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 Went Crazy Over Me RAW novel - chapter (3)
악역이 내게 미쳐버렸다 3화. 갇혀 버렸다(3/92)
#3화. 갇혀 버렸다
2024.05.03.
“여, 여기서 뭐 하세요?”
“잘 자라고 했더니 아주 푹 주무셨네.”
“어. 그…… 어제 늦게 잠들어서…….”
“내 탓이다?”
당연히 네 탓이지. 그런 모습을 보고 누가 마음 편히 잠이 들 수 있겠어.
네 놈 탓이지만 네 놈 탓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 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내렸다. 불현듯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구겨진 잠옷 차림을 한 내 행색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눈앞의 에던은 새하얀 튜닉을 헐렁하게 걸쳐 입고 있었는데, 밝은 곳에서 보니 눈부심 그 자체였다.
생긴 것만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섹시한 천사가 따로 없다. 작가님 어찌하여 이리도 잘생긴 미친놈을 만들어내신 건가요.
에던은 내가 머리 정리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밥 줘.”
“네?”
“말을 잘 못 알아듣는 타입이었나? 왜 자꾸 말을 두 번 시키지?”
“죄송해요. 잠이 덜 깨서…….”
“배고프니 밥 달라고.”
“……네.”
다짜고짜 밥투정을 시전한 에던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침밥을 늦게 줘서 그런가. 그렇다기엔 평소 아침밥에 별로 관심 없었던 것 같은데…….
뭐, 음식은 남기지 않고 꼬박꼬박 먹긴 했지만 말이다.
그의 안색을 살피던 나는 슬금슬금 침대를 벗어나며 물었다.
“……주인님 어디 아프세요?”
“왜? 아파 보여?”
“어젯밤에 코피를 많이 쏟으셨잖아요.”
에던의 한쪽 눈가가 미세하게 구겨졌다.
“무슨 말이야?”
낚았다. 그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나는 어제 새벽 내내 고심하며 준비해 둔 허당캐 연기를 시작했다.
“아니. 어젯밤엔 너무 놀라서 말씀을 못 드렸는데, 온몸에 피가 잔뜩 묻어 있으셨잖아요. 그 정도로 코피를 많이 쏟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러고 보니 옷 세탁을 해야 하니 빨래도 내놓으실래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바보라도 해도 어젯밤 그 피를 코피 따위로 오해하는 일은 없다.
코피를 그 정도로 쏟았다가는 과다 출혈로 이미 사망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다.
수상한 오해를 받는 것보다는 좀 모자란 하녀로 보이는 게 낫잖아. 미래의 미치광이지만 아직 완전히 미치지 않았으니 너무 멍청한 바보가 눈앞에 있으면 좀 잘해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어제도 좀 다정해 보였고.
침구 정리를 하는 척 바보 같은 말을 쏟아 낸 나는 은근슬쩍 눈동자를 굴려 에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
아무 말 없이 깍지 낀 손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 에던은 세상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눈으로 날 내리깔아 보고 있었다.
그딴 헛소리에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밥.”
아, 예.
허당캐 연기는 단숨에 끝이 났다.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하얀 잠옷 차림 그대로 주방으로 향하는데, 에던이 날 졸졸 따라왔다. 그러더니 조리대 옆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았다.
평소라면 방구석 폐인이 되어 있어야 할 시간인데 내게 정체를 들켰으니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우쭈쭈, 우리 주인님 배 많이 고프시져?”
“…….”
“이 하녀가 금방 만들어 드릴께요! 쪼꼼만 기다리세요!”
“…….”
허당 캐릭터를 포기하지 않은 나는 방정맞은 아부를 좀 떨어 주고 요리를 시작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건 애써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나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 중이니까.
매일 아침 에던이 먹는 건 항상 똑같은 음식이었다. 구운 빵에 긴 소시지를 넣고, 그 옆에 계란프라이 하나. 별다른 거 없는 평범한 메뉴다.
왜냐면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거든.
내 아부에 살벌한 아우라를 풍기던 에던은 의외로 얌전히 요리를 기다렸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만 크게 갈구지 않은 걸 보니 약간의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원래는 조금만 심기가 거슬려도 검을 드는 미친놈이지만 지금은 원작 초반부니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닐 수도 있다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만들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 내뱉을 수 없는 욕을 담고 바람에 흩어지고…….
벌써 네 번째 거절. 같은 요리를 다섯 번째 만들게 생겼다.
어젯밤엔 하루 종일 식은 밥도 잘 먹는 것 같더니 왜 갑자기 까탈스러워진 거야?
‘주는 대로 처먹어!’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이를 콱 악물고 참아 낸 나는 천천히 접시를 들어 올렸다.
“평소랑 똑같이 요리해.”
“아까부터 계속 말씀드리지만 어제랑 똑같은 요리예요.”
“달라.”
“똑같아요. 재료도 그대로고 항상 이거 드렸었잖아요.”
“다르다고.”
꿋꿋이 대답해 봤지만, 불쾌한 티를 내며 낮아진 에던의 목소리에 나는 움찔 어깨를 좁혔다.
대체 뭐가 다르다는 소리니, 금쪽아.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해결 방법도 모르겠다. 이대로 다시 요리해 봤자 똑같은 음식이 다섯 번째로 만들어질 뿐인데, 대체 뭐가 문제야?
내가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서 있자 에던이 말을 이었다.
“……두통이 사라지지 않아.”
