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19)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19화. 무도회의 주인공(19/92)
#19화. 무도회의 주인공
2024.05.19.
한편 알케다니아의 제국 중심부에 위치한 수도, 그 땅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황궁에서는 무도회가 한창이었다.
제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단과 성악가들이 대성녀를 위해 연주하는 음악 소리가 웅장하게 황궁 뜰을 따라 궁 전체로 퍼져 나갔다.
황궁뿐 아니라, 무도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수도의 골목 곳곳에서도 대성녀를 위한 크고 작은 축하 모임이 수많이 열리고 있었다.
무도회장은 커다란 겹겹의 홀들로 이어져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황제와 가까워지는 만큼 인테리어도 화려했다.
사제들에게 둘러싸인 대성녀 아이비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무도회장 입구에 발을 내딛자 가장 바깥 회장에 있던 3급 귀족들이 그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성녀님은 처음인 것 같아.”
“치유력도 엄청나다고 들었어.”
소곤소곤, 숙인 고개 사이로 부인들의 목소리가 아이비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는 아이비의 작고 붉은 입술이 기분 좋은 듯 슬며시 올라갔다.
아이비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었다.
다음 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2급 귀족과 1급 귀족들이 있었다. 그들 또한 그녀를 보고 감탄을 마지않았다. 허리를 숙여 충분한 예를 갖춘 후 축복의 말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분이 오셨군.”
“새로운 대성녀님을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아이비는 만족스럽게 자신을 향한 축복을 음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장의 가장 안쪽, 믿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한 공간으로 향했다.
커다란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줄줄이 매달려 있고 벽은 황금으로, 바닥은 은빛 대리석으로 빛나는 무도회장이었다. 최상급 귀족 가문들. 황제와 공작들이 있는 자리에 아이비가 들어왔다.
길고 긴 레드 카펫을 밟고 황제의 앞까지 그녀를 안내한 사제들은 그제야 곁에서 한걸음 물러났고, 아이비는 천천히 베일을 올려 얼굴을 드러냈다.
“축복의 땅 알케다니아의 태양, 율리우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먼저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아이비는 조금 방향을 틀어 조금 전과 똑같이 인사했다.
“축복의 땅 알케다니아의 달, 헨젤라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와 황후는 아이비의 인사를 그 누구보다 더 환영했다.
“대성녀를 축복하오.”
대성녀가 나타나기까지 몇 년 동안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지금도 희생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이능력 기사들을 위한 성녀의 치유력은 제국의 구원이었다.
마물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끝도 없이 마물들과 싸워야 했으니 말이다.
서로의 축복 속에서 기분 좋게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아이비를 위해 준비된 연보랏빛 벨벳 소파 근처에 수많은 선물이 쌓였고, 값진 보석들이 여전히 그쪽으로 배달되는 중이었다. 황태자 킬리언이 아이비에게 다가갔다.
“아이비 대성녀님을 뵙습니다.”
킬리언이 오는 걸 확인한 아이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 자락을 집어 들며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제국의 별, 킬리언 황태자님을 뵙습니다.”
인사를 마친 후 킬리언이 아이비를 향해 성큼 가까이 다가섰다.
“제법인데.”
킬리언이 남들이 보지 않게 등으로 시야를 가리며 아이비의 볼을 톡 건드렸다.
“저 괜찮았어요? 킬리언 님께 칭찬받으려고 많이 연습했어요.”
아이비는 그런 그의 장난이 재미난 듯 사랑스럽게 볼을 붉히며 미소 지었다.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군.”
“킬리언 님 덕분이에요. 제 생애 이렇게 비싸고 아름다운 드레스는 처음 입어 봐요.”
아이비는 보란 듯이 휘이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보았다.
킬리언이 보내 준 하늘색 드레스가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빛나며 그녀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평소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갈색 머리도 다이아몬드 핀을 여러개 꽂아 놓으니 수수하면서도 화려하게 아주 예뻤다. 이전에 힐스타인이 했던 말처럼 이 무도회장 안에 그녀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워하는 걸 바라보던 킬리언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설마. 이깟 드레스 얼마나 한다고.”
“하지만 제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비싼 드레스인걸요?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힐스타인이나 단테가 보낸 건 내 눈치 보느라 숨겨 둔 거 아니고?”
“치. 아니에요. 정말! 정말로 황태자님께서 보낸 드레스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제 진심이 통하지 않아 억울하다는 듯 아이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뾰로통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성급히 덧붙였다.
“아…… 물론 가격 때문에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고…… 아니 그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애써 변명하려는 아이비였다.
킬리언이 그런 아이비의 뺨을 손으로 감싸며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입술을 훑었다.
“장난이야.”
“믿어 주시는 거죠?”
“여기서 그대의 말을 믿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어. 그리고 이깟 드레스. 앞으로 얼마든지 가질 수 있어. 원한다면 더 비싸고 아름다운 것도.”
“전 지금도 만족해요. 정말 행복하거든요.”
