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24)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26화. 거슬리게(24/92)
#26화. 거슬리게
2024.05.26.
심지어 내뱉은 말은.
“저기…… 누구세요?”
순간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어떻게 날 모를 수가 있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라티에나는 자신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깨워 줬더니 온몸을 벌벌 떨어 댔다. 누가 보면 죽을 위협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이름을 알려 줬을 뿐인데. 내가 퍽 몹쓸 짓을 한 것처럼.
날 보고 반해서 덤벼들기라도 하면 어떤 식으로 받아쳐야 하나. 완벽한 치유력으로 날 위해 애써 주고 있으니 뭐, 기꺼이 당해 줘야 하나 싶은 마음까지 먹었는데. 덮치기는커녕 물러서기만 하는 라티에나 때문에 에던의 그 모든 결심 따위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졌다.
“내가 무서워?”
“아, 아니요?”
그 와중에 용맹하게 거짓말도 한다.
차라리 무섭다고 하는 편이 솔직했을 텐데 무섭지 않다고? 툭 치면 엉엉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저, 저는 밤만 되면 신체가 떨리는 병이 있거든요.”
재미없는 헛소리도 하고.
긴 시간 이어진 전투에 두통이 있었기 때문에 대답하기 귀찮아져서 입을 다물었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다시 만들어.”
에던을 본 다음 날 라티에나는 아침밥에 치유력을 담아 주지 않았다.
대체 뭘 이렇게 겁을 먹고 숨기는 건지. 언제까지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덩치도 작은 게 어찌나 바들거리는지, 에던은 천천히 다가가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팔 안에 가두었다.
“양념, 뭘 빠트렸던 거야?”
동그란 눈이 데굴데굴 움직였다.
오른쪽, 왼쪽, 천장. 그리고 아래, 그리고 다시 천장.
잔머리 굴리는 게 전부 다 훤히 보일 정도로 데구루루.
“후, 후추요! 후추를 빠트렸어요!”
그러면서 라티에나는 냉큼 주머니에서 후추통을 꺼내 보였다.
“동네 아주머니가 준 후추예요! 비싸서 잘 구할 수 없는 거라 했는데 두통에 효과가 있었나 봐요!”
“……그래?”
후추 같은 소리하네. 이걸 변명이라고.
가만 보니 한 번씩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건…….
‘내 얼굴을 보고도 반응이 없어.’
시력이 나쁜가? 에던은 스스로 외모가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자들이 워낙 칭찬해마지않는 호불호 없이 잘생긴 사내라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라티에나는 지금껏 보았던 여자들과 반응이 달랐다.
지난밤에야 어두워서 내가 잘 안 보인 데다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무서워서 그랬다고 백번 이해하고 넘어가도 지금은 환한 대낮이었다.
그런데도 어느 쪽이냐 하면 오히려 피하려는 쪽일까.
“원래부터 후추는 많이 먹는 음식도 아니고.”
그놈의 후추.
에던은 라티에나와 눈을 마주친 상태로 점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가진 치유력만큼이나 맑고 커다란 눈이 부끄러운 듯 느릿느릿 깜빡였다.
“잘못 먹으면 기침도 나고…….”
어깨고 손이고 전부 말랐는데, 적당한 볼살이 붙은 양 뺨은 서서히 핑크빛으로 변해 갔다.
“목도 아프고…….”
말캉거리고 폭신거릴 것 같은, 한 입 베어먹으면 굉장히 달콤할 것 같은 볼.
“맵고…….”
만지면 울까?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따위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딜 감히 벗어나려고, 라티에나가 제 팔을 밀었다.
입술을 꽉 악물고 이마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걸 봐서는 온 힘을 다한 것 같지만, 글쎄.
당황스러워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뭔데 힘이 없어.”
“……미안합니다.”
라티에나 메리골드.
내가 원하는 완벽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데, 예쁘고.
“좋아합니다! 그동안 쭉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니 당근을 흔들어 주시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예뻐서 딴 남자에게 열정적인 고백도 받고.
“나 약혼자가 있어요.”
예쁘니까 약혼자도 있었단 말이지.
“못생긴 주제에 잘도 했네?”
거슬리게.
***
“황실에서 벌써 5번째 초대장이 왔습니다.”
루벤이 황금 문양이 박힌 봉투를 내밀었다.
에던은 시큰둥하게 그걸 받아 들었다.
“축하 무도회라…….”
아이비 바이올렛이 드디어 대성녀로 책봉된 모양이다.
“가실 겁니까?”
“글쎄.”
“이번에는 답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달째 날아오고 있으니까요. 정 내키지 않으시면 평소처럼 거절할까요.”
“……글쎄.”
오랜만에 황실에서 여는 무도회다.
대성녀를 위한 아주 중요한 초대장이었기 때문에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라도 이젠 정말 답장을 보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에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시큰둥한 얼굴로 내용을 읽어 내린 에던이 협탁 위에 툭, 아무렇게나 초대장을 내려두었다.
“라티에나가 사직서를 내밀었어.”
“예?”
루벤이 가는 눈으로 에던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루벤은 차라리 라티에나가 다른 여자들처럼 에던에게 푹 빠져 버리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처음으로 제 주인에게 딱 맞는 완벽한 치유력을 가진 여자였으니까.
그런데 에던에게 전해 듣는 상황은 하나도 예상대로 가는 법이 없었다.
그 어떤 스킨십도 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피해 다니는 것도 이상한데, 이젠 사직서라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왜?
“아.”
생각을 하던 루벤이 깜빡했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약혼자가 있다고 했었죠?”
“뭐, 그런 모양이야.”
