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2)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2화. 예쁜 미치광이(2/92)
#2화. 예쁜 미치광이
2024.05.02.
“왜 안 자고 있었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퍽 다정한 말투로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나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저 남자와 아는 사이였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 없이 입을 뻐끔대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저기…… 누구세요?”
일순, 정말 아주 순간 1초쯤 혹시 그가 방구석 주인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내 상상 속에 주인은 말라비틀어진 병약한 소금쟁이 이미지였다.
눈앞의 남자와 전혀 반대되는 모습.
“내가 누구냐고?”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매를 단단히 다물어 내린 남자는 천천히 머리를 쓸어 넘겼다.
상처 하나 없는 반듯한 이마에 달빛이 예쁘게 내려와 앉았다.
그것도 잠시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다시 스르륵 내려와 그의 이마를 가지런히 덮었고, 나는 숨을 꿀꺽 삼켰다.
“날 몰라?”
난 고개를 끄덕였다. 몰라.
“하.”
기가 막힌 듯 헛웃음과 함께 남자의 잘생긴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아니 그런데 이런 말, 이런 순간에 하기는 그렇지만 진짜 얼굴이 끝내주게 생겼다.
갸름하지만 선이 굵어 남자다운 얼굴선과 매끄러운 피부에 가지런한 속눈썹. 레드 다이아몬드를 박아 놓은 듯한 눈동자와 살짝 올라간 눈꼬리까지.
균형 있게 자리 잡은 선명한 이목구비는 너무나 예뻤고, 큰 키와 잘 짜인 골격의 근육질 몸매는 강인한 남성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모난 곳 하나 없는 외모는 호불호 없이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그런 깨끗한 이미지였다.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깨끗한 느낌이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모순인가.
그런데 왜일까? 자꾸만 저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로 나랑 아는 사이인가? 하지만 내가 저 정도로 잘난 얼굴을 봤을 리가 없지. 만약 봤으면 잊어버렸을 수가 없는데……? 그렇잖아. 저런 외모를 가진 남자를 어떻게 잊어? 한 번 보면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미남인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의 얼굴을 관찰할 때였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을 귀찮다는 듯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챙그랑!
“……!”
날카로운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기억에 한걸음 뒷걸음질 쳤다.
‘서, 설마, 설마. 아니지?’
너무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터라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여기는 <성녀님 도망쳐요!> 소설 속.
그리고 금발에, 붉은 눈, 피를 뒤집어써도 미친 듯이 잘생긴 저 얼굴…….
짐작 가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안 돼. 아니야.’
불안감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사이 생각을 정리한 듯한 남자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 턱선을 거만하게 치켜들었다. 건들거리는 양아치처럼.
“그렇네. 날 본 적이 없었지.”
그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내게로 다가왔다.
또박또박, 여유롭고 도도한 걸음걸이. 미치광이는 발걸음 소리조차 오만하다.
눈을 질끈 감은 나는 잠시 온 우주에게 빌었다.
‘순간 이동 능력을 주세요! 당장 여기서 사라지게 해 주세요!’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럼 상태 창이라도!’
물론 안 된다.
마음속으로 눈물 콧물 다 쏟아 내며 비는 동안, 남자는 바로 한 발자국 앞까지 다가왔다.
한쪽 팔을 뻗어 내 등 뒤의 벽을 짚고 선 그가 천천히 상체를 숙여 시선을 맞췄다.
붉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확신은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마음을 휘저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눈앞의 이 남자는 머지않은 미래에 여주에게 미쳐서 피의 학살을 하고 다닐 최악의 악역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안녕, 난 에던 디트리히. 네 주인이야.”
비웃듯이 매끄럽게 올라간 입술과 함께 내 평온이 무너졌다.
남주 후보 4번. 미치광이 악역.
에던 디트리히는 정말이지, 온갖 수식어를 다 붙여도 모자랄 만큼 잘생겼다.
작가님이 사비로 작업해서 넣었다던 삽화가 공개되던 그날, 소설 남주들의 인기 순위가 뒤집혔었다.
남주 후보 1·2·3번. 황태자에, 기사단장에, 남부의 공작까지.
대부분의 로판이 그러하듯 모두 굉장한 미남이었다.
피폐한 분위기에 압도적인 섹시한 분위기까지 인기 투표수도 비등비등했다.
그런데 악역인 에던의 삽화가 공개되자마자 기존의 모든 순위가 뒤바뀌어진 것이다.
“아이비 대신 제가 감금당해 죽어도 될까요?”
“저 얼굴에 저 능력에 악역이요? 여기에 뼈를 묻습니다.”
“에던아 제발 조금만 못 생기면 안 되겠느냐? 할미 숨 넘어 간다.”
“에던 치유력 가져. 다 가져. 나도 가져! 제발 가져!”
그야말로 또라이지만 얼굴이 개연성 그 자체. 하지만 무엇을 하든 상상 그 이상의 미친놈.