“그래. 하지만 욕심부려도 돼, 아이비. 그댄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아이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마치 킬리언이 세상의 전부라는 듯. 그에게 제 모든 것을 내어 주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그때, 회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 특히 젊은 영애들과 부인들의 눈길이 모두 한곳으로 쏠렸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깔끔한 제복 차림의 에던이 레드 카펫 한가운데로 입장하고 있었다.
“저기 봐! 에던 황자님이셔!”
“어쩜. 너무 멋져.”
“저 금발과 흰 피부 좀 봐…… 너무 아름답다.”
웅성거리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아이비의 귀에까지 전달되어왔다.
에던의 찬란한 금발과 외모를 처음 본 아이비의 눈동자가 커지며 반짝 빛을 냈다.
몹시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욕심내는 탐욕자의 눈처럼.
모두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고 있었지만, 에던은 세상에 그 누구에게도 관심 없다는 듯 혹은 자신을 향한 관심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긴장감 하나 없이 여유만만하게 황제의 앞까지 도달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황제 폐하, 황후 폐하.”
킬리언의 친모인 헨젤라 황후는 소리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녀들과 자리를 옮겨 공작 부인들 사이로 끼어들어 갔다.
“…….”
에던은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고 눈썹 한번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하다는 모습이었다.
반면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은 율리우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던에게 다가갔다.
위로하듯 자신의 둘째 아들의 손을 붙잡았다.
“잘 왔다. 아들아.”
율리우스 황제의 손이 에던의 한 손을 붙잡고, 에던은 무미건조하게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 감사합니다.”
에던은 황제의 정부에게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그때 이미 킬리언이 태어나 있었음에도 황제는 후계자를 더 원한다는 이유로 정부에게서 아들을 낳았다.
에던의 친모는 꽤 욕심이 많은 여인이었다. 비록 정부였지만, 그녀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 자리에 올리고 싶어 했다. 때문에, 그녀는 황후와 본격적으로 후계 싸움을 하려 했고 그 탓에 에던은 갓난아이 때부터 황후의 미움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에던의 친모는 약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죽어 버렸다. 황후는 기다렸다는 듯 황제에게 말해 에던을 성의 가장 구석으로 보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만 확인 가능할 정도로, 아주 깊숙하게. 기사 한 명만 붙여 준 채로.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킬리언이 이능력을 발현한 그해, 에던이 킬리언보다 더 어린 나이였음에도 이능력을 발현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킬리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힘을.
존재만으로도 꼴 보기 싫은 정부의 아들이 기어코 황태자인 자신의 아들을 위협할 유일한 적이 된 것이다. 헨젤라 황후는 에던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에던이 무던히 자신의 미움을 받아 내고 황제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에도 그녀는 평생 그를 미워할 것이었다.
“오늘 오지 못할 줄 알았다.”
황제는 손짓으로 시녀를 불러 에던의 잔에 와인을 직접 담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몸은 괜찮은 것이냐. 성녀의 물약이 효과가 있었던 게야?”
지난밤, 북부에서 엄청난 마물의 수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북부의 이능력 기사들은 힘을 무리해서 사용하다가 빠르게 나가떨어져 갔고, 에던 또한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힘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에 극심한 부작용에 휩싸였다.
보고로 인해 그걸 알고 있었던 황제의 입장에서는 올 수 없다고 생각한 에던의 등장이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에던은 아닌 것 같았지만.
“폐하께서 약을 하사해 주신 덕분이지요.”
에던은 조각상처럼 지어낸 미소로 황제에게 입에 바른 대답을 했다.
황제는 이제라도 그를 위한 큰 선물을 주려는 듯 에던의 어깨를 직접 돌려세워 아이비 바이올렛을 가리켰다.
“대성녀 아이비에게 가서 축복을 받거라. 킬리언의 말에 의하며 그녀는 전대 성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치유력을 가졌다고 하더구나.”
“그렇습니까.”
아이비와 킬리언을 바라보는 에던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빛을 내며 일렁거렸다.
에던은 망설임 없이 잔을 내려놓고 아이비와 킬리언에게 걸어갔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에던의 인사에 킬리언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불청객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차마 말도 섞기 싫다는 듯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는 킬리언의 모습이었지만 에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끈한 입술을 끌어올려 다음 말을 이었다.
“성녀님의 축복을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가 허락을 해 줄 거라 생각하고 묻는 건 아니겠지.”
에던이 피식 웃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아버지께서 먼저 허락하셔서요. 아니면 폐하께서 황태자인 형님에게 다시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대성녀의 축복은 황제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미 황제의 허가를 받은 에던에게 축복을 받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킬리언이 황제의 명을 막는 일이었다. 황제가 황태자에게 이런 일의 허락을 구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곡을 찔린 킬리언의 눈가가 구겨졌다.
그와 달리 에던은 여유롭고 느긋한 낯으로 고개를 기울였고 자연스레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황금으로 뒤덮인 무도회장의 인테리어와 조명들이 에던의 머리를 더 화려하게 비추고 있었다.
사생아 주제에, 제국의 별의 명칭에 걸맞은 황태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