을 들고 서 있었다.
“주인님?”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올려다보자 에던이 물컵을 조금 더 내밀었다.
“자.”
“……네에. 고맙습니다.”
뭐야. 왜 이렇게 친절한 것 같지? 설마 어젯밤 일을 기억하고 있나?
눈동자를 굴리며 물을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적당히 시원한 온도의 물이 기분 좋게 목을 타고 내려가는 중에 에던이 침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다 마신 내 컵을 받아서 침대 옆 협탁에 가지런히 내려 두었다.
“정신 들어?”
“네?”
“너 잠 잘 안 깨잖아.”
“…….”
진짜로 뭐야.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하잖아.
무섭게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