뭐?
“네가 만든 아침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던 두통이 사그라들었었는데. 오늘은 아냐. 다르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벼락에 맞은 듯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꿀꺽. 뜨겁게 넘어가는 숨을 들이쉬며 나는 손에 든 접시를 놓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텨야 했다.
그리고 이젠 진짜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듯한 에던이 포크를 툭, 내던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보석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다시, 제대로, 만들어.”
나는 흔들리는 동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재빨리 접시를 들고 뒤돌아섰다.
“아, 아하! 그러고 보니 양념 하나를 빠트렸네요!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다니. 죄송해요!”
멍청이! 나는 리얼 멍청이다!
에던이 말하는 건 나의 치유력이었다. 어젯밤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에던이 너무 멀쩡해서 깜빡 잊고 있었는데 그는 항상 이능력의 부작용인 두통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여주인 아이비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성녀 후보였기 때문에 치유력이 있었다.
빙의 후 마차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했던 나는 한동안 힘을 사용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지나자 몸이 회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력을 발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몸에 남아 있는 기억을 토대로 손끝에 신경을 조금만 집중하면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동안 병약한 소금쟁이 방구석 폐인을 위해 아침밥에 아주 조금씩 내 치유력을 담아서 내어 주었었다.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만은 잘 살아서 월급을 잘 챙겨 주세요, 하는 마음.
그런데 그게 설마 에던의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망할.
‘설마 나한테 치유력이 있는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다섯 번째 아침 식사를 완성한 나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등을 돌리고 서서 손가락 끝에 치유력을 조금 발현시켰다.
몽글몽글 일렁이는 물방울처럼 나온 따스한 핑크빛 반짝이가 사르르 빵 속에 스며들었다.
잠시 후.
“괜찮으세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에던은 식사를 말끔히 비웠다.
예민하던 분위기가 사그라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두통…… 괜찮아요?”
“응. 신기할 정도로 가라앉았어. 네 요리는 정말 마음에 들어.”
“그렇게 맛있어요?”
“맛은 없지.”
……저기요?
“맛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확인 사살까지 하지 마.
포크를 얌전히 내려놓은 에던은 습관처럼 크고 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러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양팔을 뻗어가운데에 두고 날 가두듯이 조리대에 손을 짚었다.
보는 것만으로 단단할 것 같은 가슴에 얼굴이 닿을 듯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이제는 에던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아주 잠깐 방심했을 뿐인데, 잠깐 사이에 난 완전히 그의 품 안에 갇혀 버렸다.
피비린내가 났던 지난 밤과 다르게 에던에게서는 산뜻한 비누 향이 풍겨 왔다.
계속 떨려서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는 내 심장은 자진모리장단을 치고 있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에던은 태연하게 나와 눈을 마주친 채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양념, 뭘 빠트렸던 거야?”
“어…… 그러니까.”
나는 재빨리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말해. 뭐였는데?”
“후, 후추요! 후추를 빠트렸어요!”
말도 안 되는 내 변명에 에던의 눈가가 슬쩍 구겨졌다. 그걸 말이냐고 하냐는 듯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후추?”
에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고, 나는 아까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던 후추통을 재빨리 꺼내 보여 줬다.
“동네 아주머니가 준 후추에요! 비싸서 잘 구할 수 없는 거라 했는데 두통에 효과가 있었나 봐요!”
“……그래?”
“네!”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많이 먹으면 안 돼요.”
“어째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무슨 부작용?”
아으……. 일단은 좀 떨어져 주면 안 될까?
얼굴로 사람 좀 패지 마.
내가 아이비처럼 예쁜 얼굴이었으면 자신감이 넘쳐나서 좋았을 텐데, 빙의해도 평범한 얼굴이다 보니 잘생김으로 폭행당하는 기분이 든다.
난 에던의 환상적인 얼굴을 보고 있지만, 쟤는 세수도 하지 않은 내 얼굴을 보고 있는 거 아냐.
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천장으로, 벽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했다.
“약도 매일 먹으면 효과가 떨어지잖아요. 그것처럼 후추도 과하게 먹으면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대답 없는 에던의 눈빛은 차분했다.
“원래부터 후추는 많이 먹는 음식도 아니고.”
“…….”
“잘 못 먹으면 기침도 나고…….”
“…….”
“목도 아프고…….”
“…….”
“맵고…….”
“…….”
내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에던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계속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 슬그머니 그의 팔을 밀어 보았다. 갇힌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는데.
“……?”
엥? 팔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사람 팔이라고 믿기지 않는 단단한 근육의 감촉에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한 손으로 밀어서 그런가? 나는 이번엔 양손을 이용해 그의 팔을 꾸욱 눌렀다.
입술을 악물고 목덜미부터 이마까지 새빨개질 정도로 더 밀어 보았지만 에던의 팔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뭐냐고 이거. 돌이야? 쇠야? 주먹으로 때려도 미동도 없을 것 같은 단단한 팔뚝에 나는 기함하고 말았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네. 아무리 내가 평범하다지만 그동안 빗자루질을 한 경력이 있는데.
에던이 왼손잡이인가? 그래서 왼쪽 팔뚝이 단단한 건가 싶어서 나는 오른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다 여전히 날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던 에던과 눈이 마주쳤다.
“……미안합니다.”
빠른 사과에 에던은 하찮다는 듯 혀를 차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뭔데 힘이 없어.”