황제의 사생아인 에던은 여주인 아이비의 치유력에 엄청난 집착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아이비가 성전에 속해 있는 대성녀라는 것이다. 누구나 그녀를 원하지만 절대 혼자서는 독점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에던은 법을 어기고 그녀를 납치해 성전에서 빼돌려 버린다. 그리고 그녀를 찾으러 온 황실의 병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다른 남주 세 명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아이비에게 집착한다.
그러나 평화주의자인 아이비가 제 곁을 스스로 떠나자 그 이후에는 이성을 완전히 놓아 버려 흑마법까지 손을 대는데, 그 뒤에는 막장이었다. 그 누구도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 잘생겼으니까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실제로 만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따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눈앞에서 저 금발을 보게 되다니. 저 눈동자를 마주하게 됐다니.
‘잘생긴 건 잘생긴 거고 실물이 무섭잖아! 아우라가 너무 공포잖아!’
이대로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에던 앞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남자는 생긴 것뿐 아니라 가진 능력도 사기거든.
강력한 마물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는 북부를 홀로 지휘하고 감당하고 있는 남자 앞에서 어떻게 도망칠 수 있겠어.
생각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지만, 나는 애써 태연하게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에던 디트리히 주인님.”
파르르, 파르르.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어색하게 웃는 내 몰골은 괴이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게 최선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단칼에 베는 남자를 앞에 두고 눈물을 참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할 만했다.
가만히 날 내려다보던 에던은 피식, 옅게 웃으며 입술을 살며시 벌리더니 피가 묻은 엄지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스윽 훑었다.
그의 입술 라인을 따라 붉은 피가 거칠게 색을 입히고, 내 코끝에는 비릿한 냄새가 스쳤다.
자신의 손끝을 응시한 에던의 붉은 눈동자가 스륵 아래로 향했다가 천천히 올라오며 다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미친, 뭐가 이렇게 섹시해.
예쁜 얼굴에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공포심에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헷갈리잖아.
“이제 기억이 났어?”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요. 우리 처음 만나네요.”
“네가 날 본 게 처음이지.”
“·…네?”
“난 널 계속 보고 있었는데.”
무섭게 뭐라는 거야. 날 감시했다고? 대체 언제?
내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자 에던은 성큼 날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피 냄새는 그렇다 치고 넓은 어깨와 엄청난 체구에 짓눌릴 것 같았다.
“왜 그래?”
“뭐가요?”
“내가 무서워?”
“아니요?”
무섭지! 당연히 무섭지! 네가 미친놈이라는 걸 떠나서, 검을 들고 피를 뒤집어쓴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안 무서워!
하지만 나는 허세를 부렸다. 기 싸움에 지면 안 돼.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무서워하면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 이 남자는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된 방구석 폐인 주인이다. 단지 그뿐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에던은 느릿하게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온몸이 매미 울음소리처럼 떨고 있는데?”
“오해예요. 전 밤만 되면 신체가 떨리는 병이 있거든요.”
“그런 병이 있어? 처음 듣는 병인데.”
“희, 희귀 병이에요.”
“아닌 것 같은데.”
“맞…·!”
더 우기고 싶었지만 미소를 거둔 에던의 표정이 살벌해져서 나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눈에서 칼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에던의 눈빛에, 나는 이번에야말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내 목을 꺾어 버리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정신 줄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이, 다행히 에던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밥은?”
“네?”
“내 아침밥 말이야. 치웠어?”
“아, 아니요. 그대로 있어요.”
휙. 에던은 너른 어깨를 보이며 뒤돌아 걷더니 바닥에 떨어트렸던 검을 다시 잡아 들었다.
날이 잘 갈린 검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맙소사. 그 피가 저 피였다니.’
내가 방구석 주인이 병약하다고 짐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 피였다.
아침이 되면 피가 한두 방울씩 바닥에 흘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저 피를 닦았는데, 한가로운 이 고성에서 내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청소였다.
너무 병약해서 자주 코피를 흘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잖아!
“잘 자.”
응? 무심하게 말을 내던진 에던은 날 지나쳐 가더니 문 앞에서 트레이를 끌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나는 에던의 방문이 닫힌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복도에 서 있었다.
뭐랄까, 잘생긴 외모도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소설에서 묘사한 대로인데 어딘가 다르다.
-방해하는 모든 자들을 죽이고, 죽이고, 죽여서라도 널 내 곁에 둘 것이다.
그런 딱딱한 말투를 썼었는데.
지금의 에던은 미묘하게 부드러운 말투이지 않았나?
***
“으아악!”
나는 괴성을 지르며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헉, 허억.”
겨우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독한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평소처럼 힐링 라이프를 즐기며 정원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졌다.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어둠의 연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도망치려 했지만 바닥에는 새빨간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려 봤지만 질펀한 피 웅덩이 속으로 점점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결국 거대한 어둠의 연기는 날 집어삼키고 말았다.
쓸데없이 생생하기까지 해서 정말 짜증 나는 꿈이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따사로운 햇살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그제야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린 나는 평소보다 화창한 날씨에 미간을 찌푸렸다.
“…·몇 시지?”
“11시 57분.”
“으악!”
휙! 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손을 모아 깍지 낀 에던이 의자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상태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