“라티에나양이 그 약혼자를 엄청 사랑하나 봅니다.”
“…….”
눈썹을 미세하게 움찔거린 에던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직서는 받아 주셨습니까?”
“내가 미쳤어?”
“그렇죠? 잘하셨습니다. 그럼 대화로 잘 풀어서…….”
“찢어 버렸지.”
픽, 에던이 웃었다.
“그보다 루벤.”
“예.”
“마법 트랩 좀 가져와.”
“마법 트랩을요? 어디에 두시게요?”
“고성에.”
루벤은 제 주인이 무엇 때문에 마법 트랩을 원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마물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값비싼 마법 트랩을 그 시골 촌구석 고성에 두겠다니. 가녀린 여자 한 명 감시하기에는 장비가 너무 과하지 않나…… 마물 잡을 때 사용하는 건데…….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루벤은 충실한 부하였기 때문에 에던에게 트랩을 넘겼고, 에던은 그것을 고성 주위에 설치한 후 마법 주문으로 자신과 연결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라티에나가 트랩을 건드렸다.
“하.”
짙은 어둠이 깔린 북부의 새벽.
한참 마물과 전투를 치르고 있던 에던은 그대로 검을 허공에 멈춰 버렸다.
그 순간에 마물의 거대한 손이 에던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콰앙! 지면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을 내며 단칼에 마물의 팔을 잘라낸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긴 후 뒤돌아섰다.
“대, 대공님?”
“대공님!”
“대공님! 어디 가십니까!”
등 뒤에서 부하들이 애타게 불러댔지만, 에던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대로 포털을 넘어갔다.
“어디가.”
내가 부르는데, 저렇게 절망적인 표정으로 돌아볼 일인가.
웃기는 포즈로 성벽에 올라타려던 라티에나는 에던을 마주한 순간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울상지었다. 심지어.
“도망가도 돼.”
“저, 정말요?”
평소에는 속내 따위 잘도 숨겨대더니 떠보는 말 한마디에 솔직하게 반응하며 도망을 가려 한다.
그렇게 기뻐 죽겠다는 얼굴로, 짜증 나게.
“그 대신 잡히면 죽어.”
어디 한 번 가 보시지. 갈 수 있다면.
에던은 싱긋 웃었다. 다행히 라티에나는 겁이 많아서 조금의 협박으로도 얼른 태세 전환을 했다.
겁에 질려 도망을 포기한 것 같지만, 라티에나의 그딴 사정쯤 에던은 아무래도 좋았다.
누구 마음대로 내 손을 떠나?
***
“안아 줘. 떨어지지 마. 추워.”
기절한 라티에나를 침대에 눕히려던 에던은 그대로 멈췄다.
품 안에 안긴 작은 체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북부에서 싸늘한 공기에 뒤덮여 있다가 따듯한 곳으로 돌아오자 되려 온도가 맞지 않아 으슬으슬한 듯했다.
“감기, 걸리려나.”
모르는 척 내려놓을까 말까 고민하던 에던은 라티에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혼잣말에 그녀를 내려놓지 못했다.
“죽고 싶지 않아…….”
진짜, 뭔데.
그녀를 안은 채로 돌아서서 에던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라티에나는 말과 행동이 너무 모순적이다.
힐스타인을 보고 겁에 질려 무서워서 떠는 주제에 루벤이 다치니까 나서려 했다.
그래 놓고서 죽고 싶지 않다고?
에던은 라티에나를 침대에 눕힌 후 씻고 나왔다.
그런데 자신만 더러운 줄 알았더니 자신의 옷에 묻어 있었던 마물의 피가 그녀의 옷에 물들어 있었다.
심지어 메고 있는 가방과 외출복이 불편한 듯 낑낑대고 있었다.
“…….”
에던은 라티에나의 방으로 가서 옷장을 뒤졌다.
매일 그녀가 입고 자던 하얀 잠옷이 비슷한 디자인으로 서너 개 걸려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든 에던은 혀를 찼다.
이게 옷이 맞나? 너무 작은데? 돌아와서 대보니 옷이 맞긴 했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힌 에던은 라티에나에게 이불을 덮어 주며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좀 편안해졌는지 라티에나는 새근새근, 고요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몇 번이나 뺨을 만질까 말까 고민하던 에던은 라티에나의 얼굴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라티에나의 주먹이 가슴팍에 날아왔다.
“미쳤어!”
완전히 솜방망이다. 이걸 지금 아파하라고 때리는 건가? 일부러 아픈 척이라도 해 줘야 하나?
“허락도 없이 알몸을 봤잖아요! 아무한테도 보여 준 적 없는데!”
뭔데. 왜 처음인데. 약혼자한테도 안 보여 준 건가?
제널든지 지랄든지 지렁인지 그 새끼 고잔가? 이 여자를 앞에 두고 어떻게 참을 수가 있지?
아픈 사람 덮치는 취향은 없어서 죽어라 참아 내긴 했지만, 지난밤 만약 라티에나가 눈을 떴다면 에던은 어떻게든 꼬셔 덮쳐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처음? 젠장할.
에던의 입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자기가 기분 좋은 건 별개로, 라티에나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가슴을 조물딱거린 걸로는 만족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기꺼이 제 것도 보여 줄 의향으로 바지를 내리기 시작했더니 그녀는 기겁하며 방을 나가 버렸다.
풀썩, 이마에 팔을 얹고 침대에 드러누운 에던의 머리에 라티에나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예쁜 얼굴에는 상처가 없어서 다행이네.’
도망가려 했던 주제에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나 보지?
외모 칭찬이 이렇게나 기분 좋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예뻐서 잘했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